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 3편 산업사회 화폐체제


제 7 장. 화폐체제에서의 문화공동체 :

국가와 이데올로기공동체


3.7.1.3.7.1. 세속주의(世俗主義)와 국가문화
3.7.2. 세속주의 물질문명
3.7.3. 학교와 언론에 의한 집합표상 헤게모니와 국민국가
3.7.4. 이데올로기적 공동체
3.7.5. 서구근대의 종말




3.7.1. 세속주의(世俗主義)와 국가문화

화폐체제에서는 이성과 욕망이 인간의 집합표상(의식)을 지배한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적 헤게모니를 상실하였다. 종교는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욕망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는 더이상 문화공동체의 요소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종교적 헤게모니는 두가지 제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선 그 종교를 믿 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헤게모니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종교는 진리의 이름 으로 규정되었지 자유의 이름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화폐체제에서 이성의 시대에는 종교의 자유야말로 합리적인 것이었다.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 게 종교는 헤게모니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다음으로 종교는 신자에게도 삶에서 중대 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인간 삶의 전체에서 종교의 비중이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현 실의 물질적 세계의 변화가 인간 삶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종교는 개개 인의 주관적 문제로 전환되었으며 집합표상헤게모니를 상실하였다.

근대사회에서 형성된 공통의 집합표상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동질성을 형성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세속주의(世俗主義)이다. 세속주의는 객관적인 것 그리 고 현실적인 것에 의하여 인간의 의식과 문화가 규정되는 것이다. 중세의 사람들에게 는 두개의 세계가 있었다. 하나는 지상의 나라였으며 다른 하나는 신의 나라였다. 지상 의 나라는 신의 나라로 가는 도정(道程)에 불과하였다. 인간의 삶에서 객관적이고 현 실적이고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사물과 삶에 부여하는 인간의 정신적 의미(意味) 도 또한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의미로 사는 것이다. 그런 데 화폐체제에서는 의미가 빵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성과 욕망의 세계 이고 동시에 세속주의의 문화이다.

근대의 산업사회-화폐체제는 중세적 집합표상(의식)이 정확하게 전도(顚倒)된 것이 다. 중세에서는 신의 나라가 지상의 나라를 지배하고 (주관적) 의미가 객관성을 지배하 였다. 근대에는 정반대로 지상의 나라가 신의 나라를 지배하고, 객관성이 의미를 지배 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문화는 세속적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에서는 주로 경제적 차원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중요성이 증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와 정치가 인간의 삶의 전부이고, 정신적인 것과 삶의 의미는 순전히 개인의 주관적 문 제로 되었다. 말하자면 정신적 가치는 실체성도 현실성도 사회성도 없는 관념(觀念)의 문제가 된 것이다. 지상의 나라야말로 유일한 객관적 현실이고, 신의 나라는 개인의 주 관적 문제이고 현실에서는 실재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집합표상이 세속적이고 현실적으로 형성됨으로써, 그러한 집합표상에 대한 헤게모니 역시 세속적 힘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자본헤게모니나 권력헤게모니가 집합 표상헤게모니를 규정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집합표상)이 주로 경제나 정치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사실을 분 석하고 해석하고 탐구하고 이용하는데 지향하고 있었다. 구원(救援)은 내세(來世)가 아 니라 경제적 발전을 통하여 지상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인은 종교적 지식인이 아니라, 사회과학자나 자연과학자와 같이 객관적 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인간을 문화 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과거로부터의 문화적 축적과 그리고 현재의 경제적 정치적 구획 이었다. 과거의 역사에 의하여 형성된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은 현실적으로도 여전히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인간의 집합표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 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 경제적 정치적 이익의 영역이 또한 이러한 민족 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의 문화공동체는 국민국가이다. 이점에서 과거에 국가를 초월하여 종교가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였던 농업사회와는 다르다. 이것이 세속주의 문화의 특성인 것이다.

