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연대체제에서의 소득 : 시장소득과 연대소득

연대체제에서는 세가지 종류의 소득이 있다. 시장소득(市場所得), 연금소득(年金所得), 연대소득(連帶所得)이 그것이다. 연대체제에서 시 장소득은 시장에서 얻어지는 노동소득이 주를 이룬다. 또한 연대체제에 서는 실업이나 은퇴와 같이 시장소득이 없을 때에, 자신이 축적한 연대 매체의 가치에 대하여 일정한 비율로 실업연금이나 은퇴연금이 지불된 다. 이것이 연금소득이다. 한편, 연대체제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적(無條件的)으로 일정액의 화폐소득이 연대소득으로 지불된다. 연대소 득은 모든 인간의 생존(生存)을 위하여 절대적(絶對的)으로 평등(平等) 하게 지불되는 화폐소득이다.

1. 경제체제와 소득 : 소득의 정당성

경제체제가 물질적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 산업사 회에서는 시장이 인간의 삶의 장이다. 인간은 생산에 의지하는 것이 아 니라 시장과 화폐소득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물질적 삶 은 소득(所得)을 어떠한 방식으로 얻는가 하는 것에 의하여 좌우된다. 따라서 경제체제(經濟體制)란 인간이 소득을 얻는 방식이다.

자본주의에서는 화폐소득을 얻는 방법이 4가지로 분류된다. 즉, 임 금, 이자, 지대, 이윤이 그것이다. 우리는 미시적 관점에서 투기소득(投 機所得) 역시 소득의 한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노동소득을 제외한 이자, 지대, 이윤을 우리는 소유소득(所有所得)으로 불러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활동이 아니라 소유라는 법률적 상태에 주어지는 소득이기 때문 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화폐소득을 얻는 방법은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인간은 시장에 자신의 소유 물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방법으로 화폐소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 서 노동력도 하나의 소유물로 의제(擬制)된다.

자본주의는 노동에 대한 소득이 아니라 생산에 제공한 소유물의 소유 권자에게 소득이 주어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정 통파경제학은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시장소득은 생산에 기여(寄與)한 정 도를 평가하여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생산에 대한 기 여의 전체량이 아니라 기여의 한계치(限界値)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라 고 한다.1)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논점에 입각해 있다. 첫째로 시장소 득이 생산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해 준다고 하더라도 한계적(限界的) 기 여에 대응하는 소득이 정당성을 가진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둘째 로, 한계치를 계산하는데는 이미 가격과 임금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것 은 결론을 전제(前提)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세째로, 소유는 가치를 스 스로 창출(創出)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소유물에 대하여 소득 을 귀속시키려는 여하한 이론도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경제체제와 관련하여 몇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면 시장에서 자유롭 게 소득을 구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는 것인가? 시장소득은 정당화(正當 化)될 수 있는가? 정당한 소득이란 무엇인가?

2. 연대체제의 시장소득(市場所得)

우리는 시장소득의 정당성에 대하여 다른 근거를 부여한다. 시장소득 은 정의롭게 분배되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다. 즉, 우리가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이념 적 가치로 삼는다면 시장은 불가결(不可缺)한 것이다. 그리고 시장이 불 가결하다면 시장소득은 용인되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을 강요당하지 않 고, 자유로운 계약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하기를 위해서 는, 시장소득(市場所得)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의 이념이 시 장소득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든 시장소득 이 자유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가 소유소득을 정 당화할 수는 없다.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소유소득을 제거하는 것이 가 능하다면 소유소득은 근거를 상실한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시장소득은 이러한 관점에서 규정된다.

