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연대사회와 인간의 고양(高揚)

7.4.1. 연대매체 : 화폐적 무명으로부터의 해방

연대체제와 연대매체는 화폐적 무명을 제거하고 사회와 경제를 진실 (眞實)의 기초 위에 재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무명의 늪에서 구제하는 것이며,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연대매체의 축적은 개인의 자산적 부(資産的富)가 아니라 사회적 연 대자본에 대한 헤게모니의 확보이다. 연대매체는 자산(資産)이 아니고 연대체제에서는 자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산에 기초한 사적(私的) 소 유소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연대매체에 의한 저축은 화폐로 인출(引 出)되지 않으며 화폐와 교환되지 않는다. 개인이 저축하였다고 하여 그 에 대응하는 소비재 상품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축은 자본으로 전환되고 그에 대응하는 실체적 부(實體的 富)는 존재하지 않 는다. 존재하는 것은 자본이고 그에 관한 헤게모니이다. 그것은 미래에 있어서의 생산력이며 개인에게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매 체의 축적이 의미하는 실체적 진실은 사회적 연대자본(축적된 자본설비) 에 대한 헤게모니이다. 여기에는 환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적 진실 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산과 부에 대한 화폐적 무명은 제거 된다. 이 점이 자본주의의 자산시장과 다른 점이다.

연대체제에서는 생산자본(生産資本) 역시 연대매체에 의하여 규정된 다. 연대체제에서 모든 자본은 사회적 연대자본을 수탁받은 것이다. 그 것은 화폐자본이 전환된 것도 아니고 소유의 대상도 아니다. 사회적 연 대자본과 생산자본에 대한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신탁(信託)과 수탁의 관계이며 본질적으로 헤게모니의 관계이다. 연대매체는 이러한 생산자본 과 연대자본에 대한 헤게모니 참여권이다. 생산자본은 인간과 인간의 관 계 속에서 형성되며, 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관계자 집단이 헤게모니에 참여하는 방식이고 연대하는 양식이다. 이윤은 노동자들과 연대부문에 귀속한다. 그리하여 생산자본은 독립된 실체도 아니며 소유의 대상도 아 니며 노동을 지배하는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연대의 한 측면이다. 이러한 점에서 생산자본에 대한 화폐적 무명은 제거된다. 생산자본은 인 간연대의 관계망으로 되돌아 온다.

연대체제에서 화폐는 위와 같은 연대매체와의 관계에서 규정된다. 이 제 화폐는 더 이상 자산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자본으로서 기능하지 못한 다. 그것은 연대매체에 의하여 대체(代替)된다. 거대한 양(量)의 화폐자 본은 화폐로도 자본으로도 헤게모니로도 기능하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연대매체로 전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단 연대매체로 전환되면 연대매체의 논리(論理)에 종속된다. 그리하여 화폐는 대중 삶의 매개체 로서 노동을 하여 소득을 얻고 그것을 지출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 노 동과 소비를 매개하는 기능으로 되돌아간다. 화폐는 다만 노동과 연대의 증서(證書)로 작용할 뿐이다.

연대매체는 소유(所有)가 아니라 신탁(信託)에 의하여 기능을 발휘한 다. 소유란 인간과 물질의 관계이지만 신탁이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 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 있어서 인간은 소유와 부를 추구하는 것이 아 니라, 다른 인간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문 제, 인간의 위상(位相)의 문제에 대하여 전혀 다른 지평(地平)을 여는 것이다. 이것이 화폐적 무명이 제거된 연대체제의 긍정적 규정이다. 그 것은 도덕과 종교의 사회적 기반(基盤)을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화폐의 문제는 단순하고 명백한 해결을 가진다. 그것은 화 폐를 단순한 인간 연대의 수단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화폐와 연대매체는 상호관계에서 상호규정(相互規定)된다. 그에 따라 화폐까지도 자본주의 와 기능이 달라진다. 화폐가 다량의 자본이나 자산으로 기능하지 않는 것, 이것이 화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나아가 화폐의 다른 경제적 관계를 연대매체가 매개하는 연대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7.4.2. 화폐와 연대매체

연대매체와의 관계에서 재규정되는 화폐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 은 다만 노동이라는 사회적 기여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노동과 소비의 매개수단이다. 그것은 다만 노동증서(勞動證書)인 것이다. 이것 은 노동자와 대중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타인과 사회에 연대시키는 수 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을 사회적 연대관계에 편입(編入) 시키고 분배와 소비에서 사회적 연대관계에 참여하는 매개체이다. 화폐 는 마술(魔術)을 부리지도 않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동의 대가 이외 에 다른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화폐는 환상(幻想)을 야기하지 않는다. 화폐가 이와 같은 인간연대의 매개체로 전환함으로써 상품생산과 상품교환관계가 야기하는 화폐적 무명은 제거된다. 화폐는 자신을 증식시키지 못하며 일체의 가치를 부여하지도 못한다. 화폐는 더 이상 우상이 아니다.

