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새로운 경제체제의 모색(摸索)

1. 경제체제에 관한 집합표상

경제체제에 관한 일반적인 사고방식은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였다. 즉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체제가 자본주의이고 생산수단의 국가소유체제 가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체제론적 사고 방식은 근대의 존재론적 집합표상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대적 사고방식은 존재론적(存在論的) 집합표상이다. 그것은 현대 에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존재론적 집합표상에 관해서는 上卷 제2편 참조).

근대는 신(神)으로부터 독립하고 계급으로부터 해방된 개인(個人)의 존재가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되고 분리(分離)된 존재로서의 개인은 재산의 소유(所有)에 의지하는 인간이었다. 개인과 소유는 전형적인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한편,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 主義)에서 사적 소유의 부정(否定)을 공유(共有)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것은 개인 대신에 국가라는 거대한 하나의 구조적 존재가 사회의 중심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존재론적 경제체제이다(附錄 1 참조).

이렇게 인간과 사회, 경제를 존재론적으로 규정할 때 우리는 소유의 집합표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경제체제의 문제는 존재적 개인, 구조를 가진 전체존재로서의 사회, 경제적 존재로서의 자본, 그리고 그것들 상 호간의 존재론적 관계로서의 자본의 소유가 그 중심이 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결론에 따라서 시장과 분배가 좌우된다. 국가소유를 선택하는 것은 시장의 부정과 계획을 의미하고, 화폐의 부정은 권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에서 벗어나 소유와 화폐 와 시장, 그리고 분배와 헤게모니 등을 연대의 매개양식(媒介樣式)으로 생각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上卷 제6편 참조). 이러한 관점에서 체제 에 관한 기존의 몇 가지 연구가 있다. 폴라니(Karl polanyi)는 연대양식 으로서의 시장(市場)에 관한 우리의 집합표상에 중요한 시사(示唆)를 제 공한다. 바넥(Jalroslav Varnek)은 기업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 가 하는 문제와, 누가 자본을 소유하는가 하는 문제를 분리한다. 이것은 기업헤게모니와 기업이윤의 귀속을 분리하는 것이다. 슈마하(e.F.Schmac her)는 주식(株式)이라는 가치매체를 자본주의와 다르게 귀속시킴으로써 기업이윤을 다르게 배분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2. 폴라니의 시사(示唆)

