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 3편 산업사회 화폐체제


5 장 국가공동체 : 국민국가


3.5.1.산업사회-화폐체제와 폭력
3.5.2. 시장의 형성과 국가의 형성
3.5.3. 계급, 국민, 민족
3.5.4. 권력의 치역과 권역 그리고 물적조직
3.5.5. 인류와 국민




3.5.1.산업사회-화폐체제와 폭력

신분계급체제의 계급국가에서는 하나의 계급이 폭력을 담당하고 있었다. 서구 중 세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폭력은 기사계급의 일이었다. 그리고 전 쟁은 기사계급이 참가하는 폭력투쟁이었다. 농민은 전쟁과 무관하였다. 동양의 왕조체 제에 있어서도 농민은 전쟁에서 보호되어야 할 백성이었지, 농민이 전쟁을 담당하는 계층은 아니었다.

농업사회에서는 폭력집단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것이 한계가 있었다. 농업사회의 경제잉여는 충분하지 못하였으며 그리하여 농업사회에서는 농민에서 충원되는 군대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중세봉건체제에서 한사람의 기사가 부양되기 위해서는 말과 갑옷 과 같은 장비가 필요하고 또한 기사는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했다. 이러한 기사를 대 규모의 군대로 편성하여 유지한다는 것은 왕이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왕은 그럴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중세의 장원은 한 사람의 기사를 부양할 수 있는 단 위였다. 왕은 폭력을 독점할 수 없었으며, 폭력은 영주계급에 분산되고 지방분권적인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러나 광대한 영역에 비하여 수취되는 조세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이고, 따라서 병사 의 수도 많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조말기에 수취체제가 붕괴되면 보유하는 군대로 농민반란을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국의 조선왕조의 경우 16세기 말 그리고 20세기 초 전사문명인 일본의 침략을 받았을 때, 거의 군대가 없는 것과 다름 없었다. 조선왕조는 특히 지극히 평화로운 문인문명(文人文明)이었기 때문에 거의 군대 를 보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인문명이 아닌 농업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무질서 폭력 이 우세하였다. 왕이 보유하고 있는 질서폭력(즉 군대)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었 다.

산업사회-화폐체제는 이러한 폭력의 논리를 전복하였다. 화약과 총의 발명은 전통 적인 기사계급을 몰락시켰다. 계속적인 산업의 발전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기를 발전시켰다. 새로운 병사는 과거와 같이 직업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총을 쥐 어주고 단기간의 훈련만 거치면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화폐체제는 많은 수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였다. 국가는 조세를 화폐로 징수함으 로써 거대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수의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민중으로부터 많은 수의 병사를 충원하고 화폐와 시장체제에 의하여 그 병사를 부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충원되는 상비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었고, 그러한 폭력에 대항할만한 세력은 없었다. 사적인 집단이 국가의 폭력(군대)에 대항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즉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 는 질서폭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산업사회에서 가능하 였던 무기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폐체제에서 가능한 군대유지 의 경제적 능력이 가져온 결과였다. 이처럼 압도적으로 우월한 폭력이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게 되었다.

이것은 산업사회-화폐체제의 국가형태가 중앙집권적 국가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 다. 과거 영주나 귀족과 같은 국가권력이 견제하기 어려운 지방호족 같은 것은 없어지 게 되었던 것이다.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국가 내의 여하한 세력에 대해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적 폭력과 그에 기초한 권력헤게모 니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법질서는 여하한 무질서 폭력도 제압할 수 있었다. 적어도 폭 력의 차원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국가권력에 종속되었다. 사람들은 신분계 급체제가 해체되었기 때문에 개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폭력, 권력, 법질서 앞에서도 순전히 개인이 되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농민반란군의 병사나 정부의 병사나 폭력수 단의 차원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근대국가에서 노동자계급의 항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군사적 반란이 될 수는 없었다. 무장폭력에 있어서는 노 동자가 압도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대국가가 확립된 상황에서는 여하한 경우라 할지라도 폭력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체의 폭력혁명은 근대국 가가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기타 모든 반란과 혁명은 근대국가에로의 전환이 완전하지 못한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다.

근대적 질서폭력이 근대국가 권력헤게모니의 성격을 결정하였다. 농업사회에서의 권력헤게모니가 지배계급의 사적인 특권이었다면, 근대국가에서 권력헤게모니는 모든 국민에게 압도적으로 우월하고 동시에 모든 국민을 위한 공공적 권력으로 나타난다. 질서폭력의 우월성이 농업사회의 계급국가와는 다른 중앙집권적인 국민국가를 형성한 것이다.

