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사업(事業)의 기동기제(機動機制)

1. 이기심(利己心)과 이윤동기(利潤動機)

사회를 존재적(분리독립된) 개인(個人)의 집합으로 볼 때, 개인의 실 천이 어떻게 야기되는가 하는 질문에 가장 명쾌한 해답은 모든 인간은 이기적(利己的)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은 부정될 수 없 는 사실이다. 설사 인간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더라도, 이타적 기동(機動)을 사회의 기초로 삼는 것을 불가능하고 일 종의 환상(幻想)이다. 사회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 기동을 전제로 하 여 구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근대 자본주의 역시 인간의 이기적 행위를 전제로 하여 형성되었다. 모든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기적 행동의 결과 사회전체적으로 선(善)이 창출된다면 그러한 체 제는 참을 수 있는 체제일 것이다. 문제는 개인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고 하여도 사회전체적으로는 그것이 선한 거시적(巨視的) 결과에 이르 고, 그리하여 사회가 발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즐거운 해 답을 제공한 것이 고전경제학이었다.

개인의 이기적 목적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체제적 모습을 하고 나타 나는 것이 이윤동기(利潤動機)이다. 아무리 이기적인 것을 사회의 기초 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그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절도나 강도 살인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윤을 통하여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 도록 현실장(現實場)의 논리가 규제성을 발휘하는 것이 자본주의인 것 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윤을 추구할 때, 그러한 행동들 은 시장의 가격기구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경제전체의 생산은 향 상되고 물질적으로 풍요(豊饒)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 실에서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일한다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목적없이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사회에 기여(寄與)하는 결 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이고 자 본주의의 신화(神話)이다. 그리고 이것이 노골적인 이윤동기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이윤동기를 부정한 관리사회주의의 실패는 이러한 자본주 의의 이데올로기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사회주의자들에게 는 자본주의자들의 진부(陳腐)한 주장이 이제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기초하는 이윤동기의 정당성으로서 자본가는 이윤을 취득하는 동시에 손실의 위험을 부담한다는 사실이다.1)

그런데 연대체제(連帶體制)에 있어서는 화폐적(貨幣的) 이윤은 자본 가에게 귀속(歸屬)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이윤동기를 부정하는 것인 가? 그렇다면 연대체제에서는 기업가가 기동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화폐적 이윤이 자본가나 기업가에게 귀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산의 동기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닌가?

2. 기업가 정신

산업사회(産業社會)에 있어서 생산은 농업사회와는 다르다. 농업사회 에 있어서 생산은 자연으로서 주어져 있는 토지에 식량을 생산하기 위 하여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있어서 생산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단 순한 결정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일 수도 있 고 다르게 생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산업사회에 있어서 생산은 인간이 생산한 자본시설을 투입하는 것이며, 또한 많은 원료를 투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산 자체에 많은 비용(費用)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것 은 농업사회에서는 불필요한 것이다. 동시에 생산과정은 인간의 노동을 조직(組織)하고 조직을 형성하고 유지하고 지휘하는 것이다. 또한 생 산은 생산된 상품이 반드시 판매된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으며 판매(販 賣)를 하는 것도 생산자의 임무이다. 생산된 물품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생산물의 선택, 비용의 투입, 조 직의 관리, 판매를 통한 실현 등 이 모든 것들은 농업사회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과정이다.

