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연대기업(連帶企業)과 신탁(信託)

연대체제에서 주식회사 이상의 기업은 연대기업의 형태를 취한다. 연 대기업의 헤게모니는 기업가에게 귀속한다. 연대기업의 이윤은 3분(三 分)되어 일부는 노동자에게 귀속하고, 일부는 사내유보(社內留保)되고, 나머지는 자본세(資本稅)로서 연대부문에 귀속한다. '헤게모니는 기업가 에게, 이윤은 노동자와 연대부문에' 이것이 연대체제의 원칙(原則)이다. 연대기업의 자본관계는 신탁(信託)이다. 연대매체는 양도성(讓渡性) 이 없으므로 소유권의 이동이 없으며, 신탁을 통하여 작용한다. 연대기 업의 자본은 기업가의 소유가 아니라, 연대부문이 기업에 신탁한 것이 다. 신탁은 자신의 소유물을 믿고 맡기는 것이며, 수탁자는 신탁자의 기대(期待)에 부응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연대기업의 자본관계는 이러한 신탁의 한 예이다.

1. 개인기업수준에서의 자본주의

연대체제에서도 주식회사의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기업은 자본주 의에서와 동일하게 기업활동을 한다. 그리하여 농민은 자신의 땅을 사유 (私有)하며 자본주의에서와 동일하게 농사를 지을 것이다. 다른 산업에 서도 개인기업은 모두 자본주의에서와 동일하게 행동한다. 합명회사, 합 자회사, 유한회사,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기업이 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의 소유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소유형식(所有形式)이 가능하 다는 것이다. 연대체제는 자본주의의 주식회사 이상의 규모에 해당하는 기업에 대한 개혁이다. 그리하여 정보산업, 자유업 등에서 적은 자본을 투입하여 자신의 능력과 노력과 운에 의하여 많은 부(富)를 획득하고 축 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를 투입하여 다량의 연대매체를 구입함으로써 연대기업가로 전환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획득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부를 금융시장에 투입하여 소유소득(所有所得)을 획득하는 길은 배제되어 있다. 금융산업 역시 주 식회사 이상의 규모에 해당하여 연개기업의 성격을 띄게 되며 이윤의 귀 속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 연대기업의 자본관계

다량의 연대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여러 사람이 연대기업을 창업(創 業)하고자 할 때에는, 그들의 연대매체를 연대부문의 투자기관에 담보 (擔保)로 제공하고 화폐자본을 제공(즉, 수탁)받아 그것을 자본금으로 하여 창업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업가는 연대매체를 소유하고, 기업의 자본은 법인(法人)의 자본으로 전환한다. 이것은 주식회사와 동일하다. 기존의 개인기업이 연대기업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기업의 자산과 부채 를 계산하여 자본으로 평가하여 법인의 자본으로 전환하고, 그 가치에 상당하는 연대매체의소유자로 연대부문으로 부터 인정받으면 된다. 화 폐자본을 직접 투자하는 경우는 그 가치에 상당하는 연대매체의 소유자 로 연대부문으로부터 인정받으면 된다.

그리하여 연대기업의 자본은 연대부문이 연대기업에 화폐자본을 제공 한 신탁관계(信託關係)이다. 즉, 화폐자본은 연대부문에서 제공되는 것 이며, 자본의 소유자는 연대부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폐자본을 수탁(제공)받은 데는 연대부문에 연대매체를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 있 다. 이들이 주식회사의 주주에 해당하는 것이다. 연대기업의 헤게모니 는 이들에게 귀속된다. 주식회사가 개별적으로 주식을 발행하는데 비하 여, 연대체제에서는 사회전체(연대부문)가 발행한 연대매체를 연대기업 의 자본관계에 (주식을 대용하여) 이용한다는 사실만이 다를 뿐이다.