시장(市場)은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인간의 연대 양식(連帶樣式)이었다. 본래 시장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경제물의 일부 (一部)를 교환하는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있어서 시장은 인 간이 추구하는 경제적 가치의 전부를 형성하거나 교환하는 장으로 전환 하였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시장은 경제와 사회의 영역을 지배하는 중심이 되었다. 폴라니(Karl polanyi)는 사회에서 시장의 역할이 전면 적(全面的)이고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파악하였다. 자본주의적 시장은 상품만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의제 상품(擬制商品)까지 교환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1) 원래 상품이란 인간이 생산한 생산물이다. 그러나 토지, 화폐, 노동은 인간이 생산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상품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시장에 있어서 는 이러한 것들도 상품으로 취급된다. 자본주의는 상품이 아닌 것(토지, 노동, 화폐)까지 상품으로 하여 이를 시장에서 매매하고 배분하는 시장 사회인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 토지(土地)는 신분이나 정치적 기능을 하 는 것이었지 상품은 아니었다. 봉건시대에 토지는 신분적 계급을 나타내 는 헤게모니 자산(資産)이었다. 서구의 봉건체제에 있어서 토지는 권력 을 매개하였다. 그 계약이 봉건계약이다. 그 계약에서 주군(主君)이 종 신(從臣)에게 봉토(封土)로서 토지를 나누어 준다(分封敍任:investitur e). 그리고 이에 대하여 종신은 주군에게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 다(服從宣誓:homage). 봉토를 받은 종신이 농노(農奴)에 대하여 영주였 으며, 토지는 농노들에 대하여 권력헤게모니의 자산이었다. 그것이 자본 주의로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토지자본은 그 중요성을 상실하고 상품화 하여 시장에 편입되었다. 토지가 상품화하여 자본주의적 시장에 편입되 었다는 것은 토지가 (권력적 매개가 아니라) 경제적 소유의 대상이 되 고, 시장에 의하여 배분되고, 소유소득(所有所得)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貨幣) 역시 상품이 아니다. 화폐는 경제적 가치를 거래하는 매 개체(媒介體)이지 경제적 가치가 아니다. 화폐가 발행된다고 하여 경제 적 부가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화폐가 보편적 매개체로 등장함에 따라 매개체 그 자체가 가치(價値)를 가진 것으로 여 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화폐를 이용하는데 대하여 대가(對價:이자 등)를 지불한다. 즉 화폐가 경제적 가치로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상품이 되는 것이다. 화폐가 다양한 모습의 상품으로 거래되는 시장이 자산시장(資産 市場)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자산시장이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는 경제 체제이다. (우리는 화폐자본이 전환된 여러 유형의 금융자산을 자산 (資産)이라고 부를 것이다. 주식, 화사채, 공채 기타 여러가지 증권, 외 환 등이 모두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이 거래되는 시장이 자산시장이다. 자산시장은 화폐자본을 배분하고 화폐소유에 따른 소유소득을 생성시킨 다. 그것은 화폐자본을 배분하는 방식이고 화폐적 소유소득을 정당화하 는 방식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 있어서도 화폐의 대부(貸付)와 이자(利子)는 존재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시장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 었기 때문에 이자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사 회 어느 문명에도 높은 이자를 비난하는 윤리적 집합표상이 작동하여 왔다. 많은 종교에 있어서 신(神)은 고리(高利)를 금지하였다.2) 자본 주의와 같이 화폐의 상품화하여 소유소득을 제도화한 체제는 없었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의 노동(勞動)을 상품화하여 노동시장에서 상품 으로 거래한다. 이것은 시장이 생산된 상품의 교환만이 아니라 생산(生 産) 그 자체에도 관여하게 된 것을 말한다. 동시에 시장이 경제적 가치 만이 아니라 인간의 조직(組織)에도 관여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시장 은 인간에게서 노동을 분리하여 하나의 상품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서 형성된 하나의 집합표 상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집합표상을 제도화(制度化)한 것이다. 노동 의 상품화와 시장화는 세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노동의 시장상품 화는 생산조직을 형성하고 그 생산조직에 대한 헤게모니를 결정하는 방 식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노동의 시장상품화는 대중에게 소득이 주어 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세째로, 노동의 시장상품화는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직업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사회에 기여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생산조직의 형성과 직업의 결정은 신분적 계급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헤게모니는 신분적 계급의 한 특권이었다. 그러 나 자본주의에서는 상품처럼 시장의 원리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폴라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자본주의와 같이 모든 것이 시장 화되는 것이 정상적(正常的)인 사회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질서도 아니며, 인류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오히 려 예외적(例外的)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갖고 있는 바로 시대적 집합표상의 카르마 때문이다. 이러한 카르마를 벗어나면 우리의 집합표상이 사실과 는 다른 고도한 의제 또는 허구(虛構)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집합표상은 인간을 시장에 매몰시키고 소외시키고 있 는 것이다. 시장은 '악마의 맷돌'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토지와 노동, 그리고 화폐의 시장을 배제하는 것이 합리 적(合理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화폐로부터 구원하고, 사회를 시장으로부터 구제하는 길이다. 토지시장이나 화폐시장은 한결같이 소 유소득을 생성한다. 그리고 노동시장은 인간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토 지, 노동, 화폐시장을 배제하고 비시장적 기제로 대체하는 것이 인간본 래의 모습을 띤 경제를 회복하는 길이다.

3. 노동자자주관리(勞動者自主管理) 시장경제

국가권력을 강화시키지 않으면서(즉, 자유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인 간의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는 경제체제에 대한 이론적 시도가 있었다. 그것은 유고슬라비아의 시장사회주의(市場社會主義)를 이론적으로 발전 시키려는 바넥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과 유고의 체제와는 운명 (運命)을 같이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바넥(Jaroslav Vanek)의 논 의를 검토하기로 한다. 그는 이러한 경제체제를 노동자관리시장경제( labor-managed market economies)라고 하였다. 그 구상의 핵심은 이윤 이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나머지는 금융기관에 귀속시킴으로써 소유소득 (所有所得)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헤게모니를 노동자집단 에 귀속시킴으로써 이러한 자율적(自律的)인 기업을 단위로 시장경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바넥은 노동자자주관리 시장경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요 약하였다.

