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 3편 산업사회 화폐체제


제 1 장 산업사회와 화폐체제


3.1.1.신분계급의 철폐
3.1.2. 화폐체제에로의 전환
3.1.3.산업사회-화폐체제의 성격
3.1.4. 화폐체제의 사회, 국가, 문화
3.1.5. 화폐체제의 철칙




3.1.1.신분계급의 철폐

농업사회의 신분계급체제의 기반은 폭력과 토지자본(자본 헤게모니)와 종교적 도덕적 지식이 라는 헤게모니 자산이었다. 근대사회 이전에는 지배계급이 이것을 모두 독점하였다. 근대사회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헤게모니 자산의 성격이 바뀌었고 그것을 독점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근대사회에로 전환하면서 신분계급의 철칙을 벗어난 것이었다. 신분계급체제가 자연히 폐지되도 록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던 헤게모니자산이 변한 것이다.

폭력이 하나의 신분계급을 형성한 것은 폭력을 조직(군대)으로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폭력을 군대와 같이 사회의 한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즉 신분계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이 군대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농업사회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였 다. 폭력은 조직이 아니라 계급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토지자본이 하나의 신분계급을 형성하는 것은 토지가 생산에 있어서 결정적인 자본헤게모니였 기 때문이다. 토지자본이 더 이상 결정적 자본헤게모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농업사회 자체를 초월하는 것 밖에 없다. 근대 산업사회에 와서야 이것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토지는 더 이상 신분을 형성하는 자본헤게모니가 아니라 누구나 화폐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근대사회로 전환하면서 종교적 지식 이외의 지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서, 종 교적 지식 자체의 중요성이 소멸되었다. 동시에 새로운 지식은 신분적 독점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분계급체제는 권력과 법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국가의 이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농업사회 자체가 상업적인 사회 내지 산업사회로 전환함 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산업사회에서 토지자본은 상품이 되었고, 폭력은 화폐로 비용을 조달함 으로써 조직으로 되었고, 지식은 신분적 독점성을 상실하였다. 이것은 신분계급의 철폐를 위해서 농업사회를 벗어난 다른 사회를 추구하였던 묵자(墨子)의 통찰이 옳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다.

3.1.2. 화폐체제에로의 전환.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사회에로의 전환은 농업사회-신분계급체제에서 산업사회-화폐체제에로 의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은 서구에서는 대단히 오랜 시일에 걸쳐서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른 문명권에서는 서구의 지배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서구에서는 이러한 전환은 산업화 이전에 상업화가 먼저 일어났으며, 그것은 말하자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업화가 사회체 제 전반을 변혁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환과정은 중국에서는 유가적 집합표상을 가진 안정된 관료체제에 의하여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봉쇄되었던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도시는 농업사회의 경제잉여를 수취하는 헤게모니 계급을 수요자로 하여 발전한 것이었다. 그러한 수요자를 기반으로 하여 원거리 교역(遠距離交易) 이 발전하고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과 같이 1,000여년 전부터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광대한 대륙 전체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000년에 걸친 교역의 결과 동양의 발전된 기술들이 낙후되고 분권화된--즉 효과적인 중앙집 권적 권력체제가 없는--서구에 이르렀을 때, 작은 대륙과 작은 인구의 유럽 전체체제를 변혁하였 던 것이다. 이러한 변혁은 아라비아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 원거리교역의 주도권이 지중해와 대 서양 연안의 도시들에게로 이전되었을 시점에서 일어났다. 또한 분권화되어 효과적인 권력이 없 던 서구에서는 급속하게 상업자본계급에로 사회적 헤게모니가 이전되고, 체제가 변혁되면서 인간 의 집합표상에 충격을 가하였다. 동시에 서구 고대의 문화가 부흥하여(르네상스) 결합하면서 합리 적 지식을 추구하게 되고 마침내 산업혁명을 결과하였다. 이미 발전하고 있던 화폐체제가 산업혁 명과 결합하면서 농업사회--신분계급체제는 근원에서부터 전복되었던 것이다.

서구의 근대초기만이 아니라, 로마나 당나라 이후의 중국의 각 왕조에서도 번영기에는 화폐가 널리 통용되었고 원거리 교역과 상업이 발전하였다. 그럼에도 로마나 동양왕조는 완전한 화폐체 제로 전환하지 않고 여전히 신분계급체제의 철칙은 강고하게 유지되었다. 그런데 왜 근대서구에 서 이러한 신분계급체제의 철칙을 붕괴하고 완전한 상업사회로 전환되었는가?

