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生産力의 解放)

경제는 인간의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반이다. '인간의 삶의 주요한 내용이 경제(經濟)가 되는(슈마하)' 그 러한 체제와 문명은 저속한 것이다. 현대가 이룩한 생산력은 모든 인간 을 경제에 대한 예속(隷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 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이러한 가능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압(抑壓)하 는(마르쿠제)' 체제이다. 마르크스에서 케인즈에 이르는 많은 서구인들 이 상상하듯이, 생산력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생산력을 인간적(人間的)인 수요(需要)를 위하여 해방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산력의 해방의 문제이고 경제를 인간 화(人間化)하는 문제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력은 두가지의 질곡(桎梏)에 의하여 억압되고 있다. 하나는 불평등한 소득구조로 인하여 구매력이 없는 빈곤한 계층에 대해서는 생산력이 활용될 수 없다. 한편 구매력이 있는 계층에 대해서 는 그들의 욕망(慾望)을 창조(創造)하면서까지 생산력을 가동하지 않으 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고용(雇傭)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자 본주의에서 생산력의 활용에는 소유소득이라는 조건이 제약으로 작용한 다. 사적(私的) 소유소득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본은 배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산력의 해방은 생산수단의 소유를 국유로 이전하는 것으로 이 루어질 수 없다. 국유화는 '무엇을' 생산하는데 생산력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권력집단이 결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권력집단은 신(神) 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수요를 적합하게 충족시키는 방법으로서 시장 이상의 정보처리기제(情報處理機制)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떠한 권위 적 존재나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삶의 내용을 규정할 수 있는 능 력이나 자격이나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에 대해 연대체제에서는 자본의 연대화에 의하여 사적 소유소득의 질곡을 제거하고, 평등한 소득과 수요구조에 대응하여 시장기제가 작동 한다. 모든 생산자가 평등한 수요에 적응하여 자신의 창의를 발휘하는 것이 생산력을 인간적 수요를 위하여 해방하는 것이다. 생산력 해방의 공급측면은 생산력과 자본이 사적 소유소득(所有所得)을 조건으로 하지 않고 모든 인간의 일반적 수요를 위하여 개방(開放)하는 것이다. 한편 생산력 해방의 수요측면은 대중의 평등(平等)한 소득분배와 그에 연원하 는 평등한 수요구조에 생산력이 대응(對應)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산력 해방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연대자본에 의한 공급이 평등한 소득과 수요에 적응 하여 생산력의 해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후적(事後的)인 것이다. 소비자주권(消費者主權)이 진정한 모습으로 행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생산된 상품이 시장에 나온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엇을 생 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생산력의 해방의 문제는 사후적 심판 이상으 로 사전적(事前的)인 사회적 합의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전적 과 정이 연대체제에서는 대중네트워크에 의한 사회적 합의(合意)의 커뮤니 케이션이다. 대중은 네트워크 조직을 통하여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그러 한 자아실현의 지향이 네트워크조직의 정보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사회 적으로 종합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의 요구와 합의에 의하여 연대자본 이 배분되고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계획과 경제정책의 새로운 의미이다. 경제계획이란 오묘한 경제적 조정이나 경제법칙의 권 위적 구현이 아니라, 대중의 원망(願望)과 요구를 조직하여 시장에 투입 하는 문제인 것이다. 연대체제는 경제정책과 경제계획에 있어서 다양한 차원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 모든 유입항목과 유출항목은 경제적 안정과 발전 그리고 인간의 삶을 고양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것들은 작은 경 제적 질곡의 조정에서 경제체제의 변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가능성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대중의 사회적 합의와 대중의 원망의 구 현이야말로 생산력 해방의 보다 높은 차원이다.

생산력의 해방의 문제는 대중의 삶을 위하여 물질적 생산력을 개방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어떠하여야 하는가 에 대한 시대적(時代的) 반성(反省)의 문제이다. 모든 인간이 물질적 가 치의 소유와 소비에 의하여 평가되고, 물질적 가치의 생산과 소비에 삶의 전시간(全時間)을 소모하는 그러한 삶과 문명이 최선의 것은 아니 다. 그것은 근대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근대사회와 그 연속으로서의 현대사회는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적이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연대 체제에서는 더 이상 물질적 가치의 더 많은 소유와 소비가 인간의 성공 의 지표(指標)도 아니고 문명적 진보의 척도(尺度)도 아니다. 경제적 평 등은 인간을 평가하고 인간을 기동시키는 데 있어서 소유와 소비의 중요 성을 감소시킨다. 인간은 물질적 소유와 소비 이상의 가치와 삶을 추구 하게 된다. 생산력의 해방은 삶과 문명의 이러한 전환에 기여하는 것이 다. 생산력 해방은 생산력을 인간의 삶을 위하여 충분하게 활용하는 문 제를 넘어서,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이다. 이제 경제는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실현에 필요한 모든 가치를 실 현하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의 구현이 경제에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삶의 주요한 내용이 경제가 아니고 인간이 경제의 중압(重壓)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경제의 진정한 목적은 인 간으로 하여금 물질적 구속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 가치의 소유와 소비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연대에 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게 된다. 그것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넘어서 연 대로서의 인간에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문명이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