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 2편 농업사회 - 계급체제


제 1 장 농업사회와 신분계급

2.1.1. 토지 중심의 농업사회
2.1.2. 농업사회의 헤게모니 구조
2.1.3. 신분계급의 철칙
2.1.4 신분계급체제와 공동체




2.1.1 토지 중심의 농업사회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농업사회였다. 산업사회가 교환경제라면, 농업사회는 자급자족경제였다. 따라서 농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였다. 토지야말로 농업사 회에서의 자본이었고, 토지의 귀속관계(歸屬關係)야말로 자본헤게모니의 귀속을 규정하는 것이었 다.

농업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서양의 중세사회이다. 서양 중세는 고대의 그리이 스-로마시대를 이어받아 한단계 더 발전된 사회가 아니었다. 중세는 고대 로마시대를 이어 받은 것이 아니라 게르만의 원시사회로부터 새로이 시작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의 산업 사회와 비교해 보면, 고대와 중세는 동등한 농업사회이다. 오히려 농업사회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서구 고대라기 보다도 서구 중세사회이다. 이러한 관점에 설 때에만 전인류의 역 사를 보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가지게 된다.

10세기 당시 유럽의 농업은 대단히 뒤져 있었다. 유럽의 토양은 습기가 많아 경작하는데 어려 움이 많았다. 과장하여 말하면 한알의 씨앗을 뿌려 두알의 보리를 수확하는 정도로 농업 생산성 이 낮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교환이 발전할 수 없고 도시가 성립할 수 없었다. 중세를 통틀어 물물교환은 대단히 미미하였으며 영주와 농민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장원에서 충당하였다. 의 복은 부녀자들이 집에서 만들어 입었고, 맷돌이나 물레나 베틀 등 기본적 공구들도 장원 내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교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내륙지방에서는 소금을 물물교환 으로 취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영주와 같이 부유한 계급은 사치품을 장원밖에서 구하였으 며, 사치품을 구입하는데 화폐를 이용하였다. 당시의 화폐라는 것은 오늘날의 화폐와는 성격이 다 르며 귀금속과 같은 상품화폐이다. 말하자면 교환의 매개체가 아니라 물물교환의 한쪽 물품으로 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중세인들은 화폐(화폐상품)의 가치를 알기 위 하여 저울로 그 무게를 달았다.(액면이 표시된 화폐는 없었다.) 이것이 자급자족적인 농업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농업사회에서도 광업, 수공업, 상업과 교역이 발전할 수 있었다. 농업생산물 자체도 다양하므 로 상업과 교역이 일어날 수 있었다. 또한 농업생산의 도구로서의 공산품, 목축업, 어업, 의류, 주 택이나 건물, 기호품, 사치품, 예술품 등 농업 이외의 다양한 생산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따라서 농업사회에서도 상업과 교역이 더 발전하여 화폐가 널리 통용되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 다. 로마시대나 중국의 한나라에 이르는 인류의 고대사회에서 화폐경제가 대단히 발전하였으며, 은행제도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농업사회였다.

농업사회에서는 화폐경제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산업사회-화폐체제와는 대단히 다른 것이었다. 농업사회에서 교역과 화폐가 발전하더라도 그 사회의 본질은 여전히 자급자족 경제라는 것이다. 교환은 주로 교역이었으며, 농업적 생산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상공업자가 사회의 헤게모 니세력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신분계급이 헤게모니를 결정하였다.

2.1.2.농업사회의 헤게모니 구조

앞장에서 든 여러가지 헤게모니가 농업사회에서는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가?

농업사회에서 결정적인 헤게모니 자산은 토지였다. 따라서 토지라는 자본헤게모니는 대단히 중요하고, 화폐와 같은 가치매체헤게모니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화폐의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업사회에서 권력헤게모니와 자본헤게모니는 대체로 결합되어 있었다. 폭력을 장악한 사람과 토지자본을 장악한 사람은 같은 신분계급이었다.