연대체제에서는 화폐가 더 이상 생존(生存)의 수단이 아니다. 왜냐 하면 생존을 위한 화폐는 연대소득(連帶所得)으로서 무조건적으로 주어 지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연대소득이 있으므로 화폐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하여 획득해야하는 생명선(生 命線)이 아니다. 화폐가 생존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화폐가 모든 가치 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 때 화폐적 무명은 제거된다. 그것은 사회의 기 초를 형성하는 진실, 인간이 상호간에 노동하여 그 생산물을 상호배분함 으로써 소비하고 살아가는 그러한 연대의 과정을 매개하는 단순한 매개 체로 되돌아 온다. 이와 같이 화폐의 환상이 제거됨으로써 사람들은 오 로지 화폐를 위하여 자신의 노동을 판매하는 삶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노동은 자신의 삶의 한 형식이고 삶의 한 과정이며 자아실현(自我實現) 의 한 방식으로서 자신에게로 되돌아 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화폐적 환상에서 현실의 실체적 진실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더 이 상 기아(飢餓)에 쫓겨 화폐신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화 폐에 대한 물신적 추구는 화폐를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연대소득이 보 장(保障)함으로써 제거된다. 연대소득은 인간의 기본적 삶에 대한 모든 다른 인간의 연대의 표시이다. 우리는 모든 인간의 생존을 연대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다. 연대소득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하여 대상(對象)의 원리에 의존하는 기동을 제거하는 것이 다.

한편 연대체제에서는 연대매체의 작용으로 인하여 소유소득(所有所 得)은 연금소득으로 국한된다. 소유소득을 제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불평등(不平等)을 제거하는 요체이다. 인간의 노동에 대응하는 시장소득 은 격차를 야기하는 것이지만 노동에 의한 화폐소득의 격차는 심각한 것 이 아니다. 인간의 경제적 불평등은 다른 인간의 노동의 가치를 취득하 거나 노동이 아닌 거대한 화폐자본이 산출하는 자산이득을 실현함으로써 야기되는 것이다.1) 그리하여 연대매체는 경제적 평등의 매개체이다. 불평등의 해소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자극하는 인식상황(認識狀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불평등의 해소야말로 인간이 물질문명(物質文明)에 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이다. 물질문명이란 바로 화폐적 무명이다.

7.4.3. 연대매체도 무명을 야기하는가?