이러한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근대 서구인들에 의한 전지구적 규모에 걸친 잔인한 노예무역(奴隸貿易)이었다. 서기 1,500년부터 1900년까지 실로 400년에 걸쳐, 유럽인은 수천만명 (1,500만 내지 1억)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상품화하였다. 노예무역은 아프리카 지배계 급에게 무기 등을 주고 노예를 매입하여, 남북아메리카에 노예를 판매하고 플랜테이션 농작물, 금 은 등의 광산물을 구입하는 것으로, 유럽,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삼각무역이었다. 그 결과는 아프리카 문명을거의 완전히 초토화하고 남북아메리카의 산업을 모노컬쳐(monoculture; 단일경작)화하고, 유럽을 <화폐체제 내지 자본주의사회>로 만들었던 것이다.3.1.3.산업사회-화폐체제의 성격

산업사회는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질적 가치의 주요한 비중이 공업생산물인 사회이다. 인간의 고용(雇傭)의 중대한 부문이 공업생산에 흡수되는 사회이다. 공업생산물은 판매를 위한 것 이기 때문에 경제공동체는 시장의 영역이 된다. 따라서 자급자족을 위한 농촌의 장원은 이제 경 제공동체의 성질을 상실한다.

한편 산업사회에로의 전환에 따라서 자본헤게모니의 성격이 변화한다. 농업사회에서 자본은 토지였고, 자본헤게모니는 토지를 장악한 계급에게 귀속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토지는 실물 자본의 한가지 유형일 뿐이며 전략적(戰略的)인 자산이 아니었다. 토지는 상품화되어서 화폐에 의 하여 거래되는 것이며, 결코 그 자체로서는 경제적 헤게모니의 자산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산업 사회에서는 토지의 지배에 기초한 자본헤게모니 계급(귀족 등 신분계급)은 그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동시에 토지의 지배에 기초한 모든 헤게모니 역시 기반을 상실하였다. 봉토를 수여하는 것처럼 농업사회의 권력헤게모니 역시 토지에 기초를 두고 있었으므로, 권력헤게모니도 그 성격 을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사회가 세속화함으로써 종교에 기반한 집합표상헤게모니--서구 중세의 승려계급--역시 기반을 상실하였다. 그럼으로써 모든 중세적 공동체는 기반을 상실하고 해체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원, 계급국가, 보편교회 등은 모두 기반을 상실하고 해체된 것이다.

이처럼 산업사회의 핵심은 토지자본에서 화폐자본으로 자본의 성격을 변혁하는 것이다. 이것 은 권력, 법률, 자본, 가치매체, 커뮤니케이션, 집합표상 등 사회의 매개양식 가운데 하나의 범주 인 '자본'을 근원적으로 변혁하는 것이다. 근대사회는 사회의 '경제적 차원'의 거대한 변혁이었 다. 그 변혁이 사회와 공동체 전반을 변혁하였던 것이다.

과거의 토지자본과 결합되었던 일체의 헤게모니가 변혁되었다. 이것은 농업사회에서 헤게모니 체계의 핵심을 이루었던 신분계급체제을 변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헤게모니계급만이 아 니라 비헤게모니계급도 변혁하는 것이다. 헤게모니 체계를 변혁하는 것은 공동체를 변혁하는 것 이기도 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폭력과 그에 기반한 권력적 차원의 중대한 변혁이 몇번 있었으나 그 영향은 오래가지 않았다. 몽골의 징기스칸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의 변혁에 일대 획을 그었다. 그는 말(馬) 에 의하여 기동, 보급, 작전을 수행하는 혁명을 야기하였고, 대상들에 의하여 정보체제를 형성하 였다. 그 결과 인류의 역사상 그 예를 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정복을 하였다. 이것은 정치적 --폭력적--차원의 대변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신분계급체제를 변혁할 수는 없었다.

서구 근대사회가 이룩한 사회의 경제적 차원(자본과 가치매체)의 대변혁은 그 이상의 결과를 야기하였다. 유럽세력은 사회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전세계를 완전하게 경제적으로 정복 한 것이었다. 그 핵심은 간단한 것이었다. 공업적 생산, 판매를 위한 생산에 의하여 시장이 경제 적 차원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의 시장은 교환의 중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거리 교 역(遠距離交易)이 교환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근대사회 역시 원거리교역에서 탄생하였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시장이 중심이 되고 원거리 교역은 시장과 시장과의 관계가 되었으며, 마 침내 원거리 교역 자체가 시장화되었다. 이것이 자급자족적인 농업사회와 시장적인 화폐체제가 다른 점이다.