연대체제에서는 우선 소규모(小規模)의 차원에 있어서 모든 소유소득 이 그대로 인정된다. 소규모기업으로서의 개인기업이나 개인적 사업은 완전히 자본주의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문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적 분 배가 그대로 용인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분적인 개인기업 차원에서의 소 유소득과 시장소득은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절대적인 권력에 우 리의 삶을 맡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소유소득을 용인하 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유소득은 경제적으로 계급을 형성 하거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정도로 중대(重大)한 것은 아니다. 개 인이 소유를 통하여 사회적 제도의 도움없이 대량의 화폐소득을 얻는다 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기업은 항상 소유소득을 흡수하 는 제도화된 연대기관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이 이러한 연대기 관을 압도하고 사적 소유소득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연대체제에서는 개인기업 이상의 수준에서는 원칙적으로 소유 소득이 배제된다. 연대체제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은 연대기업으로 편성되고, 이윤(利潤)은 연대화하거나 노동자에게 귀속된다. 배당금 (配當金)은 없으며 이윤과 임금의 대립은 해소된다. 이윤과 임금은 절차 적 구분이지 귀속주체에 의한 구분은 아니다. 또한 연대부문의 연대기관 이나 연대사업기관을 통하여 사회의 대부분의 소유소득(所有所得)이 연 대부문으로 흡수된다. 사적(私的)인 소유소득은 배제되고 소유소득은 원 천적으로 연대부문에 귀속한다. 지대나 이자나 이윤은 소득의 배분이 아 니라 자원을 배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경제체제에서 대종(大宗)을 이루는 시장소득의 형태는 노동소득(勞動所得)이다. 이 노동소득에는 이윤의 분배분을 포함한다. 이윤이 연대화하거나 노동자에게 귀속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소유소득이 노동소득으로 전환한다. 한편, 화폐시장이 연대부문으로 이전함으로서 다른 소유소득들이 연대화하는 것이다. 연대체제에서 평등한 소득분배는 이윤의 분배방식과 소유소득을 흡수하는 연대사업기관(連帶事業機關)에 의하여 구현된다. 모든 연대기관의 이윤은 원천적으로 연대부문에 귀속 하고 그 속에 일체의 소유소득이 포괄되는 것이다. 이것에 의하여 연대 사회는 소유에 기초하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에 기초하는 사회로 돌아오 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소득의 대종은 노동소득이 되는 것이다.

3. 연금소득(年金所得)

연대체제에서는 이러한 노동소득 이외에 중대한 소유소득(所有所得) 이 있다. 그것은 연대매체의 축적분에 대하여 실업이나 은퇴시에 지불되 는 연금소득이다. 연금소득은 시장소득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지불된다. 그리고 연금소득은 바로 연대매체의 소유에 기반하는 소유소득이다. 그 러나 이러한 연금소득은 합리화(合理化)된 소유소득이다. 그것은 노동 소득의 축적분에 대하여 그 원금을 상환하지 않는 대신 일정한 비율로 연금(年金)의 형태로 지불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완전한 소유소득 은 아니다. 그것은 보관(保管)한 노동소득을 돌려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연대매체의 축적은 연금기금(年金基金)을 축적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하여 연대매체의 구입은 모든 사람들이 개별적 자율적 의사 결정에 의하여 미래(未來)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매체의 구 입은 자신의 시장소득의 사용을 시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연대체제 에서는 이러한 연금기금의 가치(價値)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즉 연금 기금에 해당하는 축적된 연대매체의 가치를 물가의 변동에 따라서 재평 가한다. 가령 현재 100솔리드의 연대매체를 100만원을 지불하고 구입하 였는데 10년 후에 물가가 3배로 상승하였다면 10년 후에 100솔리드의 연 대매체는 300만원으로 평가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플레이션에 상 관없이 연대매체의 가치는 재평가되어 연대매체 구입당시의 가치를 유지 하고 그에 기준하여 연금이 지불되는 것이다.

