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 3편 산업사회 화폐체제


제 6 장 이성과 욕망


3.6.1.화폐체제에서 이성의 발달
3.6.2.화폐체제에서 합리주의의 전제와 주제
3.6.3.산업사회에서의 욕망과 화폐애(貨幣愛)
3.6.4. 이성과 욕망의 문명




3.6.1.화폐체제에서 이성의 발달

우리는 이제까지 화폐가 변화시킨 경제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살펴보았다. 화폐는 자본과 권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문화까지 변화시켰다.

화폐는 순수한 양(量)이다. 화폐에는 질(質)이 없다. 화폐가격은 일체의 재화의 가치 를 양으로 환원한 것이다. 어떤 상품과 다른 상품이 교환되었거나 또는 같은 가격으로 판매된다고 할 때, 두 상품 속에 동일한 무엇(質)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상품의 모든 것을 순수한 양으로 환원한 것이 그 가격인 것이다. 상품의 모든 질은 화폐의 양 으로 환원되는 자료일 뿐이다. 일체의 사물은 화폐 앞에서는 모두 동등한 차원의 양으 로 규정된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화폐를 통하여 모든 사물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것 이 화폐가 인간의 의식과 문화에 미치는 근원적 영향이다.

양(量)의 세계에는 정감(情感)이 없다. 정감은 질(質)에 의하여 자극되는 것이다. 우 리가 어떤 꽃이나 여자를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그 꽃이나 여자의 질에 관하여 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일체의 양적인 요소가 모두 질의 한 구성요소가 된다. 45키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여자라고 하여 동등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같은 45키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 양(量)이 질(質)로 느껴질 때, 아름다운 것이다. 우 리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양을 질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화폐는 이것과 정반대 이다. 그것은 일체의 질을 양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체의 질이 양으로 환원됨 으로써 우리는 정감을 떠난다. 양의 세계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것 은 수학과 같다. 수학 역시 일체의 세계를 양으로 환원하여 그 양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수학에는 정감이 없으며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세계이다.

화폐는 일체의 목적(目的)을 화폐로 단순화시키고 통일시킨다. 인간이 어떠한 목적 을 추구하던지 간에 그 목적들은 화폐로 환원된다. 왜냐하면 화폐를 획득하면 그 목적 들은 지극히 쉽게--화폐를 지불함으로써--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생 활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화폐를 지불하는 단순한 행위에 의하여 획득할 수 있게 된 다. 그러나 화폐라는 수단을 획득하는 과정은 지극히 복잡하고 어렵고 많은 주의와 노 력을 요하는 것이다. 즉 화폐는 수단과 방법을 지극히 복잡하게 한다. 자신이 무엇을 소유하고 그것을 얼마에 판매하고,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힘든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길고 복잡한 과정이다. 산업사회의 생산의 성격은 우회생 산(迂廻生産)이고 그것은 화폐가격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화폐체제는 화폐를 획득하기는 어렵고 화폐를 사용하기는 쉽다는 진리에 입각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 의 모든 주의와 관심과 노력을 화폐를 획득하는 수단적 과정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 처럼 화폐는 목적과 가치를 지극히 단순하게 만들고 수단방법을 지극히 복잡하게 만든 다.

그런데 목적에 대한 평가는 정감의 차원인데 반하여, 수단과 과정을 조직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차원이다.주1) 이것 역시 수학과 같다. 수학에서는 무수한 추상 적인 양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탐구이다. 덧셈과 뺄셈 등 연산이나 기하 등 수학의 기 초적인 차원에서부터 미적분이나 그 이상의 모든 수학법칙들에 대한 탐구는 추상적인 양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탐구이다. 수학에는 목적이나 가치평가가 의식되지 않는다. 허 수(虛數)가 현실에서 무엇에 유용한 것인지 하는 것은 수학자의 관심이 아니다. 이렇게 목적이 사상된 수단적 관계의 차원에는 정감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이성의 차원인 것이다. 화폐체제에서의 인간의 삶과 의식도 이와 같은 것이다. 화폐는 일체의 사회관계와 사물들을 양으로 전환시켜 복잡한 상호관계 속에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조직하여 화폐를 획득하는 과정은 목 적을 의식하지 않는(의식할 필요가 없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차원인 것이다.