화폐체제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화폐가 사회와 체제에 어떠 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3.1.4. 화폐체제의 사회, 국가, 문화

농업사회의 신분계급체제는 산업사회의 화폐체제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수천년의 인류역사를 지배해온 신분계급체제는 화폐체제에 의해서만 대체될 수 있었다. 화폐체제야말로 신분계급체제 의 철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사의 해답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며, 묵자(墨子) 역시 희미하게 상상하는데 그쳤던 해답이다.

신분계급은 인간의 사회관계를 신분의 관계로 구성하였다. 사회적 분업이나 헤게모니의 귀속 은 신분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배분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화폐는 인간의 사회관계를 (계급 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분해한다. 인간은 화폐의 소유자로서 나타나고 인간의 관계는 화폐에 의한 개인적 거래로 형성된다. 사물에 대한 평가 역시 화폐를 기준으로 하여 이루 어진다. 이러한 화폐적 관계에서 신분계급은 불필요할 뿐아니라 장애이기 때문에 파괴되어야 하 는 것이었다.

신분적 특권이나 의무는 화폐관계와 양립할 수 없다. 화폐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신분계급적 특권이란 화폐를 대가로 하지 않는 권리이다. 또한 신분계급적 강제는 화폐를 대가로 하지 않는 의무이다. 가령 봉건영주나 지주가 부역이나 공납을 받는 것은 화폐적 대가나 화폐적 계약과는 무관한 신분계급적 특권이다. 이에 대하여 화폐를 지불하고 토지를 매입하여, 이것을 임대를 주고 임대료를 받는 것은 당사자의 계약에 기초한 화폐적 거래이다. 그것은 화폐를 매개로 한 권리와 의무인 것이다.

과거에는 신분계급이 이러한 관계를 매개하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화폐가 이러한 관계를 매개 하는 것이다. 신분계급적 특권이란 출생과 인격에 부여되는 권리이다. 신분계급적 의무 역시 그러 하다. 이에 대하여 화폐체제가 규정하는 권리의무는 개인의 계약에 의한 권리의무이다. 따라서 출 생과 함께 부여되는 인격적 특권과 인격적 의무는 철폐된다. 화폐를 지불함으로써 면할 수 없는 의무는 폐지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이고 계급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이다.(자유란 인간의 의 무를 화폐적 의무에 한정하는 것, 신체적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화폐는 모든 헤게모니를 변혁한다. 그것은 우선 농업사회에서는 없었던--또는 부수적이었던-- 새로운 사회적 매개양식을 창출한 것이다. 화폐체제에서는 가치매체(화폐)가 사회적 연대를 형성 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양식이고, 가치매체(화폐)가 모든 헤게모니의 근원이 된다. 일체의 신분적 계급을 철폐한 것은 실로 화폐라는 가치매체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질서폭력을 독점하는 방법은 병사들에게 화폐적 봉급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또한 관료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화폐적 봉급을 지불하는 것에 의한다. 화폐를 지배하는 것에 의하여 폭력을 독점 하고, 그렇게 독점된 폭력에 기반하여 권력헤게모니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농업사회의 권력 에 비하여 대단히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를 형성할 수 있게 하였다.

계급과는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화폐로 조세를 납부하고, 동시에 모든 국민을 병사로 동원하 여도 이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화폐체제가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계급국가는 국민국가로 이행하였다. 중세 서구 봉건체제에서는 농민은 국가에 대하여 조세도 병 역도 부담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도 없었다. 국가는 계급국가였던 것이 다. 이에 대하여 근대국가는 모든 비헤게모니 계급도 조세와 병역의 의무를 지고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참여의 권리를 갖는 국민국가이다.

한편 화폐체제에서는 토지자본에서 화폐자본으로 자본의 형태가 변화하였다. 즉, 화폐체제에서 자본이란 집적된 화폐가 공업생산을 위한 실물적 자본으로 전환하고, 다시 그것에 의하여 생산된 상품을 판매하여 회수되는 화폐의 형태를 취한다. 토지자본이 정적(靜的)인 자본이었다면 화폐자 본은 동적(動的)인 자본이다. 토지자본을 장악한 자본헤게모니는 농민으로부터 농업생산물의 일부 를 취득하고 동시에 농민에 대한 신체적 강제력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화폐자본에 기초 하는 자본헤게모니는, 그 화폐에 의하여 구입된 실물자본의 소유권, 화폐를 지불하고 결집한 노동에 대한 경영권, 생산물의 소유권과 그것을 처분하여 회수한 화폐에 대한 소유권, 그리고 그 속에 포함된 이윤에 대한 소유권이다.

