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경제체제에 관한 이념적 시각(視角)

모든 경제체제에는 그 시대의 이념이 스며들어 있으며, 그것이 체제 의 한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념은 이상(理想)일 뿐만 아니라 현실 을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다.1)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모색하고자 한다. 즉 자유를 유지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며 인간과 사회가 경제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그러한 경제체제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체제적 모색에 있 어서 기준이 되는 이념은 자유(自由), 정의(正義), 연대(連帶)이다. 이 러한 세 이념이 앞으로의 모든 논의에서 우리의 관점과 가치기준(價値基 準)이 될 것이다.

1. 자유(自由)

자유는 오래된 우리시대의 신념이다. 원래 자유의 이념은 봉건적(封 建的) 특권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대에는 물질 적 빈곤으로부터 해방, 공포로부터의 해방 등 지극히 폭넓은 의미를 가 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 이념은 권력(權力)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권력, 최소한의 국가가 최선(最善)의 국가라 는 것이다. 국가와 권력의 강화는 (설사 지고한 善意를 가진 국가이고 철학자가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노예로 전락시킨다는 신념이 바로 자유의 이념이다. 그가 자유주의자라면 국가가 아무리 고상한 명 분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강화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 이념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다 책임지지 못하고 현실 의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울 때, 전능한 권력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유의 이념은 이렇게 도피(逃避)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이념은 단순한 관념(觀念)이나 이상이 아니라, 피와 눈물을 대가로 한 역사적 경험과 현실의 생활 속에서 살아있는 신념이 다.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여러가지 이유 로 체포되어 잔인한 고문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간 영혼들과 돌아온 생 존자들, 권력자의 싸인 하나로 저질러진 만행에 학살당한 사람들과 그 유족들, 애국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 속에 산화한 사람들, 관료들의 횡포 속에 생활의 터전을 짓밟히거나, 일상의 생활을 규제당하여 친지를 만나는 여행에도 권력의 허가가 필요한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 어서 자유는 결코 관념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現實的)인 인간의 조건 이다.

그리하여 자유는 국가나 권력이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며, 오히려 국가와 권력의 목적(目的)이다. 국가가 인간의 공동체이고, 공동체가 인 간연대의 장(場)이라면, 자유는 연대의 전제(前提)이다. 이러한 자유의 이념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만이 아니며, 물질적 삶과 직접 연결된 일상 의 경제생활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경제생활에 있어서 자유는 노동을 강 요당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을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자신이 꾸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제적 조직행위(組織 行爲), 즉 기업(企業)의 자율성을 포함한다. 그것은 권력에 의하여 개 인이나 조직의 경제적 행동이 억제되거나 강제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이나 경제적 평등을 위하여 경제적 자유는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이 것이 자유주의의 신념이다.

경제체제적 관점에서 자유란 바로 가치매체(價値媒體:화폐)와 시장 (市場)을 긍정하는 것이다. 자유란 연대의 매개양식으로서 권력과 법률 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연대의 매개양식에 관해서는 上卷 제6편 참조). 가치매체에 의하여 경제를 통합하는 것이 자유이다. 개인의 자유 로운 경제행위를 보장하고, 그러한 자유로운 미시적(微視的) 행위를 거 시적(巨視的)으로 유익한 결과가 되게 통합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 림없다. 가치매체가 통합작용을 하는 시장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인정 하고 그것을 통합하는 유효한 방법이다. 가치매체(화폐)와 시장은 경제 에서 권력을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전체를 위 한다는 목적으로 권력의 계획에 의하여 개인의 경제적 행위를 지시하는 경제체제는 인간을 예속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로운 미시적 행위를 통합하여 평등한 거시적 결과를 얻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평등한 분배를 가져오는 전체적 통합계획을 전제하고 개인이나 기업의 행위를 지시하는 체제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자유를 이념의 하나로 삼는 것은, 경제체제의 논의에 있어 서 하나의 전제(前提)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 운 미시적 행위를 경제체제의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국가와 권력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계속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치매체에 의한 통합양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난해한 철학적 논변(論辯)은 우리를 혼란시킨다. 우리 시대의 집합표상은 자유와 평등이 상호 모순(矛盾)한다는 것이다. 이러 한 생각에 빠져 있는 한, 자유를 중요시한다면 평등은 희생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사실상의 불평등을 합리화하려고 노력한다. 가령, 각자 의 소유물의 취득과 이전(移轉)의 절차(節次)가 합법적이면 그것이 정의 로운 것이라고 정의의 개념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정의란 소유물의 취득 이나, 이전(移轉)과 같은 절차적인 문제가 되었다.2) 또는 평등을 이룩 한다는 것이 고작하여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계내에서의 불평등을 교 정(矯正)하는 것이 되었다.3)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모순이란 존재론적 (存在論的)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우리의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자유 와 평등이 결코 모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2. 정의(正義)

