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4 편 문화사회 - 연대체제


제 4 장 연대체제

4.4.1. 화폐와 정보
4.4.2. 사회체제의 본질과 화폐체제의 철칙
4.4.3. 소유를 대체하는 정보
4.4.4. 연대체제




4.4.1.화폐와 정보

우리는 화폐체제를 논의하면서 화폐를 금화 또는 지폐(紙幣)라고 무의식적으로 전 제하였다. 이것은 현실이기도 하고 상식이기도 하다. 즉, 화폐는 균등한 단위의 동전이 거나 종이쪽지이다. 동전이나 종이쪽지와 같은 물질성 또는 실체성(實體性)이 화폐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날 정보기술은 화폐의 이러한 물질성(내지 실체 성)을 없애고 있다. 화폐는 점점 실체성이 없는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갑이 을로부터 10만원 짜리의 라디오를 구입하였다고 하자. 그러면 갑은 을에게 만 원짜리 화폐 10장을 준다. 을이 라디오를 갑에게 줌으로써 갑은 라디오의 새로운 소유 자가 된다. 반대로 갑은 만원짜리 지폐 10장을 을에게 지불함으로써 을은 그 지폐 10 장의 새로운 소유자가 된다. 여기에서 화폐와 라디오는 완전히 동등하다. 라디오가 소 유의 대상이 되는 어떤 실체라면 화폐도 소유의 대상이 되는 어떤 실체이다.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지만 이것이 화폐거래이고 동시에 이것이 화폐체제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신분계급체제를 해체해버린 것이다. 이 거래에서 갑과 을의 계급 적 신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적 거래를 정보의 관점에서 다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역시 갑이 을로부터 라디오를 구입하였다고 하자. 을은 갑에게 라디오를 인도한다. 그럼으로써 라디오의 소 유권은 갑에게 이전한다. 여기까지는 동일하다. 그런데 갑은 을에게 지폐를 지불하지 않는다. 대신에 갑과 을은 각각 은행에 구좌(口座)를 가지고 있다. 은행이 갑의 구좌에 서 10만원만큼 감소시키고, 동시에 을의 구좌에서 10만원만큼 증가시킨다. 즉, 갑과 을 의 거래는 정보를 생산하고 그에 따라서 은행의 갑과 을의 구좌에 기재가 변동되는 것 이다. 이러한 새로운 거래방식에서는 화폐는 라디오와 등등하지 않다. 화폐는 라디오와 같은 물질성이나 실체성이 없다. 또한 화폐를 라디오와 같이 넘겨주는 것은 아니다. 화 폐는 라디오와 같은 방식으로 소유되는 것도 아니고 이동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화폐의 본질은 정보이다. 그리고 그 정보의 내용은 바로 권리이다. 즉, 화폐는 권리에 관한 정보인 것이다. 갑이 은행구좌에 가령 100만이라고 기재되어 있던 것이 위 거래 로 인하여 10만이 감소하여 90만으로 정정된다. 한편 을도 가령 은행구좌에 100만이라 고 기재되어 있던 것이 110만으로 정정된다. 이것이 새로운 화폐정보의 모습이다. 거래 쌍방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러한 거래는 이미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다. 은 행 등 금융기관에서는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주8)

