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화폐적 무명(貨幣的 無明)

화폐란 무엇인가? 화폐는 신분적 계급질서를 붕괴시키고 자유로운 사회를 가능하게한 사회적 매개체이다. 그러나 화폐는 자본주의의 모든 병리(病理)의 근원이며, 죄악의 우상이다. 따라서 도덕적 사회를 위해서 그것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화폐는 경제적 불안정 성의 근원으로 국가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러나 오늘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국가가 화폐를 관리하는 것은 더 깊은 함정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를 폐기한다거나 국가가 관리해 야 한다는 결론(結論)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폐에 관한 우리의 집합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폐의 근원적인 본질 은 무엇인가? 인간은 화폐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무엇을 화폐 로부터 지켜야 하는가?

7.3.1. 화폐적 무명(無明)의 제거

무엇보다도 화폐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關係)이다.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사회관계 가운데에는 대중이 노동의 생산물을 서로 교환하는 관계 가 있다. 이러한 노동생산물의 교환관계를 매개하는 점에서는 화폐란 단 순한 매개체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화 폐는 우상(偶像)이 아니다. 노동자에게 화폐는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대 가이고 그가 노동하였다는 증명서이며, 그들의 삶을 유지하는 생활필수 품을 구입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화폐는 이러한 교환관계만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헤게모 니 관계를 매개한다. 또한 화폐는 자본으로 축적되기도 하고 소유소득을 생성시키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와 같이 헤게모니를 매개하고 소유소득 을 매개하는 화폐는 전목적적(全目的的) 가치매체가 된다. 그것은 단순 한 가치매체가 아니라 가치 그 자체로 인식됨으로써, 관계를 사상(捨象) 시키고 존재로 인식된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야기 하는 것이다. 즉, 인간과 사회의 연대성은 매몰되고 화폐는 우상적 존재 (偶像的存在)가 되는 것이다. 화폐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화폐 에 대한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그것은 우리가 화폐적 무명(貨幣的 無 明)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화폐는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화폐가 전목 적성(全目的性)을 가지게 된 것은 자본주의에 이르러서이다. 관리사회주 의 사회에서도 화폐는 존재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와 관리사 회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화폐가 전목적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삶의 형식과 사회의 모습은 화폐의 존재여부(存在與否) 에 의해서가 아니라, 화폐가 전목적성을 가지는가 아닌가에 의하여 규정 되는 것이다. 북한사회에서도 화폐는 존재한다. 그러나 오천마르크에 상 당하는 수표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유소득을 창출하는 자본 으로서도,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헤게모니자산으로도 작용할 수 없기 때 문이다. 나아가 그에 상당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도 없다. 북한사회에서 화폐는 전목적적 가치매체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화폐의 문제 는 화폐를 용인할 것인가 화폐를 폐지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 니다. 그것은 화폐의 체제적 위상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 다.