첫째, 노동자자주관리의 경제는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스스로 기업을 경영(經營)하고 통제하는 그러한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업 의 경영권은 1인1표주의의 평등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자평의회(勞動者 評議會)에 귀속된다.

둘째, 노동자자주관리경제에서는 기업을 구성하는 노동자들이 원료 비와 여타 생산비 그리고 자본세(資本稅)를 모두 지불한 후, 나머지 기 업소득을 서로 분배하여 나누어 갖는다. 즉 이윤은 자본세로 사회전체 에 귀속되고 나머지는 노동자에 귀속된다. 따라서 임금과 이윤의 구별 은 철폐된다.

세째, 노동자는 기업 자본의 소유자(所有者)가 아니다. 기업의 자본 은 노동자가 아닌 외부에서 조달되며, 노동자집단은 자본의 사용료(使 用料)를 지불하고 그 이용권 또는 사용권만을 확보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기업의 자본이나 자산을 처분하여 자신의 소득으로 할 수는 없다.

네째, 노동자자주관리경제는 시장경제(市場經濟)이다. 이것이 의미 하는 바는 그 경제가 의사결정과정에서 완전히 분권화(分權化)된 사적 (私的) 헤게모니 체제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다섯째, 노동자자주관리경제에서 개인은 특정한 직장을 자유스럽게 선택할 수도 있고, 그만 둘 수도 있으며,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동시에 기업 역시 특정한 사람을 자유롭게 고용(雇傭)할 수도 있고 고 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3)

Vanek은 노동자관리시장경제를 제시하면서 경제체제를 2개의 구분원 리(區分原理)에 의하여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는 과연 누 가 기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느냐 즉, 기업헤게모니를 누가 가지느냐로 구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모두 자본의 소유자가 기업을 경영관리한다. 이에 대하여 노동자관리시장경제는 자본의 소유자가 아 닌 노동자집단 즉 노동공동체가 자주관리(自主管理)한다. 또 하나의 구분원리는 전통적인 것으로 누가 자본을 소유하는가이다. 이 제2의 구 분원리에 따라 개인이 자본을 소유하는 자본주의와 국가가 자본을 소 유하는 관리사회주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 서 노동자자주관리시장경제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차원을 달리하는 제3의 경제체제이다.

4. 노동자자주관리시장경제의 시사(示唆)

노동자자주관리시장경제의 이론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는 다른 중 대한 집합표상의 전환(轉換)이 있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집합표 상은 한결같이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하 여 노동자자주관리시장경제 이론은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를 두가지 문제로 분해(分解)하였다. 하나는 기업의 경영관리의 권한 즉 기업헤게 모니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이윤의 귀속의 문제이다. 노동자자 주관리기업에서의 기업헤게모니는 노동자집단에 있다. 또한 기업이윤은 자본세로서 공공기관에 귀속되고 나머지는 노동자에게 분배된다. 그럼 으로써 자유와 시장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평등이 확보되는 것이다. 4)