이와 같은 자본의 전환에 의하여 자본헤게모니 계급 역시 변화하였다. 이제는 자본헤게모니 계급은 신분계급이 아니라 이러한 화폐자본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다. 그들은 신분적 특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필요도 없다). 동시에 비헤게모니 계급 역시 강제를 당하지 않으며 화폐적 대가가 없는 의무를 지지 않는다. 즉 인간은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는 화폐와 화폐 자본이 제공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산업사회와 화폐체제는 인간의 집합표상을 변혁하였다. 이제 종교적 집합표상은 인간에 중대 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현실의 물질적 삶 자체에 많은 관심과 지식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근원적으로 화폐체제가 요구하는 인간의 계산적 이성과 밀접한 학문이다. 수학 이 기반이 된 자연과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화폐나 수학이나 자연과학은 사물과 세계를 객관적으 로 그리고 수량적으로 파악하게 한다. 이러한 수량적 계산적 이성, 수학, 자연과학이 비계량적이 고 주관적인 종교적 집합표상을 대체하였다. 더하기 빼기의 수학적 계산은 하느님과 상관없는 진 리체계를 가지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 사회적 정당성 등도 화폐에 의하여 계산적으로 인식되는 물질적 이익의 균형감각이 기초가 된다. 이것이 근대적 합리성과 이성의 근원인 것이다.

이성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근대사회로의 전환은 바로 화폐에 근원을 둔 계산적 집합표상에 서 연유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계산적 이성을 제거해버린다면 중세의 종교적 집합표상도 대단 히 합리적인 것이다. 근대 이전의 모든 사상가들--토마스 아퀴나스의 종교적 사상까지 포함하여 -- 역시 합리적 추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이 결코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었다. 근대이전의 사람 이 비이성적이었고 근대가 이성의 세기라는 규정은 잘못된 것이다. 근대이전의 사람들은 지식의 분야가 달랐고 수량적 이성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나 화폐체제는 인간을 해방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과 사회를 구속한다. 그것이 화폐 체제의 철칙이다.

3.1.5. 화폐체제의 철칙

산업사회에서는 <화폐체제의 철칙>이 지배한다. 자급자족적인 농업사회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을 위한 생산이 이루어지는 산업사회에서는 그 '생산물은 교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환을 매개 하는 것이 화폐인 것이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는 사회의 경제적 차원에서 화폐를 사용하는 체제 즉 화폐체제는 필연적인 것이다. 교환경제는 필연적으로 화폐체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명백한 것이다.

화폐체제의 철칙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주의가 주어지지 않았다. 산업사회에서 화폐체제의 철 칙이야말로 농업사회에서 신분계급체제의 철칙과 비교될 수 있는 지극히 강고한 현실의 벽이다. 그것은 일체의 이상주의를 시험하는 현실의 기준인 것이다. 어떠한 이상주의도 화폐체제를 부정 한다면 그것은 관념적 이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화폐체제의 철칙은 엄중한 것 이다. 공산주의 내지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바로 화폐체제의 철칙을 무시하였다. 그 때문에 그것은 비현실적인 이상이었다. 그것은 중국의 법가체제(法家體制:秦나라)와 같은 운명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화폐를 사용하는 체제 즉 화폐체제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품에 대하여 화폐가격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화폐를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많은 화폐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그가 원하는 상품 을 구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화폐가 아니다. 그것은 종이쪽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화 폐가 상품의 가격을 매개하기 위해서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로와야 하며 오직 화폐를 기준으 로 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오직 화폐만을 기준으로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私的所有)는 불가피하다. 수요자이건 공급자이건 화폐를 지불함으로써 구입한 그 대상을 자신의 사적 소유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자원을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자원에 관해서는 화폐체제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폐체제는 화폐를 매개로 하여 무엇이든 구입하고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바로 사적 소유이기 때문이다. 가령 토지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토지를 배분하는데 있어서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렇다면 토지는 화폐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배분해야 한다. 즉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누군가가 토 지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자는 헤게모니(결국 권력)를 가지게 된다. 농업사회에서는 토지를 왕이 (봉건영주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결국 화폐 이외의 방식 은 헤게모니계급(지배계급)을 창조할 수 밖에 없다. 주1) 세계경제론 이대근 저

주2)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는데 있어 화폐를 대체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우리가 연대의 매개 양식으로 든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권력, 법률, 화폐와는 다른 가치매체, 집합표상, 커뮤니케이션 이 그것이다. 화폐 대신 권력으로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 신분계급체제이다. 또는 소비에 트 사회주의와 같은 권력집단(행정조직과 당)이다. 법률로 화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집합표상이 나 커뮤니케이션으로 화폐를 대체할 수 없다(즉 화폐가 없이 순전히 의사소통과 토론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폐와는 다른 가치매체로 자원배분에 화폐를 대체한다고 하자. 즉 화폐는 없애고 새로운 가치매체로 화폐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결국 화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