3.5.2. 시장의 형성과 국가의 형성

근대국가는 질서폭력에 의하여 확고한 법질서를 확립하였다. 이러한 법질서는 우선 화폐제도를 발전시키고, 소유권을 확립하며, 개인 상호간의 모든 계약의 이행을 보장하 고, 모든 계층에 대하여 조세를 부과하고 징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과거의 화폐는 사람들이 화폐 그 자체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기 때문에 받아 들여지는 것이었다. 농업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화폐는 쌀이나 금과 같이 그 자 체의 가치를 사람들이 인정하고 동시에 그것이 광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품의 하나였 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화폐는 사회 전체에 걸쳐서 일반적인 교환의 매개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의 질서폭력이 압도적이고 사람들이 국가권력과 법질서를 받아 들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을 때, 이러한 상품화폐가 아닌 명목화폐(名目貨 幣)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중앙집권적 국가권력만이 금으로 태환될 수 있는 지폐를 보 증하고 그것에 필요한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점차로 화폐는 국가 가 법화(法貨)로 인정됨으로써 보편적으로 통용된 것이다. 물론 과도기인 절대주의 국 가에서는 국가의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신뢰성이 파괴되는 불량화폐를 제조하는 경우 도 있었다. 근대국가와 화폐는 상호의존적으로 발전하였다. 즉 화폐가 근대국가를 생성 시키고, 동시에 근대국가가 화폐를 발전시킨 것이다. 둘은 동일한 사회의 양측면인 것 이다.

소유권과 자유계약도 질서폭력의 압도적 우월성과 공공적 권력헤게모니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상품과 재산그리고 화폐에 관한 소유권은 모든 개인이 남의 소유을 침 범할 수 없다는 관념이 일반화되지 않으면 결코 확립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이 남의 소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질서폭력도 막을 수 없 다. 그런데 근대의 질서폭력의 압도적 우월성은 개인적으로는 법질서에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식적인 집합표상으로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남의 소유는 침해할 수 없으며, 침해한 경우에는 처벌을 받는 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의심해 볼 필요가 없는 진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실제로 남의 소유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경 찰은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구금하였다. 근대국가는 이러한 법질서의 침해자를 일일이 체포하고 그들을 장기간 구금할 수 있는 거대한 감옥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감옥은 근대국가에서 필수적인 물적조직(감시조직)이었다. 이것은 사적인 계약 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구제를 호소한 개인들의 분쟁에 대하여 판결을 해 주고 그 집행을 강제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근대국가는 법질서를 통 일하고 그 법질서의 유효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 이란 바로 질서폭력의 우월성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경제적 장(場), 즉 통일되고 통합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시장의 전제이고 결과인 화폐제도, 소유권, 계약의 이행, 계약의 규칙을 법질서로 충분히 보장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러한 시장이 모든 개인을 경제적으로 하나의 사회로 통합함으로써 근대국가의 토대를 형성한 것이기도 하다. 이 것은 사회의 경제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이 상호의존하여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근대국 가는 시장의 영역을 토대로 한다. 그것은 하나의 화폐가 통용되는 영역이며, 개인이 자 유롭고 평등하게 경제관계를 형성하는 영역이다. 동질적 시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화폐 가 통용되고 상품의 이동,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영역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계약과 이동을 제약하는 것은 권력헤게모니 밖에 없다. 과거에 존 재하였던 신분계급의 사회적 특권에 의한 제약은 권력헤게모니(즉 국가)에 의하여 모 두 철폐되었다. 그리고 권력헤게모니에 의한 경제적 제약을 가하는 경계가 바로 국경 선인 것이다. 이것이 근대국가의 형성이고 근대국가의 성격이다. 결국 근대국가는 바 로 동질적인 시장을 영역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동시에 동질적인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이 바로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3.5.3. 계급, 국민, 민족

농업사회-신분계급체제에서의 국가는 계급국가였다. 이에 대하여 산업사회-화폐체 제에서의 국가는 국민국가이다. 시장과 근대적 권력은 인간을 개인으로 분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집합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국민이란 (신분계급체제로 규정되 지 않는) 분해된 개인의 원자적 집합이다. 국민은 시장에서 어떠한 사회적 특권이나 의 무도 없는 개인으로 나타난다. 개인은 오직 소유에 의하여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 다. 한편 국민은 질서폭력을 독점한 권력 앞에서 역시 평등한 개인으로 나타난다. 그것 은 오직 법질서에 의지하고 법질서에 의하여 규제되는 개인인 것이다. 이러한 개인들 의 집합이 국민이다.

