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지식정보혁명에 의한 화폐체제의 강화
오늘날 중대한 기술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소위 지식정보혁명이 그것이다. 최근에 컴퓨터와 전자기적 통신(tele-communication)의 기술이 급속히 발전으로, 다량의 지식 과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을 다양한 주체들 상호간에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정보 혁명은 구체적으로 두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지식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사회가 지극히 복잡화해졌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 자료를 전자기적 자료로 전환함으로써 지식정보를 축적, 편집, 가공하는 등 이를 처리 할 수 있는 능력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지식정보가 사회적으로 전략적 자산이 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지극히 복잡한 사회에서 지식정보 없이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권력, 법률, 자본, 노동, 등 사회의 어떠한 차원에서도 지식정보는 결 정적인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지식정보혁명과 관련하여 많은 미래예측들이 행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사람 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식정보혁명이 전혀 새로운 사회, 또는 장미빛 낙원을 도 래하게 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에게 환상을 주는 거짓말이다. 주1)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예측하고 어떠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 더라도, 한가지 명백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화폐체제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소위 정보화 사회는 화폐체제가 아닌 다른 체제인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심각한 화폐체제이다. 미래의 국가는 오늘날 국가와 전혀 다른 것인가? 미래의 기업은 오늘 의 기업과 전혀 다른가? 인간이 소득을 얻고 살아가는 방식이 오늘날과 전혀 다른가? 그렇지 않다. 전혀 다르지 않다. 여전히 화폐체제인 것이다. 소위 지식정보사회란 체제 적으로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화폐체제의 병리가 더욱 심화된 사회인 것이 다.
서구근대체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는 아직 인류의 역사적 상상력 안에 나타나 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소설이나 미래소설에서도 정치경제체 제는 여전히 근대체제이다(심지어 왕정체제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근대체제(화폐체 제)가 지배하는 한 인간은 여전히 화폐소득을 얻어야 생존할 수 있으며, 화폐를 추구하 는 행동이 모든 것을 규정하고, 화폐가 없는 사람은 굶어죽는다. 지식정보혁명은 오히 려 화폐체제를 강화하고 화폐체제의 병리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사 회적 패자(敗者)가 오히려 증대할 것이다. 소유만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 가 수많은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정보혁명으로 장미빛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다 환상으로 대중을 마비시키려는 자들이다.
화폐체제에서는 일체의 기술혁신이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 고 있다. 지식정보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기술은 화폐와 자본 힘을 강화하고 투 기화한다. 정보화한다는 것은 투기화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생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 순히 안다는 것(정보를 획득하는 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산업사회에서 자본가는 물질적 생산으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부(富)를 축적하 였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에서는 물질적 생산을 통한 기여가 전혀 없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이전시키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이다.
초기호경제(超記號經濟)라는 멋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제는 화폐를 실물로부터 분 리시키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에 전혀 기여함이 없이 순전히 정보에 의하여 부 가 이전되고 축적되는 경제인 것이다. 이것은 소위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 가 일반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정보혁명이 가장 먼저 변화시킨 현실은 자본주의 금융체제를 세계화한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함으로써 화폐체 제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4.1.2. 화폐체제의 전면화(全面化)
사회체제는 기술(技術)에 의하여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정보기술이 자동적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사회를 선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술이 체제를 규정하는 것이 아 니라, 체제(화폐체제)가 기술을 규정하는 것이다. 로마나 중국에서 화폐와 교역은 체제 를 변혁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부(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마찬가지 로 새로운 기술혁신 역시 기존의 화폐체제를 확장심화시키고, 기존의 강자(强者)를 더 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제3의 물결>과 같은 전혀 새로운 사회를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기존의 화폐체제를 전면화(全面化)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화폐체제가 완전하 지 못했던 분야까지 화폐체제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서구근대체제의 국가간체제에서 화폐체제가 완전하지 못했던 영역은 두가지가 있 다. 하나는 정치와 문화등 비경제적 분야이고 둘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이다. 이제 이러 한 분야까지 시장화하고 화폐화하는 것이다. 정치나 문화의 영역까지 화폐체제가 지배 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조직(국가 또는 지방자치체)가 기업과 거의 유사하게 행동하게 되고, 반대로 거대기업이 권력을 초월하여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주2) 또한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정치외교적 관계가 아니라 시장관계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전세계가 하나의 단일한 세계시장이 됨으로써, 국가와 국가의 정치적 관계 가 점차로 무의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서구근대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중대한 변화이다. 근대국가가 약화되고 전세계가 단일한 세계시장이 되며, 정치경제문화의 분 화가 제거되고 일체가 시장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서구근대체제의 껍질이 유지되면서 그 내용이 상당하게 변하고 있는 새로운 현실의 핵심은 <세계시장> 또는 <화폐체제의 전면화>라고 할 수 있다. 서구근대체제는 정치 공동체,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근대국가의 세측면을 형 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 즉 국제적 체제였다. 새로운 현실 에서도 형식적으로는 이러한 체제양식이 그대로 존속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국가 가 약화되어 전세계가 하나의 <세계시장>으로 변화하고, 정치나 문화의 성격도 시장 적 화폐적 성격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시장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낡은 근대사의 마지막 장(章)이다. 근대사 전체 를 관통하는 일반적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이다. 개인 사회 국가, 정치 경제 문화가 모두 시장에 매몰(埋沒)되는 것이다. 처음의 시장확대는 노예무역과 약탈을 통하여 비교역권의 문명을 교역권으로 끌어들였다. 그 다음은 제국 주의적 시장확대였다. 냉전시대에는 패권주의적 시장으로 심화되었다. 이제 냉전이 끝 나자 국가를 초월하고 사회의 다른 부문(정치, 문화)까지 모조리 끌어들여, 전세계와 사회의 모든 부문이 단일한 하나의 시장(세계시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 은 개인, 사회, 국가, 민족의 운명이 세계시장이라는 화폐의 메카니즘에 던져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장이라는 메카니즘은 어떠한 가치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시장은 폴라니 가 말하듯이 <악마의 맷돌>이다. 세계시장은 소수의 승자가 전세계를 착취하는 메카 니즘인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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