기업이 화폐자본을 제공(수탁)받는데 담보로 제공된 연대매체는 연대 부문에 의하여 매년 재평가(再評價) 된다. 연대기업의 성과가 우수하면 연대매체의 량은 증가한다. 가령 10만 솔리드(연대매체단위)가 신탁되어 있던 것이 12만 솔리드로 평가되어, 2만 솔리드 만큼 투자자에게 분배되 고 투자자는 그만큼 연대매체 보유량이 늘어나는 것이다.(늘어난 연대매 체를 그 연대기업에 재 투자할 것인지는 투자자의 의사에 달려있다.) 반 대로 연대기업의 성과가 부진(不振)하면 연대매체의 량은 감소하고, 투 자자가 신탁한 연대매체 보유량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나, 감소한 만큼의 연대매체량은 연대부문에 대한 부채로 평가될 것이다. 이것은 주식회사 의 경영성과에 의하여 주식시장에서 주식가격이 변하는 것과 같은 결과 이다. 다만 주식의 경우에는 시장가격에 의하여 변동하지만 연대매체의 경우에는 연대부문의 연대기관에서 회계적(會計的)으로 재평가된다는 점 이 다를 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연대매체의 화폐가격의 평가가 아 니라 연대매체의 량(量)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에서 주식소 유자가 주식으로 배당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업가 또는 연대매체를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매체의 재 평가에 의하여 이익을 얻는다. 이념적으로 연대기업의 자본은 국민(國 民)의 자본이다. 국민이 연대부문에 화폐자본을 신탁하고, 연대부문이 연대기업에 다시 신탁한 것이다.

3.연대기업의 헤게모니

기업의 헤게모니는 기업의 경영권이다. 그것은 인적 물적 조직인 기 업에 대한 지배권이다. 어떠한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과 조직(組織)을 지배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지배는 자본을 소유한다고 하여 정당화(正當化)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연대기업은 자본주의적 기업과는 그 원칙을 달리한다. 연대기업의 헤게모니는 자본의 소유가 아니라(연 대기업의 자본소유자는 연대부문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이다), 위험부 담(危險負擔)에 그 정당성의 기초를 두고 있다. '위험을 부담하는 자에 게 헤게모니가 귀속한다' 이것이 연대체제의 원칙이다. 연대기업가는 자본의 손실에 대한 위험을 부담한다. 연대기업가가 투자기관(연대부 문)에 신탁한 연대매체는 일종의 담보(擔保)이다. 그리하여 기업가의 경영의 성과에 따라서 그 연대매체의 가치가 재평가(再評價)된다. 연대 기업이 도산(倒産)하여 자체의 자산으로 채무를 청산하고 한푼도 남지 않는다면, 그가 신탁한 연대매체는 휴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연대매체 가 담보의 기능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도산한 주식회사의 주식이 휴지가 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연대기업가는 화폐적 차원이 아니라 연대매체의 재평가에 의해서 이익을 향유하고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부담에 대하여 헤게모니가 주어지는 것이다.