4.4.2. 사회체제의 본질과 화폐체제의 철칙

화폐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관계와, 정보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관계는 위와 같이 상 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에 공통하는 사회관계의 본질(本質)은 무엇인 가? 사회관계의 본질은 인간의 권리의무관계이다. 사회체제는 권리의무의 성격과 그 변동을 규정하는 양식이다. 이것은 사회관계의 매개수단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매개수단이 신분인가, 화폐인가, 정보인가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2편에서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는) 신분계급체제를 고찰하였다. 이 경우 에는 화폐가 매개하는 것과 같은 수량적인 권리의무나 그 변동은 불가능하다. 몇개의 고정된 권리의무의 체계로서 신분계급이 규정되고,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고정된 권 리의무인 신분이 정해지는 것이다.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을 때, 이러한 방식이 아닌 다른 사회관계가 불가능하다. 즉, 지배계급의 권리(특권)와 피지배계급의 의무(신분적 제약)가 결합하여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가 일반적으로 사회관계를 매개하면, 권리의무는 바로 화폐에 의하여 규정된다. 화폐자체가 바로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화폐를 가지면 모든 물질적 가치 (상품)을 소유(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신분계급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인간의 주요한 권리는 화폐를 매개로 하여 형성되고, 인간의 주요한 의무는 화 폐를 지불할 의무가 된다. 우리는 이처럼 화폐를 매개로 하는 사회관계를 제3편에서 논의하였다.

그런데 화폐와는 전혀 다른 정보의 관점에 서면 다시한번 사회관계의 성격이 달라 진다. 첫째, 화폐의 실체성은 무의미하고 권리에 관한 정보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사 회관계는 권리의무의 변동에 관한 정보의 생산과 이동으로 규정된다. 화폐가 실체성을 상실한다는 말은 권리를 규정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분계급체제에 서는 어떤 개인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가 어떤 신분인가 하는 것 에 의하여 결정된다. 화폐체제에서는 어떤 개인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은, 그가 얼마나 많은 수량의 화폐(紙幣)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의하여 결정된 다. 그런데 정보가 인간의 사회관계를 매개하면, 어떤 개인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 가 하는 것은, 사회가 그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된다. 즉, 어떤 경우에 어떠한 권리를 주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규범(規範)의 문제가 된다. 화폐체제 에서는 화폐를 취득하는 것이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보가 사회관계를 매개하면 화폐라는 실체물을 취득하는 것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할 필요는 없다. 오히 려 그 보다 어떠한 경우에 어떠한 권리를 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어떻 게 공시(公示)하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공시란 사회적으로 알리는 것, 사회의 다른 사 람들이 알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이다. 주9)

둘째, 정보가 사회관계를 매개하게 되면, 사회관계는 이러한 정보를 관리하고 처리 하는 기반구조(infrastructure)를 필요로 한다. 화폐체제에서는 이것이 불필요하다. 모든 개개인이 실체적인 화폐를 소유하는 것 자체에 의하여 권리의무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가 사회관계를 매개하면 권리의무의 내용을 확정하고, 그 변동을 규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시(公示)하는 '기관'이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화폐(지폐)를 사용하는 거래에는 당사자끼지 지폐를 주고 받으면 되고, 은행이 필요 하지 않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면, 매 거래마다 은행(또는 신용카드회사)이 필 요하다. 이처럼 정보에 의하여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경우에는 화폐체제와는 달리 정보 적 기반구조(information infrastructure)가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정보적 기반 구조를 간단히 <정보 인프라>라고 약칭하기로 한다.주10) 신분계급체제에서는 신분에 대한 관념(집합표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화폐체제에서는 화폐를 조 절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했다. 정보가 사회를 통합하는 사회에서는 <정보 인프 라> '기관'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가 이러한 정보인프라를 토대로 하여 형성된다면, 화폐체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회체제가 가능해진다.

<화폐체제의 철칙>은 화폐의 실체성에 의하여 인간이 규정당하는 것이었다. 어떤 가난한 아기가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그 부모는 돈이 없다고 하자. 이 경우 병원 이 있고 의사가 있고, 그 의사가 치료해 주고 싶어도 치료해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다가는 그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 다. 의료보험이나 기타 여러가지 의료복지는 화폐체제에서 그러한 환자에게 권리를 화 폐로써 부여한다. 그런데 화폐가 아니라 정보가 일반적으로 사회관계를 매개하게 되면, 모든 개인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을 화폐체제와는 전혀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화폐체제의 철칙을 초월하는 방향이다. 아기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어떠한 권리를 어떻게 부여하 는 것이 <정당한가>, 그리고 그렇게 부여되는 권리를 사회전체가 거시적(巨視的)으로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새로이 제기된다.

