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새 가능성 열어보인 ‘짓’ 5주년 창작춤판한국춤모임 ‘짓’ 창립5주년기념 창작춤판 <생의 전주곡, 빛의 나이테, 껍질속의 껍질> 1991. 9. 10
김 영 태 (무용평론가)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 한 구절이다. 부산에서 활동중인 한국춤모임‘짓’의 5주년 창작춤(9월 10일 경성대 콘서트홀) 박소영이 안무한 ‘빛의 나이테’를 보고 문득 발레리의 시가 생각났다.
‘기쁨의 뿌리’ ‘갈등’ ‘고통’으로 이어지는 ‘빛의 나이테’ 3장에서 나는 일곱 명의 나무들을 본다. 그 나무들은 폭풍속에서 견디는, 빛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속살을 하늘에 견주는 어린 생명체들이다. 1장에는 박토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이 나온다. 2장에서 그들은 물이 되고 꿈이 된다. 3장에는 키재는 나무들이 마파람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평론가 김태원은 ‘짓’춤을 이렇게 정의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깔면서 제의적 구조를 빌어 춤과 한국인의 심층적 감정관계, 질과 움직임의 깊이를 밀도있게 추구했다’라고.
‘빛의 나이테’에서 그들이 대변하는 것은 아직 어리지만 부단히 용솟음치는 저항정신이다.
벌판에 섰을 때
새들은 날아 오지 않고
광활한 천지에 북소리(갈등 장면)
그 북소리 속에 떠오르는 순교자가 있다. 안무를 맡았고 흰 옷을 입고 출연한 박소영이다.
김양희는 「껍질속의 껍질」을 안무했다. 여기서 껍질은 무엇인가? 우리 얼굴일 수도 있고, 필요악을 감춘 사탄의 위장된 정체일 수도 있다. 김양희가 주역이지만 황지인이 이 작품에서 큰 역을 해낸다. 음험한 도시, 도처에 널린 쇠사슬, 방황, 그러나 쫓기고 있는 것도 모르는 면역에 의해 그들(6인무)은 콘크리트 틈 사이를 비집고 꽃을 피운다. 황지인은 마치 면역 주사를 놓아도 시들지 않는 들꽃 같다. ‘짓’ 무용단에 신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의미롭다. 세 작품 중에서 나는 배정현이 안무한 「생의 전주곡」(명현철 시, 마봉진 음악)을 손꼽고 싶다. 우선 이 작품은 율동의 파격무늬가 짜임새가 있다. 앞의 두 작품의 소극성을 벗어나 김태기?김기표등의 남성 무용수 출연도 적지 않게 힘이 된다. 율동의 파격무늬에서 각광을 받는(춤도 연기도 그렇다) 인물들, 김미경의 성격창조나 배정현의 비극미, 김도희의 발랄함도 역시 힘이 된다.
「생의 전주곡」을 내 나름대로 풀이하면 ‘삶의 예찬’이다. 시에 나오듯 어떤 고통도 짓(몸짓?춤?몸의 소리?산화)으로 승화된다. 그들은 하늘에 연을 날리고(꿈과 이상) 연은 상수리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강풍에 꿈이 좌절된다. 연으로 상징되는 여체는 남성 어깨에 실려 구만리 창공을 가고 있다. 김미경의 촉촉한 몸매에서 풍기는 지열과 배정현(공간 소극장 솔로에서 보았듯)의 끓는 더운 피의 감촉 같은 게 전해온다.
86년 9월에 창단된 ‘짓’무용단은 그동안 부단히 ‘일’을 해왔다. ‘일’이란 회원들이 안무한 창작춤, ‘짓’회지 발간, 좌담, 강습회, 지역간 연합무용제 참여, 서울 원정 공연, 부산 여름무용축제, 제12회 서울무용제 참여, 춤꾼 9인전 무대, 야외 공연 등이다.
그들에게는 김은이라는 대모(代母)가 있다. 「랑겔한스섬 가문날의 꿈」에서 그들은 대모와 같이 서울 무대를 정복하려 했으나 역부족인 데도 있었다. 물론 평자들의 눈의 잣대가 일치할 수 만은 없었다. 그때 나는 「랑겔한스섬 가문날의 꿈」(이형기 시, 이윤택 대본)에 대해 내 눈의 점수를 매겼었다. 유장하고 겁 없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조명, 의상이 춤을 감싸지 못한 결함도 있었지만 그것은 서울 큰 무대 도전의 전초전이었다.
김은이라는 대모, 그들에겐 호랑이, 사감 밑에서 동아대의 명예를 걸고 오늘의 ‘짓’ 무용단은 5주년 중간 결산을 세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빛의 나이테」에서 무대미술의 조악함도 그들에겐 시정해야 할 숙제였다. 예산의 뒷받침 없이는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5주년의 결산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에게 전주곡 이상의 앞날의 빛을 예고해주었다.
(1991년 10월호「객석」)
껍질속의 껍질 빛의 나이테
>> 공연연보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