연대체제는 노동자자주관리체제와 비교하여도 그 정당성의 원칙을 달리한다. 노동자자주관리체제에서는 노동자에게 기업의 헤게모니를 맡기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본손실에 대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책 임을 질 수 없다. 기업이 도산하여 노동자가 실직하는 것은 고통이지만 그것이 자본손실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에 게 기업헤게모니를 귀속시키는 제도는 책임있는 경영주체를 확립할 수 없다. 한편 국가권력(國家權力)의 기업에 대한 헤게모니 역시 배제된 다. 가령 연대부문은 기업의 위험을 부담할 수 없다. 기업이 실패한다 고 하여 연대부문이 자신의 재산으로 그것을 책임질 수 없다. 연대부 문의 자본은 바로 국민의 자본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도 마찬가지이 다. 정부에서 임명한 기업장(企業長)이 경영을 잘못하여 문책을 당하 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개인적으로 고통을 당한 것이지, 사회 적으로 책임진 것은 아니다. 그가 문책을 당하여도 자원의 낭비가 보상 (補償)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기업의 헤게모니에 관한 원칙은 기업가만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기업헤게모니는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게 개방(開放)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가는 따로이 존재하는 특수 한 사람이나 계급이 아니다. 연대매체를 신탁(信託)함으로써 위험을 부담한다면 누구든지 또는 어떤 조직이든지 기업헤게모니에 참여할 수 있다. 노동조합도 연대매체를 결집하고 이를 신탁하면 기업의 헤게모 니를 장악할 수 있다. 이것은 노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위험을 부담하 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한편 노동자가 아닌 집단, 가령 환경보호단 체(環境保護團體)와 같은 사회단체도 필요하다면 연대매체를 결집하여 신탁함으로써 위험을 부담하고 공해산업의 기업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다. 국민의 자본은 위험을 부담함으로써 수탁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 조직에게 그 신탁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연대매체를 신탁한 사람들로서 구성된 화백회의(和白會議:주 주총회)와 그곳에서 선출된 이사진(理事陣)이 경영주체를 구성한다. 연 대기업의 경영주체는 자본주의기업에 있어서의 전문경영인보다 강화된 지위에 있으나 대주주(大株主)보다는 약화된 지위에 있다. 그들은 자신 들을 지배하는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문경영자보다 강화된 지위이나, 이윤의 귀속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대주주보다 약화 된 지위이다. 연대기업의 헤게모니는 책임성이 있고 능동적이며 창조 적인 경영주체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계급(階級)을 배제하는 것을 그 이념으로 한다. 연대기업의 경영주체는 노동자와 동일하게 노동소득 을 취득한다. 비록 그들이 노동자의 화폐소득보다 더 많은 화폐소득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것은 자본주의 주식회사의 전문경영인이 더 많은 월 급을 받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들은 이윤이나 소유소득을 취득하는 것 도 아니고 계급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다.

4. 연대기업의 이윤분배(利潤分配)

연대기업의 기업가와 노동자는 연대자본의 수탁자(受託者)이다. 자 본을 수탁받아 운용한 결과 생성된 이윤은 누구에게 귀속해야 할 것인 가? 이윤의 귀속에 관하여 누가 그 이윤을 창출(創出)하였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이윤의 분배를 결정할 수 없다. 그러한 논쟁은 존재론적 (存在論的)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어떠한 사건(즉, 이윤)의 원인은 무수히 많다. 그 원인을 특정한 사건(가령 노동)에 귀속시키는 것은 가 치관의 적용이다. 따라서 누가 이윤을 창출하였는가 하는 것은 사실적 (事實的) 인과관계로는 규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건의 원인 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事實)에 입각하여 정당한 분배 (즉, 價値)를 결정할 수 없다.1)

그리하여 이윤은 경제적 정의와 평등의 가치관에 직접 입각하여 배 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윤을 분배하는 원칙을 평등(平等)이라는 규범 적 가치관에 직접 근거를 둔다. 우리가 제시한 정의의 원칙은 소유(所 有)는 소득을 창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유소득은 부정 (否定)되어야 한다. 이윤이 기업가에게 분배되는 것은 이러한 원칙에 반한다. 즉, 연대매체를 소유한다고 하여 화폐적 소득(즉, 이윤)이 주 어져야 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기업가의 경영활동은 노동소득으로 고 려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윤의 배분을 노동자에 대한 귀속분 (歸屬分), 자본세(資本稅)에 의한 연대적 귀속, 그리고 기업가의 헤게 모니에 남겨지는 사내유보(社內留保)로 3분(三分)한다. 사내유보는 수 탁된 연대자본의 증가이지(따라서 투자자가 신탁한 연대매체 수량의 증 가) 기업가에게 이윤이 배분된 것이 아니다. 이윤을 연대부문에 귀속시 키는 것이나 노동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평등을 고양한다. 이것이 이 윤의 분배에 대한 평등의 가치관이다. 또한 이것이 기업가와 노동자의 경제적 평등을 확보하는 기제이다. 연대기업에서는 노동자도 이윤을 분 배받으므로 노동자가 기업가에 비하여 기회에 있어서 불평등한 것은 아 니다. 기업가와 노동자는 모두다 노동소득(勞動所得)을 받는다.(기업가 와 노동자간의 이윤의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업종사 자 전체의 개인적 배분의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결 코 자본 소유자와 노동자간의 배분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가의 월급은 자본주의의 전문경영자의 월급과 같은 경영적 노동의 대가인 것이다.