산업사회에서 생산을 위하여 자본을 투입하고 비용을 지출하며 그리 고 불확실한 판매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이에 따른 모든 위험(危險)을 기 업가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과 기업 가가 부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기업가가 부담하는 것은 미시적 차 원의 문제이며 국가가 부담하는 거시적 차원의 문제이다. 개인으로서 기업가가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그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의하여 사회전체적으로 위험은 분산(分散)되고 상쇄(相 殺)된다. 그리고 사회는 실퍅자가 아니라 성공자(成功者)들에 의하여 진 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실패한다면 모든 국민의 삶이 그 실패를 떠 맡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의 성공에 따르는 사회적 제가치를 획득하 기 위하여 생산의 실패에 따르는 모든 위험(危險)을 부담하고 진력(盡 力)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그것은 이른바 '동물적 혈기(動物的 血 氣)'에 가까운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합리성(合理性)을 넘어서는 것이 다. 개인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사업을 창업하고, 그것을 성장시키 는 것을 통하여 개인적으로는 자기성취를 이룩하고, 적절한 사회적 지 위를 얻으며, 사회적으로는 부(富)를 창출하고 고용(雇傭)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寄與)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생산은 원료와 자본 그리고 노동을 투입하면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 이 아니다. 이러한 물질적 존재적 관계를 넘어서는 정신적 차원으로서 사업의 기동기제말로 경제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적인 경제체제를 추구한다면 사회를 기계적으로 재조립(再組立)할 것이 아니 라 인간의 기동의 원천인 정신적인 동기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2) 이러한 차원에 설 때 산업사회에 있어서 기업가 정신(企業 家 精神)은 중요한 것이다. 진정한 사업은 개인이나 집단으로서의 사업 주체의 창조(創造)이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창조이면서 동시에 수 많 은 대중들의 물질생활에 대한 기여이다. 이러한 사업주체의 정신과 활 동을 논외로하고 경제를 규정할 수 없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단순히 이윤동기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단순히 화폐적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 정신은 일종의 자아실현(自我實現)의 동기이다. 기업가정신은 이윤 이외에 인간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한 원천 이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한겠다는 연대의식(連帶 意識)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것이 자본주의에서는 다만 이윤동기로 나 타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폐적 이윤만이 그 성공과 실퍅의 척도(尺 度)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기적 동기라 하더라도 기업가 정신을 소유 소득(所有所得)에 대한 동기(動機)와 구별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이 다. 기업(企業)의 활동과 정신은 사채업자(私債業者)의 활동이나 정신 과 다른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경제적 생산의 과정을 창조하고 조직하 고 운영하는 것이다. 부의 창조와 무관한 사채업자나 주식 투기꾼 또 는 부동산업자, 주식배당 생활자, 이자생활자의 활동과 다른 것이다. 이러한 사업자 역시 이윤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업가 정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회주의 체제에 있어서 자본주의 기 업의 사업주체와 같은 정신과 활동이 있다면 그는 당연히 찬양받을 것 이다. 자본주의 기업가에 대하여 이윤을 논외로 한다면 마찬가지로 그 는 찬양받아 마땅할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그날 그날의 자금을 조달하고, 그달의 임 금을 지불하고, 새로운 거래선을 트고, 제때에 맞추어 생산을 하고 이 를 판매하는 등의 현실(現實)의 생생한 과정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단 순히 노동이나 자본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기업 을 경영하는 것은 결코 자본의 대가나 착취의 개념 속에는 포함될 수 없는 생생한 인간적 삶이다. 그러한 삶에는 인간의 성취욕이나 삶의 의 미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 많은 측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3. 이윤동기와 기업가 정신

연대기업에서의 화폐적 이윤은 자본세로 연대부문에 흡수되고 사내 유보로 남겨지는 것 이외에는 노동자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화폐적 이 윤이 기업가에게 직접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연대체제에 서 기업가 정신은 화폐적 이윤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에 있어서도 기업가는 화폐적 이윤소득만이 유일(唯一)한 목적이 아니 다. 또한 이윤이 기업가 정신의 본질적 요소도 아니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전문경영자(專門經營者)도 충분히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전문경영자의 일반화는 화폐적 이윤소 득이 기업가 정신의 본질적 조건(條件)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다. 이윤을 소유소득으로 획득하는 자본가들은 현대에는 대부분 경영 일선에서 물러서 유한계급(有閑階級)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들은 복잡 한 경영적 문제로 고뇌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자를 선임하고 2선에서 즐 거운 인생을 꾸리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것은 반대로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화폐적 이윤 이외에도 인간을 기 동(機動)시키는 충분한 동기가 따로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의 사회심리적 의미는 단순히 결산이후 비 용을 공제하고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화폐로 표현되는 이득 이상의 것이 다. 그리고 사업가가 위험을 부담하고 사업을 하는 것은 이와 같은 화 폐이득을 얻는 것만이 목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윤이 생성되고 유 지되는 경제적 사회적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地位)와 삶의 가치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본을 가지고 사채나 투기를 택하 지 않고 생산적 사업을 택한 사람은 자기 인생의 의의를 그곳에서 찾고 자 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단순한 이윤의 수취자가 아니라, 사업의 경 영자이며, 조직의 권력자이며,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며,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가치에 대한 유인(誘引)은 사채 업자나 자산시장의 참여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업가 정신 이 사채업자나 투기업자와는 달리, 화폐적 이윤 이외의 동기가 더욱 결 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한 자본으로 동일한 이윤이 가능한 경우에도, 그 이외의 모든 측면에 있어서는 실물적 생산을 택한 기업가와 화폐적 자산으로 화폐소득을 얻는 자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윤이나 소유소득이 동일한 형태의 화폐적 소득이라면, 이것은 그 이 외의 측면이 기업가 정신에 더욱 결정적(決定的)인 동기라는 것을 말하 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이라는 조직에 대한 헤게모니와 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기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성취동기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단순한 화폐적 이윤이 아니라, 조직적, 사회적 동기와 자아 실현 동기가 오히려 기업가 정신의 본질적인 기동의 기제이다.