이처럼 화폐는 자연적 사물, 경제적 재화, 인간관계를 양으로 전환시키고 수단적 관 계로 전환시킨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삶을 합리적 차원으로 규제하고 인간의 의식을 이성적 차원으로 고정시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비화폐적 (非貨幣的)인 농업사회에서 인간은 산수나 연산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산법과 이율에 관한 계산을 발전시킨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복잡한 분수 대신에 소수(小數)를 창조한 것은 16세기였다. 비화폐사회--수렵, 목축, 농업사회--에서 산수나 수학은 생활과 무관 한 것이었다. 그러나 화폐체제에서 산수는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다.


28 4 3 31 35 10
36 18 21 24 11 1
7 23 12 17 22 30
8 13 26 19 16 29
5 20 15 14 25 32
27 33 34 6 2 9


중국에 아라비아 숫자가 전래된 후 元代(1271-1368)에 이러한 숫자배열을 진흙판으로 만들어서 보관한 것이 발견된다. 중국 사람들은 이 숫자판이 귀신을 쫓아내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합하든 111이 된다.). 이 때는 비화폐 사회(非貨幣 社會) 로서 이러한 산수나 수학적인 지식이 생활에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 西安 박물 관에서)



화폐체제는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의식을 변화시켰다기 보다는 의식을 구성 하는 여러가지 차원의 비중(比重)을 변화시켰다. 의식에서 이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게 만든 것이다. 비화폐적 농업사회에서는 양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질 의 문제였다. 일체의 생활자료는 그 하나하나의 질적인 측면이 삶에 의미를 가진 것이 었다. 가령 쌀은 식량으로, 목화는 의복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 양은 자연과 기후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관심이 양의 문제에 집중되지 않았다. 산(자 연)과 하늘(기후)을 바라보는 것은 정감적인 것이었다. 또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직접적인 목적물이었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 개개의 생산물이나 가 치는 그것들이 직접 생산자의 목적물이었던 것이다. 사물을 질로 인식하고 인간의 행 동이 목적과 직접 연관될 때, 인간의 의식에서 정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좋은 것, 아름 다운 것, 선한 것, 가치있는 것, 그리고 그 반대의 평가도 모두 정감적 차원의 평가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물이 양으로 인식하고 인간의 행동이 기나긴 수단적 과정에 연 관될 때, 인간의 의식에서 이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것과 어떠한 수량적 관계 에 있고, 이것과 저것의 인과관계는 어떠한가 하는 것은 모두 이성적 판단이다. 화폐체 제는 이처럼 삶에서 인간의 이성이 주요한 작용을 하는 사회체제인 것이다.

3.6.2.화폐체제에서 합리주의의 전제와 주제

우리는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근대이전의 사람들이 비합리적 이고 이성이 발전하지 못했던 미개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 실이 아니다. 근대이전의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비합리적이거나 이성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인류의 지적 영역 가운데에서 자연과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는 고 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지적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마호메트,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노자, 공자, 묵자, 한비자, 손자의 사상체계 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비합리적인 추론이나 이성의 부족을 느 낄 수 없다. 사르트르나 마르크스의 사상은 합리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나 토마 스아퀴나스의 사상은 비합리적인 사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략이론 이 그보다 2,000여년 전의 손자의 전략이론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이 예수나 석가의 가르침보다 더욱 합리적이고 진리에 가깝다고 할 수 없다. 근대이전의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주위를 돈다고 믿었다고 하여 비합리적이었다고 생 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근거없이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면 그것 이야말로 비합리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합리성과 이성의 문제는 사유의 주제와 연관하여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과학자나 철학자에게 하느님과 죽음 에 관한 해답을 요구해보라. 그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뛰어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근 대이전의 지식인들이 주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그들이 이성을 작동시켰던 분야--는 주로 이러한 분야였던 것이다.

