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그리이스 로마의 교훈
시장의 평화는 우선 경제적으로 하나의 세계이면서 정치적으로 분립된 다수의 국가 가 있을 때 임시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이다. 고대 그리이스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이스는 수백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 경에 중대 한 경제혁명이 일어났다. 그리이스가 지중에 연안에 많은 식민국가를 건설하면서 그리 이스 경제가 세계화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그리이스는 과거의 자립적인 혼합농업을 포기하고 포도와 올리브 등 특화농업으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세계화된 경제에 대하여 수백개의 도시국가체제는 정합성(整合性)이 없는 것이었다. 공통의 교역질서와 합리적 인 세계분업체제, 해상의 안전 등 모든 면에서 그리이스는 도시국가체제를 초월해서 전체를 통합해야 하는 시대적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리이스 전체가 하나의 영 토국가로 통일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였다. 도시국가 단위의 민주주의 체 제는 포기될 수 없는 가치였다. 그리이스는 한동안 델로스 동맹에 기초하여 아테네를 맹주로 하는 아테네제국주의(또는 동맹체제)로 이에 대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러한 체제에 불만을 품은 스파르타가 전쟁을 야기 하였고, 아테네는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세계질서는 와해되었다. 그리이스는 도시국가 체제를 초월하지 못하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정복되었다. 교역의 중심은 알렉 산드리아에 옮겨지고 그리이스문명은 쇠퇴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세계도 동일한 상황에 있다. 세계화한 경제에 정합성이 있는 세계적 정치체 제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포기될 수 없는 가치이고, 국민국가를 초월하여 세계적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합의체제(국제법)는 아테네 동맹체제 와 마찬가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장의 평화는 적(敵)이 없어진 사회에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체제이다. 그리고 불 평등을 방치하는 체제이다. 바로 로마가 그러하였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이르러 정복사업을 중지하였다. 더 이상의 정복은 비 용이 많이 들고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복사업의 중단과 함께 로마는 쇠퇴 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정치체제는 황제의 계승절차가 확립되지 못했다. 정복의 과정 에서는 유능한 지도자가 배출되었지만, 적이 없어진 상황에서는 권력투쟁이 내전을 유 발하였다. 지도자들은 유능하지 못했고 지배계급은 목적을 상실하였다. 네로는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하여 로마를 불태웠고, 지배계급은 향락에 빠져들었다. 대중에게는 콜롯 세움에서 잔인한 오락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번영 이면에는 속주(屬州)의 인민 과 하층계급 그리고 이주(移住)한 만족(蠻族)들의 희생이 있었다. 외부의 만족(蠻族)은 끊임없이 침략을 야기하고 로마의 도시들은 약탈당했다. 그 위대한 로마가 내적 외적 프로레타리아트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주3)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 은 없었고,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은 기존의 세계에 무질서를 증대시켰다.
점차 국가와 지배계급도 충분한 부를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기존의 공납제도 및 시장체제가 국가와 지배계급, 로마시민을 위한 부(富)를 충분히 조달할 수 없게 된 것 이다. 이에 대한 개혁조치가 시행되었다. 로마시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필 품에 대한 가격을 고정시키고, 세금징수를 증대시키고, 농민의 도망을 금지하여 농민을 토지에 결박(結縛)하고, 하층계급이 직업을 바꾸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개혁조치 는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의 시장체제를 파괴하였다. 고정가격으로 채산성을 상실한 속 주(屬州)들은 판매를 위한 생산을 중지하고 지역적 자립경제체제로 변화되었다. 농민은 토지에 결박되어 농노로 되어 갔다. 질서는 붕괴하고, 도시는 약탈당하고, 경제는 자 립화하고, 농민은 농노화하여 중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문명은 유적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사진--- 로마의 콜롯세움
<로마는 정부사업을 그만 두자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러한 원형경기장에서 잔인한 오락으로 정복사업을 대신했다. 결국 그것은 로마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세계는 로마화하고 있다. 선진국의 상류계층은 만족계층(滿 足階層)이 되었다. 선진국의 하층계급과 후진국 인민들은 로마의 하층계급과 속주의 인 민과 같다. 오늘의 만족(蠻族:후진국)은 끊임없이 선진국에 흘러들어 이방인이 될 것이 다. 선진국 상류계층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내적 외적 프로레타리아트로 가득차 있 게 될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위한 개혁에 관해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능력 이 없고, 능력이 있는 계층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선진국의 상류계층은 그들의 부 를 세계시장에 두고 있으므로 자국 국민의 불행을 구제할 필요가 없다. 적(敵)은 사라 지고 인류는 공통의 목적을 잃고 분열되고 있다. 그 결과는 소규모의 전쟁이 끊임없이 야기되고, 내적 외적 프로레타리아트의 분산된 저항에 의하여 무질서는 증가하고, 정치 는 우경화하고, 세계시장은 고사(枯死)할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새로운 중세(中世) 로 가는 길이다.
4.2.4. <시장의 평화>와 화폐체제의 철칙
시장의 평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구근대사가 시작된 이후로 형식을 바꾸어 계 속해 온 흐름이다. 즉 끊임없이 시장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노예무역, 약탈, 자유무역, 제국주의, 냉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계속되어 온 것이다. 근대사를 수 놓고 있는 모든 전쟁과 학살도 바로 시장의 평화라는 이름 밑에 행해진 것이다. 오늘 에 이르러 시장의 평화는 화폐체제를 전세계적 무대에서 완전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화폐체제는 국가를 단위로 하여 동질적인 체제였고, 국가와 국가간에는 정치 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를 초월하여 전세계를 하나의 동질적인 시장질서, 서구의 정의에 기준을 둔 질서로 재편하는 것이다.
시장의 평화가 성공하고 그것이 세계질서로 정착된다면, 미래는 초국적자본이 지배 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우선 근대국가는 힘을 잃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세계에 보편 적으로 적용되는 화폐질서(세계시장의 규칙)가 모든 국가들을 규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폭력 자체가 화폐의 지배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가령 화폐를 대가로 받고 폭력을 행사하는 초국적자본이 국가의 폭력을 대체하는 것이다(벌써 미래학자 앨빈토플러는 平和株 式會社에 관한 상상력을 작동시키고 있다.).
지식과 문화도 화폐질서에 흡수될 것이다. 이미 각국의 문화가 화폐수입을 매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물론 미국대중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결국 정치집단(국 가도 지방자치체도)도 문화집단도 기업과 같은 형태의 경제적 집단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리하여 화폐가 살아 있는 신(神)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주4)
그러나 초국적자본은 공공적 책임성을 가질 수 없다. 초국적자본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화폐적 수입이고 이윤이다.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고 확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국적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정의도 평화도 없다. 오직 화폐적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황제의 자리를 돈을 주고 사고 팔았던 로마의 말로와 같은 것이다.
시장의 평화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의하여 문명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의 평화는 압도적 다수의 인류, 압도적 다수의 국가들에게 아무런 안정도 제공하 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장의 평화로 생존할 수 없게 된 압도적인 다수의 인 민은 폭력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세계시장질서로 생존할 수 없게 된 국가 역시 폭력 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세계시장체제에서 이익을 얻는 국가들(서구제국들) 역 시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더 많이 더 자주 폭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세계 시장이나 시장의 평화는 결코 인류와 세계의 보편적 질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 하여 세계는 폭력과 전쟁으로 붕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고대 그리이스나 19세기의 100년 평화의 종말을 관통하는 논리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