우리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신념은 경제적 정의(正義)이 다.(정의의 개념 역시 포괄적인 만큼 애매하다.)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 을 해소하고, 계급이 철폐된 상태를 경제적 정의로 규정한다. 인간의 물질적 삶이 심각하게 불평등하다는 것은 일종의 야만(野蠻)이다. 우 리는 노예에게 친절한 주인을 도덕적 품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인격의 표현일지 모르나 경 제체제로서 노예제도는 야만스러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자가 길바닥 에서 구걸(求乞)하는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현실에 대해서 말한다 면, 그것이 개인에게는 자선(慈善)일지 모르나, 경제체제로서는 야만적 인 체제인 것이다. 물질적 삶에 있어서 극단적 불평등은 인간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분열시킨다. 그리고 가진 자는 가진 것을 지키 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가지지 못한자는 가지기 위하여 투쟁함으로 써 함께 타락하고, 그리하여 인간의 사회적 연대(連帶)가 파괴되는 것 이다. 인간의 물질적 삶이 불평등하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소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생산과 분배와 소비에 이르는 경제의 전과정에 걸쳐서 경제적 계급으로 나타난다. 부유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부유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헤게모니 계급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평 등의 이념은 바로 계급의 철폐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적 정의의 이념 역시 단순한 관념이나 구원의 이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분노와 피가 얼룩진 현실 속에서 체득 된 신념이다. 직장을 잃어버리고 오늘과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 에 빠진 사람들, 가난으로 더 이상 삶의 희망을 잃고 자식을 죽이고 자살하거나 절도나 강도를 하게 된 사람들, 사글세를 내지 못하여 집 에서 쫓겨나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의 다리 밑에서 겨울 밤에 잠을 청 하는 사람들, 많은 돈을 밑천으로 투기를 하여 떼돈을 벌었다는 이웃이 있는데도 자신은 모든 성실성을 다하여 일하고 저축하였으나 자신의 집 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 자신의 육체를 좀먹는 열악(劣惡)한 환경 속 에 노동하며, 그리하여 결국은 자신의 몸을 조금씩 팔아서 하루의 끼 니를 장만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물질적 부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것이다. 수많은 아파트와 승용차, 진기한 현대적 내구재들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차지한 그 들과 사회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의는 관념이 아니라 또 다른 인간의 조건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서 경제적 평등이야말로 모든 것이며 자유란 저주스러운 것이다. 오늘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란 바로 부유한 자의 이익(利益)일 뿐이다. 여행을 할만한 돈이 없는 사람 에게 여행의 자유란 타인의 자유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자유란 단 한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자유란 다만 불평등을 합리화하고 정당 화하는 수사(修辭)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인간의 능력에 차이가 있 다고 하더라도 단돈 1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10억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합리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도(强盜) 가 정당화되지 못한 재산이 이전(移轉)이라면, 시장의 분배기제(分配機 制)는 정당화된 재산의 이전이다. 그리하여 도덕과 윤리마저 가진 자에 게 유리한 정당성의 질서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의 즉, 평등한 분배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이 절 대적으로 같은 액수의 재산과 소득이 주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 다. 정의로운 분배의 원칙(原則)이란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재산의 소 유(所有)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는 법 률적 상태이지 물질적 가치를 창조하는 사실적 활동이 아니다. 따라서 소유로부터 물질적 가치가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재산의 소 유에 대하여 소득이 주어져서는 안된다. 이것이 정의의 원칙이다.4)

