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경제체제의 정합성

4.1.1. 경제통합과 체제의 정합성

경제체제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은 그 체제의 내부적 요소(要素) 들이 상호간에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존 재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내부적 조화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내부적 조화 를 우리는 정합성(整合性)이라고 부른다. 정합성이란 체제의 항상성(恒 常性: homeostasis)을 유지하는 내부적 원인이다. (항상성이란 조직이나 생명체의 구성요소들이 상호간에 균형과 안정을 통하여 자신을 유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가령 자본주의가 내부적 정합성이 없다면 붕괴되어 다 른 경제체제로 변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공황은 자본주의 체제의 정합성 의 결함(缺陷)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제체제는 개인의 경제적 실천이 기동(機動)하여야 하며 동시에 기 동하는 실천들이 사회전체적으로 통합(統合)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체 제는 미시적으로는 기동의 기제이고 거시적으로는 통합의 양식이다. 통 합이란 우선 다수의 독립된 주체(主體)를 전제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이 독립성을 갖지 않고 어떠한 계획이나 지시에 의하여 완벽하게 움직인 다면 통합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한 경우에는 계획이나 지시 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또한 통합은 어떠한 사 회적 가치(價値)를 실현하는 것이다. 실현하려는 가치가 전제되지 않으 면 통합이 규정될 수 없다. 통합의 포괄적인 가치는 인간의 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의 기동은 원하는 가치를 얻는데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서 기동은 계속(繼續)되고 경제체제는 유지(維持)되는 것 이다. 어떠한 체제이든 기동의 기제에 의하여 동일한 종류의 기동이 되 풀이 되고, 그러한 기동을 통합하는 양식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 그 체 제가 유지될 수 있다. 만일 기동이 소멸하거나 기존의 유형과 다른 기동 이 야기되어 그것이 주된 흐름이 된다면 그 체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 다. 한편 기동들을 통합할 수 없거나 통합양식이 작동하지 않거나 변혁 된다면 그러한 체제도 역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상의 경제체제 들은 상당히 장기간(長期間) 그 자체를 유지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경제체제를 통털어서 지배하는 법칙이나 이론은 정립되어 있지 않다. 경제법칙(經濟法則)은 자본주의와 같은 하나의 체제를 전제로 한 경제적 논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체제를 전제로 한 경제법칙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의 현실성에 대한 문제를 기동의 기제와 체제적 정합성의 문제로 논의하는 것이다.1) 이러한 논의는 우리가 상권(上卷) 에서 규정한 철학적 집합표상에 근거한다. 2) 즉, 세계는 음양(陰陽)이 고 존재의 동일성(同一性)은 내부적 조화(調和)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4.1.2. 시장의 정합성