4.4.3. 소유를 대체하는 정보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화폐는 일종의 정보매체(情報媒體)이다. 화폐는 사람들이 무 엇을 원하고 어떤 일을 하였는가 하는 것을 사회적 정보로서 종합하는 매개체이다. 소 련사회주의에서 화폐를 제약하자, 사람들이 무엇을 수요하고 생산물의 가치가 얼마인 가 하는데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정보매체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화폐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폐는 선호와 권리에 관한 정보매개체이다. 화폐가 표상하는 것이 권리정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의 상식적인 화폐의 집합 표상(관념)과 화폐제도 자체를 제검토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화폐 그 자체는 어떤 실체적 대상도 아니고 부(富)도 아니고 가치도 아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일을 하여 임금으로 화폐소득을 받았다고 하자. 그가 임금소득으로 받은 화폐는 어떤 실체적 가치도 아니고 부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회를 위하여 일을 하여 공헌하였으므로, 모든 상품에 대하여 그만한 크기의 구입할 수 있는 <권 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화폐란 이러한 구매의 권리이다. 화폐는 실체(實體)가 아니라 관계(關係)이며, 존재(存在)가 아니라 연대성(連帶性)인 것이다.

그런데 근대적 화폐체제에서는 실체적 지폐로 인하여 화폐가 마치 실체적 존재, 가 치 그 자체, 부(富)이고 재산인 것처럼 인식되고, 경제체제가 그렇게 구성되었다. 관계 와 연대성이라는 화폐의 본질이 사라지고, 화폐가 마치 존재이고 실체(實體)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집합표상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화폐의 실체성에서 연유하는 환상(幻想)이다. 즉 화폐의 까르마(karma)인 것이다.

화폐체제에서는 이러한 환상이 사실인 것처럼 현실을 구성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 한 환상을 가질 때는 환상 그 자체가 이미 중대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근대적 화폐체 제는 이러한 환상에 기초하는 체제이다. 이러한 환상을 야기시키는 이유는 화폐의 물 질성, 실체성이다. 화폐가 그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화폐가 가진 불필요한 실체 성, 물질성에서 오는 제약 때문이다. 이제까지 화폐는 이러한 실체성 물질성의 화폐제 약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화폐체제는 이러한 화폐의 실체성에 의 한 '화폐제약(貨幣制約)'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다.

화폐체제의 가장 본질적인 성격인 소유(所有)도 이러한 화폐적 환상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즉 화폐를 어떤 실체적인 부(富)인 것처럼 소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화폐자본 (貨幣資本)의 소유이다. 그런데 화폐자본은 화폐보다 더욱 용이하게 정보화할 수 있다. 화폐를 완전히 정보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지폐사용을 모조리 금지해야 한다. 이것 은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주11) 그러나 화폐자본을 정보화하기 하기 위해서는 저축(貯 蓄)을 정보화하면 된다. 화폐자본을 정보화한다고 해도, 일상적인 소비지출에서는 화폐 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화폐자본이 정보화하면 화폐자본의 소유의 성 격이 변화한다. 화폐자본을 권리정보로 축적한 사람에게 어떠한 종류의 권리를 부여하 는가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것은, 반드 시 무제한적인 소유권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화폐체제에서는 인간과 화폐자본과의 관계에 있어 소유권 이외의 다른 방식이 가능 하지 않았다. 화폐자본 역시 실체성을 가진 소유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폐 자본이 정보화하면 그 화폐자본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권리를 줄 것인가 하는 것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화폐자본이 소유의 제약에서 해방되는 것 이다. 이것은 중대한 가능성이다.