우리는 근대에 이르러 위대한 천재 뉴톤과 만나게 된다. 뉴톤은 물리학에 관한 한 앞에서 열거한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뛰어난 지식에 이르렀다. 뉴톤의 물리학에 관한 지식의 분야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가 지극히 무식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뉴톤의 주제는 개개의 사물과 자연 내부의 질서였다. 그리고 뉴톤의 전제는 이 세계가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구조 속에서 운동하는 견고한 입자들로 형 성되었으며, 사물들은 간단하고 아름다운 수학적 법칙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견고한 입자에 관한 믿음(전제)은 전복되었다. 그러나 세계가 간단하고 아름다운 수학적 법칙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 은 여전히 파괴되지 않고 있다.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법칙성은 바로 자연과학적 지식 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법칙으로 표현될 수 없는 진리는 자연과학이 아니다. 이 처럼 근대 자연과학은 근대이전의 사람들과는 전제와 주제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뉴톤 이 공자의 주제를 연구하였다면 그는 공자보다 뛰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근대이전의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근대 이후의 사람들이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근대이전의 사람들과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각각 이성이 작동하는 전제와 주 제가 달랐을 뿐이다. 근대인들은 이러한 사실은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성을 활용 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비밀을 벗겨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즉 그들은 과거의 종교 적 주제들--삶과 죽음, 하느님과 우주--도 역시 이성과 과학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 여 우리는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합리성의 전제와 주제를 설정한 것은 화폐체제인 것이다. 상업사회 에서 산업사회로 이어지고 그것을 관통하는 화폐체제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고, 인간 의 의식에 대한 전제와 주제를 변혁하였다. 사람들은 하느님이나 삶과 죽음으로부터 개개의 사물들과 세속세계로 관심을 돌렸다. 이렇게 인간의 관심을 변혁한 것이 바로 화폐체제인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금을 만드는데 하느님 의 도움과 같은 전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일단 천국에 들어가는 것 을 목적으로 정한다면, 하느님이라는 전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처럼 목적은 인간 의 의식이 작용하는 주제를 규정하고, 주제에 따라서 전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화폐체 제는 삶의 주제를 세속적인 것으로 변혁하였고, 의식이 작용하는 전제를 객관적 사물 에 관한 지식으로 변경하였다.

농업사회에서 지식은 권력헤게모니에 관련된 것이었다. 승려계급은 종교적 지식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다. 동양의 왕조체제에서 관료들 역시 지식을 독점하는 계층이었고,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공통의 문화집단이었다. 농업사회-신분계 급체제에서 지식은 그것이 형성하는 공통의 문화에 의하여 헤게모니적 신분계급을 형 성하는 전략적 자산이었다. 이에 대하여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는 신분계급은 해체되 었고 따라서 지식이 신분계급의 요소는 아니다.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 지식은 생산 기술과 소득분배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 이 될 수 있는 지식은 과거와 같은 종교적인 지식이나 윤리적인 지식이 아니다. 그것 은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 경제적 삶에 직접 필요한 자연적 사회적 사실에 관한 세속 적인 지식인 것이다. 산업사회-화폐체제가 이러한 지식을 자극하였지만, 동시에 이러한 지식이 산업사회-화폐체제를 형성한 것이기도 하다. 둘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3.6.3.산업사회에서의 욕망과 화폐애(貨幣 愛)

화폐는 인간이 창조한 가치이다. 화폐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그것은 인간이 원하는 일체의 가치와 교환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가치인 것 이다. 화폐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체의 목적에 대한 수단이기 때 문에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화폐 자체는 인간의 어떠한 욕망도 만족시킬 수 없지만, 화폐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과 교환될 수 있기 때문에, 화폐자체 가 인간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화폐가 창조됨으로써 인간은 새로운 욕망을 가 지게 되었다. 그것은 화폐에 대한 욕망이다. 당신이 쌀을 원하거나 빵을 원하거나 옷을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얻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화폐를 획득하는 것이다. 심 지어는 아름다운 여자를 확실하게 획득하는 방법도 많은 화폐를 얻는 것이다. 이처럼 화폐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상징하는 새로운 욕망이 되었다. 화폐체제는 화폐에 대한 욕망, 화폐애(貨幣愛)에 기초한다.