또한 농업사회에서도 사람들의 의식에 관계되는 집합표상 헤게모니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 나 농업사회에서는 집합표상은 큰 변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상황은 정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계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전쟁의 경우에는 정보의 유통이 중요하였지만, 대중에게는 그것조차 별로 중요한 것 이 아니며, 커뮤니케이션 매체도 별로 없었다. 그리하여 농업사회에서 중요한 헤게모니는 권력헤 게모니, 자본헤게모니, 집합표상헤게모니였다. 따라서 농업사회는 이 세개의 헤게모니를 가진 지 배계급과 어떠한 헤게모니도 갖지 못한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2.1.3. 토지에 예속된 신분계급의 철칙

농업사회에서 권력헤게모니, 자본헤게모니, 집합표상헤게모니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대 체로 하나의 헤게모니를 가지면 다른 헤게모니를 용이하게 획득할 수 있었다. 권력헤게모니를 가 진 사람은 권력을 행사하여 토지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토지자본을 장악한 사람은 폭력 수단을 스스로 마련함으로써 권력헤게모니를 장악하기도 하였다.

농업사회는 위와 같은 헤게모니를 가진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으로 구성된다. 헤게모니를 가진 계급은 헤게모니를 행사하여 생활에 필요한 재물을 얻는다. 이에 대하여 헤게모니를 가지지 못한 계급은 필요한 재물을 스스로 생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농업사회는 크게 헤게모니 계급과 생산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분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생산을 담당하는 계급과 폭력(안전), 종교, 문 화를 담당하는 계급의 분업인 것이다. 물론 수평적 분업이 아니라 수직적 분업이다. 헤게모니 계 급은 자신의 헤게모니를 세습하는 경향을 가진다. 결과적으로 생산계급도 세습화된다. 이렇게 세 습화되는 계급이 '신분계급'이다.

농업사회에서는 이처럼 모든 헤게모니를 가진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으로 신분계급이 생겨 나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리고 신분계급이야말로 농업사회의 본질적 성격이기 때문이다.

농업사회에서는 평등한 개인이 결합하여 사회를 형성할 수 없다. 우리는 개인 단위로 서로간 에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를 이룩한다고 생각한다. 계몽사상도 자연사회에서는 개인이 불가양(不 可讓)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하여 사회를 이룩하였다고 논의하였 다. 그러나 이것은 화폐사회를 선입관으로 하여 자연사회를 상상한 오해이다.

현실적으로 농업사회에서는 개인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사회계약으로서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농업사회에서는 개인이 토지와 폭력 그리고 지식(집합표상)에 관한 헤 게모니 체계에서 평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지에 관한 헤게모니는 누구에게인가 배분되어야 하 고, 필연적으로 자본(토지)헤게모니를 가진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으로 분할되기 때문이다. 폭 력이나 지식(집합표상)에 대해서도 계급으로 분할되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계급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만일 토지를 공동체의 전구성원이 공유한다면 헤게모니 계급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상 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념적 상상에 불과하다. 토지를 사회성원이 공유할 수도 없고, 또 한 토지를 완전히 평등하게 나누어 소유할 수도 없다. 결국은 토지를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주1).

폭력이나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이나 지식도 결국은 소수가 장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 헤게모니나 집합표상헤게모니도 소수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가 일체의 헤게모 니를 장악하여 헤게모니 계급 즉 지배계급이 되는 것이다. 농업사회에서는 일체의 헤게모니를 장 악한 지배계급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계급이 분화되는 것이 불가피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신분계 급의 철칙(鐵則)>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신분계급이 대단히 미개한 것이고 계몽되지 못한 구시대의 낡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만일 현대의 인류가 농업사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다시 신분계급이 형성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겐가 헤게모니는 배분되어야 하고, 그 수는 소수일 것이며, 그들 의 세습을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최하층의 신분계급--가령 노예나 농민--이 반란 에 성공하여 권력을 장악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인적 구성만 변화될 뿐이지, 역시 신분계급체 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체제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분계급의 철칙' 이다.

농업사회에서는 어떤 헤게모니 자산이 근원적이고 다른 것이 종속적인가 하는 논의는 별로 의 미가 없다. 2.1.4. 신분계급체제와 공동체

우리는 헤게모니의 영역범위를 공동체라고 하였다. 따라서 농업사회에서의 역시 신분계급에 의하여 규정된다. 왜냐하면 신분계급이 바로 헤게모니 체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세 봉건사회를 기준으로 하여 전통사회에서의 공동체를 논의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중세 봉건사회야말로 농업사회의 전형적인 형태이고 토지에 의하여 규정되는 전통사회이기 때문 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이스 로마나 동양의 사회들은 이러한 농업사회와는 약간의 편차가 있었다.