그러나 유고의 경제체제와 바넥의 이론은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었 다. 첫째, 기업헤게모니가 노동자평의회에 귀속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 (現實的)이며 정당(正當)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서구민주주의 사상 에 입각한다면 노동자들이 1인1표제의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기업 을 경영한다는 것은 대단히 정당하고 이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묘한 것은 서구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에서는 이러한 서구민주주의를 배격한다. 한편 서구민주주의를 부르조아독재로 배격하는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치에 있어서는 일당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에 있어서는 서구민주주의의 원칙을 채용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 한 아이러니(irony)이다. 경제적 기업에서 헤게모니는 피지배자(被支配 者)의 의사를 반영하는 그러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 헤게모 니가 아니라 자본헤게모니이다. 이 점은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자본 헤게모니는 그 자본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데 대하여 책임(責任)을 져 야하고 그 실패에 대하여 위험(危險)을 부담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기업가는 성공할 때에는 이윤을 획득하고, 실패에 대하여는 자기가 투 자한 자본을 모두 잃어버리는 위험을 부담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기 업의 기업헤게모니는 위험부담(危險負擔)의 원칙에 입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피지배자의 동의(同意)의 원칙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권력헤게모니와 자본헤게모니의 다른 점이다. 노동자들은 자본 의 손실(損失)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은 항상 성공 하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위험을 부담하고, 격변하는 상황에 능동적 으로 대처하며, 능률을 향상시키고, 기술을 혁신하는 능동적인 기업의 리더쉽 내지 기업가 정신을 노동자자주관리기업에서 기대할 수 없다. 노동자평의회의 지도층이 관료화하거나 아니면 노동자의 무책임으로 나 타나는 것이다. 노동자자주관리체제는 책임있는 경영주체(經營主體)의 확립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자주관리시장경제의 다른 하나의 문제는 저축의 흡수와 투자 (投資)의 배분(配分)의 문제이다. 노동자자주관리체제에 있어서 대중의 저축과 공채(公債)의 매각, 그리고 자본세 수입으로 사적 자본이 아닌 사회적 자본이 형성된다. 이렇게 결집된 자본은 그야말로 국민자본이 다. 그것은 국가소유도 개인소유도 아니다.5) 그리고 국민자본은 국가 기관(nLMA)이 은행을 통하여 각 기업에 배분한다.6) 그러나 투자자금 을 배분하는 국가기관(nLMA)은 그 배분에 관한 적절한 지표(指標)를 가 지고 있지 않다. 만일 투자자금의 배분이 권력적 기준이나 관리에 의 한 행정적 기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모든 투자를 국가가 행 정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된다. 만일 은행과 같은 배분기관이 독립적으 로 이를 시행한다면 그들의 독립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가 제기된다. 그들의 임명권이 국가에 있는 한 그들은 국가의 관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만일 분배기관이 완전히 독립한다면 그들은 자본 주의 기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자주관리시장경제의 이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하나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분해(分 解)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의 경영권 즉 기업헤게모니의 문 제와, 기업이윤의 귀속을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와 평 등의 경제체제적 의미를 명확히 해 준다.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시장 체제와 함께 기업헤게모니를 자율화하는 것이다.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서는 기업이윤을 노동자에게 분배하거나 사회에 귀속시켜야 하는 것이 다. 그리하여 자유와 평등을 양립시키는 문제는 기업헤게모니와 이윤의 귀속을 분리(分離)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분 리하고서도 노동자자주관리체제와 같은 문제점을 제거할 수 있는가 하 는 것이다.

5. 슈마하의 구상(構想)