4. 연대체제에서의 기업가 정신

연대경제체제에 있어서는 화폐적 이윤이 단순히 부정되는 것이 아니 라 모습을 달리하여 기업가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있어서 화폐적 이윤 이외의 모든 기동의 기제는 그대로 살아있다. 오히려 더욱 정당성(正當性)이 주어지고 어떤 측면에서는 강화되어 있다.

첫째, 연대기업의 기업가는 화폐형태로 이윤을 취득하지 않지만 그 가 소유하고 신탁한 연대매체(連帶媒體)의 가치증가(價値增加)에 의하 여 이윤을 연대매체의 차원에서 취득한다. 말하자면 그는 이윤을 화 폐매체로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매체로 취득하는 것이다. 연대매 체는 화폐로 전환할 수 없어 즉각적으로 구매력(購買力)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가 기업을 확장하려고 할 때에는 투자자금의 동원에 대한 권 리가 된다. 연대매체는 소비자금은 될 수 없으나 생산적 자본(資本)으 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나아가 그가 축적하고 있는 연대매체 는 그의 연금소득(年金所得)을 증가시킴으로써 그의 미래의 생활수준 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기업의 기업가는 오늘의 부가 아니라 내일의 삶과 부를 축적하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연대매체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매체만이 아니라 정치적(政治的) 가치매 체이다. 그는 축적되는 연대매체를 통하여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과 지 위를 증대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기업가는 그 기업의 성과에 의하여 재평가되는 자신의 연대매체를 통하여, 기업손실의 위험을 부담하고 기업이윤을 이익을 향유하며, 조직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잠재적 헤게모니 자산을 축적하며, 경영일선에 물러나고 은퇴시에 자신의 삶을 보장하는 연금소득의 근원이 된다.

둘째, 연대경제체제에 있어서 연대기업가는 그 기업의 조직적(組織 的) 권력자이다. 그는 기업조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으며 기업은 그의 헤게모니하에서 움직인다. 그의 기업의 규모가 커질 수록 그의 헤 게모니는 증가한다. 이러한 기업조직에 대한 헤게모니 그 자체(自體)가 기업의 동기이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경제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노 동자가 아니면 기업가이다. 기업가가 자신에게 이윤이 귀속하지 않는다 고 하여 즐겨서 노동자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폐 이윤이 자신에게 귀속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조직의 헤게 모니권자이며 권력자이며, 노동자와는 전혀 다른 차원(次元)에서 생존 하는 것이다. 그가 능력이 있다면 그는 여전히 기업가로서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에 대한 헤게모니 그 자체가 사회적 가치이다. 화폐적 소득만이 인간을 기동시키는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사회적 권 력으로서의 조직헤게모니 역시 인간을 기동(機動)시키는 중대한 가치 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부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권력도 추구한다는 평범한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다. 권력에의 동기 역시 부에의 동기 이상 으로 치열(熾烈)한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는 이윤의 사내유보(社內留 保)와 기업의 성장에 의하여 증가한다. 사내에 유보된 이윤은 직접 기 업가 개인에게 귀속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의 헤게모니하에 있는 것이다.