4. 연대소득(連帶所得)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소득을 노동과 결부시키는 것이다. 화폐경제에 있어서 소득은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따라서 소득을 노동과 결부시키는 것은 인간에 게 노동을 사회체제적으로 강요(强要)하는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 시장 에서 소득은 소유에 의해서 취득하기 때문에 결국 사회체제가 소유(所 有)를 강요하는 셈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은 그의 노동이나 그의 소유 에 대한 시장적 평가보다도 중대한 것이다. 노동을 하지 못하거나 시장 성이 없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생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소득과는 다른 소득제도가 필요 하다. 이것은 소득과 노동, 소득과 시장, 소득과 소유의 관계를 절단(切 斷)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물질과 경제로부터 해방(解放)시키는 길 이다. 자유의 이름으로 시장소득이 필요하다면 연대(連帶)의 이름으로 또 한 종류의 소득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가 세상에 태어났 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생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소득이 지불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寄與)하고 사람들과 의 연대성(連帶性)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생존 을 공동으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연대의 표현이다. 동시에 이것이 모든 사람이 생존하는 길이다. 반대로 한 개인은 자신의 생존만 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생존의 책임을 분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 역시 연대의 표현이다. 인간이 혼자서는 결코 생존하지 못하며 결 코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연과의 연대 속에서 그리고 다른 인간 과의 연대에 의하여 생존하고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관계 에서 한 인간은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생존(生存)에 필요한 소득을 받 아야 하며,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생존할 수 있게 하여야 한 다. 그리하여 시장소득과는 관계없이 연대의 이름으로 모든 인간은 일 정한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 시대의 생산력(生産力)이 허용하는 한계내에서 절대적으로 평등 한 수준으로 모든 인간에게 일정한 소득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갈 브레이드(J.K.Galbraith)는 현대자본주의에서는 오로지 고용(雇傭:즉 소 득과 생존)을 위하여 불필요한 생산이 유지되고 욕망이 창조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제 과거의 생산중심으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득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소득을 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프롬(E.Framm)은 모든 인 간에게 일정액의 소득을 준다는 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의 복지적인 보험제도 역시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환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찬기지로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환상처럼 보일지 모 르지만, 실제로 시행하는데 드는 비용은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데 드 는 비용보다 적을 것이라 주장하였다.3) 이처럼 모든 인간에게 노동이 나 소유나 시장과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주어지는 소득을 우리는 연대소득(連帶所得)이라고 부를 것이다. 연대 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연대소득이 주어지는 체제이다.

연대경제체제는 시장소득 이외에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평등(平 等)한 일정액의 연대소득이 지불되는 체제이다. 그것은 인간연대의 이름 으로 정당화된다. 현대의 사회에서도 불구자, 극빈한 자,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일시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생존이 어려운 사람에게 무상의 혜 택이 주어지고 있다. 사회보장제도(社會保障制度)라는 이름으로 행해지 고 있는 이러한 제도와 연대소득의 차이는 우선 연대소득은 모든 사람에 게 대하여 절대적으로 평등한 액수의 소득이 주어지는데 대하여 사회 보장은 선별적(選別的)이다. 연대소득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주 는 것인데 대하여 사회보장은 국가의 시혜(施惠)이다. 연대소득은 무조 건 평등한 액수가 주어지기 때문에 국가권력(國家權力)이 개입할 이유 가 없으나 사회보장은 그 지급여부와 사람의 선택 그리고 지불액수 등을 결정하는 것이 권력의 작용이다. 연대소득은 그것이 국가의 자선적 시 혜가 아니며 그 작동과정에 권력의 개입이 필요없다는 점이 그 중요한 성격이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연대에 의하여 모든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념이다.

5.연대경제체제의 소득과 정의(正義)의 개념

그리하여 연대경제체제에 있어서는 소득이 세가지의 종류가 있게 된 다. 하나는 시장소득이고 둘은 연대소득이며 셋은 연금소득이다. 그런데 연금소득은 시장소득이 없는 경우에만 지불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시장소득과 연대소득을 받거나, 연금소득과 연대소득을 받게 된다. 이것 이 연대경제체제에서의 소득의 구조이다.

연대경제체제에서 정의(正義)의 집합표상(集合表象)은 그 사람의 사 회적 기여(寄與)에 따라 분배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회전체의 소득을 창출하는데 있어서 관계자들이 얼마나 기여하였는가를 공정(公正)하게 평가하여 그에 합당한 소득을 분배하는 것이 정의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 다. 그러나 이러한 집합표상은 즉각 두가지 난점(難点)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사람들의 기여를 공정하게 평가하는데 있어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기준(基準)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이러한 기준에 모든 사람 이 동의할 수 없다면 누가 그 기준을 선택하고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여는 그 정도를 측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회 적 기여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의 개념은 분배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다 만 사회적 기여에 대하여 그 정도(程度)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 존부 (存否)를 판단할 수는 있다. 즉, 소유(所有)는 사회적 기여가 아니다. 소유는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소유소득(所有所 得)은 가능한 한 억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합리화되어야 한다. 연대체제 에서의 시장소득이나 소규모의 소유소득 그리고 연금소득은 자유의 이름 으로 정당화되고, 그렇게 정당화될 수 있을 만큼 합리화한 것이다.