슈마하(ernst Friedrich Schmacher)는 이제까지의 접근법과는 달리 주식(株式)이라는 가치매체에 주의를 기울여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슈마하는 우선 경제의 문제는 규모(規模)의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소유의 문제도 규모의 문제에 따라 전혀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규모를 문제삼지 않고 일체의 기업을 사적소유의 대상으로 한다든가 반대로 일체의 기업을 국유로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념적 집합표상에 따라 현실을 뜯어 맞추는 것으로, 본말(本末)이 전 도(顚倒)된 것이다. 그리하여 중소기업의 사적(私的) 소유는 별다른 문 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의 문제이다. 그에게 있어서 중 요한 것은 일정한 규모 이상의 주식회사제도(株式會社制度)를 개혁하는 것이야 말로 경제체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개혁은 대단히 용이하면서 동시에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슈마하의 구상은 간단한 것이다. 주식회사의 발행된 주식의 50%는 항상 공공기관(公共機關)이 이를 소유한다는 제안이다. 이것은 공공기 관이 주식회사의 주식을 매입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식회사는 설립시 또 는 증자시(增資時) 항상 발행하는 주식의 수만큼 공공기관에 무상(無 償)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민간보유주식과 공공기관 보유주식은 항상 같은 수가 된다. 한편 법인세는 폐지되고 기 업 수익의 배당금 중 절반을 공공기관이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기업과 정부 내지 공공기관의 관계에 있어서 법인세가 배당금으로 대치되었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주식은 통상 적으로 의결권(議決權)이 없고, 기업헤게모니는 민간보유주식에 의하 여 완전히 자본주의적으로 결정된다. 다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특별한 경우에만 의결권을 발동할 수 있다. 그리고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주식 은 양도(讓渡)할 수 없다. 법인세 징수의 권한은 양도할 수는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에서 기업 주식의 반을 소유하고 배당금을 수령하는 공공 기관은 정부(政府)가 아니다. 그것은 정당정치의 다툼이 개입되지 않아 야 하며, 관리에게 위임되어서도 안된다. 슈마하는 이 공공기관을 '사 회평의회(社會評議會)' 라고 부른다. "이 기관은 선거운동을 하거나 정 부당국의 원조를 받지 않고, 미리 정해진 규정에 따라 지역단위로 설립 되는 것으로 하고, 구성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즉 평의회 위원(委員) 의 4분의 1은 지역의 노동조합대표, 4분의 1은 지역의 전문직업단체대 표, 다음 4분의 1은 지역의 경영자단체 대표로 하기로 하고 나머지 4 분의 1은 배심원을 선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역주민으로부터 선 임한다."7) 그리고 이렇게 하여 공공기관이 수령한 절반의 배당금수 입은 공공의 복지를 위하여 주로 지출되어야 한다. 물론 어떤 용도에 지출될 것인가 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구성을 어떻게 하는가에 의하여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적 이윤사업(利潤事業)을 위하 여 지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기관이 굳이 이윤사업을 하지 않아도 그 지역의 회사의 배당금의 절반이 항상 수령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 서 이 수입은 시장체제에서 구제를 받지 못하는 복지지출로 사용될 것 이다.

우리는 이 간단한 제안에서 대단히 풍부한 시사(示唆)를 발견한다. 첫째로, 그는 경제체제의 문제에 관하여 이념과 현실을 구별한다. 이념 은 인간의 집합표상일 뿐이며 현실은 수많은 인간의 삶이다. 그리하여 이념적 구분보다는 현실에서의 규모의 문제가 중대한 문제가 된다. 둘 째로, 슈마하의 구상에서도 기업의 헤게모니와 기업이윤의 귀속이 분리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헤게모니는 기업가에게 그리고 기업의 이윤의 절반은 공공기관에게 귀속시킨다다. 세째로, 그는 이러한 헤게모니와 이윤귀속의 분리 방식을 권력이나 법률이 아니라, 주식(株式)이라는 가 치매체(價値媒體)를 사용한다. 그러한 분리를 권력적 지시나 법률의 규 정으로 강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슈마하가 선택한 것은 주식이라는 가 치매체를 경제관계를 매개하는 양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네째로, 그 결과로서 슈마하는 경제적으로 새로운 재원(財源)의 흐름을 창출하게 된다. 기업이윤의 절반의 공공적 귀속은 경제전체적으로 보면 거대한 자금의 흐름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금은 시장(市場)을 통하지 않는 것이며 동시에 국가 재정자금의 흐름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도 시 장도 아닌 제3의 기관을 통하여 흡수되고 배분되는 것이다. 다섯째로, 이러한 시장도 국가도 아닌 부문의 성격에 대하여 슈마하는 간단히 그 구성을 언급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복지기관이라면 그것 은 많은 대중에 대한 시혜기관(施惠機關)이 될 것이다. 그 자금이 투자 자금으로 배분된다면 그것은 저축-투자의 새로운 기제가 될 것이다. 그 리고 이러한 사회평의회의 사회적 헤게모니는 정당화(正當化)될 수 있 어야 한다. 이와 같이 그것은 새로운 정치 경제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5. 경제체제이론의 두 가지 딜렘마

경제체제의 관점에서 이상의 이론적 모색들을 종합해보자. 우리는 우선 시장체제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시장체제를 완전히 부정한다면 경제적 자유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추구하는 이념은 현실에서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현실 의 대세(大勢)를 바꿀 수 있는 주요한 부분을 개혁하는 것이지, 사회전 체를 예외없이 이념으로 재단(裁斷)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슈마하 가 지적하는 대로 규모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일정규 모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체제의 문제 는 주식회사와 같은 기업의 문제가 핵심이 된다.

