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가치매체와 사회

******** 緣 ********

(1) 손님중 여성동지가 그들도 고정월급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즉,그들도 (문인들) 노동대중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한 만큼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종이와 타자기도 돈을 주고 구입하며 필요하다면 외 국유학도 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인들에게는 연금이 지불되는데 그것에 대 한 불입금 같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 중의 한 노작가는 맹인임 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지불하는 연금으로 잘 살고 있으며, 더우기 여비서까지 두고 있다는 것이다.

월급의 액수는 개개인의 성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내 생각에는 문인들 중에서 누군가가 서구에서 베스트셀러라 부르는 그런 책을 쓴다면 그 는 월급이 더 많지 않을까? 북한에서는 어떠한가?

그들 말에 의하면 북한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한다. 두 젊은 작가가 그 러한 성과를 거둔적이 있었는데 당시 수령은 그들에게 (우리돈으로 대략 환산 해서) 오천마르크가 넘는 수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령에게 다 시 반환하면서 수령이 그 돈을 다른 곳에 사용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수령은 다시 그들에게 수표를 보내면서 그들 스스로 이치에 맞는 일에 사용토록 했다 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다. 실제 일어난 일이며, 앞으로도 북한에서는 언 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북한 사람들은 돈에 연연하지 않기 대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리고 나서 두 젊은 작가들이 그 많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주택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고, 토지도 황금도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모 두 국가 소유물이다) 그리고 세계여행을 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학술여행은 이미 허용되고 있지만, 그 것도 국가의 부담이라고 한다. 결국 북한에서 돈이라는 것은 상징적 가치를 지닐 뿐이다. 그것은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우승컵과 같은 것 이다. 우승컵은 실제 가치는 그리 많지 않지만 `명예'라는 가치가 있는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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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촌 경제를 계획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면장의 말에 의하면 농작물의 종류와 양 그리고 파종시기에 대해선 정부가 결정한다고 한다. 나는 다시 물어 보았다.
"계획경제라는 것은 관료적인 지시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
"아닙니다. 그들은 농촌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고, 모두 이러한 요 구에 따라 농업경제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각 지방마다 농촌경제위원회가 있 고 다시 각 군마다 상부에서 하부까지 완벽하게 조직된 위원회가 있읍니다. 김일성 수령님은 항상 지방을 여행하면서, 각 지방의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몸소 관찰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중앙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농촌을 독립적으로 만드는 것으로서 농촌은 독자적으로 모든 생활수단을 마련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젊은이들도 공장에서 일하거나 도시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읍니다. 그래서 평양에는 이주가 금지됐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읍니다. 우선 농촌 곳곳 에 공장들이 더많이 건설되었고, 또 우리 농촌은 여러 이점을 갖고 있읍니다. 즉, 우리는 집을 갖고 있지만 도시에서는 단지 주거할 곳만 가지고 있을 뿐이 고, 주거공간도 매우 적지요. 또 우리는 집에 마당도 있으니까요! "
"실업자들이 있읍니까? "
"없읍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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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이나 농촌노동자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국가입니까? "
"물론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정형편이나 수확량에 상관없이 일정수입을 갖 고 있읍니다. 모두 똑 같이 받는거죠."
장선생은 이 수입을 손가락을 사용하면서 마르크로 환산해 주었다. 그 액 수는 낮은 것 같았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다른 곳들과 틀리다. 즉 그들에 게는 집세, 세금, 사회보장비, 교육비, 의료비 등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특 별한 요구도 갖고 있지 않다.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도 없고, 부자가 되고 싶 다는 마음도 갖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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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가 생기는 일은 없나요? "
"어떻게 그럴 수가.... 두 사람이 동거하면 그것이 곧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생활은 문제가 없읍니까? 그리고 간통은 없나요? "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알고 있읍니 다."
"만약에 일어난다면 ? "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잠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다른 곳에 보내집니다."
"살인범들은 어떻게 합니까? "
"뭐라고요."
(통역원은 면장에게 그 말을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살인자라고요? 그것은 전쟁중에나 있겠죠. 평화시에 다른 사람을 죽이겠 읍니까 ? "
"사람들 사이에 적대감이 생기지도 않습니까? "
"그렇다면 싸우기야 하겠지만, 그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강도나 도둑은 어떻게 합니까? "
"강도라고요? "(또 다시 통역원은 그 말을 설명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런 것은 없읍니다."
"그러면 도둑은? "
(나는 적어도 도둑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지 않다면 여기서의 도덕 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요 믿기 어려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글쎄요. 나는 5년간이나 면장을 지냈지만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 었읍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 있을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아주 드물 것 입니다. 도둑질을 해서 필요한 걸 갖는다 해도 그는 결국 아무것도 가 질 수 없읍니다. 게다가 마을에서 사람들이 곧 알게 되기 때문에 더 도 망갈 수도 없읍니다."
"도둑은 어떻게 처벌합니까? "
"처벌이라고요? 우리는 그를 설득할 것입니다. 그는 혁명을 후퇴시 키고 있으며 그것은 그에게 오점이 될 것이라고."
"또 다시 도둑질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
"그러면 교육소로 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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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국가에 복종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읍니까? "
"무엇을 생각하는 겁니까? 여기엔 그런 사람들은 없읍니다."
"반대자들이 없다고요? "
"물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용소에 가지는 않습니다. 기 껏해야 공무원의 자리에서 파면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도를 받지만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
"사형제도는 없읍니까? "
"물론 없읍니다. 검열도 고문도 없읍니다."
장선생이 끼어들어 말했다.
"김일성수령께서는 억압은 억압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고 가 르쳤읍니다. 갈등은 무기나 처벌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60년대의 갈등상황에서 김일성 수령님이 취했듯이 대화로써 푸는 것입니다. 인간 이 이성적이라면 어찌 그런 것이 불가능하겠읍니까? "