연대체제에서의 정의(正義)의 이념은 이러한 시장소득과 연대소득 그리고 연금소득과의 종합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절대적(絶對的)으 로 평등하기 때문에 정의라고 할 수 없는 연대소득과 본질적(本質的)으 로 불평등하기 때문에 정의라고 할 수 없는 시장소득, 그리고 연금소득 의 올바른 균형관계가 정의이다. 정의는 절대적 평등과 본질적 불평등의 조화(調和)이다. 정의는 자유의 가치를 구현하는 시장소득과 연금소득,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는 연대소득의 관계이다. 즉, 정의는 자유 (自由:시장소득, 연금소득)의 연대(連帶:연대소득)이다. 자유로운 연대, 연대적 자유(連帶的 自由) 이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정의의 경제체제적 개념이다.

정의는 인간 연대의 한 내용이다. 사회가 정의롭다고 인식될 때 인 간은 상호간에 연대를 고양(高揚)할 수 있다. 상호간의 연대가 일방의 이익을 의미한다면 그러한 연대는 붕괴할 것이다. 자유 역시 인간연대의 한 내용이다. 인간연대가 일방의 타방에 의한 예속을 의미한다면 그러 한 연대는 붕괴할 것이다. 자유인의 연대, 그것을 우리는 정의라고 부르 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의는 억압적(抑壓的) 연대이거나 소외(疎外)된 자유이다. 이것은 정의의 개념을 관계와 과정, 공간과 시간의 관점에서 파악할 때 우리가 이를 수 있는 결론이다.

정의의 이념은 오래 전부터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정의에 관한 논의는 개념조차 명백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정의란 절 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평등한 상태 가운데 어 떠한 것이 정의인가 하는 것을 결정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정의의 개념은 존재(存在)와 소유(所有)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즉, 모든 인간들은 분리독립된 존재이고 그러한 존재들에게 소유를 어떠한 방식으로 귀속시 킬 것인가 하는 관점이다. 우리는 인간은 존재로 파악하지 않는다. 인간 의 연대성의 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정의는 연대성(連帶性)의 한 양상 (樣相)이다. 그것은 어떠한 양상인가. 그것은 각 부분이 자유로우면서도 연대성을 함축하는 상태인 것이다. 자유인이 스스로 연대에 이르게 되는 상태가 정의인 것이다. 자유인이 정의를 인식할 때 스스로 타인과 연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의란 자유와 연대를 인연으로 하여 연기 (緣起)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을 경제체제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 시장소득과 연대소득, 또는 연금소득과 연대소득의 종합인 것이다.

6. 연대인(連帶人)과 노동시장

연대체제에서의 소득의 구조는 연금소득과 연대소득에 의하여 생존하 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예정(豫定)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시장소 득이 없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또는 노동하더 라도 시장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실업자이거나 거대한 은퇴자이거나 또는 시장소득이 주어지지 않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가령 대가를 받지 않고 도심을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연금 소득과 연대소득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연 대인(連帶人)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연대체제는 이러한 연대인을 긍정 (肯定)하는 체제이다. 즉, 실업을 긍정하는 체제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실업은 나쁜 것이고 실업율을 줄이는 것이 경제정책 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이다. 관리사회주의는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커다란 자랑거리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의 연대인의 개념은 실업 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연대인의 개념에는 자본주의에서는 실업 자와 은퇴자만이 아니라 유한계급(有閑階級)을 포함한다. 즉, 노동을 하 지 않고 재산소득만으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계층이다. 연대체제에서 는 소유소득이 배제되고 합리화됨으로써 유한계급의 사람들은 연대인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즉, 그들은 비교적 많은 연금소득을 받는 사람들 의 범주에 들게 되는 것이다. 시장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적 자유를 유지 하는 한 연대인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연대인을 긍정하고 연 대인을 사회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서는 연대인의 생존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며 연대인을 위한 비시장적 부문을 증대시킨 다. 이것이 연대부문의 기능이다.