우리는 자본주의적 집합표상에서 유추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疑問)을 제기할 수 있다. 연대매체는 화폐로서 구입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화폐 자본의 전환형터(轉換形態)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연대체제가 사람들의 연대매체에 대한 수요에 기초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연대매체 를 강렬하게 추구하는 기동의 기제가 확보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이 연대매체를 강렬하게 추구할 수록 그것을 취득하는 수단이 되는 화폐에 대한 추구도 강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이 화폐신에 경배하는 형식을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의문은 연대체제에서 일반화되는 몇 가지 사실을 간과 (看過)하고 있다. 우선 연대매체를 소유한다는 사실에서는 아무런 경제 적 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대매체의 소유에서 발생하는 유 일한 효과는 연금소득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시장소득이 없다는 조건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매체는 소유에 의하여 기능 (機能)하지 않는다. 연대매체가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신탁에 의해서이 다. 나아가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거대한 화폐적 부를 집적한 유형의 부 자는 생겨날 수 없다. 연대체제는 화폐적 부를 연대매체적 부로 바꾼 그 러한 체제가 아니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대량의 화폐자본은 형성되지도 않고 증식(增殖)되지도 않는다. 연대매체는 축적이 가능하지만 그 양에 있어서 대단히 제약적이다. 우선 연대매체는 노동소득에 기초하는 화폐 소득에서 전환된 것이다. 또한 기업가의 연대매체는 사업의 성과에 의하 여 증식되는 것이지만, 그의 연대매체는 헤게모니 자산으로 묶여 있다. 그가 기업의 헤게모니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의 연대매체는 그에게는 부 가 아니다. 그가 기업의 헤게모니를 포기한다면 그는 연대인이 되어 연 금생활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 있어서 연대매체를 다량으 로 소유한 사람은 자본가나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는 다만 유능한 기업 가이거나 상대적으로 부유한 연금생활자가 될 뿐이다. 그리하여 연대 체제는 화폐와 연대매체의 소유에 있어서 평등한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리고 상대적 불평등은 개인이 동원가능(動員可能)한 연대매체의 양에 었 어서의 평등에 의하여 완화된다. 연대매체는 하나의 사회적 가치를 획득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적 가치는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방식으로 작 동한다. 그리하여 연대매체는 개인이 획득하려는 사회적 가치를 평등하 게 분화(分化)시키는 것이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실제로 다량의 연대매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경우는 연대매체를 소유(所有)하는 경우가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연대매체를 수 탁(受託)받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대중으로부터 다량의 연대매 체를 수탁받은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정치가이다. 그가 대중으로부터 연 대매체를 수탁받는 것은 부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자본의 배분에 관한 헤게모니 구조에서 정치적 지지(支持)를 받고 있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다. 정치적 지지와 연대매체의 신탁의 기제에 관해서는 정치 이론으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명백한 것은 연대매체에 의 추구가 자본주의적 부자라든가 자본주의적 계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매체가 화폐의 전환된 형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소유의 사회와 신탁의 사회를 혼동하는 것이다.

신탁의 구조와 소유의 구조가 다른 점은 전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이고 후자는 인간과 물질의 관계라는 것이다. 대량의 연대매체를 취득하 기를 원한다면 대중으로부터 신탁을 받는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지 자본 주의에서 화폐적 부를 축적하는 개인적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 이것은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전면(前面)에서 작동하며 인간과 연대매체의 관계는 그 반영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매체와 화폐에 대한 추구가 아무리 강렬하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서 경제적 계급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연대매체에 대한 추구가 아무리 강렬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소유를 통한 것이 아니라 수 탁을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신숭배에 떨어지지 않는다. 화폐를 취득하 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을 대상(對象)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대중으로부터 연대매체를 수탁(受託)받기 위해서는 그는 대중에 대하여 봉사(奉仕)하지 않으며 안된다. 따라서 대량의 연대매체를 수탁받기를 원하는 사람과 대량의 화폐를 소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인간에 대 한 태도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매체는 '연대'의 매체 인 것이다. 대상으로 취급당한 사람이 자신을 대상으로 취급한 사람에게 연대매체를 신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신탁과 수탁을 통한 네트워크 조직관계에 있어서 연대매체는 공개된 정보이다. 연대매체가 화폐와 다른 점은 연대매체는 순수한 정보 (情報)라는 것이다. 연대매체는 개인간에 유통(流通)되는 가치매체가 아 니라 연대매체를 소유한 사람들의 소유상황에 대한 정보이다. 이러한 정 보는 연대부문의 연대매체 관리기관에서 저장되고 관리된다. 연대매체가 정보라는 사실은 가치매체의 존재화(存在化)와 실체화(實體化)의 경향을 제거한다. 그리하여 연대매체는 또 다른 화폐적 환상 (즉 연대매체의 환 상)을 야기하지 않는다. 연대매체를 소유한다는 것은 어떠한 실체를 소 유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대매체의 신탁과 수탁은 사회적 조 직관계에 있어서 그의 위상(位相)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사회적 조직과 연대를 통해서 의미를 가지는 정보이다.

사람들이 연대매체를 강렬하게 추구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가 아니 라, 반대로 사람들이 연대매체를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이 다. 즉 화폐적 환상, 화폐적 무명이 작동하지 않는데도 연대매체에 대한 수요가 존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연대체제에 있어서 대중이 연 대매체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연대체제는 현실성이 없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케인즈가 부딪친 문제이기도 하다.