이러한 차원에 설 때 자유의 이념은 기업 헤게모니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평등의 이념은 기업이윤의 귀속과 소유소득의 귀속의 문제이다. 자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업헤게모니를 민간(民間)의 자율적 인 헤게모니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 기 위해서는 노동자자주관리체제처럼 이윤을 자본세로 공공화하고 나 머지를 노동자에게 귀속하거나, 슈마하의 구상처럼 공공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기업헤게모니로부터 이윤의 귀속을 분리할 때 당장 제 기되는 문제가 기업가의 동기(動機)의 문제이다. 기업가 또는 자본가에 게 이윤이 주어지지 않는데 누가 투자를 하고 위험을 부담하고 기업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유와 효율을 위해서 (국가권력이 아니라) 기업가에게 위험을 부담시키고 기업헤게모니를 부여하지만, 그에게 화 폐이윤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기업가가 기동(機動) 할 것인가? 따라서 경제체제문제의 제1의 딜렘마는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하여 이윤이 귀속되지 않으면서 기업헤게모니만으로 기업가를 기동시킬수 있는가 이다.

한편 정의와 평등 그리고 연대를 위하여는 이윤과 소유소득을 공공 화하고 자산시장(화폐시장)을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토지시 장과 노동시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같이 자산시장(화폐 시장)을 제거한다는 것은 자본의 배분(配分)을 시장 이외의 기제(機制) 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토지와 노동시장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이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토지, 노동, 화폐와 같은 의제상품(擬制 商品)에 대한 시장을 지양(止揚)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시장을 대체하 는 매개양식으로서 국가권력을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는 시장과 조직(국가) 이외에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을 알지 못한다. 슈마하 의 사회평의회, 노동자주관리경제의 금융체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렇 다면 시장을 대체하여 화폐와 토지와 노동을 배분하는 새로운 기제를 창조할 수 있는가? 따라서 경제체제의 제2의 딜렘마는 시장이나 조직 (국가)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소득을 분배하는 기제를 창조할 수 있는가? 이다.

이러한 두 가지 딜렘마는 공통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가치매 체(價値媒體)의 문제라는 것이다. 제1의 딜렘마는 인간의 경제행위의 동기(動機)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이 실천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가치 매체에 의하여 규정된다. 인간이 경제적 실천을 야기하는 동기는 무한 한다. 그러나 가치매체가 작용할 때에는 모든 경제적 동기는 가치매체 를 획득하는 것으로 포괄된다. 즉 자본주의에서의 모든 경제적 동기는 돈(화폐, 즉 가치매체)을 버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기의 문제는 가치매 체의 문제이다. 한편 제2의 딜렘마로서 시장을 지양(止揚)하는 문제 역 시 가치매체의 문제이다. 시장은 가치매체가 기능하는 방식이다. 화폐 가 일반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주식(株式)이 자본시장을 형성한다. 그리 하여 시장을 개선하거나 지양하는 것 역시 가치매체의 문제이다. 따라 서 경제체제의 문제는 단 하나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것은 가치매체(價 値媒體)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치매체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주1)***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즉 노동, 토지및 화폐가 본원적 생산요소이고, 그것들도 시장으로 組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3개의 시장이야말로 경제체제의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그러나 노동, 토지, 화폐가 商品이 아니라는 것은 명 백하다. 매매되는 것은 모두 販賣하기 위하여 생산된 것이라는 가정은 그것들(노동,토지,화폐)에 대해서는 단연코 사실이 아니다. 달리 말하 면, 상품의 경험적 정의에 따르면 그것들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은 삶 그 자체에 동반되는 인간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 그 성질상 전혀 다른 이유로 행해지는 것이지 판매하기 위하여 생산된 것이 아니다. 또 한 노동은 삶의 다른 활동으로부터 分離될 수 없는 활동이고 저장되거 나 이동될 수도 없는 것이다. 土地는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이며, 인 간의 의하여 생산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화폐는 다만 購買 力의 상징이며, 일반적으로 생산된 것이 결코 아니며, 金融 또는 정부 재정의 매카니즘을 통하여 거래에 투입된 것이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販賣를 위하여 생산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 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擬制的이고 허구적인(fictitious)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노동, 토지, 화폐의 현실적 시장이 조직되는 것은 이러 한 擬制에 기반한다. 그것들은 실제로 시장에서 매매되며, 그것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실제적 크기를 가진다. 그리고, 그러한 시장을 형 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치나 정책은 바로 그 사실에 의하여 경제체제 의 자기조정작용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商品擬制는 사 회전체에 관한 중요한 組織原理를 제공하고 거의 모든 사회제도에 여 러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서 상품 의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장매카니즘의 현실적 기능을 방해하는 어떠 한 합의나 행동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Karl polanyi 저. {The Great Transformation} Beacon press. 19 67. pp.72--73)