자본세, 사내유보, 노동자에 대한 배분의 비율은 법률로 규정된다.

자본세(資本稅)는 연대부문으로 흡수되어 사회전체의 연대자본으로 전환한다. 자본세는 연대자본의 사용료(使用料)라고 할 수도 있고, 연 대자본의 사용에 대한 세금(稅金)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누구 의 소유도 아니며 동시의 모두의 소유이다. 사내유보(社內留保)는 시장 부문에 남아 있는 국민자본(國民資本:連帶資本)이다. 이것은 해당된 연 대기업에 수탁된 자본금의 증가를 가져온다. 따라서 사내유보된 이윤은 기업가나 노동자의 소비자금으로 사용될 수 없다. 사내유보된 자금의 소비는 연대적 재산을 유용하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이윤이 노동자에 게 귀속되므로, 이윤과 임금의 구별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적(節 次的)인 것이다. 임금은 노동계약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며 비용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년말 결산에 있어서 노동자는 이윤의 배분에 참여하 는 것이다. 임금과 이윤은 그 본질이나 귀속의 주체가 다른 것이 아니 라 배분의 절차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임금과 이윤의 구분은 순전히 회계적(會計的)인 것이며, 회계절차에 따라서 전혀 구별하지 않을 수 도 있다.(결국 연대체제에서의 이윤의 분배는 노동자자주관리기업과 유 사하다.) 사내유보와 노동자에 대한 분배분과 자본세의 비율(比率)은 이념적으로 처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상황과 정책적 목표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2) 그러나 기업가에게 화폐소득에 의한 이윤배당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이념적(理念的)인 문제이다.

연대매체와 연대기업은 자유와 평등이 양립(兩立)할 수 있는 경제체 제의 양식이다. 연대기업의 이념적 취지는 경제적 정의를 확보하면서 자본주의적 기업과 같이 자유스럽고 활력이 있는 기업체제를 만드는 것 이며, 평등이 보장되는 시장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기업의 이윤분배와 기업의 헤게모니를 분리(分離)하는 것이다. 즉, 이윤을 노 동자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평등을 확보하고, 헤게모니를 기업가에게 귀 속시킴으로서 자유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5. 경제적 기본관계 : 소유(所有)와 신탁(信託)

연대체제에서 주식회사를 연대기업으로 전환시킨 것은 전체사회의 변화의 한 예이다. 그것은 단순히 기업형태의 전환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질의 관계에 관한 우리의 집합표상을 재검토하게 한 다. 이제까지 인간과 물질에 대한 경제적 관계는 일반적으로 소유관계 (所有關係)였다. 그러나 소유 개념의 이면에는 존재론적(存在論的) 집 합표상이 있다. 즉, 세계와 사회는 분리되고 독립된 존재들의 관계라는 것이다. 소유란 인간이 물질을 배타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타적 지배는 인간이 다른 모든 인간으로부터 분리독립(分離獨 立)된 존재이고, 물건이 다른 모든 물건으로부터 분리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소유의 주체(主體)와 소유의 객체(客體)가 다른 모든 것과 분리독립되어 있어야만 배타적 지배는 가능하다. 이러한 소 유권 사상은 중세의 신분적 계급의 특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야 하 는 역사적 단계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소유권 사상은 인 류의 보편적인 사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통사회에 있어서 소유권이란 대단히 낯선 집합표상이다.3) 그것은 영원한 진리는 아니다. 자연은 분리(分離)되지 아니하고 사회 역시 분할될 수 없는 연대성(連帶性)이 다(上卷 2편참조).