대화로써 해결한다고? 말이야 훌륭하다. 그러나 도대체 이러한 도 덕성이 실제로 어떻게 그 역할을 해내겠는가? 그렇지만 차츰차츰 도덕 성이 전체적 통괄에 연유하는 것임이 명백해졌다. 인민은 예전에 한 마 을에 함께 살았듯이 서로를 잘 아는 집단으로 나뉘어졌다. 그곳에서 사 람들은 서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배척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또 익명 의 행위는 일체 금지되었다. 서로를 모르고 개인이 고립된 사회에서만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절도사건과 강도사건이 일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전체적으로 통제되면 서 소유의 기회가 균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도 역시 사람 이기에 공격적인 태도는 물론 폭발적인 정욕도 갖고 있다. 일례로 질 투심을 갖기도 한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또 매우 금욕 적이다. 그래서 처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반혁명분자라는 낙인을 수치 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비도덕적인 것은 봉건시대의 잔재이며 자본주의 의 산물이다. 진정한 혁명가는 친근한 사람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인간 과 인간적인 것에 봉사하는 것이며 인도적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 사람 들은 어릴 때부터 윤리교육을 받는다. 그 교육은 실제적이며 사회생활 은 혁명적으로 변화된 유교의 덕목에 따라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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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상황은 말로 전달하기 어렵다.
타락한 서구에 어떻게 건전한 도덕의식을 일깨울 수 있을까? 북한 은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어떤 기독교적 가르침으로도 그 리고 교회도, 사람들에게 간통과 절도와 강도와 살인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는 북한에서 유교와 사회주의가 이룬것 (친절함, 자비심, 그리고 개인이기주의의 극복 등) 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기독교가 어째서 좋은 것인가? 나는 이런 의문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또한 나에게 괴로운 의문이었다.
( 루이제 린저 저. {북한이야기} 강규현 역 pp. 89-90. 137. 139-144)

(2)다음 목적지인 평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본 중에서는 가장 넓고 가장 깨끗한 거리의 도시였다. 또 자동차와 사람 이 없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쉴 시간도 없이 항상 바빴다. 북한의 노동 규약은 8시간 노동 8시간 학습 8시간 휴식이라 정해놓고 있었다.....

