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짓’ 7주년 창작춤
짓 창작춤 - 열린공간, 열린춤<서로 감추기, 욕?욕?욕, 독백> 1993. 6. 8
김 태 원 (무용평론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창작춤 단체인 ‘짓’(예술감독?김은이)의 7주년 공연이 5월에 부산의 세이(say)소극장에서 일주일의 공연에 이어, 부산문화회관 중강당에서 <열린공간, 열린춤>이란 캐치플레이즈를 걸고 하루(6월8일) 있었다. 특히 중강당에서의 창작춤판은 부산문화회관 중강당에서 보다 의욕적인 노력이 어떻게 무대화 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짓’과 같은 동인단체에서 창무회의 대표 안무자 중의 하나인 강미리를 초청, 그 활동의 폭을 넓혀보려는 의도를 두었다.

우선 중강당의 공연에서는 신예 배정현의「독백」 김옥경의「서로 감추기」그리고 강미리의「慾?辱?浴」세 작품이 올려졌다. 배정현은 지난해 「생의 전주곡」과 같은 작품을 통해 치밀한 구성과 다양한 춤동작의 활용을 통해 돋보였던 춤꾼인데, 박렬의 시와 마봉진의 음악을 활용한 이번 무대에서도 그런 특성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주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삶과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욕구를 그리려 했던 이번 공연에서 배정현은 도시에서의 삶을 상징하는 사각틀의 장치(문들의 이어짐 같았다)를 세우고 의상의 빛깔을 각각 달리 하는 두 무리의 춤꾼들 - 보랏빛 및 청색 무리 -을 세우면서 자신(배정현)은 그들 사이에서 고통받는 자로, 때로는 매개자와 같은자로 도시의 철장속에 갇혀 버둥거리고 때로는 살풀이용의 수건을 들고 나오면서 춤을 췄다. 때로는 그녀는 공연의 끝부분에서 일종의 열무(列舞)를 통해 그 스스로 한 무리의 춤꾼들을 어디론가 유도해 가기도 했다.

김희정, 김도희, 김옥경, 황지인, 강경숙 및 이인태, 김세한 등의 ‘짓’ 단원들과 동아대 재학생들은 거의 매번 음악에 따라 춤의 동작들이 바뀌고, 45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끈질기게 작품을 물고 늘어지는 안무자의 지시를 놀라운 인내로서 따라가 주고 있었다. 푸른빛, 보랏빛의 의상들은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작품을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끌고가 주는데에는 기여를 하고 있었다 배정현이 사각의 틀 안에서 유영하듯 때로는 버둥거리는 동작들이나, 배정현을 중앙에 놓고 젊은 남성 춤꾼들이 곡예를 부리고 모여들고 구르는 동작을 빼놓고는 배정현은 이 공연을 통해 일일이 짚어내기 힘들만큼 수많은 동작들을 창안해 내고 있었다. 동작의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배정현은 한국창작춤꾼들중 손꼽을 만했다. 그 동작들은 보다 크게 선별성있게 간추려지고, 필요한 부분에서 응집되고, 또 반복되는 그런 탄력성은 부족했다. 동시에 춤은 마봉진의 음악에 끌려가거나 그것에 형식적으로 맞추고 있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배정현의 춤은 이상스럽게 관객의 호기심을 끌고가는 특성을 가졌다. 그 이유중 큰 것은 다양한 춤동작의 전개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제의 참신함이나 응축된 춤의 탄력성에도 이 안무자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배정현의 춤이 섬세하게 그 동작의 유형이 바뀌면서 일종의 만화경같이 전개되어지는 반면 내겐 첫 대면인 김옥경의 춤인 「서로 감추기」는 담백하면서도 산뜻하고 적당히 세련되며 추상적 상징성이 더 두드러진 춤이 되고 있었다. 안무자를 위시해 김도희, 강경숙, 이정숙, 이주현, 정연주와 같이 6인의 춤꾼들은 흑색이나 회색톤의 큰 장식만이 드리워진 무대 공간을 매끄럽게 숨거나 구르면서 일종의 유희를 벌인다. 그러나 그런 유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상스럽게 그들 사이의 공간은 더 넓어져 보인다. 묵직하게 늘어뜨려진 큰 막, 적당한 속의 무용수의 활용은 배경과 무용수, 무용수들 사이의 배치나 공간을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었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서로의 만남이나 엮어짐에 있어 보다 구체적인 상징이나 암시가 제시되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력있고 세련된 음악(임원일), 담백한 빛깔의 의상(김성만)이나 꽤 깊고, 효과적이었던 막의 사용은 이 춤꾼의 예술적 안목이 이미 상당한 수준을 획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할 것이다. 아마 그런 점에서 김옥경의 다음 작품은 어떤 선명한 드러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89년의 「활」작품이후 그것의 재공연을 제외하고는 거의 신작의 활동이 없었던 강미리는 이번 ‘짓’의 객원안무자로 초빙되어 부산의 초연공연이었던 「慾?辱?浴」을 통해 의심할 바없이 우리 세대의 가장 강력한 대형급 안무가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고, 그간 침체되어온 듯한 한국창작춤의 세계에서 국수호의 「봄의 제전」이후 가장 주목받을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동시에 이 공연은 한국창작춤의 세계가 어쩌면 현대춤과 맞먹거나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과 예술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보여 주었다. 그런 점에서 「慾?辱?浴」은 국수호의 「봄의 제전」 김숙자의 「링반데룽」 김은이의 「바람의 넋」등과 더불어 한국창작춤의 제2시기를 열고 있는 작품으로 보여졌다. 특히 강미리의 경우는 이미 「활」을 통해 한국창작춤의 제1시기를(편의상 1982년까지) 나름대로 의미있게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 그녀의 안무활동은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이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큰 작업이 그녀에게 맡겨져도 좋을 것이다. 「慾?辱?浴」은 작품의 기본적인 소재였던 정신대이야기(박희준 대본)와 거의 상관없이 안무가로서 강미리의 대담한 무대구성력과 춤과 음악간의 놀랄만한 긴장관계와 상승의 효과, 주역을 맡았던 김은희와 김경순과 서경숙의 대담한 연기와 공연에 참가했던 여지영, 이미진, 우희양, 정신혜 그리고 이인태, 신진욱, 김세한, 전민호와 같은 춤꾼들의 긴장된 앙상블이 어울어진 뜨거운 이벤트였다. 공연은 첫 장면부터 강력한 극적 효과를 갖고 전개되었다. 스모그와 붉은 조명속에 무대뒤에서부터 웃통을 벗고 정지된 자세로 넘성 춤꾼들이 서있게 되고, 그 앞으로 김은희는 흑색치마와 흰블라우스를 입고 서 있는다. 그리고 좌우에서부터 우희향, 정신혜와 같은 춤꾼들이 흰종이말이를 물고 들어오고, 그들이 옆으로 퇴장할 사이 김은희는 남자춤꾼들에 둘러싸여 입이 틀어 막히고 고통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특히 이 첫장면은 김은희가 수모를 당하기 전 이미 하나의 악몽이나 연옥도와 같은 가공스럽고 공포스런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강미리가 무대의 후면에서 정면으로 관객을 압박해오는 구도와 최면적인 그런 동작, 강력한 조명과 상승되는 타악기 음향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부조와 같이 역사적인 사건이 시간의 장막을 벗어나 현실처럼 생생하게 재현되는것과 같은 효과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은색 위주의 무채색의 의상과 특히 창백해 보이고 무엇인가 아픔을 당한 듯한 김은희의 흰 얼굴표정은 그런 어둡고, 아픈 역사적인 사건과 신비스럽게 대조되고 있었다.