한 인간이 하나의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지로 다른 인 간과 사물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가 라디 오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라디오의 소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방 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주택을 개인적으로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그 주택을 함부로 불질러 버 린다든가 폭파시켜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기대는 단절될 수 없는 연대성(連帶性)에서 연유하는 것이 다. 세계와 사회의 이러한 단절할 수 없는 연대성은 소비재에서 보다는 자본재(資本財)에서 더욱 명백하게 나타난다. 자본재는 그 자체의 성질 상 다른 모든 인간으로부터 분리독립될 수 없고 단절될 수 없는 것이 다. 다른 사람의 노동과 결합될 수 없는 자본재라는 것은 이미 자본재 가 아닌 것이다. 공장시설에 대한 관계에는 노동과 결합하여 생산을 통 하여 사회적으로 기여하라는 사회적인 기대가 함축되어 있다. 그 사용 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갖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자본(資本) 은 이미 배타적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자본을 소유한다는 것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물질과 한 인간의 관계에도 다른 모든 물질과 다른 모든 사 람들의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한 인간이 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관계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묵시적(默視的)인 기대(期待)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기대가 포함된 관계를 우리는 신탁(信託)이라 고 규정한다. 신탁이란 어떤 물건을 기대(期待)를 가지고 믿고 맡기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이러한 기대가 배신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 다. 이러한 기대와 신뢰는 인간과 세계의 연대성의 표현이다. 이러한 신탁(信託)이야말로 인간의 물질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계인 것이다. 그것은 소유보다도 더 보편적인 관계이다.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신탁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관계의 표현 이 아니라 가치관계적 표현이다).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 다. 그리고 일체의 물건은 그 사회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신탁 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연대성의 표현이다. 소유(所有)란 이러한 일 반적인 신탁관계 가운데에서 특수한 유형인 것이다. 소유(所有)란 한 개인이 하나의 물건을 지배하는데 대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간섭하 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合意)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간섭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기대(期待)가 배신당하지 않는 경우에 성립하는 신탁이다. 소유는 소유객체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를 허용해도 인간의 연대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 회구성원이 그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위상을 고양할 수 있는 그러한 경우에 허용될 수 있는 신탁의 한 유형이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자유가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유란 사회적 기대가 특수한 경우의 신탁이다. 소유란 사람들의 기대가 모든 사람들의 자유 (自由)인 그러한 특수한 신탁이다.4)

6. 연대체제와 신탁(信託)

우리는 인간과 물질의 일반적이고 보편적(普遍的)인 사회관계를 신 탁으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서는 신탁은 인간과 물질의 관계 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계이며 이념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유 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소유는 구체적인 법률관계에서 여전히 중요 한 인간과 물질의 관계이다. 신탁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추 상적인 이념(理念)이며, 다른 하나는 소유권과 동등한 차원에서의 구체 적인 법률관계(法律關係)이다.

우선 신탁이란 인간과 물질간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계이며, 구 체적인 권리관계가 아니라 권리관계의 전제가 되는 이념(理念)이다. 이 러한 신탁의 이념에 내포되는 기대의 종류에 따라서 신탁의 개념은 구 체화된다. 가령 신탁에 자유(自由)의 가치(즉, 모든 사람들의 기대가 자유일 때)가 첨가됨으로써 소유가 규정된다. 소비재나 가치매체(화폐, 연대매체)는 소유의 대상이다. 가치매체에 대해서는 소유관계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를 넘어 소유가 헤게모니나 소득(所得)에 대한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는 자유에 의하여 정당화되고 그러한 한계 내에서만 다른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소유는 헤게모니나 소득을 정당화할 수 없다. 자본의 소유가 시장질서와 결합하여 야기하는 헤게모니나 소유소득은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헤게모니나 소유소득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 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나 소득은 신탁의 이념에서 직접 정당성을 획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소유가 아닌 신탁의 유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은 이념으로서의 신탁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관계로서의 신탁이다.