화폐는 인간의 일체의 욕망을 통합한다. 화폐를 통하여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게 증 가하고 확장된다. 비화폐적 사회에서도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폐체제 는 인간의 욕망을 무한하게 증가시키고 다양화하고 강렬하게 한다.

원래 인간의 욕망은 제한적인 것이다. 첫째,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욕망도 없 다. 테레비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테레비젼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없다. 즉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욕망의 첫째 조건이다. 둘째,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항 상 획득할 수 있다면 욕망을 가지지 않는다. 대상을 획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에 대 한 욕망이 생성되는 것이다. 결핍이야말로 욕망의 조건이다. 만족은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 그러나 결핍은 욕망을 불처럼 끓게 하는 것이다. 승용차를 가진 사람은 익숙해져 서 자신의 행복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승용차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 과거가 행 복했다는 것을 반추하게 된다. 또한 승용차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웃의 승용차를 보 고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은 만족이 아니라 결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세째, 획득하 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은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러한 욕망을 포기한다. 인 간은 언젠가는 죽음이 올 줄 알고 있지만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지 않는다. 왜 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충족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욕망의 조건 이다. 네째, 다른 사람들이 그 욕망의 가치를 인정해 줄 때, 욕망은 생성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모두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의 욕망은 소멸한다. 금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는 혹성에 표류한 지구인은 금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상실하게 될 것이 다. 이처럼 일반적인 사회적 선호는 욕망의 조건이다. 다섯째, 욕망은 체감한다. 테레비 젼을 처음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테레비젼을 10대 가진 사람이 10배 행복한 것은 아니다. 뱀은 먹이를 삼키면 그것이 소화될 때까지 식욕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도 어떤 것에 만족하면 그것에 대한 욕망은 급격히 소멸하는 것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하 여 끝없는 욕망,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욕망은 제 한적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나 재화는 유한하다는 경제학의 전제는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산업사회-화폐체제는 이러한 욕망의 제한조건을 철폐한다. 산업사회는 인간 에게 욕망의 새로운 대상을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이제까지 생산된 상품을 모두 갖춘 사람도 다시금 새로운 욕망의 대상을 발견한다. 산업사회의 발전과정은 욕망을 자극하 는 새로운 상품, 재포장한 상품을 끊임없이 인간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욕망에 관한 인식의 제한을 초월한다. 한편 화폐체제는 끊임없이 결핍을 생산한다. 만 족이야말로 결핍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이웃사람의 욕망의 만족, 이웃의 소비는 나의 결핍을 생산한다. 나의 소비는 이웃의 결핍을 생산한다. 화폐체제에서의 경제적 불평 등은 만족과 결핍을 생산하는 구조이다. 그리하여 화폐체제는 만족가능한 결핍을 끊임 없이 생산하는 체제이다.

또한 산업사회-화폐체제는 욕망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확장한다. 과거에는 충족하기 불가능하였던 욕망이 끊임없이 충족가능한 욕망으로 전환된다. 그것은 소위 경제적 물 질적 발전이라고 불린다. 수많은 후진국에서 테레비젼, 냉장고, 승용차, 에어컨, 해외여 행, 거대한 저택과 풀장, 요트와 자가용 제트비행기 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족불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욕망을 가지지 않았다. 여름 날씨가 덥다고 하더라 도 충분히 견딜 수 있으며, 날씨가 덥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간절히 욕망하게 되는 것 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이러한 것들을 차례로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화폐체 제는 불가능에 의한 욕망의 제약을 차례로 철폐한다. 화폐체제는 사람들이 상호간에 서로의 욕망을 생성시킨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소유와 소비를 보고, 자신들도 그 것을 동경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욕망이 확장되는 것이다. 특정한 것을 한 사람이 가짐 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리하여 사람의 욕망은 증가하는 것이 다. 처음에는 기묘한 물품들이--삶에 그렇게 필요하지 않는 물품들이--마침내 일반적 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화폐체제는 타인의 인정(認定)이라는 욕망의 제한조 건을 철폐한다.