이러한 국민을 권력헤게모니로 통합하는 것이 국민국가이다. 국민은 계급과 다르다. 계급국가에서는 헤게모니 계급이 자신의 삶을 계급국가에 의지한다. 자신들의 신분계 급적 특권이 보장되는 장치가 계급국가였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에 대한 의무--전쟁에 의 참여--를 지는 것도 이들 헤게모니계급이다. 이에 대하여 국민국가에서는 국민 전 체가 자신의 삶을 국민국가에 의지한다. 시장과 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가에 대한 의무--전쟁에의 참여 그리고 조세의 납부--를 지는 것 도 국민전체이다. 국민국가는 일반 민중이 국가에 포괄되었다는 점에서 계급국가와 다 르다. 과거의 계급국가는 국가가 변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헤게모니 계급의 문 제이지 일반민중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국민국가에서 국가적 변동은 모든 국민의 문제이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운명에 따라서 경제적 착취를 당할 수도 있고 권력적 억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일반민중이 그들의 운명을 국가와 함께 하게 된 것 이 국민국가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민국가는 개인적 인간에게 유일한 공동체이 고 최종적인 공동체이다. 또한 국민은 동등한 개인으로 국가권력에 참여한다. 그것이 다수결이다. 다수결 원칙이 통용될 수 있는 범위가 국민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개 인적 이해관계가 다수결 원칙에 의하여 침해될 경우에 그것을 승복할 수 있는 개인의 범위인 것이다. 만일 특정한 지역이 이러한 다수결원칙에 승복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형성될 수 없다. 그 지역은 식민지가 되든가 억압받는 지역이 되든가 아니면 독립을 쟁취하게 될 것이다.

민족은 공통의 문화를 가진 정감적 인간집단이다. 민족이 공통의 혈연, 공통의 역사 와 문화, 공통의 언어나 문자, 공통의 종교나 집합표상 등 정감적 공통성을 형성하게 된 배경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이러한 민족은 하나의 국민국가를 형성하는데 유력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선 하나의 동질적 시장을 형성하는 사회적 영역으로서 유리한 것이다. 동일한 민족이라는 것은 역사적,공간적, 언어적, 문화적 이유에서 경제 적으로 상호의존하는 영역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민족이라는 하나의 동질적 시장을 형성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단위영역인 것이다. 또한 민족은 하나의 법질서와 다수결 원칙에 복종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영역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정감적 기초가 다수결 원칙에 대하여 승복할 수 있는 이유이다. 다수결 원칙에 승복한다는 것은 국민국가의 권력의 정당성이 용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민족은 그 정신적 유 대감에 의하여 국가공동체에 대한 충성이 야기되는 집단인 것이다. 국민국가는 민족을 단위로 형성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민족을 단위로 형성되는 것은 철칙이 아니다. 국민국가는 질서 폭력이 충분히 우월하기 때문에 여하한 개인이라고 할지라도 법질서를 부과할 수 있 다. 동시에 시장은 경제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민족적 단위가 반드시 결정적인 것은 아 니다. 따라서 근대국가에 있어서 반드시 민족주의적 원칙이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다 민족 국가도 성립되고 유지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하나의 국민 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자랑이었다. 서구 제국주의는 후진국을 민족 단위로 분할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규정한 시장단위로 분할하였다. 후진국의 국가영역은 대부 분의 경우 민족을 단위로 하지 않았다. 서구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식민지를 결코 국민 국가로 포괄하지 않았다. 즉 식민지 인민은 결코 그들의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 하면 식민지 인민을 동등한 국민으로 통합하는 것보다 경제적 착취가 가능한 식민지로 남겨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익하였고 동시에 폭력(군사력)의 우월성이 그것을 가능하 게 하였기 때문이다.