***주2)***
高利貸金을 취하는 자들은 惡魔가 스침으로 말미암아 정신을 잃어 일어나는 것처럼 일어나며 말하길 "장사(거래)는 고리대금과 같도 다" 라고 그들은 말하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장사(거래)는 허락하였 으되 고리대금은 禁止하셨도다. 주님으로부터 말씀이 있은 후 고리업을 단념한 자는 과거는 용서받을 것이며 그의 경우는 하느님의 심판에 따 르도다. 그러나 고리업으로 다시 돌아가는자 그들은 불 地獄의 동반자 로 그곳에서 영주하리라.
하느님은 利子의 暴利로부터 모든 축복을 앗아가 慈善의 행위에 더 하시나니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악한 불신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 문이니라.
({코란} 제2장 바까라. 제 38항 275-276 )

***주3)***
바넥 저. {참여의 경제(The participatory economy)} 정갑영 역 pp.16--19 요약)

***주4)*** 바넥은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 기업의 經營權의 문제와 자본의 所有의 문제를 分離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은 정 확한 표현이 아니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에서의 자본의 소유의 개념은 정확하게는 세 가지로 분해된다. 하나는 기업의 경영권, 둘은 이윤에 대한 권한, 셋은 자본의 處分에 대한 권한이다. 법인기업에서의 자본의 처분에 대한 권한은 중대한 것이 아니다. 가령 주식회사에서 자본의 처 분은 株式의 賣買에 의하며, 주식회사의 淸算은 법률적 절차에 의하여 법인기업의 자산은 債權者 등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법인기업의 자본의 처분에 대한 권한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기업의 경영권과 자본의 소유를 구분한 것은 카테고리 미스(범주의 혼동)이다. 왜냐하면 기업의 경영권 역시 자본의 소유개념 속에 包含되는 것이다. 이점은 법인기업 에서 자본의 소유라는 개념이 소비재를 소유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법인기업의 자본의 소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법인기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법률적 權利主體이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자본의 소유의 개념(非法律的 槪念)의 가장 주요한 내용 은 기업헤게모니와 이윤에 대한 권리이다.

***주5)***
우리는 자본의 國民的 所有(national ownership)를, 국가나 개 인에 의하여 回收할 수 없는 移轉의 형태로 최초의 자본이 조성된 이후 에, 이 資本貯量(capital stock)에 대한 追加的인 증가가 資本所得의 全部가 追加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이해한다 (여기에서 추가되는 자본소득은 국민적 소유의 자본을 사용하는 노동자관리기업에 의하여 지불된다). 이러한 定義로부터 다음의 사실이 도출된다. (1) 소 비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본수입을 유출할 수 없다. (2) 경 쟁적 가격구조 하에서 자본의 한계생산력으로 규정되는 자본소득이 존 재하는(positive) 한, 資本貯量은 증가하여야 한다. (3) 전통적 의미 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국민소유자본에 대한 統制力이 주어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그것을 消費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국민적 소유란 사실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成長과 확장의 媒介手段(vehicle)으로 작용함으로써, 그것은 오직 국가(또는 그 사회) 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적 소유의 受益者는 모든 사람이면 서 동시에 특정한 그 누구도 아니다. 이러한 형식의 사회적 우월성은 명백한 것이다.
(Jaroslav Vanek 저. {The General Theory of Labor-Managed Marke t econmies} Cornell University press 1970. p. 315 )

***주6)***
슈마하 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김진욱 역. p.295-301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