성인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기리는 국경일에서 선보일 카드섹션을 연 습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양에서는 주민들이 당국의 허락없이는 마 음대로 떠날 수도 방문할 수도 없다. 주택에는 외부감시를 막기 위한 커튼 사용을 금하고 있다. 모든 시민들은 다른 모든 시민들에 대해 모 든 것을 알아야 하며 이상이 있을 시는 즉각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5--10가구마다 담당자가 배정되며 이들 감시자들은 '왕'노릇을 한다. 식량은 하루에 300g 애서 최고 700g까지의 쌀이 배급되고 국경일에 는 김일성 주석의 은혜로 가구당 몇개의 달걀, 보드카 한병, 그리고 기 름기 많은 돼지고기 200g이 주어진다. 백화점에는 평양주민의 2년반치 임금에 해당하는 옥색의 침대등이 진열돼 있다. 시샘이란 북한 주민에 겐 낯선 감정이다. 열심히 일하면 백화점에서 쇼핑도 할 수 있다는 말 만 들을 뿐이다.

시 외곽 언덕에는 20m 높이의 김일성 동상이 자신의 영토를 굽어보 고 있다. 젊은이들은 남자의 경우 26세, 여자의 경우 23세가 돼서야 결 혼이 허락되는 등 그들의 청춘을 김일성에게 바쳐야 한다. 평양시 안에 는 아름답지만 완전히 잠들은 또 다른 도시가 벽돌담 뒤로 있다. 경비 병의 출입통제를 받으며 특별한 통행증 없이는 이 주위를 걷는 것도 금 지되어 있다. 바로 당간부들의 거처이다.

평양에는 소련 중국 쿠바에서 온 신문기자들이 몇명 있다. 우리 취 재진을 수행한 북한 외무부 관리들은 몇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기 사 작성지시는 누가 하느냐고. '나의 양심'이란 대답을 듣자 그들은 의심의 표정과 함께 매우 당황한 기색이었다. 물론 내가 무엇을 쓰든 그들의 조직을 훼손시키지는 못한다. 이곳에는 신문 가판대가 없기 때 문이다. 몇 안되는 신문도 집단적으로 읽힌다. 고정된 주파수에 맞춘 라디오 방송이 하나 있으며 2-3개의 TV방송프로그램도 정해져 있다. 나는 북한 주민의 99.9 % 가 절대행복을 느낀다는 북한 안내원들의 말 을 믿는다. 이들은 다만 새장안에 갇힌 것을 모르는 인간이 느끼는 만큼 행복할 뿐이다.

나는 평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깊은 잠속에 빠져 있는 것처 럼 느꼈다. 아니 그들은 잠을 자도록 강요받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양에서 '시간의 거울' 속에 나타난 과거의 나와 우리들의 모습을 발 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도 최근까지만해도 그러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에서 우리들이 잔 잠은 평양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처럼 악몽이 지 속되는 평양의 삶에 대해 소련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는 점 때문에 양 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조선일보 1990. 10. 16. 제12면. 소련 뉴타임스 기자<갈리나 시도로파> 북한 취재기 )

********** 說 *********

7.2.1. 화폐와 자유 : 신분적 계급을 대체한 화폐질서

화폐는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대한 요소이다. 중세(中世)의 신 분적(身分的)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근대사회로의 전환은 화폐가 모든 사회경제 관계를 매개함으로써 가능해졌던 것이다. 사회적 신분은 단순 한 야만상태이거나 인간이 무지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를 형성하는 근본적 질서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근본적 질서를 해체 하고서 새로운 사회가 가능했던 것은 것은 화폐라는 가치매체가 이러한 신분질서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근대사회는 신분적 질서가 아 닌 화폐질서(貨幣秩序)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사회가 이처럼 화폐질서 로 변화함으로써 낡은 신분질서는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승려계급은 사라지고 화폐로 보수를 받는 평등한 사람으로서 지식인과, 헌금과 재 산소유에 의지하는 종교인이 나타났다. 귀족계급은 사라지고, 토지자본 을 대신하여 나타난 생산된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본가가 나타났다. 기사계급은 사라지고 봉급을 받는 직업으로서 군인이 나타났다. 과거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이 모든 사람들은 단 한가지 점에 있어서는 달랐다. 그들은 신분적 계급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 하고 자유로왔다.