서구중세의 봉건사회를 볼 때, 근대체제와 큰 차이는 공동체의 유형이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 다는 것이다. 첫째, 자본헤게모니의 체계인 장원과 같은 경제공동체가 있다. 둘째, 권력헤게모니의 체계인 국가공동체가 있다. 세째, 종교적 집합표상헤게모니가 형성하는 문화공동체가 있다. (이렇 게 세 개의 공동체로 구분되는 것은 오직 국민국가라는 단일의 국가공동체로 이루어진 근대체제 와는 판이하게 구분된다.)

중세사회가 이처럼 세개의 공동체로 분화된 것은 헤게모니 계급의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계급은 하나로 동일하였다. 그것은 농노였다. 농노는 어떠한 공동체와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피지배 계급이다.

서구중세는 기본적으로 세개의 신분계급으로 형성되었다. 첫째는 일하는 자로서 농노이고, 둘 째는 기도하는 자로서 승려이며, 세째는 싸우는 자로서 기사이다. 이 가운데 농노계급과 다른 계 급(기사, 승려계급)과의 헤게모니 체계가 '장원'이라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장원은 사회의 경제적 차원에서 규정되는 공동체이다. 둘째로 기사계급의 헤게모니 체계가 국가공동체이다. 그것 은 봉건계약으로 형성되는 기사계급 상호간의 권리의무의 체계이다. 세째로, 승려계급의 헤게모니 체계가 중세의 보편교회체제이며, 집합표상헤게모니가 작용하는 영역이고, 종교적 성격을 가진 문 화공동체이다. 그리이스-로마의 사회, 그리고 동양의 사회들은 이러한 서구 중세의 공동체 구성과 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 중세사회의 변형으 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공동체의 구성을 차례로 논의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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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토지를 공유한다면 노동의 배분과 생산물의 배분에 관한 헤게모니의 문제가 제기된다. 즉 누가 어떤 노동을 얼마나 하고 누구에게 어떠한 생산물을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 하는 의사결정권 이 바로 헤게모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본헤게모니이다. 노동과 생산물의 배분을 결정하는 권한 이 바로 자본헤게모니이며, 그러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소유자인 것이다. 따라서 공유라는 것은 무의미한 말이다.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공유자간의 민주적 합의 ---이 경우에도 집합표상헤게모니는 작용한다---로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와 영토가 커 지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토지는 소수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헤게모니는 소수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주2) 베버(M. Weber)는 영주 재산제가 성립하고 신분계급이 발생하는 과정을 여러가지로 설 명하고 있다. 가령 씨족장이 토지소유의 분배권을 가지고 있었다든가, 전사계층과 생산계층이 분 화하였다든가, 피정복자를 예속화시켰다든가, 投託民이 예속화하였다든가, 개간지를 영주가 지배 하였다든가, 주술적 카리스마에 의하여 영주권이 발생하였다든가, 상업의 독점에 의하여 영주제가 강화되었다든가, 조세청부 또는 재정적 근원에 의한 영주재산제의 발전 등이 있다.

{내부적 분화는 직업적 군인계급의 형성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며, 이 계급은 점차 발달하는 군사적 기술과 장비의 질적 향상에 다라서 발생하였다. 이 양자는 모두 경제적으로 예속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재산소유의 정도에 따라, 군사훈련과 자기장비를 갖출 수 있 는 계층은, 그렇지 못한 계층, 즉 자기 장비를 갖출 수 없는, 따라서 완전한 자유를 보존할 수 없 는 계층과 구별되게 되었다. 군사적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농경기술도 발전되었다. 그 결과 일반 농민은 점점 더 자기 경제에 결박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무장을 하고 군사적으로 훈련된 상부 층은 전투활동에 의하여 여러가지 전리품을 축적하게 되었고, 전투적 능력을 갖지 못하여 전리품 을 축적할 수 없는 자에게 강압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즉, 배상금에 의하여) 부역과 貢租를 요청 하게 됨으로써 더 한층 분화를 심화시켰다.}

(막스 베버 사회경제사 p.98-10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