근대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따라서 경제체제는 시장체제로 전환되었다. 시장은 가격에 의하여 경제가 조절되고 통합된다. 이러한 가격의 자동조 절작용(自動調節作用)이 시장의 정합성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시장은 외 부의 간섭이 필요없이 스스로 자신을 유지하는 그러한 기제로 생각되었 다. 초기의 경제학은 이러한 시장의 정합성을 증명하는 것이 문제의식이 었다. 근대초기에는 봉건적 잔재가 시장을 제약함으로써 시장의 정합성 을 훼손하였다. 봉건적 특권이 시장을 제약하고 있었으며 노동시장이나 토지시장 등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당시의 이념은 봉건적 특권 을 공격하고 봉건적 제약으로부터 시장을 해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 회와 경제의 모든 측면을 시장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은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임금노동이 되었으며, 그것은 프로레타리아의 생성이기도 하였다. 토지는 신분적 특권의 수단에서 벗어나 시장거래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바로 자유(自由)의 확장이기도 하 였다. 자유화란 계약(契約)에 기반하는 시장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 의 정책 역시 시장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으며, 따라서 최소한 의 야경국가(夜警國家)가 최선의 국가였다. 이러한 집합표상의 전제는 바로 시장의 정합성이다. 시장은 자체가 스스로를 유지하며 자유와 진보 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이러한 이념을 이론적으로 뒷받 침하였다. 그것은 가격을 해명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신고전학파에 이 르러 완성되었다. 시장은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고 그리하여 경제적 진 보를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은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자유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시장의 정합성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시장은 스스 로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長期的)으로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불평등과 계급이 결국은 자본 주의를 붕괴시키게 되는 치명적인 정합성의 결함(缺陷)이라는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전통적 관점은 그것이 시장의 기동의 기제(機制)이며 진 보의 기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불평등과 계급이야말로 자 본주의 자체를 파멸로 이끄는 역사적 법칙의 근원이었다. 그것은 장기적 으로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과소소비(過小消費)로 나 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마침내 공황에 이르고, 프로레 타리아는 이러한 질곡(桎梏)을 부수고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전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시장은 장기적으로 자신을 유지 하는 정합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평등을 실 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명백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체제 자체의 붕괴를 야기시키는가 하는 것은 신념의 문제가 되었다. 시장체제는 여러차례의 공황을 거치면서도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1 930년대의 세계적인 대공황(大恐慌)은 시장체제의 정합성에 중대한 의 문을 제기하는 것이 되었다. 25 %에 달하는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 흐르 고 생산된 상품들이 팔리지 않아 누적되었다. 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명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황의 해결책에 대하여는 중요한 이론이 제기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시장체제는 완전고용(完全雇傭) 을 유지하는 점에 있어서는 정합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고용을 이룩하는 필연적인 경향은 없다는 것이다. 경제전체의 총 수요가 부족할 수 있고, 총수요가 완전고용을 유지해주는 수준에서 결 정된다는 아무런 기제(機制)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의 정합성에 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시장의 정합성의 중요한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과거의 이론에서는 그런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총수요의 부족 즉, 일반적인 과잉생산(過剩生産)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세이 의 법칙에 의하여 설명되었다. 이에 대하여 케인즈는 의견을 달리하였 다. 케인즈의 집합표상에 있어서는 저축과 투자가 이자율에 의하여 균 형되는 것이 아니었다. 투자가 국민소득을 결정하고 국민소득이 저축을 결정함으로써 투자와 저축이 균형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투자(投資)의 수준이 저축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며, 그러한 투자의 수준이 완전고 용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항상 이루어진다는 기제는 시장에는 없다는 것 이었다. 투자는 기업가의 예상에 의하여 좌우되며 예상은 항상 불안정 한 것이고, 그리하여 투자수준은 항상 불안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될 때 시장은 치명적인 정합성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은 생산된 상품의 판매도, 고용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장 의 이러한 정합성의 결함을 보정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가 되었다. 국가 는 시장이 결여하고 있는 총수요수준을 보정하기 위하여 재정정책 금융 정책을 항상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장은 이제 스스로를 유 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보정에 의해서만 자체를 유 지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4.1.3. 자본주의의 정합성

공황상태에서는 국가가 재정적자(財政赤字)를 상관할 필요없이 공공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 케인즈의 주장이었다. 국가의 적자재정지 출은 총수요의 수준을 높이고 그것이 생산을 자극하며 또한 투자를 자 극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적자재정지출은 영원히 계속될 필요는 없으 며 민간투자가 자극되면 재정지출은 필요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공황 당시의 미국에서의 케인즈의 정책은 실패하였다. 민간투자는 자 극되지 않았고 경제는 다시금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케인즈는 그것이 국가의 재정지출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케인 즈의 이론은 기존의 집합표상을 변혁하는 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케인즈의 이론은 다시금 시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3) 대공황이 세계대전(世界大戰)을 야기한 것이었다. 전쟁에 휘말린 국가는 시장을 국가의 지배하에 작동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군 수물자(軍需物資)를 생산하기 위하여 거대한 재정지출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많은 자원과 노동이 군수물자의 생산에 투입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과거의 생활수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제 는 전쟁의 와중에서 회복되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정합성의 결함 을 케인즈이론이 해명한 것처럼 보였다. 전후에 케인즈의 이론은 이제 정통파(正統派)가 되었다. 그리고 전후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호황(好 況)은 그것을 더욱 확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본주의의 정합성의 결 함은 해명되었고, 국가가 그 결함을 보완하면 자본주의체제는 번영(繁 榮)을 구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60년대의 번영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부 터 자본주의는 다시금 새로운 증세(症勢)를 나타내고 있었다. 인플레이 션과 실업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자본주의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과거의 불황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부족하여 상품이 팔리지 않고 실업이 증가하며 물 가수준이 하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일반화되어 물가는 하락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정통파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증세는 총 수요의 과잉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총수요에 관한 억제정책 을 취하여도 경제는 여전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실업을 증가시키고 불 황의 징조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의 정합성의 구조는 기존의 집합표상에 의하면 이렇게 규정될 수 있다. 그것은 두 개의 시장과의 관계로 규정된다. 하나는 여 러 종류의 시장을 포괄하는 실물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시장(貨幣市 場)이다. 화폐시장은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즉 자본시장, 자산시 장, 금융시장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국가가 재정지출을 통하여 투자에 관여한다. 이와 같이 화폐시장과 국가를 포함한 부문에서 투자가 시장 으로 유입(流入)된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수준에 의하여 국민소득 수준 이 결정되며 그에 따라 저축이 화폐시장으로 유출(流出)된다. 이것이 새로운 정통파가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이다. 그 인과관 계는 투자의 주동성(主動性)에 의하여 규정된다. 즉 투자가 국민소득수 준과 저축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으로 화폐가 들어오는 것을 유입(流入)이라고 부르고 시장에서 화폐가 나가는 것을 유출(流 出)이라고 부른다. 투자와 국가의 조세는 유출이고 저축과 국가의 재정 지출은 유입이다. 이것을 도시하면 다음 그림 4.1.3. 과 같다.