구체적인 신탁의 개념은 소유자가 자신의 물건을 수탁자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다. 수탁자는 신탁자의 기대(期待)를 배신해서는 안되며, 그리하여 선량한 관리자(管理者)는 주의의무(注意義務)로서 신탁물을 관리하여야 한다. 한편 수탁자가 신탁받은 물건에 대하여 행한 법률행 위의 효과(效果)는 신탁자에게 귀속(歸屬)된다. 신탁자는 항상 신탁을 철회(撤回)할 수 있다.

연대체제에서는 세 종류의 신탁관계가 있다. 하나는 연대매체의 담 보적(擔保的) 신탁이다. 연대체제에서 연대기업을 창업하고자 하는 자 는 연대매체를 투자기관(연대부문의 연대기관)에 신탁하고, 그것을 담 보(擔保)로 하여 화폐자본을 수탁받는다(즉, 引出한다). 연대매체를 구 입하는 행위는 연대자본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대자본을 배분받 는 절차는 연대매체를 담보신탁하고 화폐자본을 배분받는 것이다. 이것 을 매개하는 기관이 연대기관의 하나로서 투자기관이다.

한편 이러한 연대매체의 담보적 신탁은 반대로 투자기관(연대기관) 의 입장에서 보면 화폐자본을 연대기업에 신탁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두번째 유형의 신탁으로서 화폐자본(貨幣資本)의 신탁이다. 우 리는 그것을 화폐자본의 인출(引出)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정 확히 말하면 인출이 아니라 수탁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연대기업의 창 업자는 자신이 소유하는 화폐자본을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그것은 저축을 되찾는 것이 아니다. 화폐자본의 소유권자는 투자기 관(연대기관)이고, 그로부터 화폐자본을 수탁받는 것이다.

세번째 유형의 신탁은 연대매체의 조직적 신탁(組織的 信託)이다.

이것은 연대매체를 사회조직에 신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탁을 통하여 형성된 공식적(公式的) 조직은 수탁받은 연대매체를 헤게모니 자산으로 하여 연대자본의 사용과 배분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조 직간의 합의 과정에서 수탁받은 연대매체는 거부권이나 표결권으로 사 용된다. 그리고 거부권의 사용으로 인한 연대매체의 가치변화는 신탁한 사람들에게 그 효과가 귀속된다.