그리하여 중요한 점은 화폐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 식화된(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화폐적 무명을 어떻게 제 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화폐의 전목적성을 방지하는 것이 화폐적 무 명을 제거하는 것이고,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인간의 삶의 조건과 문명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는 화폐 를 이렇게 제약하는데 실패하였다. 그것은 제약을 넘어 화폐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동차를 인정하고 교통사고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 야 하듯이, 화폐를 인정하고 화폐적 무명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보(進 步)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케인즈가 시도한 자본주의의 변혁은 이 제와서는 국가가 화폐를 지배하는 것인지, 화폐가 야기하는 함정(陷穽) 에 국가가 빠져 있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국가가 화폐를 조 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신뢰(信賴)를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조작(操作)은 환상과 무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폐의 문제는 화 폐에 의지할 것인가, 화폐를 조작할 것인가, 화폐를 폐지하고 권력과 계 획에 의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화폐는 우수한 매개양식으로 유지되어야 하지만 화폐적 무명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에서 화폐적 무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7.3.2. 연대와 화폐적 무명(無明)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자연의 자원과 인간의 노동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의존이고 노동과 노동의 상호의존이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위한 생산에 종사한 다. 내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면 나자신에게도 무의미(無意味)한 행위이다. 나는 그렇게 많은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경제적 행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에서 의미를 가진다. 경제적 행위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거한 다면 그 자신에게도 무의미한 것이다. 만인(萬人)은 만인을 위하여 노동 하고 생산하며, 만인의 삶은 만인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삶 과 사회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연대성이다. 부시멘 사회(상 권 제5장)에서는 이러한 연대성은 당연한 상식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사냥해 온 것을 분배받아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은 내가 사냥해 온 것을 분배해 주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호혜(互惠)에 있어서는 이러한 연대성은 직접적이다. 나의 삶이 우리의 삶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연대성이야말로 사회의 실체적 진실(實體的眞實)이다. 그러나 화폐의 개 입(介入)에 의한 등가교환은 이러한 연대성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화폐는 연대의 증표(證表)이다. 화폐는 나의 생산물이 당신의 삶에 기여하였다는 증표이고 당신의 생산물이 나의 삶에 기여하였다는 증표 인 것이다. 내가 화폐를 가지고 있다면 나의 생산물이 당신에게 분배되 어 당신의 삶에 나의 노동과 생산이 기여하였다는 증표이며, 당신이 화 폐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노동과 생산물이 나의 삶에 기여하였다는 증표인 것이다.

그러나 화폐는 이러한 증표로 인식되지 않고 그 자체가 가치(價値) 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화폐를 받고 나의 생산물을 다른 사람에게 분배 해 줄 때(販賣), 나는 동등한 가치를 받고 등가교환한 것으로 인식한 다. 반대로 내가 화폐를 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들의 생산물을 받았 다면(購入하였다면), 나는 그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동 등한 가치를 양도하고 등가교환으로 그의 생산물을 받았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화폐는 그 자체가 어떤 고유한 가치를 가진것이 아니며 서로가 은혜(恩惠)를 주고받는 증표(證表)에 불과하 다.

호혜관계에서나 등가교환관계에서나 인간 삶의 연대성은 동일한 것 이다. 그러나 등가교환 관계에서는 화폐적 무명(화폐 그 자체가 가치라 는 인식)이 이러한 연대성을 전복(顚覆)하고 인간의 연대의식을 파괴한 다. 내가 화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생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생산물을 취득할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생산하였다고 하더 라도 다른 사람이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는 나의 생산물을 그에 게 줄 수 없고, 다라서 내가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생산물을 취득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인식되지 않은 것은, 화폐 그 자체가 가치라는 허 위의식, 환상, 화폐적 무명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화폐는 원래 연대의 증표이나, 오히려 대상(對象)의 원리의 목적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화폐적 무명이 일반적 상식으로 되면, 바로 그것에 의하여 인간의 연대의식(連帶意識)은 상실된다. 이제는 연대의식을 대신하여 화폐적 무명이 모든 인간의 행동의 기초가 되며 사회관계의 기반이 된 다. 그리하여 화폐적 환상, 화폐적 무명은 단순히 인간의 의식적 차원 을 넘어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의 방식이고, 동시에 존재장(存在 場)을 산출시키는 시간(陽)의 유형으로 된다(上卷 제3장참조). 인간의 행동과 사회적 관계는 이러한 화폐적 무명에 기초하여 생성되고 그 형 식이 규정되고 객관적 실체관계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화폐적 무명이 다른 사실들과 결합하여 대상(對象)의 원리(原理)를 일반화한 다. 즉, 화폐가 목적이 되고 다른 인간들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또 다른 조건, 즉 개인은 독립하여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화폐적 무명과 대상의 원리를 강화한다. 개인은 화폐를 얻지 못하면 기아(飢餓)와 죽음에 직면한다. 화폐를 통하지 않고는 어 떠한 사람도 나 자신의 생존에 대하여 연대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따라 서 화폐는 생존을 좌우하는 최고의 가치적 존재(存在)가 된다. 화폐는 생(生)과 사(死)를 좌우하는 신(神)의 지위에 있게 된다. 아사상태(餓 死狀態)에 있는 나를 구원해 주는 사람은 없다. 오직 화폐만이 나를 죽음의 위협에서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비화폐사회에서는 호혜적 생존 이 가능하다. 그러나 화폐사회에서는 호혜적 생존이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호혜를 위해서도 화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인간 에 대한 연대성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오직 화폐만이 생존의 유일(唯 一)한 방식이 된다. 그리고 화폐적 무명이야말로 유일한 객관적 진실이 되는 것이다.

