생물과 생명

흙, 바람, 물, 공기, 햇빛, 돌, 이름 모를 풀꽃, 벌레.

우리들의 주변에 있는 것 중에 무엇이 생명 있는 것이며 무엇이 생명 없는 것인지를 우리들은 어렵지 않게 구별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나 다양한 탓에 공통점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정연한 짜임새, 화학반응, 증식, 자극과 반응, 운동, 적응, 진화.
이런 것들이 대략 생물학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 생물체의 특성이다. 좀더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공통점은 없을까?

현미경을 통해 생물체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생물체가 세포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칸막이 모양의 세포는 동물에서도 발견되었고 식물에서도 발견되었다. 나중에는 미생물도 세포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들로 인해 생물학 연구는 한동안 세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세포가 아닌 바이러스의 존재도 알려지게 되었다.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과 바이러스의 공통점? 그것은 둘 다 DNA나 RNA와 같은 복제물질을 갖는다는 점이다.

복제물질을 갖게 되면 복제물질이 갖는 성질로 인해 진화, 적응, 증식이 가능하게 된다. 생명의 특징은 역시 복제물질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DNA라는 복제물질이 발견되기 전에 일부 화학자들은 화학물질이 스스로를 복제하려면 어떤 구조를 가지면 좋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의 끝에 그들은 요철(凹凸)로 된 구조를 제시하였다. 요(凹)의 구조가 철(凸)의 구조를 만들어 내면 철(凸)의 구조가 다시 요(凹)의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원래의 요철(凹凸)구조를 복제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내놓았다. 이러한 예상은 DNA의 구조가 세상에 밝혀지자 적중하게 되었다.

생명의 시작은 복제물질일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복제일 것이다. 똑 같은 하나를 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생명의 본질일 것이다. 흔히 지구는 살아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지구가 또 하나의 지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지구가 정연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여러 가지 화학반응과 변화가 지구상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지구가 똑 같은 지구를 하나 더 만들어 낼 수 없는 한, 지구는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이 생물학자가 생각하는 생명체의 정의일 것이다.

인간 주위에 있는 각종 생물체를 이해하는 데 인간은 막대한 수고를 다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 사회에 관한 학습에 대부분의 수고를 들이고 있지만, 원시인들은 자연과 생물체의 학습에 대부분의 수고를 들였을 것이다. 인간의 주위 생물체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편의라는 관점에서 먼저 시작하였다. 먹을 수 있는 것, 이로운 것, 해로운 것 하는 식이었다. 정보의 양이 늘게 되자 인간은 생물이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에게도 친척의 개념이 있듯이 생물에도 비슷한 생물이나 친척의 개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생물과 어떤 생물이 친척관계에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생물 분류학(分類學)이라고 부른다. 친척관계가 차츰 밝혀져 감에 따라 왜 지구상에는 이토록 많은 생물이 존재하게 된 것인가 하는 의문(疑問)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다윈은 이런 의문에 대해, 생물은 저 자신이 가진 본성에 의해 이리저리 유전 가능한 변화를 행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유리한 변화를 행한 것이 살아 남아 자손을 남기게 됨으로써 변화해 온 것 같다는 해답을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설명은 진화론에 관한 자연선택설로 불리며 지금도 여전히 생물학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자손이 부모를 어떻게 닮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멘델의 유전학 연구로부터 풀리기 시작하였다. 생물의 구조와 기능은 유전물질 속에 씌어져 있으며 이의 전달을 통해 자손은 부모를 닮을 수 있게 됨을 20세기에 들어 와서야 비로소 생물학자들은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53년, 크릭과 왓슨의 기념비적인 업적에 의해 유전물질인 DNA의 화학적인 실체가 상세히 밝혀지게 되었다. DNA가 요철(凹凸)구조로 되어 있다는 그들의 유명한 논문에서 두 20대의 젊은 생물학자는 DNA의 한 가닥이 나머지 가닥을 만드는 틀로 이용됨으로써 자신을 복제하게 될 것임도 예측하였는데 이는 후에 보기 좋게 적중하였다.