+------------------+ +------------------+ | | | | | | | | | +--------------+ | | <--유입 (투자) 국 가 | | +--------------+ | | 시 장 | | | | +--------------+ | | 유출(저축)--> 화폐시장 | | +--------------+ | | | | | | | | | +------------------+ +------------------+
그림 4.1.3. 자본주의 체제에서 유입괴 유출의 구조.

위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관한 집합표상에 의하면 투자수준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것은 투자수준의 불안정성만 보 완될 수 있다면 시장체제의 정합성은 완전(完全)하다는 결론이 된다. 이것은 경제학에 있어서 오래된 전통(傳統)의 재현이다. 초기의 경제이 론은 국가가 전혀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시장의 정합성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국가가 투자수준만을 유지해 주면 나머지 문제는 시장의 정합성에 의하여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것 이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정합성에 관한 기존의 집합표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집합표상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못된다.


***주1)***
근대의 과학적 집합표상은 경제에도 역시 자연의 법칙과 같은 經濟法則이 작용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수요와 공급의 법칙, 가치법칙,세이의 법칙, 유효수요의 법칙 등 많은 경제적 이론들이 법칙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경제법칙의 전제를 이루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行爲의 傾向이다. 그리고 경제법칙이란 인간의 미시적 행 위경향이 상호작용을 거쳐 산출하는 거시적 결과의 인과관계이다. 그리 하여 모든 경제법칙은 인간의 행위경향에 대한 假說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경향이란 완전히 자연법칙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행위경향은 經濟體制에 의하여 달라진다. 동일한 本能도 다 르게 표현되는 것이다. 경제법칙이 개인의 행위경향과 무관한 것으로 규 정할 수록 경제법칙은 絶對的 인과관계로 되고 奧妙한 것이 될 수 있으 나, 그것은 非現實的인 법칙이다. 반대로 인간의 행위경향에 더욱 현실 적으로 접근할 수록 경제법칙은 복잡해지고 절대성을 상실한다. 그리하 여 우리는 경제법칙을 논의하지 않고 체제의 整合性을 논의한다. 체제를 초월하는 경제법칙이란 비현실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유용성이 없는 것이 다. 따라서 체제의 문제는 불변의 경제법칙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의 정합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주2)***
체제의 정합성의 여부에 대한 논의의 論理的 구조는 假定에 의 한 추론의 결과가 최초의 가정을 支持할 때 그 체제는 整合性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추론의 결과가 최초의 가정과 背馳될 때 그 체제는 정합 성이 없다. 가령 어떠한 체제에서 소득이 평등하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 에서 수요구조를 추론하고 그에 대한 공급구조가 추론되고 그 공급구조 가 야기하는 소득분배구조가 평등한 소득분배를 의미할 때, 그 체제는 소득의 평등성이 維持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의 평등이 유지되는 점에 있어서는 그 체제는 정합성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평등한 소득분배를 가정하여 추론의 결과로 도출되는 결론이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의미할 때, 그 체제에 있어서는 설사 일시적으로 소득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 졌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평등은 瓦解될 수 밖에 없는 성 질의 것이며, 그리하여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합성이 缺如되어 있는 것이다. 이같은 논의는 존재가 자신을 유지하는 恒常性의 원인이 내부 적 요소의 상호조화에 있다는 우리의 철학적 집합표상에 의지하고 있다. 그리고 체제의 항상성을 존재의 同一性으로 규정할 때 존재의 정합성이 바로 체제의 정합성인 것이다. 한편 체제가 다른 체제와 관계에서 자신 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문제, 즉 환경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문제는 전략의 문제로 된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는 전략의 문제로 제2권 하권에서 논의한다.

***주3)***
생각컨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의 나의 이론을 실 증할 수 있는 대실험에 필요한 만큼의 대규모 지출을 계획하는 것은 전 쟁이 아니고서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다.(케인즈) (new Republic, July 29. 1940. 都留重人 編. 현대자본주의 재검토. p. 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