자본주의적 시장에서는 활동에 의하여 소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대하여 소득이 주어진다. (노동력마저 소유로 의제(擬制)된다.) 우리는 재산의 소유에 대하여 주어지는 소득을 소유소득(所有所得)이라 고 부를 것이다. 임금을 제외한 이윤, 지대, 이자, 주식배당금, 투기소 득 등 모든 재산소득(財産所得)이 소유소득이다. 그렇다면 경제체제 (經濟體制)에서 정의와 평등의 문제는 바로 소유소득의 문제이다. 소유 소득의 문제는 생산자본의 소유소득인 이윤의 귀속에 관한 문제이고, 또한 비생산적 재산의 소유소득을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정당화할 것인 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미시적 기동을 허용하 고(즉, 시장체제를 전제하고), 어떻게 거시적으로 평등한 분배를 이룩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하여 정의의 문제는 시장체제가 야기하 는 소유소득을 어떻게 배제(排除)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시장기구는 광범한 소유소득을 야기한다. 시장은 자유를 보장하는 기구이나 평등을 보장하는 기구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은 불평등(不平等)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하고 있다.)

3. 연대(連帶)

연대의 이념이란 사랑에 바탕을 둔 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는 신념이 다. 다른 인간이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하는 공동의 주체(主體)가 되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다. 연대는 존재성(存在性) 의 초월(超越)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성에 집착(執着)할 때 타인은 대상(對象)이 된다. 이에 대하여 연대란 함께 함이다. 연대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上卷 제5편 참조)

인간은 자기자신만으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으며 무엇인가에 의지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자신이 소유하는 물 질에 의지한다. 따라서 다른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를 확장 하기 위한 경쟁과 투쟁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근원은 바로 일체를 상품화하고 시장화하는 자본주의의 경제질서이다. 화폐와 소유제도와 시장질서가 그것이다. 인간은 시장을 무대로하여 화폐와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질서는 소외(疎外)와 우상숭배(偶像崇拜)를 야기한다. 인간은 화폐와 재산에 종속되어 사회는 시장이 형성하는 경제법칙(經濟法則)에 종속된다. 인 간은 생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소유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경제의 움직임은 인간의 손에 장악되지 않는다. 경제의 논리와 시장의 논리가 인간의 삶과 사회의 운명을 지배한다.

우리가 말하는 연대(連帶)의 이념은 인간이 화폐와 소유로부터 해방 되고 사회가 시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연대란 인간을 기아(飢餓) 의 위협과 화폐에의 종속으로부터 해방하고, 사회를 경제적 불안정과 공황(恐慌)의 위협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지하고 사회적 연대속에 생존하는 것이다. 개인의 물질적 삶 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연대적으로 보장할 때, 반대로 그는 다른 사람 들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경제는 냉혹한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대의 이념은 경제적으로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경제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다른 인간이 경쟁과 투쟁과 적대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경제가 법칙과 공황의 위험성으 로부터 해방되어 주체적으로 조정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째로, 인간의 삶이 물질적 경제적 질곡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물질적 경제적 생존보다는 훨씬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시장체제는 이러한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장 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를 통합하고 효율적(效率的)으로 자원(資源) 을 배분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간과 사회는 이러한 효율적인 시장법 칙에 종속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시장은 인간을 물질적으로 만들 며 사회를 저속(低俗)하게 한다. 시장은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하 여,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물질적으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이웃과 경쟁하고 적대하는 사회로 만든다. 시장사회는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가치있는 사회가 어떠한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한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 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 니라 시장(市場)이다. 모든 것을 시장화하는 체제는 인간 상호간의 경 쟁과 적대 그리고 인간의 대상화(對象化)에 기초한다. 그것은 반연대 (反連帶)의 기제(機制)이다. 그것은 법칙(法則)의 이름으로 인간의 연 대성을 단절(斷絶)하는 기제이다. 그것은 예수나 석가가 제시했던 삶 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연대의 이념은 화폐와 소유와 시장의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의 생 존과 사회관계가 오로지 화폐(貨幣)에 의해서만 규정될 때 화폐가 인간 을 대상화한다. 시장이 모든 사회적 질서의 기반이 될 때 사회는 시장 의 법칙에 매몰(埋沒)된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인간은 물질적 인간이 며, 삶의 주요한 내용은 경제적 생존이다. 그리하여 연대의 이념을 구 현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기능을 변화시켜야 하며, 시장을 제한해야 한 다. 경제가 인간화되고 주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4. 이념의 내용(內容)과 경제체제의 모색