이렇게 사회가 법 앞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할 수 있 게 된 것은 화폐가 신분을 대체하여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 었기 때문이다. 화폐는 단순한 상품의 매개체가 아니라 중세의 신분질 서보다 우수한 사회적 통합(統合)의 매개양식인 것이다. 화폐는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면서 하나의 질서 속에 묶어들여 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하였다. 진실로 화폐야말로 자유의 매개체인 것이다. 화폐가 없다면 군인과 권력집단과 지식집단 등은 특권에 기반하는 신분적 계급 을 형성할 수 밖에 없다. 근대는 자유의 의식에 있어서의 진보도 아니 며, 생산력의 발전이 역사법칙적으로 가져온 진보도 아니다. 근대는 사 회적 연대양식에서의 새로운 전환이다. 그것은 특권(권력)에서 가치매 체(화폐)에로의 진보인 것이다.

근대사회 그리고 그 연속으로서 현대사회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은 그것이 화폐체제(貨幣體制)라는 것이다. 화폐의 보편적 사용이야말로 근대사회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1)

7.2.2. 화폐질서, 화폐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

화폐는 중세의 신분적 질서를 대체한 근대사회와 자유의 기초이다. 그러나 근대사회의 부조리(不條理) 역시 화폐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급적 특권에 대항하여 자유(화폐질서)를 외쳤지만, 그러한 절규가 역 사의 메아리가 되어 봉건제도가 사라진 이후에는, 근대사회 자체의 여 러가지 모순에 부딪쳤다. 그리고 근대사회에 대하여 의문를 제기한 사 람들은 종국적으로 화폐적 구원에 대하여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근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비젼을 추구한 많은 사람들이 도달한 최후의 논리적 귀결점은 화폐의 문제였다.

화폐질서는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적 계급을 생성하였고, 주기적(週 期的) 공황을 야기하였으며,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계급과 계급, 국가와 국가들을 서로 적대하게 하였다. 화폐는 인간의 연대를 확대하 면서 동시에 인간의 연대를 파괴하였던 것이다. 화폐는 인간을 타락시 키고 인간을 물신숭배(物神崇拜)의 늪에 빠트렸다. 화폐는 인간을 물질 화하고 사회를 욕망의 사회로 만들었다. 화폐는 자원을 고갈시키고 경 제와 인간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다수의 사람들을 처참한 빈곤속에 몰아넣는 화폐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닐 수 없 었다. 가난한 자유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현실에 존재하는 악의 근원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색에 있어서 종착역은 화폐문제였던 것이 다. 새로운 진보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화폐를 중세의 신분적 계급 을 파괴하였듯이 화폐를 파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가 신전 (神殿) 앞의 환전상(換錢商)을 채찍으로 후려쳤듯이, 사회와 인간의 문 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화폐는 후 려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로버트 오웬은 결국 화폐를 폐기(廢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 였다. 그의 실험적 정신은 화폐에 대하여도 발휘되었으며, 화폐 대신에 생산자에게 생산물에 대한 영수증과 노동증서로 교환을 매개하려고 시 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였다.2)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에 있어서도 화폐는 폐기되는 것이었다.3) 그의 이론이 과학적이라는 점 에 있어서 로버트 오웬과 자신을 구별하였던 마르크스는, 화폐폐기의 논거(論據)를 상품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적 철학에서 구하고 있다. 그 러나 화폐가 폐지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그는 구 체적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오르그 짐멜은 화폐를 폐기한다는 것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우울한 전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4) 한편 권력을 잡은 레닌에 게는 화폐는 현실의 문제였다. 그는 화폐를 폐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장래의 공산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화폐가 폐기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 다. 그는 화폐가 폐기된 사회에서 금(金)은 공중변소의 변기(便器)를 만드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하였다.5) 케인즈도 러시아혁명과 그에 따 른 비화폐적(非貨幣的) 질서의 가능성에 대하여 기대(期待)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화폐적 질서가 야기하는 죄악을 알고 있었으나 동시에 화폐를 폐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 소련에서의 실험이 던져줄 빛에 대하여 여전히 기대를 가지고 있 었다.6)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우리의 탐구 역시 화폐에서 시작하여 이제 다시 화폐의 문제로 돌아왔다. 화폐가 폐기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 상상력(歷史的想像力)의 문제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많은 화폐의 폐 기론자들은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제시한 것이다. 그들은 화폐가 폐 지된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관점을 역사적 상상력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사회상은 결코 인간사회의 멍에가 아니며 자연의 질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희미한 상상력의 차원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말하는 것은 인간이 화폐의 우상(偶像) 아래 에서 경배하고 그 우상에 의하여 인도되는 타락상이 인간의 운명은 아 니라는 것이다. 종이조각을 쌓아놓고 거대한 물질적 부를 쌓아놓은 것 과 같은 환상(幻想) 위에 건설된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비록 현실이 이상태로 변혁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화폐의 폐기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것이다. 화폐 의 폐기는 모든 도덕적인 문제의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회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현실적 관건(關鍵)을 이 루고 있는 것이다.

