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연대체제에서 경제적 정의와 안정성

4.3.1. 분배의 정의(正義)의 문제

분배의 정의는 연대경제체제가 추구하는 이념(理念)이다. 그리고 그 것은 동시에 경제적 안정성과 정합성의 한 요소이다. 인간을 계급으로 분열시킬 때 가난한 계급의 분노(憤怒)가 사회를 위협하고 부유한 계급 의 자산가치(資産價値)의 유지행위 자체가 경제적 불안정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분배의 정의는 이념으로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 도 필요한 것이다. 분배의 정의의 문제는 우선 경제적 가치의 분배에 있 어서의 평등의 문제이다. 화폐경제에 있어서는 실물상품이 직접 분배되 는 것이 아니라 화폐소득이 분배된다. 사람들은 화폐소득을 지출함으로 써 실물상품을 취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분배의 평등의 문제는 화폐소득 의 문제가 된다.

시장체제를 전제로 할 때 화폐소득의 평등은 소득유형의 문제이다. 같은 화폐소득이라도 노동소득(勞動所得)과 자본소득(資本所得)은 소득 유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평등과 정의의 본질이다. 노동소득은 인간노동에 대한 대가임에 대하여 자본소득은 투입된 자본을 기준으로 하여 계산되는 소득이다. 가령 10억원을 투자하여 100명의 노동자를 고 용하는 기업에 있어서 취득하는 화폐소득은 전혀 다르게 계산된다. 노동 자 1인에 대한 보수가 월 50만원이라고 하자. 노동자는 물가수준에 비추 어 월 50만원이면 기꺼이 노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이자 율이 월 1.0 % 라고 할 때 고용주는 월 1,000만원 이상의 화폐소득을 예 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고용주와 노동자의 소득의 격차, 즉 50만원과 1,000만원의 격차는 정의로운 분배가 아니다. 자산시장이 존재한다면 기 업을 하지 않고도 10억원을 가진 사람은 은행이나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여 최소한 월 1,000만원 이상의 화폐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10억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 을 수 없다(따라서 이것은 자본가의 인간적 품성의 문제가 아니다). 노 동소득자와 자본소득자는 소득을 계산하는 방법과 행동하는 방법이 다 른 것이다. 분배의 정의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부유한 자에 대한 분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자산(資産)에 의지하게 하는 체제적 구조의 문제이다.

경제적 평등은 이윤소득과 재산소득을 부정하며 화폐소득이 노동소득 의 형태로만 분배되는 것이다. 노동소득의 격차(隔差)가 경제적 평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윤소득을 부정하는 것은 생산의 동기 (動機)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재산소득을 부정하는 것은 저축결집 과 투자배분(投資配分)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이 경제적 평등, 분배의 정의의 문제를 둘러싼 핵심적 관계구조이다.