소련이 사회주의체제를 시도할 때에는 화폐자본에 대한 권리를 다르게 설계할 수 없었다. 소련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화폐자본의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화폐자본과 인간의 관계를 소유권적 관계로 인정 하든가, 아니면 화폐자체를 부정할 것인가 하는 선택만이 가능할 뿐이었다(이것이 화 폐체체의 철칙이었다). 실로 근대적인 화폐체제의 철칙은 화폐의 실체성에 따른 제약에 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화폐자본을 정보화함으로써 개인과 화폐자본에 대한 관계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소유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 로 확대할 수도 있으며, 그보다 더 적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축소할 수도 있다. 이 렇게 될 때, 화폐체제의 철칙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즉 <자본의 문제>를 화폐체 제의 철칙에서 해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경제체제에로의 길이다.

4.4.4. 연대체제

우리는 화폐체제를 대체하는 체제를 <연대체제>로 부르기로 한다. 화폐가 경제를 통합하는 체제가 화폐체제이다. 이에 대하여 정보가 경제를 통합하는 체제를 우리는 연대체제라고 하는 것이다.

연대체제는 정확하게 말하면 (화폐가 아니라), 사회경제관계에 관한 '정보 인프라' (information infrastructure)가 사회적 연대의 토대가 되는 체제이다. 신분이나 화폐에 의하여 비인간적으로 규정되던 권리의무가 인간의 사회적 연대를 지향하여 인간적으로 규정되는 체제인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화폐자본 내지 자본관계가 화폐체제와는 다르게 규정된다. 나아가 정치적 문화적 관계도 화폐체제와는 다르게 규정되는 것이다.

화폐체제에서는 이러한 하부구조(정보 인프라)가 필요없었다. 화폐가 실체성을 가지 고 있기 때문에 화폐(지폐) 자체로 거래하면 그만이었다. 그 대신이 인간이 화폐의 제 약에 구속될 수 밖에 없었다. 연대체제에서는 반대로 인간과 사회적 연대를 가치기준 으로 하여 개개인의 권리의무가 규정되고 <정보 인프라>가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다. 가령 화폐자본이 정보화하면 화폐자본의 실체성이 사라지므로 사람들은 화폐의 실 체적인 소유로 자신의 사회적 권리를 표상할 수 없다. 그의 권리는 정보로서 <정보 인 프라>라는 기반구조에 기재되어, 사회적으로 공시(公示: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상태 로)되고 사회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대체제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서는 과거에 없던 하부구조(정보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그 대 신에 이러한 정보인프라가 토대가 됨으로써 경제관계의 변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 보처리의 규칙에 따라서 화폐체제에서는 불가능하였던 여러가지 구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이 자본소유의 관계이다.

연대체제에서는 자본소유의 내용을 변혁할 수 있다. 그것은 화폐자본을 제공한 사 람들, 즉 저축에 대해서 어떠한 권리를 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자본헤게모니 를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새롭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체제 에서 자본헤게모니는 기업조직의 경영권, 이윤이나 배당금에 관한 권리, 화폐자본의 처 분권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연대체제에서는 필요하다면 자본을 제공한 사람들로부 터 기업경영권을 분리할 수 있다. 또는 자본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귀속되는 재산소득 을 합리적이고 정당한 수준으로 재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인프라>를 토대로 하는 사회적 합의(合意)의 문제가 된다.