7.3.3. 생산자본과 화폐적 무명

산업사회는 생산자본(生産資本)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을 출현시 켰다. 생산자본은 공업상품을 생산하는 물적인 시설(자본재)이며, 생산 된 자본설비이다. 자본재(資本財)는 상품의 형식으로 생산되어 판매된 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으로 소비되는 일반적 소비재와는 다르다. 생산자본은 인간의 노동과 결합되고 생산을 위하여 가동(稼動)됨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 본질적 기능에 있어서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생산자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소비재의 생산에 가동되지 않을 때에는 무가치한 것이며 고철덩어리이 지 자본이 아니다. 그리하여 생산자본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 한 연대적 축적물(蓄積物)인 것이다. 소비재가 인간들 상호간에 교환 됨으로써 의미를 가지듯이, 생산자본은 만인을 위하여 생산과정(生産過 程)에서 작동함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자본은 만 인의 연대를 위한 공동의 사회적 기반이다. 특정한 개인이 그것을 차지 하더라도 이러한 기능은 변함이 없다. 생산자본을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테레비젼을 즐기는 것처럼 생산자본을 즐길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생산자본은 노동자, 소비자,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과의 관 계에서 비로소 자본으로 성립하고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 산자본은 생산에 있어서의 연대성에 의하여 성립한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성의 한 매듭인 것이다.

그러나 생산자본을 매개하는 것 역시 화폐적 관계이다. 생산자본은 상품으로 화폐에 의하여 구매되고, 화폐의 지불을 통한 투자과정에서 시설되고, 화폐적 지불에 의하여 생산과정이 작동한다. 생산물은 화폐 적 수입을 목표로 하여 판매되고, 수입은 화폐적으로 분배된다. 생산자 본의 관계과정을 매개하는 이러한 화폐의 개입은 생산자본 본래의 연대 성을 분해하고 매몰(埋沒)한다. 여기에 생산자본에 대한 화폐적 무명이 야기된다. 생산자본은 화폐자본(貨幣資本)이 다른 유형의 존재(存在)로 전환된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지는 것이 된다. 이러한 존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대는 불필요(不必要)한 것이다. 그리하여 화폐적 무명이 생산과 판매의 모든 과정을 지배한다. 그것은 물적자본과 노동,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성 을 단절시키고 모든 것을 분리한다. 이것은 모두 상품의 등가교환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화폐자본의 소유자는 자본재상품을 등가교환으로 구 입함으로써 그것을 생산한 사람들과의 연대성이 단절된다. 나아가 물적 시설로서의 자본설비도 화폐자본의 전화한 형태가 된다. 그리하여 자 본설비는 모든 관계로부터 독립(獨立)한 실체(實體)로 되며, 그것은 다 른 모든 것과의 관계를 맺는 독립된 존재가 된다. 그것은 마치 다른 모 든 것과는 무관(無關)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된다. 그것은 다른 존재들을 지배할 수 있는 독립된 어떤 실체로 된다.