7.2.3. 화폐가 제거된 사회

화폐가 부정되는 사회로서 북한은 하나의 예이다. 물론 북한에 있어 서도 화폐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다. 북한에 있어서 화폐는 소비재 의 구입에 지출되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오천마르크에 상당하는 수표는 의미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화폐가 아니고 표창장(表彰狀)인 셈이다. 북한에서도 소비재 구입의 매개체로서 화폐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 화 폐의 기능은 배급제도와 계획가격제도에 의하여 제한된다. 화폐가 소비 재 시장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경우에도, 화폐가 완전하게 기능하기 위 해서는, 수요에 응하여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자율적인 기업체제 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으로서의 화폐를 용인하 는 것이 된다. 따라서 소비재 시장만을 작동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리하여 북한에서는 화폐나 소비재 시장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북한 사회에서 화폐는 사회적 경제적 매개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북한을 비화폐사회(非貨幣社會)라고 규정 할 수 있다.

비화폐적 사회라는 점에서 볼 때, 북한사회가 시사하는 것은 화폐사 회와 비화폐사회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우선 화폐사회가 무엇 인가 하는 점을 밝혀준다. 화폐의 전목적성(全目的性)이 사라지고 화폐 의 용도가 제한되어 있다면 화폐에 대한 동기도 중요한 의미가 없다. 그것은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획득하고 싶은 그러한 가치는 아니다. 그 리고 그것은 가능(可能)하지 않다. 비화폐적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죄 악, 물질주의적 타락, 욕망주의적인 퇴폐는 대부분 사라진다는 것이다. 루이제 린저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視角)은 이러한 것이다. 루이제 린저가 말하는 것처럼 비화폐적 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다. 그리고 절도나 강도 살인을 해서라도 화폐를 취득할 이유가 없으 며, 그렇게 취득된 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하 다. 불법적으로 취득한 화폐의 기능을 항유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아닌 것이다. 범죄와 죄악, 저속화와 욕망화, 그리고 그 반대의 측면으로서 의 인간의 도덕(道德), 이 모든 것의 기반이 화폐인 것이다. 비화폐사 회에서의 인간행동은 화폐만이 유일한 삶의 수단이 되는 체제적 상황 (위상)에서의 인간행동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에서 화폐만을 제거하는 것은 용인한 일이 아니 다. 화폐의 제거는 시장(市場)의 제거를 뜻한다. 시장의 제거는 시장의 기능인 자원배분과 소득분배, 그리고 생산과 노동의 자본주의적 동기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능을 다른 것이 대체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폐라는 가치매체를 대체하는 것이 과거에는 신분계 급이었지만 현대에 신분을 되풀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화폐의 대체양 식은 권력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화폐질서가 제거된 사 회는 권력에 의하여 형성되는 사회이다.