이후의 생물학 연구는 물리학의 황금시대에 맞먹는 열기(熱氣)로 진행되었다. 지구 상에 사는 모든 생물은 서식지나 외양에 관계없이 모두가 친척관계에 있음을 DNA 상에 씌어 있는 정보의 해독을 통해 이내 알게 되었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은 모두 DNA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 언어는 약간의 사투리가 있긴 해도 통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DNA에 관한 연구는 자연스레 진화의 연구와 합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최초의 생명체는 지금으로부터 약 36억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였으며 DNA의 복제가 완벽하지 못하여 복제 도중에 실수가 발생하는 것이 다윈이 생각한 유전하는 변화의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복제하는 물질인 DNA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한 결과로 지구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생물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들 모두는 최초에 생겨난 그 생물의 후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물은 DNA라는 물질을 복제하여 두 세포가 서로 나눠 갖는 방식을 통해 영생하게 된다. 정확히 복제되었더라면 지금의 생물은 36억년전의 생물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복제 도중 실수를 허용한 까닭에 복제를 거듭하는 중에 많은 변형 DNA가 생겨날 수 있었다. DNA의 변형은 물론 그 생물의 구조나 기능의 변화에 직결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겨난 많은 변형 DNA들은 서로간의 경쟁을 통해 효율이 좋은 DNA가 적당한 환경에 선택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모든 생물이 갖는 DNA에는 그러므로 36억년이란 장구한 시간에 걸친 변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기록을 모두 읽어내게 되면 36억년이란 시간을 통해 생물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진화의 연구는 현재의 많은 결점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은 우연한 기회로 DNA라는 물질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DNA는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순간 영생불멸할 수 있었다. 세포나 기타 등등은 복제물질인 DNA의 복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돕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DNA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복제 과정의 실수를 통한 정보의 다양화란 기능을 의도적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하여 36억년이 지나자 이 지구에는 결과적으로 몹시 다양한 많은 생물이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영생불멸의 복제물질인 DNA는 스스로의 변화에 의해 어느때부터인가 세포라는 틀을 갖게 되었다. 유전정보는 DNA가 보관하게 되었고 이 정보의 출납은 RNA가 맡게 되었다. DNA의 복제는 단백질이 맡게 되었다. 이렇게 일의 분담이 정해지자, 어떤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 DNA유전정보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에 울타리로서의 세포막이 추가됨으로써 세포라는 틀은 완성되었다. 세포라는 이 형식은 아주 괜찮은 형식이었던지 수 십 억년을 이어오게 되었다.

DNA, RNA, 단백질, 세포막은 한결같이 유기물질이란 종류의 화학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유기물질은 손쉽게 말해 탄소화학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탄소가 탄소와 자꾸 이어지는 방식을 통해 다양한 탄소화학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유기물질인 셈이다. 세포는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선 외부로부터 유기물질을 구해야 한다. 이 같은 유기물질은 무생물체인 무기물질로부터 궁극적으로 생기긴 하지만, 일단 유기물질로 바뀌게 되면 생물체 사이를 돌고 돌게 된다. 어렵게 만든 것이므로 재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식이다.

생물 진화의 초기에는 주어진 환경에 보다 잘 적용할 수 있는 생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된 과제였을 것이다. 이윽고 생물이 다수 생겨나 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시작하자, 자연환경은 이에 따라 변화가 불가피해 졌을 것이다.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이 새로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생물은 무생물환경에 잘 적응하는 문제보다 주위에 있는 생물들에 잘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한 단계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생물들 사이에는 경쟁, 공존, 의존, 협력이라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관계가 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는 물론 생물의 몸을 이루는 물질이 유기물질로 되어 있다는 것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유기물질은 생명체 사이를 순환하게 된다. 이 생물의 몸을 이루고 있던 것이 저 생물의 몸을 이루게 되는 식으로 머물지 않고 전전(轉轉)하게 된다. 그리고 한 생물의 특징을 요약하고 있는 유전물질은 대물림하게 된다. 대물림해 온 지 36억 년이 되고 있다.

나는 두 가지 사항을 합쳐 생각하면, 생명체가 거대한 그물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복제하는 생명체의 존재가 생물 역사의 초기에는 중요했겠지만, 이제는 존재 그 자체보다는 생명체끼리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가 더 중요한 듯한 인상도 동시에 받게 된다.

일전에 본 영화 스타 게이트(Star Gate)는 내게 생명상을 이해하는 좋은 단서가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집트에서 돌로 된 원형의 이상한 유물이 하나 발견되어 스타 게이트란 이름이 붙여진 끝에 극비리에 그 용도에 관한 연구가 진행 된다. 이윽고 그 돌문으로 들어가는 암호를 해독한 미 군사 당국은 특수부대를 스타 게이트에 투입하게 된다. 돌문을 들어선 특수부대원들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새 세상을 다스리고 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과거 이집트를 다스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영생불멸의 존재로서 모양을 바꾸어 스타 게이트를 통해 이 세상 저 세상으로 옮겨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영생불멸의 존재이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그것이 생명의 모습일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최초에 지구에 존재했던 DNA의 변형에 불과하다. 그 차이에 감탄하며 서로는 다른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복제를 통한 변형을 거쳐 생겨난 모두이므로 본질적으로 생명체 모두는 동일할 것이다. 생명체 간의 차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무생물과 생물 사이의 차이에 비교한다면 무시할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 모습을 여러 모로 바꾸고 있고, 사는 곳도 서로 다르게 되어 있지만, 영생해 왔고 영생해 갈 것이란 것이 생명(生命)의 정체(正體)일 것이다. 언젠가는 유사시(有事時)가 되면, 지구를 떠나 다른 별로 가서 다시 생명을 이어갈 정도로 인류의 과학이 발전해 갈지도 모름을 생각하면, 이 복제물질의 놀라운 능력에 그저 경이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