이어 춤은 거대한 붉은 천을 사용해 가면서, 특히 숨막힐 정도로 고조되고 상승되어 가는 음악과 함께 김은희를 중심으로 하는 겁탈과 수모의 이미지를 더 강화시켜간다. 첫 장면에서 붉은 조명이 주는 공간적 효과는 이젠 보다 구체적으로 붉은 천이 주는 물질적 상징성으로 뒤바꿔져 버리고, 강미리는 거듭 찢음과 찢겨짐, 그리고 김은희, 김경순, 서영숙을 내세운 빠르게 뒤틀리고 비틀어지는 춤동작을 통해 하나의 전류의 형태로 아픔이 관객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되도록 한다. 김경순과 서경숙의 능란한 춤짓과 스피드는 김은희의 춤이 일으키는 아품이 섞인 어떤 창백함이나 고귀함의 기운과 훌륭한 짝을 이루고 있었고, 세 춤꾼들은 서울의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자유스러움과 재기의 발휘로서 무대를 훌륭히 리드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의 후반부는 천정으로부터 마치 작은 폭포인 듯 흰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등장해 있었던 인물들이 다시 눈 너머에서 그러나 다시 눈을 뚫고 어디에선가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가 들리는 가운데 무대 앞으로 움직여 나오거나 정지하면서 끝맺게 된다. 마치 모든 것이 망각과 해원 속에 잠겨들 듯.

강미리는 이번 「慾?辱?浴」의 공연을 통해 소재를 직선적인 이야기로 풀지 않고, 강력하고 집중적인 장면효과를 통해 그것이 가진 몇 가지 충동적 측면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 했고, 특히 검은 색과 붉은 색의 대비, 그리고 순수함과 씻김을 상징하는 흰색의 활용을 통해 섬뜩한 공포감과 순백의 정서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동시에 춤과 음악, 그리고 색채등이 점강법식으로 다루려들면서 공연내내 관객의 주의력을 단 1초라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충격적인 효과를 계속 삽입시켜갔다. 그리고 그것은 공연이 끝난후 관객들이 마치 어떤 악몽에서 깬 듯한, 그런 얼얼하고 최면적인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번의 「慾?辱?浴」공연을 통해 주역을 맡았던 김은희는 무엇보다 전문적인 춤꾼으로서 매우 성숙하고 인상적인 분위기와 춤동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하나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할 것이다.

(1993년 7월호 「춤」)

독 백 독 백 서로감추기 서로감추기

>> 공연연보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