3.5.4. 권력의 치역과 권역 그리고 물적조직

이러한 국민국가에서는 권력의 성격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국민을 국가로 통합하 는 정치적 원리가 자유민주주의였다. 국민이란 개인의 집합이다. 개인의 자유가 시장에 의하여 경제적으로 통합되고, 공공적 권력의 정당성이 다수결원칙에 의하여 정치적으 로 통합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국민국가인 것이다. 개인적 국민을 정치적으로 통합 하려고 할 때,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국민국가는 계급국가에 비하여 대단히 진보한 것은 사실이다. 개인 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권력은 국민의 동의에 기초하기 때문에, 과거의 야만적인 권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보한 국가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과장(誇張)이 포함되어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근대 국민국가에서 권력의 치역(値域)은 과거에 비 하여 좁아졌으나, 권력의 권역(圈域)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자유 민주주의는 권력의 치역에 관한 문제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권력의 권역에 관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과거에 농민은 국가의 밖에 있었다. 따라서 권력은 이러한 농민에 대하여 여하한 가치박탈(권력의 치역)도 가능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즉 기사계급, 헤게 모니 계급)은 자신이 새로 가지게 된 칼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지나가는 평민의 목을 잘라볼 수도 있었다. 평민계급에 대하여 권력이 가할 수 있는 가치박탈은 극도로 잔인할 수 있으며, 그 반대측면으로서 평민은 여하한 권리도 향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인이 노예에 대하여 가지는 사적인 특권과 유사하였다. 노예는 주인 외에는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 동시에 신분계급체제에서 헤게모니 계급은 압제자이고 착취자이었다. 국민국가에서는 그러한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보호받는 것이다.

권력의 치역(권력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價値剝脫의 정도)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에서 현저하게 제한되었다. 이것은 계급국가에 대한 국민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국민 국가에서는 모든 개인이 동등한 국민이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 권력이 국민에게 가할 수 있는 가치박탈의 정도(値域)는 이러한 권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되 어야 한다. 이것이 권력의 치역이 제한되는 이유이고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현실적 기 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국가에서 권력의 권역(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인간행위의 범위)는 과거 에 비하여 무한하게 확장되었다. 계급국가에서 평민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중대 한 문제가 아니었다. 헤게모니 계급은 자신들의 경제적 수취(收取)에 필요한 범위 이상 으로는 평민의 행위에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 말하자면 평민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왔던 것이다. 계급국가에서 평민의 일탈적 행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앙의 권력은 지 방에 효과적으로 미치지 못하였으며, 지방의 권력 역시 강대할 수 없었다. 또한 헤게모 니 계급은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평민들의 행위나 사회적 일탈 (逸脫)에 대해서 굳이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계급국가의 권력은 평민들의 삶에 별로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역설적(逆說的)인 것이다. 권력의 권역의 차원 에서 보면, 오늘날 국민국가야말로 인간을 지극히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는 수많은 영역에서 권력이 개입한다. 권력은 인간이 걸어가는 방식도 규 제한다(가령 도로교통법).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도 권력이 규제한다(의무교육). 평상시 의 노동에 대해서도 권력이 규제한다(노동관계법, 노동정책). 국민국가에서는 엄청나 게 많은 법률을 가지고 있으며, 그 법률들은 모두 인간의 행위에 대한 권력의 규제이 고 개입인 것이다.

국민국가의 권력이 이처럼 그 권역을 넓혀온 주요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시장경제는 끊임없이 국가의 개입을 확장하는 것(즉 권력의 권역을 넓 히는 것)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동시에 국민국가의 책임이 계속 확대되었다. 계급국가 에서는 국가가 평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보다는 헤게모니 계급을 억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였다. 그러나 국민국가에서는 국민의 경제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 책무 가 되었다. 동시에 경제적 변동에 대처하여 현재의 삶을 지키는 것도 국가의 책무가 되었다. 근대화와 함께 가속된 도시화 역시 권력의 권역을 넓히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는 끊임없이 권력의 권역을 확장하여 왔다. 그러나 그 효과는 명백하지 않다. 국민국가는 점점 무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장이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를 계속적으로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과거의 계급국가체제와 비교할 때에는 진보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제문제나 좀더 나아 져야 하는 미래를 기준으로 할 때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여전히 진보의 방향인 것은 아 니다. 그것은 이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진부한 것이 되었다.

권력의 권역이 넓어지고 국가의 책무가 확대되면서 관료체제도 확장되었다. 넓어진 권력의 권역에 걸쳐 확대된 국가의 책무를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식 이 관료체제이기 때문이다. 관료체제는 거대한 물적조직이다. 물적조직이란 일정한 시공간에 사람을 집합시켜 일을 시키고 화폐로 조직비용을 부담하는 자가 통제하는 조 직이다. 관료체제를 구성하는 공무원은 공무소에 집합하여 일하고 예산으로 조직비용 을 부담하는 권력집단에 의하여 통제되는 물적조직이다.