그리하여 화폐가 연대의 증표가 아니라 물질적 가치를 지배할 수 있 는 힘이라는 사실은 산업생산의 구조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 이제까 지는 교환(交換)의 장(場)에서 화폐의 문제였으나, 생산과 분배의 장에 서 화폐는 더욱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화폐적 무명이 사회적 연대관계 를 조각조각의 존재물로 분리시키고 그것을 대상의 원리에 의하여 결합 한다. 자본설비로서의 생산자본은 우리가 마치 라디오를 소유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소유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또한 인간의 노동 역시 라디오와 동일한 방식으로 소유하고 매매하 고, 그리하여 소유가 이전될 수 있는 것처럼 규정된다. 이러한 과정에 서 노동은 그 인간관계로부터 분리되어 물적 대상(物的對象)으로 소외 (疎外)된다. 화폐적 무명은 노동을 삶으로부터 분리한다. 노동은 인간 과 분리되어 화폐를 매개로 하여 판매되는 것이 되며, 인간은 노동으로 부터 벗어나 있을 때 비로소 자기자신이라고 인식한다.1) 그 자체가 가 치로 인식되는 화폐가 개입됨으로써 생산자본의 관계망은 분해되어 일 체가 존재로 독립하고, 화폐를 중심에 두고 상호간에 대립한다. 사람들 은 모두 더 많은 화폐수입과 더 적은 화폐지불을 중심으로 하여 대립한 다. 자본의 소유자, 노동의 소유자,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가 대립하고 그럼으로써 일체의 연대성은 매몰된다.

7.3.4. 자산(資産)과 화폐적 무명

화폐는 부(富)의 저장수단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화폐에 의하여 저 장되는 부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환상(幻想)이다. 우리가 집에 다 량의 화폐를 퇴장(退臧)하고 있다면 우리는 존재로서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적 부는 그 실체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노동하여 생산한 상품들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노동하지 않고 그리하여 생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집에 저장하고 있 는 화폐는 다만 종이쪽지일 따름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노동하고 생산하며 그리하여 연대(連帶)의 원리(原理)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폐적 부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연대를 기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은행에 다량의 화폐저축 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장농 속의 퇴장과는 달리 저축한 화폐 자체마저 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연대에 대한 무형의 신뢰(즉 은행의 신용) 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대에의 신뢰는 은행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담보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다른 사람들이 오늘도 노동하고 저축을 한다는 사실이다.

부라는 것은 본래 존재가 아니라 관계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농업사 회에 있어서 부자라는 것은 거대한 토지의 소유자를 의미했다. 거대한 토지라는 것은 그 자체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이다. 그것은 수많 은 소작인들이 그러한 토지에 매여 농사를 짓는 인간관계에 의하여 규 정되는 것이다. 만일 소작인들과의 관계를 사상(捨象)해버린다면 거대 한 토지라는 것은 방치된 자연(自然)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완전한 환상의 형태를 취한다. 우리 가 이미 본바와 같이 화폐라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관계이다. 그렇다면 화폐를 부로서 저장한다는 것은 관계(關係)의 가능성(可能性)을 축적하 는 것이며 그것의 실체(實體)는 전혀 다른 사회적 관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비재나 자본재와는 다른 종류의 상품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자산상품이다. 자산상품의 본질은 그것이 부(富)라는 것이다. 자산적 부(富)는 이러한 상호의존관계에 대 하여 특유한 유형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 1억 원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실체적 부는 존 재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그 해에 모든 사람들의 노동에 의 한 생산물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주식소유자는 배당금에 해당하는 액 수 가령 100만원에 상당하는 생산물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관계에 있 을 뿐이다. 우리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실물적인 자본설비의 가치가 50조원이고, 그 나라의 자산을 소유한 사 람들의 총자산의 가치가 100조원이고, 그 나라의 그해 생산물의 가치가 10조원이라고 하자. 이때 사람들이 소유한 자산적 부의 실체는 총생산 물 10조원 가운데에서 1조원 상당의 상품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관계 인 것이다. 그들의 자산으로서의 100조원이라는 것은 다만 종이쪽지로 서 존재할 뿐이지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억지로 대응관 계를 만든다면 그들의 자산의 가치 100조원에 대응하는 실체는 50조의 자본설비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설비는 그들에게 무의미한 것이고 자산 가치에 상응하는 가치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100조원의 상품에 상당 하는 부(富)를 소유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다.2)