문화공동체가 민족공동체라는 것은 문화공동체가 국민국가를 영역으로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결국 국민국가는 정치공동체이자 경제공동체이고 동시에 문화공동체이다. 세속사회의 중심은 국민국가에 있고, 인간의 의식(집합표상)은 경제와 정치가 이루어지 는 장(국가)에 의하여 규정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3.7.2. 세속주의 물질문명

세속주의는 지상의 나라에서 희망을 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세에서의 영원한 구 원과 같은 완전한 구원은 아니지만, 개인의 세속적 희망이 종교적 구원을 대체하였다. 종교적 구원은 개인적 주관적 의식의 문제로 되어 버렸고, 경제적 희망이 사회적 객관 적 사실이 된 것이다.

산업사회-화폐체제는 인간의 물질적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그것은 천년에 이르는 동안 인간이 신에게 기도하여 얻은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었다. 이러한 물질적 발전이 마침내 인간을 지상의 낙원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성의 발전이 물질적인 풍요를 낳고, 풍요는 욕망의 충족을 낳고, 욕망의 충족은 마침내 인간을 도덕 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연대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역사의 진보에 의하 여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다만 그러한 낙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탐욕과 경쟁, 투쟁과 혁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러한 근대적 구원(희망)의 집합표상은 충분 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었다. 합리적 세속주의는 종교를 대체하여 인간의 집합표 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세속주의이고 물질주의이다.

이러한 세속주의의 과정은 시장과 국가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시장과 국가 야말로 문화적 공동체의 영역이 된 것이다. 합리적 세속주의 집합표상은 인간의 의식 을 전면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개인에게 희망을 주는 집합표상이다. 물질적 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열려 있 었다. 죽은 후 천국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현실에서 화폐에 의하여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합표상은 현실적으로 증명되었다. 이미 선진국이 풍요한 국가에 도달 하고 있고, 또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풍요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야말로 그 증명이었다. 나아가 세속적 집합표상은 또한 국가에 의하여 끊임없이 강화되었다. 부국 강병을 추구하는 국가는 국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물질주의 세속주의를 강화하였다. 또한 개인에게 부과되는 현실의 치열한 경쟁의 상황이 인간으로 하여금 현실 이외의 세계에 전혀 주의를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세속주의 집합표상은 그것을 형성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다른 것이 었다. 종교적 예배가 아니라 세속주의는 학교와 언론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3.7.3. 학교와 언론에 의한 집합표상 헤게모니와 국민국가

계급체제에서 집합표상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문화가 자연적으로 피 지배계급의 의식을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구체적인 노 력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문화적 관계였다. 서구 중세에서는 승려계급이, 동양 왕조체제에서는 관료계급이 이러한 문화적 헤게모니(집합표상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는 이러한 신분계급은 붕괴하였고, 따라서 신분 계급이 집합표상헤게모니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산업사회-화폐체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회제도를 창설하였으니, 그것은 학교조직과 언론조직이다. 과거의 신분계급은 두개의 근대적 제도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하나는 시장이고 하나는 물적조직이다. 교육 조직과 언론조직은 바로 물적조직이 신분계급을 대체한 예이다. 이것은 교육과 언론이 집합표상헤게모니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제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화폐체제는 민중에 대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인간의 집합표 상(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의무교육은 인간의 집합표상을 형성하는 직접적이고 조직 적인 노력이다. 그것은 학교라는 물적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전국민을 인생의 일정 기간 동안 하나의 장소(학교)에 집합시켜 통제하고 교육한다는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 는 일이다. 그 조직비용은 국가예산으로 화폐로 조달되었고 따라서 통제권은 국가와 교육공무원(교사)에게 있다.

한편 모든 성인(成人)에게는 매일매일 사회와 세계에 대한 집합표상(이미지)을 형성 하는 정보가 제공된다. 인간이 현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집합표상(이미지) 을 형성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집합표상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언론조직이다. 언론 조직이 의도적으로 인간의 집합표상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조직에 종사 하는 사람들의 집합표상, 그 집합표상의 범위, 그에 의하여 선택되고 해석되고 판단되 는 내용들이 바로 대중의 집합표상이 되는 것이다. 언론조직 자체는 기업이라는 물적 조직이다. 이러한 체제 역시 근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형성된 것이다. 농업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사회와 세계에 대한 매일매일의 정보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언론조직 은 근대 산업사회-화폐체제에서 집합표상헤게모니가 행사되는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으로 규정되는) 방식이다. 교사와 언론인이야말로 근대의 성직자(僧侶)인 것이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이러한 집합표상헤게모니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집합표상헤게 모니란 본질적으로 강제성을 가지지 않는 헤게모니이다. 따라서 자유롭다고 해서 헤게 모니적 성격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집합표상은 결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아니며 독립된 것이 아니다. 케인즈의 말대로 미친 사람이 듣는 환청 (幻聽)조차도 그가 과거 언젠가 읽었거나 들었거나 한 것이다. 더구나 근대문명은 이성 과 욕망의 세속주의 문명이다. 인간의 집합표상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의하여 규정되는 문명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집합표상, 교육되고 보도되는 다른 사람의 집합 표상이야말로,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미 그 자체가 객관적이고 현실적 인 것이다.