7.4.4. 생존과 사회적 신뢰(信賴)

케인즈는 자산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그것은 주식시장에서의 불안정성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말 하는 자산시장과 실물시장의 관계에서 볼 때 '투기업자(投機業者)가 기 업이라는 견실한 수류(水流)에 떠 있는 거품인양 아무런 해독(害毒)도 미치지 않는' 경우라면 자본주의는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나 반대로 '기업이 투기의 소용돌이에 떠 오르는 거품'이 될 때에는 사태는 중대하다. 일국(一國)의 자본발전이 도박장(賭博場) 활동의 부산 물(副産物)이 될 때에는 일이 그릇되기 쉽다. 그리하여 이러한 자본주 의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케인즈에게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즉, "투자물의 구입을 영구적으로 하여, 마치 결혼과 같이 죽음이라든가 또 는 그 밖의 중대한 원인에 의하지 않고서는 해소(解消)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악(惡)에 대한 하나의 유효한 구제책이라는 결론"이 다.2) 그것은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산시장의 자산적 투자가들이 일단 투자를 하면, 즉, 어떤 회사의 주식을 구입하면 결코 해소할 수 없게 한 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장기예상에 의하여 투자를 하고 투자를 한 이상에는 용이하게 그것을 전환할 수 없으며 현금화(現金化) 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의 투기를 근절 하게 하고 불안정을 해소시킬 수 있고 자산시장의 불안정이 실물시장의 교란(攪亂)을 방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딜렘마에 부딪치게 하였다.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고정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용 이하게 위험을 벗어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아예 그러한 투자를 하지 않 고 화폐자본을 다르게 이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케인즈의 딜렘마는 투기가 일어나고 자산시장이 불안정하게 변동한다고 하더라도, 자산을 용이하게 화폐로 바꿀 수 있는 시장을 조직(組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식시장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연대매체는 케인즈가 결국에는 포기한 구제책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 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연대매체의 구입은 철회될 수 없으며 화폐화할 수도 없다. 그것은 케인즈가 말하는 "투자물의 구입을 영구적이고 또 마 치 결혼과 같이 죽음이라든가 또는 그밖의 중대한 원인에 의하지 않고서 는 해소할 수 없는" 선택(選擇)인 것이다. 케인즈는 사람들이 화폐자본 을 다른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한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구체책을 포기 하였다. 그러나 케인즈의 추론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전제한다면 화폐적 무명은 제거될 수 없고 따라서 남는 문제는 화폐적 무명을 어떻게 조작(造作)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남는다.

우리는 케인즈의 전제(前提)를 부정한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경제체제 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를 전제로 하는한 모든 개인은 자신 의 화폐자본과 자산(資産)을 어떻게 유지하고 증식(增殖)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행동한다는 전제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특정 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계속 화폐적 환상을 조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국가가 화폐적 환상을 조작하는데 실패한다면 개인의 미시적 행동의 거시적 결과는 전체를 파멸시키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개 인이 과도한 환상에 빠진다면 투기가 실물기업을 거품으로 만들 것이며, 개인이 환상에 회의(懷疑)를 가진다면 자산시장이 붕괴될 것이다. 현실 적인 과정은 과도한 환상에서 갑자기 환상에 회의가 제기되는 경로(經 路)를 취한다. 그리하여 공황의 과정은 극심한 투기후의 자산시장의 붕 괴와 실물시장의 마비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다른 체제를 전제하는 것이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개인 은 자신의 화폐자본을 유지하고 증식하는데 자신의 인생을 걸지 않는다. 사람들은 화폐적 환상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實 體的眞實)에 입각하여 행동한다. 즉, 인간의 현재의 삶과 미래를 보장하 는 것은 화폐적 환상이 아니라 사회의 연대성(連帶性)이다. 사람들이 연 대적 관계망 속에서 노동하고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는 하루하루의 실물적 과정이 모두의 현재의 삶과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 회주의에서나 농업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행동이 자본주의에서의 행동과 다른 것과 같은 것이다. 관리사회주의사회에서 인간은 미래가 불안하여 자신이 가진 화폐자본을 어떻게 유지하고 가치를 증식시킬 것인가를 전 전긍긍하지 않는다. 농업사회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연대체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인간의 경제적 행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반은 자신의 현재의 삶 과 미래의 생존(生存)에 대한 신뢰(信賴)를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가 인간의 위상(位相)을 결정한다. 자신의 삶을 유 지하기 위하여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경제체제적 대답이 인간의 위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신뢰를 화폐적 무명 에 두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요체이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오 로지 화폐적 부를 믿을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인간은 배신할 수 있으며 국가는 나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 는 것은 화폐적 부에 대한 신뢰이다. 비록 화폐가치가 변동하고 화폐적 부의 유지하고 증식하기 위한 자산투자가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지만 그 것밖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화폐적 환상은 위험한 것이 기는 하지만 그러나 유일(唯一)하게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체제의 불안정성은 여기에서 온다.