이러한 변혁은 노동시장을 지양(止揚)한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노동 자는 기아(飢餓)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다. 즉, 노동자는 기아에 쫓겨 자신의 노동을 판매하지 않아도 된다. 연대체제에서의 노동은 반드시 이 윤성(利潤性)이나 시장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연대부문의 연 대사업기관에서 시행하는 연대사업은 비시장적 사업이 중대한 비중을 차 지하고 있다. 나아가 연대체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아실현(自我實現) 을 추구하는 길이 열려 있으며 노동은 이러한 자아실현의 한 방식이다. 즉,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실현적인 목적을 위하여 조직(組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조직이 결집한 연대매체에 대하여 연대자본이 배분되 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의 연대화의 의미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의 지양 이란 자유에 기반하는 노동의 배분과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자 본주의 노동시장이란 노동을 신분적(身分的) 계급의 의무(義務)에서 해 방한 것이다. 따라서 시장소득의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제거하는 것이 노 동시장의 지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을 기아의 위협에서 해방하 고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지양인 것이다(附錄2 참조).

그러나 이러한 연대인 제도와 연대소득은 여러가지 체제적 문제를 제 기한다. 연대소득의 수준이 대단히 높은 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것이다.4) 그러나 우리 의 일반적 사고방식은 연대소득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노동을 기아의 위 협으로부터 해방하고 연대소득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질 때 그것이 노동의 동기(動機)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연대소득의 재원(財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계속 논의하게 될 것이다.


***주1)***
이점에 대하여는 유명한 限界生産費異論이 있읍니다. 완전경쟁 의 경우 고용자는 생산물의 가격과 설비비용을 계산하여 자기 몫의 限 界生産物의 화폐가치가 지불해야할 화폐임금과 동등하게 될 때까지 雇 傭을 늘리게 됩니다. 이때에는 각종 노동의 실질임금은 사회에 대한 한 계생산을 측정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읍니다. 경제학교수의 급료는 사 회에 대한 그의 공헌을 잰 것이고 쓰레기꾼의 임금 역시 그 공헌을 잰 것입니다. 물론 경제학자에게는 매우 慰安이 되는 주장입니다만 이것 역시 循環論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한계생산의 尺度는 임금 뿐입니다. 요컨대 분배이론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 리들 경제학자는 일반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제에 대해서 해답할 아 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 Joan Robinson 논문. {경제이론의 제2의 위기} 전후 세계를 움 직인 문제논설 신동아 1979년 1월호 별책부록)

***주2)***
Galbraith 는 그의 풍요한 사회( The Affluent Society)에서 동일한 제안을 하고 있다.
" 老年層과 若年層을 노동으로부 터 풀어주는 외에도 노동력 전부를 항시 사용할 필요도 없을는지 모른다. 이 가능성은 20장에서 논구했다. 재화의 限界緊要性이 낮다면 노동력 중의 한계적인 1인 혹은 백만인을 고용하는 것의 긴요성도 낮다. 나아가 그와 같은 여유가 생겨나게 되며 는, 우리들은 경제활동의 수준을 경제운영을 원활하게 하는 데 이용가 능한 통제를 실시하기에 훨씬 적합한 수준에까지 접근시킬 수 있는 것 이다. 그리고 그런대로 만족하다고 생각되는 경제활동의 폭을 넙히는 것에 의해 인플레이션의 위협과 이에 따르는 사회적 均衡에 대한 항상 적인 위협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조치 를 취하는 데에는 收入源으로서 生産을 대신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더구나 그것은 充分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의 논리와 도 완전히 일치한다. 그것은 또한 保守主義者조차도 사실상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플레이션보다는 실업이 낫다고 하는 생각을 언 제나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그러한 생산의 상실을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의미한다. 그렇다면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주더라도 보수주의자가 심하게 떠들어 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들 비생산자가 실업을 해서 만들지 않는 물건을 그렇게 아깝다고 생 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 종래의 생활수준에 가까운 것을 유지하게 위해 먹거나 입거나 그 밖에 필요로 하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도 우리들 은 아깝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J. K. 갈브레이드 저. {풍요한 사회}. 최광열 역. p. 306 - 307 )