농업사회의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세계관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이듯이, 산업사회의 사람들도 교육되고 보도되는 내용으로 자신의 집합표상을 형성하는 것이 다. 왜냐하면 그것들이야말로 사회관계에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집합표상이기 때문이 다. 교육되고 보도된 것과 전혀 동떨어진 집합표상---단순히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 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른 주관---은 사회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오히려 사회부적응 으로 정신병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그리하여 학교조직과 언론조직은 국가를 문화공동 체로 형성하는 집합표상헤게모니의 체계이다.

학교와 언론에 의하여 행사되는 집합표상헤게모니는 국가가 문화공동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학교와 언론은 국민을 집합표상(의식)에 있어서 공동체로 통합하는 체제 적 구성요소인 것이다. 이러한 집합표상헤게모니 체제에서 애국심(愛國心)은 지극히 당 연한 것으로 규정된다. 애국심은 자신의 문화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정감이 근대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중세의 십자군 원정은 유럽전체가 하나의 문화공동체라는 인식에 의하 여 촉발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정감이 근대에는 국민국가를 향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국민국가가 바로 근대의 문화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근대체제에서도 국가를 초월하는 집합표상이 있었으니 그것이 이데올로기이다.

3.7.4. 이데올로기적 공동체

세속주의 문명에서 인간의 집합표상은 지상(地上)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신(神)의 나라에 관한 집합표상의 차이는 이제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대신 지상의 나라 에 대한 집합표상의 차이가 신념의 문제로 될 때, 그것은 인간을 결합시키고 분할하는 중대한 집합표상헤게모니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이데올로 기이다. 이데올로기란 <이성의 시대>에 인간의 신념을 분할하는 집합표상이다.