연대체제에서는 소득의 형태를 <재규정>할 수 있다. 화폐체제에서 소득의 형태는 임금, 이윤, 이자, 지대, 그리고 그 변형된 형태인 배당금,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의 시세 차익 등등이었다. 이것은 화폐와 상품의 실체적 거래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대체제에서 소득이란 개인구좌의 차변(借邊)에 기재되는 금액을 증가시켜 주는 경우 에 해당된다. 그리하여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화폐체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문제도 역시 달라진다. 연대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이란 각 개인에게 너무 많은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실업이란 어떤 일에 대하여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된다. 시장가격이 아닌 방식으로 소득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문화사회의 조건으로 제기되었던 <소득양식>을 새로이 창조할 수 있다 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대체제에서는 시장을 수정할 수 있다. 인간이 시장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합의 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시장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 시장기구가 작동하는 범위를 한정할 수 있으며, 시장 이외의 매카니즘을 시장과 결합시킬 수도 있다. <정 보 인프라>에 기반하는 연대체제에서는 <자본시장> 내지 <금융체제>를 변혁할 수 있다. 이것은 재산소득을 재규정하는 결과가 되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를 변혁하 는 것이 된다. 자본시장(금융체제)의 변혁은 화폐를 정보화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화폐를 정보화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자본>을 정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체제의 창조는 정보화기술이 충분히 진척되지 않은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대체제에서는 화폐나 주식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매체>를 창조할 수 있다. 새로운 <가치매체>야말로 화폐적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권리를 부여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폐나 주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권리의무를 규 정하는 것이다. 연대체제에서는 <화폐체제의 철칙>을 초월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폐 의 기능(機能)이 '재규정'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이 장(章)의 논의는 추상적이었다. 구체적 체제로서의 새로운 경제체제(연 대체제)에 관한 논의는 제2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지양>(1992년)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을 다시 개괄하고 연대체제의 정치적 측면에 관하여는 제6편에서 다루게 될 것이 다. 이러한 변혁은 사회체제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헤게모니와 공동체의 변화를 가져 온다. 이에 관해서 다음장에서 개괄한다.

*******************************

주8) 전기통신의 또 하나의 새로운 이용방법은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지불방식을 바꿀 수가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화폐거래는 지폐, 수표, 크레디트 카드의 형태로 이 루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전자식 통화이체(EFT:electronic funds transfer)라고 부르는 새로운 방식이 이용될 것이다. IBM 사장이었던 토마스 왓슨(Thomas J. Watson)은 1956년 통화의 혁명을 다음과 같이 내다 보았다.

"생존해 있는 동안 현금이 필요없는 전자식 거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은행의 대 형 컴퓨터가 방대한 기억용량을 갖고 수많은 고객의 은행거래상황을 일일이 알고 있게 될 것이다. 소비자가 상점, 사무실, 주유소 등 어디서든 은행계정에 입금하거나 돈을 꺼내기 위해서는 단지 두가지 일--그곳에 설치된 단말기에 계좌번호를 입력시키고 터 미날 문자판으로 거래금액을 치는 것--만 하면 된다. 그러면 즉시 사용자의 계좌에서 돈이 들어가고 나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매일 수천번 수만번 수백만번 되풀이 되어 펜, 용지,수표, 지폐를 사 용하지 않고 거래가 가능할 것이고, 결국에는 이러한 단말기 망이 전국적으로 확대되 어 이용될 것이다. 돈이 비트(bit)의 형태로 기계사이를 보이지 않게 이동한다. 전자통 화(electronic money)가 전화선을 통해 전송되고 위성으로 연결되며 자기(磁器)테이프 로 컴퓨터에 전달되거나 기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보를 취급하는 컴퓨터간에 이체될 수 있다........

지폐는 1694년에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은행가의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지폐는 은 행금고에 동등한 가치의 금이 확보되어 있는 한 통용되는 것이지만 오늘날 지폐는 금 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요구에 따라 언제든지 중앙은행이 금과의 교환을 보장하던 것 이 오늘날은 신 밖에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요즈음 수표는 보통 사람들이 현금을 대신 하여 사용하는 일반적 수단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수표와 현금은 신용카드에 밀려 났다. 오늘날은 무엇이 궁극적 지불방식--아마 컴퓨터간에 이동되는 전자비트--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몰려 있다. EFT는 통화를 단지 정보의 형태로 받아들인다. 지폐가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지는 것은 어떤 사람의 지불능력을 시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돈을 정보라고 하면 그 정보는 컴퓨터안에 기억될 수 있고, 지불은 컴퓨터간의 데이터 이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EFT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 금과 수표없는 사회를 운위하기 시작했다......