4.3.2. 정의(正義)와 경제체제

평등의 문제에 대한 알려진 대답의 하나는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 義)이다. 그것은 경제적 평등을 위하여 이윤소득과 재산소득을 부정함 으로써 야기되는 모든 문제를 국가권력(國家權力)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윤소득과 재산소득은 형태를 달리하여 국가가 취득하고 투자와 생산을 국가가 담당하는 것이다. 시장은 생활필수품의 분배에만 제한적으로 용 인되며, 그것은 완전한 시장이 아니라 단일한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안(代案)을 채택하지 않는다. 권력이 경제적 헤게모니 를 장악하는 것은 삶의 전반적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관리사회주의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사잇길이 존 재하는가? 이미 제출되어 있는 몇가지의 사잇길이 있다. 하나는 사회민 주주의 체제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행되는 국가의 정책(政策)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 책이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의 양보(讓步)가 계속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이 생산동기를 상실하지도 않고 분배에 있어서 계속적인 양보가 가능한가 하는 데에 그 정책의 성패가 달려있 다. 다른 하나의 대안은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자주관리경제체제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의 경제체제이다. 그것은 결국 책임있는 경 영주체(經營主體)를 확립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비효율적인 관료적 통제 를 폐지하지도 못한다. 또 다른 하나의 사잇길은 경제를 시장부문과 국 가부문으로 양적(量的)으로 분할(分割)하는 것이다. 가령 주식시장과 금 융시장, 그리고 자산시장이 존재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당한 량의 투자재 원을 국가가 흡수하고 국가가 배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기업이 존재 하면서 한편으로는 실물생산의 상당한 부분을 국가기업이 담당하는 것 이다. 이러한 양적인 분할은 기본적으로 서구자본주의의 국유화정책(國 有化政策)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양적인 분할과 종합은 자본주의와 관리사회주의의 장점(長點)을 취합할 것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단점(短點)을 취합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 평등의 문제에 대하여 자본주의와 관리사회주의의 평 면(平面)에 있는 사잇길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차원(次元)을 달리하여 가치매체의 문제에서 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화폐매체에 의한 통합양식이고, 관리사회주의는 권력에 의한 통합양식으로서 모두 평면적 차원에 있는 경제체제이다. 이러한 평면적 차원에서는 화폐매체에 의한 통합양식(시장)에서 멀어지면 그만 큼 권력에 의한 통합양식이 지배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연대매체(連 帶媒體)는 여기에 대하여 새로운 하나의 차원(次元)을 부가(附加)하는 것이다. 화폐매체는 순수한 물질적 가치매체이다. 이에 대하여 연대매체 는 헤게모니적 가치매체이다. 그리고 인간의 기동의 동기와 사회적 통 합의 양식은 물질적 가치매체만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헤게 모니적 가치매체에 의하여 규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원적(二元的) 통 합양식이 연대체제인 것이다. 우리는 두 차원의 관계(關係)에서 경제적 평등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4.3.3. 이원적(二元的) 통합양식

화폐와 연대매체가 입체적(立體的) 차원을 가진 연대체제에서 경제 적 평등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화폐소득(貨幣所得)으로서는 노동소득만이 인정된다. 그리하여 화폐소득으로서의 이윤소득과 재산소 득은 부정된다. 화폐적 이윤소득은 노동자에게 배분되거나 연대부문에 자본세로 흡수된다. 재산소득은 연대기관이 획득하는 이윤의 형태로 연 대부문에 흡수된다. 그리하여 이윤소득이나 재산소득은 화폐소득의 형 태로 개인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이윤소득이 부정됨으로써 야기되는 생 산동기는 연대매체(連帶媒體)에 대한 동기(動機)에 의하여 대체된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생산의 동기는 투자자가 자신의 연대매체를 증대시 키는 것이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경제적 위험 역시 연대매체에 의하여 부담된다. 한편 재산소득이 부정됨으로써 야기되는 저축의 결집과 투자 의 배분의 문제 역시 연대매체에 의하여 통합된다. 연대매체를 취득하 는 것이 저축이며 연대매체에 기반하는 헤게모니 과정이 투자의 배분이 다. 그리하여 연대매체가 기능함으로써 권력(權力)의 확대의 문제는 해 소되고 경제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의 모순(矛盾)은 해소된다. 이윤이나 재산의 개념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윤소득이나 재산소득은 개인에게 분 배되지 않는다. 이것은 시장(市場)을 유지하면서 시장의 소득분배기능 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는 가치매체의 차원에 있어서 2 원적 통합양식이며, 두개의 가치매체의 상호관계가 바로 통합의 양식인 것이다.