세째, 연대경제체제에 있어서 기업헤게모니는 단순히 그 조직의 가 치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지위(社會的 地位)이다. 그는 기업 외부 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간으로 규정 되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존재에서 연유(緣由)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關係)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이아몬드를 부로 규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을 그렇게 인식해 주기 때문이며, 다른 모든 사람에게 다이아몬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무인도에 버려져 자란 사람에게 있어서 다이아몬드는 아름다 운 돌멩이와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업가는 사회적으 로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기업가라는 사회적 지위로 인식(認識)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기업가를 추진(推進)하는 하나의 원 동력인 것이다. 그가 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기업가는 여전히 기업가 인 것이다. 오히려 검소(儉素)한 기업가는 사회적으로 더욱 존경을 받 을 것이다. 그것이 정당성(正當性)과 도덕성이 더욱 고양(高揚)된 기업 가의 위상(位相)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과 존경이야말 로 기업가의 동기이다.

네째, 연대기업가(連帶企業家)는 기업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가 치를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연대기업가는 생산의 결과로서 의 화폐적 부(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과정, 경영의 과정 그 자체에 내재(內在)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훌륭한 기업을 창 조한다는 것은 건축가(建築家)가 훌륭한 건물을 건축하는 것만큼이나 보람을 가지는 일이다. 건축가는 그 건물이 자신이 소유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는 그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 함으로써 그 대가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 니다. 건축가는 그 훌륭한 건물을 자신이 설계하고 자신이 건축하였다 는 사실, 그것이 사회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대기업가는 그 기업이 자신의 소유이거나 그 기 업을 수단으로 하여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보람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 그러한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며, 사회 관계 속에 위 차한다는 사실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기업가에 대한 자본주의적 오염(汚染)을 제거한다면, 기업가 자체가 물욕(物慾)에 빠진 저속한 인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기업가는 자본주의적 물욕이 아니라 그가 기업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주장한다. 연대체제는 이와 같은 기업가에 대하여 자본주의적 오염을 제거해 주 는 것이다. 그것은 생산과 고용, 창조와 헌신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함 으로써 성취감을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이러한 자아실현과 성취감이 연 대체제에 있어서 사업의 기동기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가치, 모든 동기는 이윤(利潤)을 획득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다. 연대기업에서도 이윤을 올리지 못한다면 기업가가 추 구하는 조직헤게모니, 사회적 지위, 그의 연대매체, 그의 자아실현은 수포(水泡)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이윤이 화폐의 형태로 기업가 자신에 게 귀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와 타인에게 귀속하는 이윤을 취득하기 위하여 매진(邁進)하는 사 람이 연대체제의 기업가인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 있어서도 여전 히 이윤동기는 살아 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여로서 이윤동기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 있어서 이 윤은 기업가의 사회적 기여의 지표이며, 그럼으로써 기업과 기업가는 연대적 삶의 관계에 놓여지는 것이다.

4. 자본헤게모니와 경영조직(經營組織)

우리는 이제까지 연대체제에서 화폐적 이윤이 기업가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사업의 기동기제에 대하여 논의하여 왔다. 그러나 연대체제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제적 전환이 있다. 하나는 자본헤게모 니가 약화(弱化)되고 연대화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연대체 제에서는 이미 기업가가 아니라 경영조직(경영조직)이 사업의 일반적 주체(主體)라는 점이다. 이것은 근대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 제적 전환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의 역사적 흐름이기도 하다.