우리의 이념이 제시하는 경제체제적 내용은 현재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유의 이념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행위와 그것을 비권력 적(非權力的)으로 통합하는 시장체제를 의미한다. 정의의 이념은 소유 소득의 사적 귀속을 배제하여야 하며, 이것은 시장이 야기하는 이윤과 소유소득을 연대화(사회화)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대의 이념 은 화폐와 시장의 기능의 일부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부 의 자원을 비시장적(非市場的) 기제(機制)로 배분해야 한다는 것을 의 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념을 문제의식으로 하여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의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체제는 철학적 이념으로 재단(裁斷)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오히려 이념은 경제적 현상과의 상호관계에서 상호규정되는 것이 다. 이념이 경제적 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라 면, 경제적 현실은 이념의 내용을 채워주는 것이다. 경제적 논리와 상 호작용하지 못하는 이념은 독단(獨斷)이거나 철학적 환상(幻想)이다. 반대로 이념에 의하여 지도되지 않은 경제적 해석은 맹목적이거나 숨겨 진 가치관의 위장(僞裝)이다. 그리하여 경제체제의 모색과 현실적 가능 성에 의하여 이념의 내용은 더욱 구체화하고 풍부(豊富)해질 것이다. 우리가 제기한 자유, 정의, 연대의 개념은 잠정적인 것이다. 우리의 이념은 자본주의를 전제로 하는 이념이 아니다. 즉 자본주의적 자유가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 개념과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 는 자유의 이념은 자본주의적 자유보다 더욱 철저(徹底)한 자유이다. 우리가 말하는 경제적 평등이란 사회주의적 평등이 아니다. 오히려 사 회주의적 평등의 개념보다 더욱 철저한 평등이고 정의(正義)이다. 말하 자면 우리의 자유, 정의, 연대의 이념은 체제와의 상호관계가 결여된 집합표상이다. 따라서 새로운 체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념들 은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양립시키는 경제체제에 관한 모색은 근대 이후 많은 학자들의 주제였다. 우리는 그 중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존의 논의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주1)***
이념이야말로 경제와 경제체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고, 무 한한 경제적 현상을 개념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해 준다. 경제는 가치 관에서 독립한 순수한 객관적 이론으로 해석될 수 없다. 무수한 현상 가 운데 특정한 因果連鎖를 가려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항상 이념적 가치관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념을 前提하지 않으면 경제에 관 한 문제의식과 주제가 설정되지 않는다. 고전파경제학에서 가격이나 시 장의 기능이 주제가 된 것은 당시의 시대상황에 있어서는 身分的 질서로 부터 시장적 질서로의 이행이 그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신분적 특권을 철폐하고 권력의 개입을 축소하는 것이 만인의 행복과 역사의 진보에 이 르는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경제이론의 과제였던 것이다. 마르크 스 경제학은 경제적 평등과 계급의 철폐를 그 이념으로 하였다. 이러한 이념하에서 계급투쟁으로서의 자본주의는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점을 증 명하는 것이 그의 이론적 주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념을 설 정한다는 것을 우리의 주제를 설정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것은 현실을 해석하고 개혁하기 위한 主觀의 투입이다. 이념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현 실에 대한 問題意識의 핵심이며, 경제적 현실을 해석하고 그것을 개혁하 는 방향이다.