이데올로기는 지상의 나라에 대한 것이고 동시에 합리적 이론의 차원에 있는 것이 다. 이성의 시대에 초월적 집합표상(神)은 호소력이 없다. 그렇지만 이데올로기는 이성 적인 토론으로 그 진리성을 판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의 신 념을 분할할 수 없기 때문이다(진리와 허위가 금방 분별되기 때문에). 따라서 이데올로 기는 이성의 바탕위에 있지만 동시에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합 리적 이론의 형식을 취하지만 인간의 신념을 분할하고 종교적 기능을 갖춘 것이다. 근 대에 들어와 이러한 의미의 탁월한 집합표상이 있었다.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세속주의와 합리주의의 토대위에 있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도래 할 지상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그 지상의 나라는 역시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을 도 덕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연대적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점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와 완전히 동일하게 세속주의의 토대 위에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사회로 가는 도정 (道程)과 그러한 사회의 주인(主人)이 다른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철학, 경제, 역사 등 광범한 범위에 걸친 치밀한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이론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자본주의가 변화되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영원 한 체제는 없으며 다만 변혁의 시기만을 모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논파(論 破)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도래할 공산주의체제에 관한 이론이 '아니기' 때 문에 역시 논파될 수 없는 것이었다(공산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체제인가를 제시하 지 않았기 때문에 論破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마치 종교가 천국의 구체적인 모습을 교리로 하지 않기 때문에 논파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불신자의 입 장에서는 항상 논파할 수 있고 이미 논파된 것이다(스스로 논파하였기 때문에 불신자 인 것이다). 그러나 신자의 관점에서는 불신자의 논리는 진리를 모르는 우매한 자에 불 과할 뿐이다. 마치 로마 말기의 한 기독교인이 '우리는 이미 진리를 찾았다'고 외친 것처럼, 그들은 우매한 자들이 깨닫지 못한 진리를 이미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는 인류의 신념을 분할하였다. 과거의 종교적 집합표상이 그 러하였던 것처럼,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를 분할하였다. 세계는 집합표상의 차원에서 양 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근본적으로 근대 서구문명의 미성숙에서 연 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성에 대한 과신(過信)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마 르크스주의는 이성을 숭배하는 종교였다. 이성의 관점에서 보면 탁월한 것이지만 종교 적 관점에서 보면 열등한 것이다. 이것은 집합표상헤게모니가 세속주의 물질주의의 세 계에서도 여전히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산주의가 붕괴한 지금 다 시금 마르크스주의와 유사한 성격의 이데올로기가 그러한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이 다. 왜냐하면 이성의 한계가 이미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집 합표상을 분할하는 집합표상헤게모니는 새로운 형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본주의는 강고한 이론적 집합표상에 의하여 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화폐의 기능'에 의하여 통합을 유지한다. 일단 화폐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마치 이론적 집합표상인 것처럼 오해된다. 가령, 자유주의, 민주주의, 천부 인권 등등이 마르크스주의와 대립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인 처럼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렇 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시킬 필요가 없다. 화폐가 형성 하는 현실 그 자체가 인간에게 자본주의적 의식(意識)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적 의식은 바로 <화폐체제의 철칙>이 행사하는 집합표상헤게모니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이점에서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편하고 강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세계는 한 때 이데올로기적 공동체로 양분되었다. 그것은 국가를 넘 어 여러개의 국가를 하나의 문화공동체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종교적 요소가 없는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국가를 초월한 문화공동체를 형성한 것은 근대에 특유한 것 이었다.

근대의 문화공동체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국가이고 하나는 이데올로기 공동체였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공동체는 해소되었다. 나아가 문화공동체로서 국가도 이제 해소되 고 있다. 그것은 서구근대체제의 부정합성(不整合性)에서 연유한다.

3.7.5. 서구근대의 종말

전형적인 서구 근대체제는 국가가 동시에 경제공동체이고 문화공동체인 시기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근대체제는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본다면 극히 순간적인 것이다. 서구 에서 근대사는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비서구국가에서는 불과 100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서구 역사를 기준으로 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근대가 마치 하나의 역사적 시대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을 비롯한 비서구지역의 관점에 서면 그것은 결코 역사에서 하나의 시대라고 할 수 없는 '순간(瞬間)'에 불과하다. 한 국의 경우 5,000년의 역사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말에 이르는 100년의 역사란 하 나의 시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기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것은 불과 30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는다.(나머지 기간은 그 이전의 긴 역사적 시대 의 終期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근대가 역사적 시대가 아니라 순간이라는 것은 서구근대체제의 성격에서 유 래하는 것이다. 서구근대체제란 화폐체제의 철칙에 의하여 <국민국가>가 경제공동체 이고 국가공동체이고 동시에 문화공동체인 그러한 시대이다. 그러나 시장은 끊임없이 확대하고 심화한다. 시장의 범위가 국가공동체에 미치지 못했을 때, 그리고 시장의 범 위가 국가공동체를 초월해 버렸을 때, <국민국가>는 경제공동체도 문화공동체도 될 수 없다. 지금 현재는 시장이 국민국가를 초월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하여 서구 근대체제는 종말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서구국가들(유럽과 미국)은 로마말 기를 모방하여, 전세계에 하나의 법질서(국가를 초월하는 법-조약)를 모든 국가에 부과 하려고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세계를 동질적인 세계시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것은 시장의 확대와 심화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것은 로마가 법률주의에 의하여 세계 를 통일하였던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러한 법질서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자는 로마제국에서 로마市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은 서구국가(유럽과 미국)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계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결과가 문명의 쇠퇴라는 것을 인 식하지 못하고 있다. 로마의 법률주의는 세계의 통합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 은 화폐체제의 본질적 결함에서 연유한다.

우리는 신분계급체제에서 위대한 진보였던 화폐체제가 어떠한 결함을 가지고 있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그것은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