(James Martin저 Telematic Society 정보시대편집부역 p.125-127)

* 오늘날 전세계에서 약 1억 8,700만명의 비자카드 소지자들이 약 650만개의 소매 점, 주유소,식당, 호텔 등의 영업소에서 카드를 사용하여 1년 365일 동안 하루 5억 7,000만 달러의비율로 외상을 지고 있다. 비자 인터내셔날(Visa International)사는 일개 그레디트 카드업체에 불과하다. 식당주인이 고객의 카드번호를 비자인터내셔날이나 아 메리칸 익스프레스 측에 알려주면, 크레디트 카드회사의 컴퓨터는 그 식당 계정의 대 변에 해당금액을 기재하고 회사 장부에서 일정액을 공제하며 이렇게 해서 회사에 대한 고객의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정도는 원시적인 카드놀이에 불과하다.

스마트 카드(smart card: 반도체 칩이 내장된 카드)라는 것을 사용하면 현금출납원 이 카드를 받아서 전자장치에 집어넣는 동작만으로 즉각 저녁 식사대가 고객의 은행계 정에 외상으로 치부된다. 고객이 월말에 돈을 낼 필요도 없다. 은행계정이 즉시 지불하 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수표가 즉시 결제되는 것과도 같다. 프랑스의 발명가 모레노 (Roland Moreno)의 특허품인 스마트 카드는 프랑스의 금융기관과 우편 통신업계에 의 해 후원받고 있다. [그룹 뷜]이 제작한 이 카드는 마이크로 칩을 내장하고 있으며 사 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유럽과 일본에서 이미 6,100만개의 스마트 카드가 사 용되고 있다.

전자적 기록관리와 금융업무의 통합이 더욱 진전되면 언젠가는 상점에 현금없는 금 전등록기가 거래은행과 직접 연결되게 될 것이다. 청구금액이 고객의 계정에서 공제 되면 그것이 즉시 소매점 계정의 대변에 기재됨과 동시에 이자가 붙으며 이 때문에 은 행의 [플로트]는 제로가 된다. 이와 함께 고객이 정해진 간격을 두고--예를 들어 한달 에 한번씩--청구금액을 지불할 필요없이 임대료, 외상거래액 등 정기적인 비용은 조금 씩 은행계정에서 작은 물방울처럼 전자적으로 스며나와 문자 그대로 매분마다 지불될 수도 있다. 제조업 부문의 발전과 유사한 이같은 변화는 금융체제를 일괄처리 방식에 서 연속흐름 동작체제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실시간(實時間 real time)처리 또는 즉시 처리 체제로 이행하도록 촉진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또한 산업혁명 이전상태--즉 단일경제내의 복수 통화의 공존--로의 변증법적 회귀를 가능케 해주고 있다. 아침 식사용 식품이나 그 밖의 수많은 일상용품 과 마찬가지로 돈도 더욱 다양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디자이너 통화(designer currency 디자이너의 이름이 표시된 통화)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한 나라가 공인화폐와 함께 개인발 행 화폐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일부 국가의 소비자들은 벌써 이같은 유사화폐 를 사용하고 있는데--축적된 가액이 카드의 사용에 따라 줄어드는 이른바 선납자기 (先納磁器)카드(pre-paid magnetic card)가 그것이다. 일본에는 이같은 의사화폐 (para-money)가 매우 흔하다. 소비자들은 일본 전신전화공사의 카드를 매달 1,000만개 나 구입하고 있다. 전화요금을 선납하고 전화를 걸 때마다 이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일본 전신전화공사가 이 제도를 좋아하는 것은 돈을 미리 받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통해 금융기관들은 어음결제 속도가 빨라지기 전에 누렸던 [플로트]와 비슷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1988년 현재 3억 3,000만개의 카드를 판매하여 2,140억엔의 매상을 올렸 다. 소비자들은 온갖 종류의 다른 분야--예컨대 기차표 구입이나 비디오 게임--에서도 이런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여러가지 고도로 전문화된 의사화폐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미국 농무성은 빈민에게 발급되는 식량권을 1개월분의 급부액과 개인번호가 입력된 스마트카드로 대체하기 위 한 프로그램을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가 이 카드를 슈퍼마켓의 체크아웃 터미널에 집어넣으면 번호가 확인 된 후 구입액이 이용자의 카드 잔액에서 공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의 목적은 식량권의 부정한 이용, 암거래 및 위조를 줄이면서도 회계처리를 개선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 제도는 모든 사회복지 수혜자가 식량, 집세 및 대중교통의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한 이른바 [기본카드(basic card)]에 거의 접근해 있 다.....