7.4.5. 연대사회에서의 인간의 위상

연대체제에서는 사회적 연대에 대한 신뢰(信賴)가 사회의 기반이 된 다. 연대체제에서 인간의 위상은 노동에 대한 시장소득(市場所得)과 연 대소득(連帶所得) 그리고 연금소득(年金所得)에 의하여 구조화된다. 사 람들은 자신의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위하여 연대소득을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소득을 보장하는 자신의 노동능력과 사회적 연 대성을 신뢰한다. 이러한 신뢰를 전제로 할 때 화폐자본에 대한 인간의 태도(態度)는 달라지는 것이다. 화폐는 그들에게 현재의 삶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불안에 대한 방지수단도 아니고, 자아실현의 방법 도 아니다. 인간의 관심(關心)은 화폐와 재산 그리고 물질적 욕구에서 자아실현과 연대에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인간의 위상을 변화 시킨다.

인간의 위상이란 인간의 본성이 기동(機動)하는 형식을 부여하는 체 제적 구조이다. 자본주의의 기반을 형성하는 인간의 위상은 투기적(投機 的) 구조이다. 자산시장이 그러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연대매체는 투기 적 자산이득이나 소유소득을 창출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위험도 부담하지 않는다. 연대매체는 화폐에 대하여 가치가 항상적으로 보장되 는 가치매체이다. 연대매체는 그것을 구입한 사람이 그 가치를 상실할 염려는 없는 것이다. 연대매체의 축적은 다만 노동소득을 안전하게 보 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는 노동(勞動)과 성실성(誠實性)에 기 초하는 체제이다. 자본주의적 투기업자에게 연대매체는 무미건조할 것 이다. 그러나 타인의 생산물을 합법적으로 절취하려는 투기업자가 아닌 경우에는, 연대매체는 사회적 연대의 유용한 매개수단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사회적 연대에 참여하고 사회적 연대로부터 자신 의 삶을 보호받을 수 있는 연대의 매개체인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환상 (幻想)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반영하는 매개체이다. 자본주의체제에 있어서 체제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인간의 행동이 운과 도박, 투기적 속성이라면, 연대체제에 있어서 체제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인간의 행 동은 성실하게 노동하고 그렇게 획득된 가치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그것 을 매개로 하여 조직을 통하여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재산의 소유와 그 증식에 기초하는 자본주의가 익숙한 것 인지 모르나, 먼 미래의 사람들은 인간의 투기적(投機的) 행동이 경제체 제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 대하여 대단히 기묘(奇妙)하 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묘한 체제를 당연시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연대체제에서는 재산의 소유가 중 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노동과 창의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하여 사회적 으로 참여하는 관계망이 중요한 것이다. 그의 삶을 보장하고 그의 자아 실현을 이루는 것도 재산이 아니라 이러한 노동과 창의와 조직(組織)이 다. 이 모든 것을 연대매체가 매개한다. 그리고 이것이 연대체에 있어서 의 인간의 위상이다.

인간의 위상의 이러한 변화는 소유적 사회(所有的 社會)에서 신탁적 사회(信託的 社會)에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나 가치의 추구를 자신의 소유에서 구하지 않는다. 연대매체의 소유상태 는 변화하지 않으며, 다만 신탁에 의하여 기능(機能)한다. 그런데 신탁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 상호간에 조직(組織)을 형성한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과 신탁을 통하여 결집된 연대매체에 대하여 연 대자본이 배분(配分)된다. 그리하여 연대사회는 신탁에 기반하는 조직을 통하여 인간이 사회적으로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추구하는 관계망이다. 신탁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고, 자 아실현에 나아갈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연대체제에서 인간의 일반적 생 활양식이다. 그것은 개인의 사회가 아니라 조직적 연대, 네트워크 조직 의 사회이다. 개인으로서는 사회적 연대로부터 생존을 보장받는다. 그리 고 생존 이상의 일체의 가치는 다른 인간과의 조직과 연대를 통하여 가 능하다. 근대의 존재적 사회(存在的 社會)에 대하여 연대적 사회(連帶 的 社會)인 것이다.