이러한 해결에 있어서 경제적 정의는 가치매체와의 관계에서 규정되 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화폐소득의 경제적 평등은 달성된다. 한 편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절대적(絶對的)으로 평등한 연대소득(連帶所 得)이 주어진다. 이러한 절대적으로 평등한 소득은 한편에 있어서는 경제적 평등의 이념을 내포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 있어서는 권력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지급되는 연대소득에 대 해서는 그 지급여부와 지급액수에 대한 권위적 결정이 필요하지 않으므 로 권력이 개재(介在)할 여지가 없다. 한편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연대 매체의 축적량에 의하여 결정되는 연금소득이 존재한다. 연금소득은 재산소득 또는 소유소득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완전한 의미의 재산소 득이 아니다. 왜냐하면 연대매체는 화폐적 의미의 재산이 아니며 화폐 적 재산으로 교환되거나 인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연금소득은 시장소득의 변화된 형태이다. 그것은 미래로 이연(移延)된 노동소득이며 과거에서 이월(移越)된 노동소득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 에 있어서의 경제적 정의의 개념은 연대소득의 절대적 평등성, 시장소 득의 격차, 그리고 연기된 시장소득으로서의 연금소득의 상호관계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경제적 정의는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 평등은 그 자체로서 정의가 될 수 없다. 한편 경제적 정의는 사회적 기여(寄 與)에 대한 공정한 보수(報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 적 기여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연대 체제에 있어서 경제적 정의는 연대(연대소득) 속에서의 자유(시장소득 과 연금소득), 자유로운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연대의 관 계, 연대속에서의 자유로운 관계야 말로 정의의 의미인 것이다. 정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의(正義)의 뜻이다. 이러 한 정의의 현실적 의미는 계급적인 불평등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경제 적 정의의 현실적 문제의식은 소득의 양적(量的) 차이가 인간의 삶의 질적(質的)인 차이를 야기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1)

4.3.4. 연대체제에서 계급의 문제

연대체제에서 화폐적 차원과 물질적 삶에 있어서의 경제적 정의는 위와 같이 이룩되지만 새로운 문제가 있다. 즉, 연대매체(連帶媒體)의 소유(所有)에 있어서의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헤게모니의 차원에 있어 서의 불평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비록 이윤소득이나 재산소득을 취득하 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라고 할 수는 없으나 여전히 기업가 계층이 존재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자본주의와 같은 거대한 재산소유자는 아니 라 할지라도 여전히 많은 량의 연대매체를 소유한 계층이 존재한다. 이 러한 문제는 계급의 문제를 제기한다.2)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기업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계층으로서 기업가 계층이 존재한다. 한편 다량의 연대매체를 소유하고 은퇴하여 다액의 연금소득을 받아 생활하 는 계층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연대체제에서는 일정한 시장소득을 획득하고 있으면서 다량의 연대매체를 통하여 사회적 헤게모니를 행사 하는 계층이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은 연금소득을 취득하고 있지 않으므 로 경제적으로는 심각한 격차가 존재하지 않지만 연대매체를 통하여 사 회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집단은 비경제적인 차원에 있어서 하나의 계층(階層)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연대체제에 있어서 계급의 문제는 기 업가 계층, 다량의 화폐저축을 소유하고 있는 자, 다량의 연대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자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특권계급도 아니며 자본가도 아니다. 나아 가 자본주의에서와 다른 점은 이러한 사람들이 분리(分離)된다는 것이 다. 연대체제에서는 하나의 사회적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적 가치를 포기(抛棄)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모든 가치는 근원적으로 노동소득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기업가가 아무리 다량의 연대매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적(私的)인 부(富)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기업가의 연대매체는 기업에 대한 헤게모니자산으로 작동하지 만 배당을 취득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는 부자는 아니다. 그는 거대 한 기업의 지배자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만 월급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은퇴하거나 자발적으로 실업을 택한 거대한 량 의 연대매체의 소유자 계층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그는 많은 양의 연금을 소유소득의 형태로 취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러한 계층은 자본주의에서의 거대한 량의 주식소유자와는 다르다. 연대 매체에 의한 연금은 연대부문으로부터 지급받으며 그 액수는 자연적으 로 연대매체의 량에 대하여 역진적(逆進的)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들은 풍족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나 거대한 양의 주식소유자 와 같이 그 연금으로 다시금 재산을 증식하거나 호화생활을 즐기는 지 배계급(支配階級)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다량의 화폐저축을 소유한 계층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화폐저축은 노동소득에서 연유 하는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불로소득을 낳는 자본으로 사용하는데는 한 계가 있다. 동시에 그들은 다른 사회적 가치를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富)와 헤게모니와 다른 사회적 가치는 상호 분리(分離)되 고 분화(分化)된다.