***주3)***
Erlich Fromm은 그의 여러 著書에서 一貫되게 동일한 제안을 하고 있다 " 필요한 것은 인간이 품위를 가지고 살 수 있는 토대가 될 소득인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은 소득의 차이가 인생의 經驗의 차이를 유도하 는 선을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될 것 같다.....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 이 얼마나 많고 더 적으냐 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느 점에서 소득의 量的 인 차이가 인생경험의 質的인 차이로 변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점을 찾아내는 게 문제이다. 말할 것도 없이 社會保障制度라하면 예를 들어 지금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도로는 유지되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는 <普遍的 生計保障>의 단 계까지 확대되야 한다......간단히 말해 어떤 '이유'없이도 모든 시민 은 최소한의 생계비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생계비지급은, 어떤 사 회적 의무든 거부하는 신경증적 태도를 유발하지 않도록 일정시한으로 , 예를 들면 한 2년 간으로 제한되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空想的인 제안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보험제도 역시 백년 전 쯤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幻想的인 생각으로 보였을 것이다."
(E. 프롬 저, {건전한 사회} 김병익 역. p.309-310)

" 몇사람의 경제학자들이 그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年間保證收入(a nnual guaranteed income)' --때로는 逆所得稅(negative income tax)라 고도 불리어지는 것 -- 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연간보증수 입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反論과 대결해 가지 않으면 안될 것인데, 그 반론이란, 원래 인간은 게으른 자이므로 만일 일하지 않으면 굶어죽게 된다는 원칙이 폐지된다면 그때에는 인간은 일하기를 원치 않게 될 것 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사실상 잘못된 것이다. 압도 적으로 많은 증거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원래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너 能動的인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게으름은 일종의 病理 的인 徵兆이다."
(E. 프롬 저. {희망의 혁명} 최혁순 역. p. 188. 190 )

"<오늘날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사회의 수많은 害惡은 年間收入을 보장해 줌으로써 없어질 것이다.> 이 생각의 핵심은 모든 인간이 그가 노동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굶주 림에서 벗어나고 주거를 가질 絶對的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데 근거한 다. 그들은 生存을 유지해 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이 받을 필요도 없지만 그것보다 적게 받아서도 안된다....... 대규모적인 福祉 官僚體制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현재의 비용과 그 리고 신체와 정신의 질병, 범죄, 마약중독(이 모든 것은 강제와 권태에 대한 여러형태의 저항이다)을 다루는데 드는 비용을 고려해 본다면, 필 요한 사람에게 일정액의 年收를 보장해 주는데 드는 비용이 이러한 사 회보장체제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적을 것으로 짐작된다." (E.프롬 저. {소유나 삶이냐(To Have or To Be)} 김진홍 역. p.228- 229)

***주4)***
이러한 경우 인간은 連帶所得을 기반으로 하여 自我實現을 통 하여 생산에 이르고 利潤은 이미 목적이 아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러한 생산의 價格은 자본주의적 시장의 가격과는 전혀 다르게 될 것이 다. 여전히 수요와 공급이 결합되지만 가격이 생산을 지배하는 것이 아 니라 인간의 자아실현과 인간의 연대가 생산과 소비를 좌우하게 될 것 이다. 자아실현을 위하여 일하고 자아실현을 위하여 소비하며 情報가 생산과 소비를 통합하게 될 것이다. 시장소득이나 富의 蓄積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원의 非效率的 배분과 낭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는 생산을 계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 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생산을 계속하는 사람은 무시해도 좋은 것이다.이러한 경우에는 利潤生産이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자본 주의적 시장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時代的 集合表象 으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의 力動性의 解放이 어떠한 성질의 것인 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시대에는 그러한 과감한 실험 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연대소득은 생산력의 제약하에서 최소한의 生計費에 그치게 될 것이다. 결국 연대소득의 크기는 인간의 정신적(精 神的) 물질적 진보(進步)의 수준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