*** 주2)***
한 分配는, 이것이 다른 정의로운 분배로부터 合法的인 경로를 통해 발생했을 때 정의롭다. 한 분배 상태에서 다른 분배 상태로 이행하 는 합법적인 수단은 이전에서의 정의의 원리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최 초의 합법적인 <이행 moves>은 取得에서의 정의의 원리에 의해 규정되 어 있다. 정의로운 狀況으로부터 정의로운 段階를 거쳐 발생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 자체도 정의롭다........
所有物에서의 정의의 이론의 일반적인 개요를 말하자면, 이는 한 사 람의 소유물은, 取得과 移轉에서의 정의의 원리 또는 不義의 矯正의 원 리에 의해 그가 그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았으면, 정당한just 것 이다. 만약 각인의 소유물이 정당하다면, 소유물의 전체집합(즉 분배)도 정당하다. 이 일반적인 개요를 세부적으로 이론화하기 위해 소유물에서 의 정의의 세 원리 각각의 세부를 규정해야 할 것이다. 그 세 원리란 소 유물 取得의 원리, 소유물 移轉의 원리, 그리고 이 두 원리 위반을 矯正 하는 원리이다.
(로버트 노직 저.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 남경희 역. pp. 193--196)

*** 주3)***
이상과 같은 優先性 문제를 생각해 보았으므로 이제 나는 제도 상의 정의의 두 원칙에 대한 최종적인 진술을 하고자 한다. 완전을 기하 기 위해 앞서 정식화된 것들을 포함한 완전한 진술을 하고자 한다.

第 1 原則
各人은 모든 사람의 유사한 自由體系와 兩立可能한 平等한 기본적 자 유의 가장 광범한 全體體系에 대한 平等한 權利를 가져야 한다.

第 2 原則
사회적, 경제적 不平等은 다음 두가지, 즉
(1) 그것이 정의로운 貯蓄原則에 일관해서 最小受惠者에게 最大利益 이 되고
(2) 공정한 機會均等의 조건하에 모든 사람에게 開放된 職責과 職位 에 결부되도록 配定되어야 한다.

第 1 優先性規則 (自由의 優先性)
정의의 諸原則의 순위는 逐次的 序列로 되어야 하며 따라서 自由는 오직 自由를 위해서만 制限될 수 있다. 이에도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즉,
(1) 덜 광범위한 自由는 모든 이가 共有하는 자유의 全體系를 强化할 경우
(2) 덜 平等한 自由는 자유를 작게 가진 자들에게 容納될 수 있을 경 우 허용될 수 있다.

第 2 優先性規則 (效率性과 福祉에 대한 正義의 優先性)
정의의 제2원칙은 서열상으로 효율성의 원칙이나 利得總量의 極大化 原則에 우선적이며 공정한 기회는 差等의 原則에 優先해야 한다. 이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즉
(1)機會의 不均等은 적은 기회를 가진 자들의 기회를 증대해 줄 경우
(2) 과도한 貯蓄率은 결국 이러한 勞苦를 치르는 자들의 負擔을 경감 시키는 경우에 허용될 수 있다.
(죤 롤즈 저. {정의론} 황경식 역. 제2권 pp.136--137)

*** 주4)***
마르크스는 勞動만이 生産的이라고 하는 견해를 강조하기 위하 여 그의 분석수단을 사용하였다. 이것 자체는 言語上의 論点에 지나지 않는다. 토지와 자본은 하등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치는 노 동시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름진 토지와 능률적인 기계는 실 질생산량이라는 점으로 보아 노동의 생산력을 높인다..... 우리가 자본 이 생산적이라고 말하든 자본은 노동을 생산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資本을 `所有 '하는 것이 생산적 활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아카 데미경제학자는 자본이 생산적이라고 다루는데서 자본가들은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하며 또한 그들의 財産에서 소득을 얻는 것이 당연한 것 이라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여 왔던 것이다. 과거에 있어서는 財産과 企 業이 불가분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어느 정도 피상적인 타당성을 이 견해 에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점을 혼동시키는 이러한 방법은 이미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최근 所有와 經營의 분리는 더욱 완전한 것으로 되어왔다. 그리고 자본은 자기의 노력과 절약의 성과라고 하는 자본주의 의 최후의 幻想은 그로 인하여 깨어졌다.
( Joan Robinson 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관한 에세이} 이정환 김종원 공역. p.51 - 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