마지막으로 화폐체제는 욕망의 체감조건을 철폐한다. 일체의 재화는 소유함으로써 욕망이 체감한다. 그러나 인간은 유일한 예외를 창조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화폐이다. 화폐에 대한 욕망은 체증한다. 더 많이 가지면 더 많이 가질 수록 욕망은 더욱 증대한 다. 1,000달러를 가진 사람보다 백만달러를 가진 사람이 화폐에 대한 더 많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화폐는 욕망의 체감이라는 제한조건을 철폐한다.

이처럼 화폐체제는 일체의 욕망의 제한조건을 철폐하여, 인간의 욕망을 증대시키고 확장시키고 발전시킨다. 증대되는 욕망은 화폐에 의하여 통합되고 화폐에 의하여 충족 되는 것이다. 화폐애(貨幣愛)는 화폐체제의 기본적 동기이고 기동기제(起動機制)이다. 화폐체제는 욕망의 체제이고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동기는 인간의 화폐애인 것이다. 욕 망에의 집착은 종교사회에서는 죄에 속하는 것이다. 탐욕죄는 오만죄와 함께 서구중세 에서는 가장 중대한 죄였다. 그러나 케인즈의 말과 같이 화폐체제에서 탐욕은 우리의 신(神)이 되고 있다.

3.6.4. 이성과 욕망의 문명

농업사회-신분계급체제에서 사회를 형성한 의식적 기반은 종교적 신앙과 사회적 정 감이었다. 사람들의 집합표상은 종교와 도덕의 차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사람들 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동체적 가치였다. 그것은 농촌공동체와 신분계급체제에서 연유 하는 것이었다.

농촌공동체는 경제적 물질적 차원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대단히 빈곤하다고 하더라 도 빈곤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개선의 여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농업사회의 사람들은 욕망은 자연적인 제한조건들에 의하여 갇혀 있었다. 그들은 욕망을 자극하는 새로운 재화를 알지 못했고, 결핍은 만연되어 있 었지만 그 결핍을 해결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영주나 귀족의 만족이 농민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영원한 신분계급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농민에 게는 불가능한 욕망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분노를 촉발하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다.

농업사회의 문화는 물질적 소유에 중대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 청빈함이야말로 돋 보이는 가치로 찬양되었다. 성프란치스코나 죽림칠현(竹林七賢)이야말로 만인이 존경하 는 인간상이었고 삶이었다. 결핍보다는 만족이 의미를 가지고, 욕망보다는 금욕이 더욱 중요하고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집합표상은 세속과 삶의 욕망보다는 죽음과 내세에 대한 신앙을 지향하였다. 또한 사실에 관한 이성적 고찰보다는 공동체 의 다른 사람들과의 정감적 차원이 더욱 중요하였다. 농업사회와 신분계급체제는 내세 와 죽음의 문화이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과 물질의 관계보다는 공동체와 신분계급 내 에서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정감의 문화였다. 사대부의 정신, 선비사상, 농촌적 유대 등은 바로 이러한 정감적 문화인 것이다. 용감성과 명예를 중요시하고 기사도를 가진 전사문화도 정감의 문화이다. 그것은 이성도 욕망도 아니다.