우리는 사회를 형성하는 매개양식으로서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 연대자본과 가치매체, 법률과 권력을 들었다(상권 제6편). 이러한 세가 지 차원에서 가치매체의 기능을 축소하는 경우에 다른 매개양식(媒介 樣式)이 더 확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차원, 그리고 법률과 권력의 차원을 확장하여야 한다. 이것이 북한사회 의 또 하나의 성격이다. 그리고 소련의 취재기자는 북한을 이러한 시각 에서 취재하고 있다. 그것은 집합표상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삶의 모습이다. 두개의 취재기사는 동일한 사회를 전혀 다르게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개의 기사는 모두 진실에 가까운 것이 다. 그것은 동일한 사회의 두개의 측면, 즉 비화폐적 사회와 권력이 지 배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계획화는 사회가 권력화하는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다. 삶의 모든 측면에 권력이 개입(介入)한다. 그리하여 국가와 사회의 구분은 폐지되고 권력은 사회화하고 권력이 모든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 권력 이 이렇게 확장될 때 권력은 그 고유(固有)의 방식으로는 작동되지 않 는다. 모든 인간에 대하여 일일이 명령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권력이 집합표상(集合表象)을 지배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폐의 기능인 생산과 노동의 기동기제(機動機制)는 이데올로기적 집합표상이 대체한다. 자본주의의 화폐적 사회에서는 경제적 기동(機動)이 화폐에 서 야기된다. 기아(飢餓)와 화폐사이에 서 있는 인간이 화폐를 선택하 는 것이 기동이고 실천이며 노동이다. 그러나 화폐가 제거된 사회에 있 어서는 기동의 기제(機制)는 다른 매개양식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 다. 그러나 권력은 기동의 양식이 될 수 없다. 권력은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고 강요할 수는 있으나 자발성이나 창의성을 야기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권력은 이데올로기적 집합표상--종교의 차원에 이른 집합표상 --을 지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기동의 기제가 될 수 있다.

기독교도가 로마 원형경기장의 사자(獅子) 앞에서 의연(毅然)하게 죽어갈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종교적 집합표상이 인 간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북한에서 하루 8시간의 학습(學習)과 인간 개조(人間改造), 그리고 집단과 사회의 일원으로 규정되는 인간의 위 상(位相)이야말로 비화폐사회의 기동기제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데올 로기적 집합표상으로 인간을 재규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화폐적 사회 의 모습이다.

집합표상에 대한 지배는 권력의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적 교육적 종교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인 것이다. 그 리하여 국가는 헤겔이 말하는 대로 교육적 국가이며, 권력자는 교사이 거나 사제의 이미지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윤리적 동기에서 노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동기는 개인적 윤리가 아니라 사회의 규범적(規範的) 커뮤니케이션에 의하여 규정되는 윤리이다. 모든 사람 들은 반혁명분자(反革命分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 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카리스마를 사랑하기 위하여, 노동하 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형성되고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되는 사회적 압 력(壓力)과 분위기(雰圍氣)가 기동의 기제이다. 권력이 집합표상을 지 배할 때 권력에 반대하는 것은 카토릭교회의 공식적 입장에 반대하는 신부나 신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 반대당(反 對黨)과는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독재국가에 있어 서 탄압의 대상이 되는 반대당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탄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파문(破門)의 대상이다. 파문은 사회로부터의 커뮤니케 이션의 단절(斷絶)과 회개(悔改)의 요청인 것이다.

그리하여 산업사회에 있어서 화폐를 부정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측면 을 갖는다. 하나의 측면으로서 그것은 타락과 죄악, 욕망과 물질문명으 로부터의 구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있어서 그것은 종교화된 이데 올로기와 확장된 권력 속에 인간이 규정(規定)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화폐와 시장 속에 인간을 매몰한다면, 관리사회주의는 권력과 사회적인 압력(壓力) 커뮤니케이션 속에 인간을 매몰한다. 우리가 산업사회를 전 제하고 기존의 사회적 비젼에 입각한다면 이러한 딜렘마는 피할 수 없 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화폐를 용이하게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한편 자본주의가 생산력의 사용을 왜곡한다면, 관리사회주의는 생산력 의 발전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2.4. 비화폐적(非貨幣的) 산업사회의 현실성과 보편성 문제