이러한 관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실체로서 소유하고 있는 부 와 자산을 모두 현금화하고 상품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그 나라의 경 제는 즉각 붕괴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은행에서 저축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그들이 매도하기 위하여 내놓은 주식은 가격이 폭 락하여 휴지가 될 것이고, 그들의 채권은 변제받을 수 없을 것이고, 그들의 화폐는 구매력(購買力)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공황(恐慌)과 극 심한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평상시에는 환상을 유지하며 살 수 있으나 공황에 의하여 두려운 진실 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년년(年年)이 노동하고 생산하고 분배하며 소비하는 그러한 실체적 실물적 과정이야말로 진실이고 모든 것이다. 화폐 그 자 체가 가치이고 화폐의 전환형태인 자산이 부라는 것은 화폐적 환상이며 화폐적 무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적 무명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으 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진실이 궤변(詭辯)처럼 취급된다. 이러한 전도 (顚倒)된 의식이야말로 자본주의적 화폐사회의 기반이다. 그러나 그러 한 환상은 끊임없이 동요(動搖)한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불안정성인 것이다. '존 로우'의 해프닝은 투기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투기만이 환상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환상에 기반하 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환상과 무명을 객관적 진실로 전제하 여 욕망을 생성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른 인간을 모두 대상 으로 취급한다. 기묘하게도 이러한 대상의 원리에 철저한 사람이야말로 연대의 원리는 당연히 작동하는 것으로, 의식할 필요도 없는 전제로 삼 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환상과 무명은 연대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에 있어서 미시적(微視的)으로 현실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연대의 원리가 파괴되거나 어떠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의심하게 된다 면, 그것으로 현실은 뒤집어지는 것이다. 몽유병자(夢遊病者)가 의식을 찾을 때에는 곡예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7.3.5. 우상(偶像)과 구원

화폐적 무명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호혜)를 인간과 화폐의 관계로 전환시킨다. 궁극적인 화폐적 무명은 화폐가 인간에게 대하여 세속적인 신으로 전화(轉化)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神) 앞에 서는 단독자(單 獨者)" 가 아니라 "화폐 앞에 서는 단독자"이다. 일체의 가치와 존재와 관계가 신으로 추상되고 모든 것이 그러한 신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듯이 일체의 가치와 존재와 관계가 화폐로 추상되고 인간은 화폐와의 관계 에서 규정된다. 더구나 화폐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 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화폐적 무명은 인간을 화폐라는 물신(物神) 앞 에서 서 있는 단독자로 만든다. 단독자 이외의 모든 것이 이러한 물신 으로 체화(體化)되어 그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화폐의 이러한 물신성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소에 의하여 더욱 강 화된다. 물신성의 첫번째 요인은 인간이 항상 기아(飢餓)에 의하여 위 협당한다는 것이다. 기아에 위협당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화폐는 천국에 의 열쇠이며 유일한 생존의 수단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화폐의 추 구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서 일체의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인 것이다. 화폐는 그들에게 생존을 주는 구원(救援)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생존하기 위하여 추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물신성의 두번째 요인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경제적 불평등(不平等)이 다. 불평등은 사람의 물질적 욕망을 자극하는 인식적(認識的) 상황을 조성한다. 그리하여 매 순간순간 자극되는 물질적 욕망이 그것을 충족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화폐에 대한 숭배(崇拜)에 이르게 하는 것 이다. 인간은 매 순간순간의 인식은 화폐에 대한 지향(指向)을 생성하 는 것이다. 물신성의 세번째 요인은 유한한 인간에 대하여 화폐는 무한 (無限)하다는 것이다. 화폐의 질(質)은 그 량(量)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리고 인간이 화폐를 소유할 수 있는 량에 있어서 무제한적이다. 10만 원을 소유한 사람에 대하여 10조의 화폐를 소유한 사람은 가히 신과 같 은 것이다. 그리하여 화폐는 기본적인 생존에서 부터 일체의 가치에 이 르기까지 모든 것이 된다. 이것이 화폐의 물신성의 최종적 요인이다. 만일 화폐의 양적 소유의 차이가 사람의 삶의 양식과 그의 힘과 헤게모 니에 있어서 격심한 차이를 야기하지 않는다면, 화폐는 인간에게 있어 서 우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화폐사회는 궁극적으로 화폐를 신으로 전화시키는 화폐적 무명에 기반한다. 화폐적 무명은 모든 인간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것은 상식이다. 이러한 전도(顚倒)된 집합표상은 너무나 당연한 진실 로 인정되므로, 그 진실 여부에 대하여 논의의 필요가 없으며, 문제조 차 제기되지 않는다.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형식으로 제기된다. 가령 주식의 가격이 어떻게 변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 떠한 국제적 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이 주식가격의 변동에 영향을 얼마 나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주식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당 연한 것이고 그것이 사실에 있어서는 가공적(架空的)인 환상이며 무명 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현실의 매 일매일의 경험이 그러한 상식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공황(恐慌)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공황이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3)