국민국가는 권력헤게모니가 물적조직에 의하여 행사되는 국가형태이다. 계급국가에 서 계급적 권력은 신분계급의 사회적 특권으로 행사되었다. 이에 대하여 국민국가의 공공적 권력은 관료체제라는 물적조직에 의하여 행사되는 것이다. 관료체제는 국가를 구성하는 중추적인 물적조직이다. 국민국가 자체가 물적조직의 체계이다. 국가는 행정 적 물적조직 이외에 특수한 유형의 물적조직을 다수 가지고 있다. 군대는 국민국가가 폭력을 보유하는 물적조직이다. 경찰도 국민국가가 물적조직으로 폭력을 보유하는 방 식이다. 감옥은 법질서를 일탈한 자를 수용하여 감시하는 물적조직이다. 그외 거지나 부랑아의 수용소, 전국민을 상대로 의무교육을 행하는 학교, 재판을 행하는 법원 등도 모두 국민국가에서 화폐로 조직비용을 조달하고 인간을 일정한 시공간에 집합시켜 통 제하고, 그러한 통제를 통하여 권력을 국민에게 행사하는 물적조직인 것이다.

3.5.5. 인류와 국민

계급국가가 방치하였던(또는 착취하였던) 민중을 국민국가는 국가안에 포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인류를 국가 단위의 국민으로 분할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 국가에서는 신분계급간의 대립과 적대가 인간사회의 주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농업사회가 계속되는 한 지양될 수 없는 모순이었다. 이에 대하여 국민국가에서는 인 류가 공간적 영역의 국민으로 분할됨으로써 국민과 국민의 대립과 적대가 인간사회의 주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대립과 적대는 전쟁의 상황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인 간은 다만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이 국민국가체제 의 전쟁이다.

계급국가의 전쟁은 기사계급의 사투(私鬪)였다. 그것은 민중의 생활과는 무관한 것 이었고 민중으로서는 어떠한 기사집단이 승리하든 큰 차이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전 쟁이 민중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파괴하지는 않았다. 동양의 농업사회에서는 곡물의 수확기에는 전쟁을 회피하였다. 왜냐하면 곡물수확은 말하자면 전쟁의 궁극적 목적이 기 때문에, 수확을 못하게 하면 전쟁의 승리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 민국가의 국가간체제에서 전쟁은 국민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체제는 패배한 국가의 국민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 즉 국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식민지 주민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세계시장에서 승리한 국가가 규정 하는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모든 국민의 경제적 삶을 파괴하는 것이 다.

세계시장에서 자원이나 수요, 기타 모든 경제적 이익의 배분이 국민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진다.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하여 국민국가체제는 전쟁기술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켰다. 그것은 모든 산업기술에 앞서서 발전하였으며 사실상 국민국가의 최고의 목적이 군사력의 발전이었다. 동시에 전쟁의 양상도 점점 참혹하게 되었으며, 군인의 살상보다 민간인의 살상이 더욱 증가하였다. 마침내 원자폭탄과 같이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는 무기까지 등장한 것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군인을 살상 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의 국민을 살상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류전쟁의 역사상 최초의 예이고 유일한 예이다. 그것은 적국의 군대가 아니라 적국의 국민을 대량으로 살상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잔혹한 지혜가 이제는 일반적 전략이 되고 있다.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경제적 대립과 군사적 대립이야말로 근대체제에서 결정적으 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국민국가는 일체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권력(헤게모니과 억압)을 배분하는 궁극적인 주체가 되었다. 동시에 인간을 국민에 귀속시켜서 이러한 관계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인간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우리 는 개인의 운명이 국민적 단위에 귀속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보편적인 법칙인 것처 럼 인식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역사의 보편적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역사의 거 의 전부를 차지한 농업사회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국가를 단위로 하여 결정되지 않았 다. 신분계급이라는 사회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었던 것이다. 가령 농업사회에서 어떠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의하여 정복되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복자가 농민을 착취할 수 있는 한계는 과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과거의 헤게모니계급이 수취하였던 것 보다 현격한 차이가 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범 위는 크지 않다. 물론 고대사회에서는 정복된 민족은 노예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농업 사회 일반에 있어서 정복된 국가의 인민이 일반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기사계급의 투쟁에 따른 국가의 멸망은 농민들에게 거의 영향이 없었다. 중국의 경우에도 왕조의 교체나 이민족의 침입한 경우에도 농민의 지위는 거 의 영향이 없었다.

인류가 국민으로 분할되고 인간의 삶이 국가를 단위로 결정되는 것은 국민국가체제 의 독특한 특징인 것이다. 그에 따라 전쟁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것도 국민국가이다. 그것은 국민국가가 일정한 영역의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공동체이 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