산업사회-화폐체제는 이것을 반대로 전복(顚覆)하였다. 내세와 죽음보다는 현실과 삶의 더욱 중요해졌다. 종교나 도덕적 직관보다는 이성이 중요해졌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정감적 차원보다는 물질과 화폐를 통하여 평가되는 욕망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는 욕망을 풍요라 부르고, 합리주의를 (신중심주의에 대하여) 인간중심주의(휴머니 즘)라고 부른다. 우리는 과거사회(근대이전사회)는 빈곤한 사회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로 규정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의 관점에서 보는 일방적인 평가이다.

우리가 관점을 달리한다면 다른 성격이 나타난다. 즉 과거사회는 인간과 물질의 관 계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 관계가 중요했던 사회이다. 과거 는 만족과 초월을 중요시했던 만족(滿足)의 문화인데 대하여 현재는 결핍의 문화인 것 이다. 왜냐하면 풍요감은 행복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데 비하여 결핍은 불행감을 자극 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인간은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욱 민감하다.

중요한 것은 산업사회-화폐체제가 형성하는 문명의 성격이다. 근대사회는 이성과 욕망의 문명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성과 욕망을 찬양하는 문명 속에서 살아왔다. 그 러나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성과 욕망의 문화는 대단히 많은 문제를 야기 하는 것이다. 이성은 자연을 정복하는데 있어서는 유용한지 모르나, 자연과 인간의 연 대의식(連帶意識), 인간과 인간의 연대의식은 아니다. 인간의 사회적 연대란 정감적 차 원의 것이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감적인 것이지, 결코 이성도 욕망도 아 니다. 공자가 사회적 연대의 기반이라고 한 인의예지(仁義禮智)도 정감적 차원의 것이 다.

이성이 인간을 사회적 연대로 통합하는 방식은 순전히 법률적인 것이다. 법률을 준 수함으로써 인간을 사회로 통합하는 것이 이성의 차원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적 극적인) 연대가 아니다. 인간은 개인개인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다만 게임의 룰을 지킬 뿐인 것이다. 이러한 법률주의는 로마의 통합양식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사회적 연대가 진정한 사회적 연대가 아니었다는 것은 질서폭력이 붕괴하면서 즉시 드러났다. 이성에 의한 사회통합이란 질서폭력이 효과적이지 못하면 즉시 붕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중국과 공자는 인간의 정감적 차원에서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였다. 인의예지의 덕목 그리고 도덕과 습관화된 예(禮) 등은 모두 정감의 차원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합리 성이란 도덕적 규칙을 도출하는 기반이 될 수는 있으나 이성이 도덕 그 자체가 될 수 는 없다.

욕망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이며, 반성(反省)이나 성찰(省察)이 필요없는 것이다. 욕 망은 감각적 자극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야기되는 인간의 반응이다. 욕망이란 그것이 가치있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의미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반성(성찰)을 하지 않는 것이 그 특색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여러가지 목적이나 가치 가운데에서 욕망은 지극 히 단순하고 피상적인 목적이고 가치인 것이다. 화폐는 이러한 욕망을 더욱 단순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욕망이 형성하는 문명은 모든 인간이 목적이나 가치에 대하여 전 혀 성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성찰할 필요 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 목적이나 가치의 양에만 주의가 집중되는 것이다. 이것이 욕망의 문명의 특색이다.

학문, 예술, 종교에서 오는 기쁨은 이해와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주관적인 의미의 부여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가치는 경쟁적이지 않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가치는 주관적이다. 그러나 욕망은 이러한 이해, 노력, 주관적 의미부여 등이 필요하지 않다. 욕망의 대상이 되는 목적과 가치는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오직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양의 가치를 획득하고 그에 대하여 만족하는 것이다. 욕망 의 대상이 되는 가치는 경쟁적이다. 욕망의 문화에서는 이러한 점이 사회적 연대를 어 렵게 만든다. 욕망의 문화는 끊임없이 갈등과 적대를 생산한다. 욕망의 문화에는 객관 적으로 규정되는 목적과 가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성과 욕망의 문화, 세속적 문화는 어떠한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였는가? 이 것이 다음 장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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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짐멜 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