통화제도에서의 이같은 급격한 변화는 지금까지 엄청난 권력을 누려온 강력한 금융 기관에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전자통화에 의한 지폐의 대체는 예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은행의 존속 자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비자 인터내셔널의 회장을 역임한 호크(Dee Hock)는 {은행업은 지불제도의 주된 운영자라는 지위를 유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은행은 정부의 보호하에 어음결제 업무를 독점 해 왔다. 지금은 전자통화가 이 제도를 대신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은행은 지금 다양한 비은행 업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 예컨대 일본 재무성은 일본 전신전화공사와 같은 민간업체로 하여금 액면표시 플라스틱 [증권]-- 일종의 통화--을 발급하게 하고 이를 금융체제 바깥에서 별도의 규정에 따라 운영하 도록 하자는 구상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만일 어떤 회사가 돈을 받고 선납카드를 발 급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금]을 받는 것이며 은행과 다를 것이 없다. 이 경우 고객이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인출]에 해당한다. 그리고 카드업체가 소매상에 돈을 지 불해 주면, 그것은 바로 [지불제도]를 운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전에 는 오직 은행만이 수행하던 기능이었다. 더구나 카드업체들이 지금 은행을 규제하는 각종 제한과 준비금 같은 것에 제약받음이 없이 이용자들에게 신용발급까지 하게 된다 면(카드업계와 카드 소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앙은행은 금융정책에 대한 통제력 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

(Alvin Toffler 著 Power Shift {권력이동} 李揆行 譯 한국경제신문사 간 p93-98)

주9) 우리는 앞으로 공시(公示)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공시(公示)의 개념은 사회 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 다른 사람이 알려면 알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을 말한다. 가 령 지폐에 의한 거래는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며 당사자들만 아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는 공시가 필요하다. 어떤 집을 거래하였는데 거래 당사자들만 알 고 있다면 그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제3자가 다시 그 집을 사려고 할 때 누가 그 집 의 진정한 소유자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동산등부기부가 바로 이러한 공시제도(公示 制度)이다. 등기부에 소유자로 기재된 사람이 사회적으로 그 부동산의 진정한 소유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신뢰를 담보하는 제도가 공시제도이다. 정보가 사회 관계를 매개하면 이러한 공시제도는 더욱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정보는 화폐(지폐)와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10) '정보 인프라:information infrastructure' 개념은 ISDN, CATV, VIDEOTAX, TELETEXT, VAN, DATABASE, 통신방송위성 등을 총괄하는 기술적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소위 정보고속도로라고 불리는 사회의 정보를 유통시키는 기반시설의 의미이다. 이러한 기반시설에 의하여 사회를 통합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 브랜스콤의 저서 도 이와 같은 관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저자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정보 인프라의 개념은 사회적인 의미이다. 즉 기술적 의미보다는 지식정보가 사회적으로 축적됨으로써 그것이 사회를 통합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보 인프라에 의하여 화폐체제를 초월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며, 이것이 다음 책(제4권)의 주제이기도 하다.

주11) 화폐의 정보화는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폐를 완전히 없 애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유를 위협할 것이다. 지폐나 자유는 사회적으로 공시(公示)할 수 없는 인간의 프라이버시(privacy)와 연관되 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경제적 거 래가 완전히 투명하게 알려진다면---지폐를 없애는 것은 이와 같은 완전한 公示狀態 를 초래한다--개인의 자유는 위협받는다. 따라서 백년 후에는 알 수 없으나 현실에서 는 지폐를 없애버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