사회적으로 계급(階級)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 산이나 부, 또는 화폐매체나 연대매체를 소유한다는 사실 만으로는 부 족한 것이다. 하나의 계급이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첫째, 소유소득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소유소득을 획득하는 활동을 통 하여 그들의 재산을 유지하고 증대시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정치적 사회적 제약을 받기 보다는 사실상의 지배계층이어야 한다. 세째, 상속 (相續)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대체제에서는 기업가 계층이나 다 량의 화폐매체나 연대매체의 소유자에게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화폐매체는 상속될 수 있으나 연대매체는 상속되지 않는다. 연대매 체는 신탁(信託)될 수 있을 뿐이며 매매나 양도가 될 수 없다. 연대매 체의 소유와 신탁은 연대매체관리기관에서 정보로서 관리된다. 그것은 만인(萬人)에게 공개된 정보이다. 따라서 연대매체의 상속은 법률이 인 정하지 않는다면 불가능(不可能)하다. 그러나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 시키려는 것은 인간의 일반적 정감(情感)이다. 역사적으로 지배계급 은 항상 이러한 금지(禁止)를 깨뜨려 왔다. 그리하여 중요한 문제는 이 러한 상속에의 정감을 어느정도 수용하면서 그것이 계급을 형성하는 데 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연대경제에 있어서 정당한 유산의 상속 양식은 다량의 연대매체의 소유자는 그가 노후에 받는 연금을 화폐저축 으로 전환하여 화폐저축을 자식에게 상속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에 상속되는 화폐저축의 크기는 연금의 크기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이 한도에서 자산의 상속은 가능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연대매 체를 자식에게 신탁(信託)하여 자식을 기업가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 함께 그가 신탁한 연대매체는 소멸될 것이다. 상속에 대한 일반적인 정감에 변화(變化)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연대 소득(連帶所得)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식이 생존을 유지할 수 없을지 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재산상속의 정감은 재산이 사회 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질 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연대체제 에 있어서는 재산의 집합표상이 삶의 가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가치들에 삶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문 화적 집합표상(文化的 集合表象)의 변화가 상속에 대한 정감적 집합표 상을 변화시킬것이다.

4.3.5. 경제적 평등과 경제체제의 정합성

경제적 평등은 중대한 사회적 가치일 뿐만 아니라 경제체제의 정합 성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의 궁극적(窮極的)인 근원은 불평 등과 분배갈등(分配葛藤)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 농업과 공업의 갈등, 사양산업과 첨단산업의 갈등, 자산소유자와 부채부담자의 갈등, 국가가간의 분배갈등, 무역을 둘러싼 국가간의 갈등 등 일체의 경제적 불안정성은 분배적 갈등이 경제적 차원에서 야기된 것이다. 모든 경제 정책은 항상 이익을 받는자와 손해를 받는자를 갈라 놓는다. 분배갈등 은 단순히 경제적 불안정을 야기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체제 자체를 위 협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공황은 임금소득에 비하여 월등히 비대한 자산소득이 계속 누적된 이후에 그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여 야기되는 것이다.

연대체제는 한 사회내에서 그리고 국가간에 있어서 이러한 분배갈등 을 완화한다. 연대체제에서 노동자와 기업가의 대립은 자본주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기업이 수익을 내고 있는 한 임금인상(賃金引上)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임금수준이더라도 이윤이 배분됨으로써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과 이윤은 회계절차상(會 計節次上)의 개념이 된다. 임금을 과도하게 높은 수준으로 책정하면 이 윤이 사라지고 따라서 이윤의 배당이 없어질 것이다. 더 높은 과도한 수준의 임금은 자본세를 납부하지 못하고 사내유보를 할 수 없게 된다. 자본세를 납부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본을 노동자들이 탕진(蕩 盡)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멀지 않아 투자가 철퇴 (撤退)되고 그 기업은 청산절차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 는 기업가와 투쟁할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투쟁해야 할 것이다. 한편 자본세를 내지 못할 정도의 이윤성이 없는 기업을 사회적 자본으로 지 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이고 정책적(政策的) 문제가 된다.