***주1)***
利潤(또는 剩餘價値)의 원인이 무엇인가, 누가 이윤을 創出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因果關係의 해석의 문제이다. 그러나 자연적 인과관계는 무한한 원인이 있다. 가령 살인자의 어머니도 살인의 원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없 었다면 살인자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그 살인자의 살인행위는 일 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형법적 인과관계론에서는 自然的 인과관계가 아니라 형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법률的 인과관 계에 관한 집합표상을 재구성한다. 즉 살인자의 어머니는 살인의 원인이 아니 다. 이것은 사회적 價値觀의 적용이다. 즉 살인자의 어머니에게 형벌을 부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는 사회적 가치관의 표현이다. 價値觀이 前提되지 않으 면 인과관계는 규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경제학적인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마 찬가지이다. 누가 잉여가치를 생산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누구에게 분배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가치관이 전제되지 않으면 규정되지 않는다.
가령 이윤의 전액이 자본의 所有者인 신탁자에게 반드시 귀속해야 한다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윤은 반드시 자본에서 생성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또한 소유는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윤의 전액이 勞動者에게 귀속하는 것도 정당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 은 연대자본을 이용하여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령 실업자, 개인기업의 노동자) 사이의 衡平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노 동자는 연대자본을 이용하여 임금소득을 얻고 그와 함께 이윤을 분배받고, 다 른 노동자는 연대자본을 이용하지도 못하고 이윤도 얻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윤의 전액이 企業家에게 귀속하는 것도 정당하지 못하 다. 왜냐하면 기업가는 이미 연대매체의 再評價로 비록 화폐적 이익은 아니지 만 사회적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주2)***
연대기업의 모습은 彈力的인 것이다. 이윤의 分配를 법률적으로 어떻 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커다란 차이가 날 수 있다. 그 법률적 구성을 어떻 게 하는가에 따라서 資本主義的 기업에 가까운 유형이 될 수도 있고, 勞動者 自主管理企業에 가까운 유형이 될 수도 있고, 管理社會主義의 기업에 가까운 유형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이윤의 勞動者에 대한 분배분의 비율을 대단히 높인다면 노동자의 경 제적 세력이 강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이 다수의 노동자로부터 거대 한 규모의 연대매체를 결집하여 擔保信託으로 제공한다면, 기업의 헤게모니는 노동조합이 장악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이 될 것이다. 한편 기업이윤의 처분에 대한 經營主體의 권한을 무제한으로 하거나, 社內留 保의 비율을 증가시킨다면 그것은 배당금이 없는 주식회사와 유사하게 될 수 도 있다. 한편 資本稅의 비율을 대단히 증가시킨다면 모든 기업은 연대부문에 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업헤게모니의 自律性이 상실된 관리사회주의에서의 기업과 유사한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한편 노동자에 대한 이윤분배의 비율을 증가시킬수록 노동자로부터 더 많 은 貯蓄을 流入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위한 資本形成에 압박을 받을 것이 다. 한편 사내유보의 비율을 증가시킨다면 기존의 기업가들의 경제적 사회적 헤게모니가 증가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연대매체를 재평가함에 있어서 그 재 평가의 비율을 증가시킨다면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한편 자본세의 비율을 대단히 증가시킨다면 연대자본을 배분하는데 있어서 연대매체의 가치와 均衡 이 괴리되어 擔保不足의 문제가 제기되고 위험부담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책적 문제가 된다. 그것은 정책의 선택의 幅이 대단히 증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3)***
Herskovits는 에스키모인들의 소유권에 관한 법칙은 用益權을 뜻한 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예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여우 덫은 그것을 사용하 고자 하는 어느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린랜드에서 텐트나 커다란 보 트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을 相續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그와 같은 류의 물건을 2개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보이는 소유권의 형태는 用益權이 다. 이것이 바로 땅에 대한 賃貸料를 거의 받지 않는 이유이다. 만약 사용되 지 않는 땅이 있다면 그것은 가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 땅을 사용 하는 것에 대한 임대료를 부과할 권리가 없다. 용익권은 왜 북미 인디언들과 미국 정부간에 수많은 조약이 그렇게 쉽게 체결되며 그 조약들을 인디언들은 왜 그렇게 화를 내면서 破棄하는가를 설명해 준다. 인디언측 조약체결자들은 사냥터에 대한 접근 권리조차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 에게 있어서는 땅이 사용됨으로써 가치를 갖기 때문에 그땅에 그들이 接近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여하한 조약도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 인디언측 조약체결자들은 단지 백인에게 그들의 사냥터를사용하도록 許可한 것으로만 이해한 것이다.
(F.J.Johnston. H.Selby 공저. {Anthropology -Biocultural View}. 권이 구 편역(현대문화인류학). 탐구당 P341 )

***주4)***
所有權이 天賦의 개인적 권리라는 사상은 근대의 존재론적인 집합표 상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封建的 계급에 抵抗한 시대의 사상이지 영원 한 진리는 아니다. 세계의 상호의존성이 증대함에 따라 이러한 사상은 이제 진리가 아니라 桎梏으로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소비재의 소유와 사용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環境汚染의 문제이다. 이 것은 인간과 물질의 관계가 분리독립된 존재론적 관계로 일반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소유와 신탁에 관해서는 더 많은 哲學的인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철학적인 논의는 객관적 사실을 發見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실과 可能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적 집합표상을 創造하 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적 집합표상보다 가능한 현실에 대한 事實的 구성이 先行한다. 우리는 철학적 논의보다는 연대체제에 관한 앞으로의 논의를 위한 개념규정의 관점에 있다. 그리고 소유와 신탁의 개념에 대 한 철학적인 근원은 1권 상권에서 논의한 存在論的 집합표상과 連帶的 집합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