우선 연대체제에서는 사업이 자본헤게모니에 의하여 주도(主導)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생산의 다른 요소 들을 조직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즉 자본을 가진 사람이 자본을 투자 하여 공장시설을 건설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기업조직을 형성하고 원 료를 구입하여 생산에 투입하고 제품을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 리하여 모든 생산의 요소들을 자본에 의하여 조직될 수 있었고 자본의 소유자에 의하여 지배(支配)당했다. 이것이 자본헤게모니이다. 그러나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자본은 연대화(連帶化)되어 있으 며,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에 있 어서 자본헤게모니는 약화된다. 사람들이 자본이 없어서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업에 관한 아이디어와 지식과 경영능력과 정보가 없기 때문에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에 있어서 전략 적(戰略的) 자산은 사업에 관한 지식과 경영능력과 아이디어이다. 어 떤 사람이 특정한 사업에 관하여 지식과 기술과 아이디어와 경영능력이 있다면 연대체제의 투자기관(投資機關)은 그들에게 자본을 배분한다. 이러한 점은 최근의 산업사회의 변화에 의하여 요구되는 경향이다. 현대의 생산은 자본을 투입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 은 대단히 많은 지식과 정보와 우수한 경영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 여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이러한 지식과 정보와 경영능력이 없이 자본만 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기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시장(資産市場)에 참여하여 소유소득을 획득한다. 이것은 자본만으로 사업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이념적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의 복잡화(複雜化)와 지식화(知識化), 정 보화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연대경제체제는 이 러한 경향을 일반화하고 공식화한다. 그리하여 자본은 연대화하고 경영 은 전문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자본주의의 생산에 있어서나 연대체 제에 있어서나 이윤(利潤)의 귀속과 사업의 기동기제(機動機制)는 분리 (分離)되는 것이다. 연대체제는 다만 이러한 현실을 체제화한 것이다. 다음으로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이미 개인적인 기업가가 아니라 경 영조직이 사업을 주도한다. 연대체제는 개인의 사회가 아니라 조직(組 織)의 사회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서의 사업의 주체는 연대매체를 결집하여 연대자본을 배분받은 조직으로서의 기업가들이다. 개인적 기 업가는 소규모 기업으로서의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취한다. 주식회사 와 같이 연대기업의 수준에 이르러면 이사회(理事會)를 형성하고 있는 조직이 기업을 주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이 사진이 얼마의 연대매체를 동원하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 다. 오히려 그의 경영능력에 대하여 대중이나 투자기관이 어떻게 평가 하고, 그리하여 그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대매체를 신탁하고, 화 폐자본을 배분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자본헤게모니의 약화의 다른 측면이다. 조직이 경영을 주도하는 경향은 현대자본주의에 서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현대자본주의의 중요한 기업과 중요한 생산 은 이미 개인적 기업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현대의 생 산은 수많은 전문화된 지식을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고 수많은 정보들을 종합하고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을 조직하고 창의성을 발휘시키고 움직이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일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법인 기업은 조직으로서의 경영진(經營陣)에 의 하여 주도된다.3) 그리하여 일본(日本)과 같은 경우에는 자본주의 체 제하에서 개인 기업가나 기업의 대주주의 헤게모니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조직으로서의 경영진이 있을 뿐이다. 주식조차 은행을 비 롯한 다수의 기업이나 기관들이 서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의 소 유를 통한 자본헤게모니는 거의 기능하지 못한다. 연대체제는 이러한 역사적 경향을 현실화(現實化)하고 일반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헤게모니가 개인으로부터 조직으로 옮겨질 때 개인적으로 귀속하는 화 폐적 이윤이란 사업의 기동기제와는 이미 무관한 것이다. 조직으로서의 경영진은 이미 전문경영자이다. 그들은 화폐적 이윤이 자신들에게 사적 (私的)으로 귀속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업의 위상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조직적 사회적 위상, 그리고 자아실현의 동기에 의하여 움직 이는 것이다. 그들의 사업이 성공적일수록 그들이 조직적 사회적 위상 이 고양되고, 그들의 성취동기는 만족되고, 삶은 가치있는 것으로 인식 된다. 이것은 반대로 자신들의 사업의 성과가 부진할 때 자신들의 기업 헤게모니는 상실되고 자신들의 조직적 사회적 지위는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사업의 기동기제인 것이다. 연대체제는 이처럼 이 미 경제의 새로운 경향을 체제적 구조로 현실화(現實化)한 것이다. 그 것은 다만 잉여기생계층(剩餘寄生階層)으로 전락한 소유소득자를 제거 한 체제인 것이다.