나아가 연대체제에서는 임금소득과 소유소득간의 계급적 대립이 소 멸한다. 자산은 개인의 수중(手中)에서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 의 차원에서 누적된다. 그리하여 실물경제가 개인의 예상에 의한 자산 의 운용과 투기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개인개인의 예상에 의 한 투기적 행동에서 해방(解放)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불안정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동시에 자산가치는 일시에 붕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의 미시적(微視的) 수준에 귀속될 때에는 재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전체의 연대적 자본이 될 때에는 재산이 아니다. 그것은 경 제전체의 투자배분에 관한 정보일 뿐이다. 따라서 경제는 자산가치의 유지라는 부담에서 해방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근원적인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주1)***
개개 시민의 경제적 상황에 관한한 소득을 평준화 시킨다는 생 각은 결코 사회주의자의 뜻이 아니었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것을 실용성 이 없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필요한 것은 인간이 品位를 가지 고 살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소득인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은 소득의 차이가 인생의 經驗의 차이를 유도하는 線을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될 것 같다. 수백만달러의 소득을 가짐으로써 아무런 생각없이 어떤 변덕 이든지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하나의 값비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는 다른 욕망을 희생해야 하는 사람과는 인생의 경험이 달라지는 법이 다. 자기 고향 밖으로는 여행을 할 餘力이 없는 사람, 어떤 사치품도 사 본적이 없는 사람(사치품이란 다시 말하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말 한다)은 여행도 맘껏하며 사치품도 갖는 사람과는 다른 인생경험을 갖 게 마련이다. 그러나 약간의 所得隔差가 있다고 해도 그 격차가 일정한 선만 넘지 않는다면 기본적 인생경험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점에서 소득의 量的인 차이가 인생경험의 質的인 차이로 변화하느냐 하 는 것이다. (프름 전게서(희망의 혁명) p. 309)

***주2)***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권력이나 토지소유 등과 같이 헤게모니 장치에 의하여 경제적 가치를 생산자로부터 이전받아 상대적 으로 풍요한 생활을 누려온 집단이 항상 있어왔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認識되어 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봉건사회에 있어서는 身分이 그것을 정당화 하였으며 그러한 신분이 타인이 경제적 가치를 당연히 이전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신분이 아니라 소유권의 自由가 그것을 정당화하였다. 계급의 문제의 출발점은 고대의 奴隸制度나 중세의 身分的 階級의 문제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분적 계급의 문제는 존재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대에 있어서의 계급의 문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개념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산조직에서의 위치,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관계, 다른 인간의 노동의 가치를 점유하는 자, 사회적 富를 분배받는 양식및 그 소유하는 량 등의 관계에서 규정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생산조직을 사 실상 지배하고, 거대한 량의 부를 集積함으로써 소유소득의 형태로 거 액의 소득을 올리는 인간집단을 資本家階級이다. 연대경제에 있어서 이 러한 자본가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의 문제는 인간의 한 집단이 법률적 제도적 헤게모니 장치에 의 하여 압도적으로 불평등한 물질적 이익을 계속적으로 얻고 있고, 그러 한 집단이 정치적으로도 사회를 지배하며 계속성을 가지는 경우, 그것 이 인간과 인간을 집단적으로 적대함으로써 인간의 연대를 파괴한다는 관점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우리는 계급을 反連帶의 관점에서 파악한 다. 이러한 관점에 설 때에도 주식등과 같은 소유소득의 원천을 다량으 로 소유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함이 없이 다량의 소득으로 호화로운 생활 을 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連帶를 해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