화폐의 문제는 이러한 화폐적 무명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화폐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적 무명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하 는 것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깨달음이 삶 그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명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화폐적 무명을 제거 한다는 것은 사회를 진실(眞實)의 기초위에 재건하는 문제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화폐의 변혁(變革)을 추구한 다. 우리는 화폐를 가치매체의 관점에서 규정한다. 가치매체의 차원에 서 볼 때 화폐는 유일한 가치매체도 아니고 완전한 가치매체도 아니다. 오히려 화폐의 문제는 불완전한 가치매체로서의 화폐를 유일(唯一)하고 전목적적(全目的的)인 가치매체로 삼은 데에 있는 것이다. 화폐는 그것 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기능으로 남용(濫用)되고 있는 것이 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폐의 전목적성을 규제하며 인간을 새로운 방식 으로 매개하는 새로운 가치매체로서의 연대매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다. 연대매체는 화폐와는 다른 것이며 동시에 화폐를 보완하고 화폐가 자신의 기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가치매체이다. 그것은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화폐를 재규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대매 체 도입은 가치매체의 개혁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다른 방향이다. 그 러나 그것은 이제까지 인류 역사의 흐름 위에 있는 자연스러운 방향이 다. 근대사회가 화폐의 보편화에 의하여 신분적 계급사회에서 경제적 자유사회로 전환되었다면, 새로운 사회는 연대매체의 보편화에 의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전환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무명(無明)으로 부터의 구원(救援)과 해탈(解脫)의 역사이다. 근대는 인간과 사회의 의 식에 있어서 중대한 계몽(啓蒙)이다. 우리는 근대에서 더욱 나아가 무 명으로부터 인간을 고양하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주1)