산업사회에서 비화폐적 사회가 가능한가? 신분적 계급사회가 아니면 서 비화폐적 사회로서 우리는 서구에서 오랫동안 실험되어 온 공동체운 동(共同體運動)을 들 수 있다. 100년 이상 지속되어온 경우도 있는 공 동체운동은 화폐적 등가교환의 사회가 아닌 비화폐적 사회이다. 공동체 운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화폐적 질서가 아니므로 노동의 동기는 다른 사람과의 연대 속에서의 헌신(獻身)에 기초한다. 이러한 헌신은 공동체운동의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권위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 된다. 인간은 막연한 사회적 연대와 헌신보다는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충성(忠誠)과 사랑을 지향함으로써 용이하게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구 체화한다. 또 다른 특징은 공동체 운동이 폐쇄적(閉鎖的)이라는 것이 다. 만일 공동체가 물질적 외부사회에 대하여 개방(開放)된다면 공동체 는 붕괴한다. 공동체운동의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은 화폐 를 제거하고 인간의 연대의식과 헌신에 기초한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이 다. 그리고 또 다른 교훈은 그러나 그러한 사회는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현실성과 보편성(普遍性)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인 체제가 될 수 없으며, 국가적 단위 나아가 세계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체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소규모의 사회에 있어서는 헌신과 연대라는 기동 의 기제가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동기제는 대규모의 보편적 사회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폐쇄성은 보편성과 양립할 수 없다.7)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화폐의 제거는 상품의 제거와 시장의 제거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상품과 화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물 질적인 상품과 상품의 관계라는 환상적(幻想的) 형태로 취하게 만든다. 그것은 종교에서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 두뇌의 산물인 신(神)이 그 자신의 생명을 부여받고 인간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상품 세계에서는 (두뇌의 산물이 아니라) 손의 생산물인 상품이 바로 신과 같은 모습으로 인간의 관계를 상품사이의 환상적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 었다. 그것을 그는 물신숭배(物神崇拜)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그에게 새로운 사회는 이러한 물신숭배가 제거된 사회, 상품과 화폐가 제거된 사회였다. 상품사회와 화폐사회로서 자본주의는 역사적 체제이지 결코 자연의 질서는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상품, 화폐, 시장, 노동의 소외, 사적 소유, 물신숭배는 자본주의가 종식됨으로써 제거될 수 있는 것이 었다. 그러한 새로운 사회는 공동의 생산을 위하여 노동을 하고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위해 자각적(自覺的) 으로 기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활수단의 배당은 (화폐의 매개를 거 치지 않고) 각자의 노동시간(勞動時間)에 의하여 배당되는 사회였다.8)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상상력은 그의 집합표상의 카르마였다. 마르크스는 시장의 자원배분(資源配分)의 기능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는 노동시간의 계산에 의한 계획이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가 시장의 자원배분기능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의 시대적(時代的) 집합표상에서 오는 한계이었 다.9) 시장이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기제이며 수요에 대응하여 가격 이 작동함으로써 자원을 최적상태로 배분하는 기제라는 것은, 그의 사 후(死後) 신고전경제학파에 의하여 논의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 어서는 화폐와 시장의 기능은 노동시간의 계산에 의하여 용이하게 대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관리사회주의의 실험은 화폐 와 시장을 계획이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생산력의 발전은 국가를 하나의 대기업으로 만들지도 않았고 사회적 분업 역시 소멸되지 않았다. 노동시간의 계산에 의한 분배나 현물분배는 불가능하 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10) 결론적으로 말하여 비화폐적 사회와 산업사회는 상호간에 정합성(整合性)이 없다.

7.2.5. 케인즈와 화폐 : 화폐의 조작(操作)

케인즈에게도 화폐는 경제의 기초를 형성하고 경제와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폐에 대한 문제의식을 달리하였다.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물신숭배나 욕망주 의, 사회의 타락이나 물질문명에 대한 저항은 아니었다. 그의 문제는 화폐경제의 불안정성이었으며 공황과 실업(失業)이었다. 화폐야말로 공황과 실업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화폐를 폐지하는 것이 가능 하다고 믿기에는 그는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토피아적 인 화폐부정론자들의 함정(陷穽)을 피하면서 전혀 다른 해결방법을 찾 았다. 그것은 화폐경제의 해악을 피하기 위하여 화폐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11) 화폐는 국가권력이 관리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었다. 화폐는 국가가 조작(操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케인 즈는 화폐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정책의 수단으로 그리고 헤 게모니 투쟁의 무기로 만들었다.