***주1)***
오늘날의 조건 아래서 경제학은 그 본질 자체로부터 경제적 (節約하면서)으로 활동하고, 최대의 效率과 노동생산성을 달성하는 것 을 배운다고 하는 점에서, 경제과학의 체계 가운데 주도적인 지위를 차 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견지로부터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P. 사 뮤엘슨에 의하여 정식화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접근은 매우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우리의 제도는 이윤의 제도가 아니라 利潤 및 損失의 제도이다. 이 윤은 능률에 대한 유인으로서 내밀어지고 있는 사탕이고, 손실은 돈을 쓰는 소비자가 바라지 않는 용도에 자원을 비능률적으로 할당하는 것 을 벌하는 채찍과 같은 것이다." 라고 사뮤엘슨은 쓰고 있다. 이 定義 는 사물의 현실상태에 적합한 것이다. 分業에 기초를 둔 임의의 경제 효율(또는 비효율)의 근본적인 법칙성을 반영하고 있다. (야 빼브즈넬 저. {자본론과 페레스트로이카} 고정일 역 p. 30)

***주2)***
리카르도 학파의 효시인 라카르도는 企業家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달성하였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 로 리카르도 학파는 기업의 발전은 사실상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기업이 발전되는 데 있어서 한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資本을 적절히 공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요즈음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 들에게도 이와 똑같은 非難이 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생산문제에 접근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圖式的 경제이론은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 다. 대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교과서들 중의 하나를 보 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발견할 수 있다. 생산은 단순히 소시지를 만드는 機械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즉 한쪽 끝에서 원료, 자본, 노동 등과 같은 특정한 요소들이 투 입되면 다른 한쪽 끝에서 생산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질과 용역들을 生産要素라고 하며 생산되어 나오는 것을 생 산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기업가의 役割을 거의 고려하지 않 고 있다, 반면 더욱 人本主義的인 새로운 이론에서는 기업가와 인센티 브의 공급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기업가 정신 이론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들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 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가장 저명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며 1974년에 노벨상을 받은 바 있는 하이에크는 경제현상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회현상을 改善하기 위하여 해로운 일보다 이로 운 일을 더 많이 할려고 노력하려면 그는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결과들 을 통제할 수 있는 지식을 사회현상 속에서 완전히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말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匠人이 수공품을 만들듯이 결 과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庭園師가 식물의 성장환 경을 중요시하듯이 적절한 환경을 부여함으로써 현상을 개선하는 방 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Sven RydenFelt 저. {사회주의 경제의 위기} 김영식 조덕래 공역 pp. 39 -40)

***주3)***
기업이나 사회에 있어서의 支配力이 옮겨간 것은, 개인으로가 아니라 組織으로이다. 그리고 현대의 경제사회는, 그 목적달성을 위해 서는 자연인 보다도 월등한 集團的 개성을 조직을 통해 합성하는 노력 으로서 -- 더구나 그것에 완전히 성공하고 있는 것이지만 -- 이해하는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르는 잇점으로서는, 그 집단적 개성이 죽음을 모른다고 하는 점을 들 수가 있다. 그러한 집단적 개성이 필요하게 되 는 것은, 현대산업에 있어서는 매우 많은 결정, 더구나 중요한 결정의 <모든 것이>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많은 情報에 의존한다고 하 는 사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전형적으로 이들 결정은, 많은 사람들의 專門化된 과학적 기술적 지식, 누적된 정보 내지는 경험, 예술적 감각 내지 직관 등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고도의 기술적 설비를 사 용하는 직업적 전문가에 의해 집계되고, 분석되고 해석된 더욱 많은 정 보에 의해 誘導된다. 최종적인 결정에 있어서는, 그것에 관련이 있는 정보를 갖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계통적으로 정보가 수집된 뒤에 비로소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현대 法人企業의 발흥, 현대의 기술 및 계획화에 의해 필요하게 되 는 조직의 출현 및 資本所有者의 기업통제력으로부터의 분리에 따라 기 반을 확립하게 된 산업회사에 있어서는, 기업가는 이미 個人으로서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경제학의 교과서를 제외한다면, 일상의 대화에 있 어서도 이러한 변화는 인정되고 있다. 즉 기업의 지도력으로서는 기업 가를 대신해서 經營陣이 존재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갈브레이드 저. {새로운 산업국가} 최광열 역 p.91. 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