그러면 노동의 外化는 어떤 것인가? 첫째, 노동은 노동자에 대해 外面的인 것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하 자면 노동은 노동자의 本質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신 의 노동을 통해 자기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否定하며, 행복을 느끼지 않 고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개발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체를 채찍질하고 자신의 정신을 荒廢化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 있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며 노동할 때에는 脫我感을 느낀다. 그는 노동을 하지 않을 때 편안한 느낌을 갖고, 노동을 할 때 에는 편안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된 것 곧 强制勞動이다. 따라서 노동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 라, 노동 이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하나의 手段에 불과하다. 노동 의 낯선 성격은 신체적 강제나 그 밖의 강제가 존재하지 않을 때 노동이 페스트처럼 달아난다는 사실에서 순수하게 드러난다. 외적인 노동 곧 인 간을 외화시키는 노동은 자기을 제물로 바치는 노동, 곧 禁慾의 노동이 다. 결국 노동자에 대한 노동의 외적 성격은 노동이 자기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이라는 것, 노동이 그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 노동 하는 노동자가 자기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타자에 속한다 것에서 드러난 다. 宗敎의 경우 인간의 환상, 인간의 뇌수, 인간심성의 자기활동이 개 인과 아무 상관없이 곧 낯선 활동이나 신의 활동이나 악마의 활동으로 서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활동도 자기활동 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에 귀속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자기자신의 喪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노동자)은 겨 우 먹고 마시고 생식하는 일, 기껏해야 주택과 음식의 맛 등등에서 자유 로운 활동을 느낄 뿐이며, 인간적인 기능들에서는 겨우 동물로서의 감 정을 가질 뿐이라고. 먹고 마시고 생식하는 등등은 물론 진정한 인간의 기능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그밖의 다른 안활동들과 無差別的으 로 구분되어 유일한 목표로 되는 경우, 이러한 일들은 동물적인 것으로 된다. ( 마르크스 저. {경제학 철학 수고} 김태경 역 pp.58-59 )

주2)

국가는 자신의 채권자에게 차용한 자본에 대해 매년 일정액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 경우 채권자는 자신의 채무자에게 해약을 통 고할 수 없으며 단지 請求權만을, 즉 그것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만을 판 매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 그 자체는 국가가 먹어치우고 지출해 버린 다. 그것은 더 이상 存在하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채권자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1. 국가에 대한 채권, 예를 들어 100파운드의 채권이다. 2. 이 채권은 그 채권자에게 연간 국가수입, 말하자면 연간 조세수입에 대 해 일정액만큼의, 즉 예를 들면 5파운드 혹은 5%만큼의 청구권을 부여해 준다. 3. 그는 이 100파운드의 채권을 임의로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다. 이자율이 5 %이고 거기에 국가의 보증이 전제되어 있다면 소유주 A는 그 채권을 통상 100파운드에 B에게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 면 B로서는 그가 100파운드를 연리 5%에 대부하는 것이나 100파운드의 지불에 의해 政府로부터 매년 5파운드의 액수를 공여받는 것이나 마찬가 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 국가지불이 자신의 새끼(이자)로 간주되는 자본은 여전히 幻想的이고 架空의 자본으로 머물러 있다. 국가 에게 대부된 액수 일반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원래 자본으로 지출되고 투자되도록 규정되지도 않았다...... 채무증서--유가증권--가 國債의 경우처럼 순전히 환상적인 자본을 나 타내지는 않는 경우에도 이 증권의 자본가치는 순수하게 幻想的이다. 우 리는 이미 앞에서 신용제도가 어떻게 결합자본을 만들어 내는가를 살펴 보았다. 證券은 바로 그 결합자본을 나타내는 소유권으로 간주된다. 철 도회사, 광산회사, 해운회사 등의 주식들은 현실자본을 나타낸다. 즉 이 들 기업에 투자되어 기능하고 있는 자본을, 혹은 이들 기업에서 자본으 로 지출하기 위해 주주들이 선대한 화폐액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이들 주식이 단지 사기를 나타낼 뿐이라는 사실을 배제하는 것 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자본은 이중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한편으로 소유권의 , 즉 주식의 자본가치로서 존재하고 또 다른 한편으 로 그들 기업에서 현실적으로 투자되었거나 혹은 투자될 수 있는 자본으 로 존재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후자의 형태로만 존재하고 주식 이란 단지 그 후자에 의해 실현되는 잉여가치에 대한 일정비율의 소유권 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 저. {자본론} 강신준 역. 자본 III-2 p.577. 579)

주3)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자신의 집합표상을 우리의 자아로 규정하 고, 그러한 無明에서 야기된 욕망의 체계를 삶으로 안다. 경제 역시 類 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