케인즈에게도 화폐질서는 자연의 질서가 아니었다. 화폐는 주어진 여건이 아니라 사회적 목표를 위하여 국가가 관리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는 필요한만큼 화폐를 인쇄(印刷)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조작할 수 있다. 고용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세입에 구애받지 않고 적 자재정(赤字財政)을 통하여 필요한 화폐지출을 과감히 시행해야 한다. 그의 '일반이론'은 이러한 화폐조작과 국가의 적자지출을 정당화하는 이론구성이었다. 디플레이션적 공황에 있어서 국가가 주도하는 화폐의 지출은 공공투자를 형성하며, 그것은 다시 수요로 전환되고, 이러한 수 요가 경제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화폐조작(貨幣操作)에 의하여 실물적 생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은 중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화폐 가 실물시장의 베일(veil)에 불과하며, 화폐조작은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따라서 건전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과거의 집합표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현대자본주의 경제의 성격을 결정지었다.

화폐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하여 관리 되고 조작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편리하고 유력한 정책수단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바로 신(神)의 힘을 빌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 나 그것은 그 편리한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분배갈등의 문제는 화폐 적 수단에 의하여 편리하게 해결될 수 있다. 즉, 국가의 화폐조작에 의 하여 유효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노동자에 대한 임 금을 억제할 필요없이) 임금을 인상하고, 한편으로는 임금의 인상분은 용이하게 가격으로 전가(轉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화폐의 가 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다. 노동자들은 실질임금보다는 화폐임금 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실질임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명백하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은 국가가 노동자의 화폐환상(貨幣幻想)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리하여 화폐적 정책수단은 분배투쟁을 왜곡한다. 분배투쟁이 원만하게 해결되 면 인플레이션의 장(場)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실물시장과 자산시장 그리고 국제경제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이다. 실물시장은 화폐적 자산의 부수물이 되고, 세계경제는 외환 (外換)과 화폐자본을 판돈(賭金)과 무기로 하는 도박(賭博)과 헤게모니 투쟁의 장이 된다.

화폐에 대한 이러한 집합표상의 변동은 화폐의 전목적적(全目的的) 성격을 개인으로부터 국가와 세계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실물적 차원에서 자산적(資産的) 차원에 이르기까지 확장하고 심화(深化)시키 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에 화폐는 실물적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화폐자체의 조작만으로 모든 가치를 더욱 대규모적으로 더욱 용이하게 획득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의 물신 숭배의 신도(信徒)들은 열심히 일하고 기업가적인 모험심으로 투자를 행함으로써 화폐신(貨幣神)에 참배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물신숭배의 신도들은 실물적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직접 신과 친숙해지고 신의 오 락을 함께 한다. 실물적 차원을 우회(迂回)하는 것은 신전(神殿)에 들 어오지 못하는 평신도(平信徒= 노동자)의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중대한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다. 화폐의 조 작은 화폐에 대한 신뢰(信賴)의 집합표상을 붕괴시킨다. 이제 화폐는 경제적 성실성의 증거(證據)가 아니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붕괴하고 있으며, 이제 화폐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객관적인 척도가 아니라 조 작적인 무기(武器)이다. 화폐는 성실한 노력의 경제적 결과가 아니라 기회와 운에 의하여 획득되고 증대하는 것이 된다. 화폐라는 신은 이제 변덕장이가 되었다. 모든 사람, 기업, 국가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고 증대시키기 위하여 최대한의 기회를 포착하고 운(運)에 도박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러한 수단이 없는 대 중은 화폐게임의 부담(負擔)을 모조리 짊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케인즈 에 의한 화폐관(貨幣觀)의 변혁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해 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신 뢰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화폐는 본질적으로 관계(關係)이고 종이쪽 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화폐 그 자체의 게임에 의하여 모 든 것이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산시장(資産市場)이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투자의 불안정성을 교정한다는 케인즈의 대증요법은(對症療法)은 경제의 근원적인 기반을 흔들고 있다. 화폐에 대한 신뢰의 집합표상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원적 기반이다. 그런데 그것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점은 '존 로우'가 그의 화려한 성공과 파멸을 통하여 일찌 기 우리에게 경고하였던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위험을 파묻을 수 있을 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전체를 허물어버리는 함정(陷穽)을 만 들고 있다는 것을, 그 함정이 입을 벌리기 전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