연대적 사회는 이제까지 매몰되었던 인간의 또 하나의 중요한 본능, 연대의식(連帶意識)을 활성화하고 그것을 가장 중요한 기동(機動)의 기 제(機制)로 구성하는 것이다.3) 자신의 개인적 부를 삶의 보장 수단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연대성에 의하여 보장되는 생존의 기반 위에서, 나의 인생의 의미와 타인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 이 연대체제의 기동의 기제인 것이다. 사회가 우리의 삶을 보장하는 것 은 바로 우리가 이웃의 삶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의 총체적 결과인 것이 다. 이와 같이 인간의 위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변화시킨 다. 인간의 위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을 고양(高揚)하는 것, 이것이 역사적 진보(進步)의 유일(唯一)한 의미이다. 인간의 고양 그것은 인간 이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좀더 선(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순전히 도덕이나 종교의 문제만은 아니며, 그것은 체제가 규정하는 인간의 위상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진보하는 것이다.

7.4.6. 도덕, 종교와 인간의 고양(高揚)

도덕과 종교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 품성, 깨달음, 믿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은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며 우주적 연대성이다. 죄악의 유혹이 난무하고 위험과 불안과 경쟁이 가득한 인간 의 위상을 전제할 때, 사랑과 자비는 오직 기적(奇蹟)일 뿐이다. 그러한 사회는 자신의 신도를 늘리고 헌금을 많이 받으려는 종교인에게는 좋은 기회인지 모르나,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려는 종교인에게는 절망의 벽 (壁)이다. 그리하여 도덕과 종교의 문제는 인간의 위상(位相)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가치매체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 다. 물신(物神)에 대한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일반화된 사회와 인간의 위상 속에서 인간은 신에게 접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생존의 문제 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자신의 생존의 문제를 종교 조직을 통하여 해결함으로써 사랑과 자비와 깨달음을 외칠 수 있다. 그 러나 그의 설교를 듣는 대중은 전혀 다른 생존의 상황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개인적 구원은 사회적 구원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4)

종교와 도덕의 수준을 결정하는 사회적 기반은 연대의 매개양식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매체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매 개양식과 가치매체가 모든 개인개인이 현실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체제 적 위상(位相: 개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3일을 굶은 두 사람에게 빵 한조각을 던져주고는 서로간에 사랑과 자비 를 설교할 수 없다. 인간에게는 사랑보다는 생존이 중요하다. 화폐애(貨 幣愛)가 모든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할 때 사랑과 신은 참으로 멀리 있는 것이다. 인간의 경제적 행동이 화폐애에 기초하고, 생존이 화폐에 의하여 보장되며, 사회적 성공이 화폐척도에 의하여 규정되고, 미래의 생존을 화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인간의 위상(位相) 속에 서, 도덕과 종교와 사랑은 다만 도피처이거나 위안이거나 장식이거나 심 지어는 화폐를 얻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리하여 화폐의 문제는 단순 히 경제체제의 문제만은 아니며 그것은 인간의 도덕과 문명의 문제이기 도 하다. 물질주의(物質主義)에 대한 예수의 비판적 견해, 욕망주의(慾 望主義)에 대한 석가의 비판적 견해는 현실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진실로 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가치매체의 문 제, 화폐사회의 문제에 직접 대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北韓)에서 하나의 구원(救援)을 발견하려고 노력한 루이제 린저 가 제기한 의문은 우리에게도 중대한 것이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신자 로 가득한 서구에 과연 사랑이 충만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서는 예수의 가르침도, 기독교의 사제들도 결코 절도, 강도, 살인을 멈 추게 하지 못했다. 루이제 린저의 의문은 신(神)이 부정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건전한 도덕의식, 친절함, 자비심, 개인이기주의의 극복 등이 이 루어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괴로운 의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 문은 화폐사회와 관련되어 있다.

화폐사회(貨幣社會)는 예수와 석가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사회이다. 화폐사회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까,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는 이기 적 동기(利己的動機)가 기동(機動)의 기제(機制)가 되어 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체적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회이다. 예수는 정반대로 이 야기 하였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걸칠까를 걱정하지 말라." 너희는 먼 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타인 에 대한 연대적 행동이 자신의 물질적 수요(物質的 需要)를 공급하는 사 회관계가 전제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를 상상하였다. 중요한 점은 이러 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가치매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치매체가 인간 의 위상(位相)을 결정하고 인간의 위상이 이기심과 사랑을 결정하는 것 이다. 화폐사회를 전제로 할 때에는 종교적 사랑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종교인의 자기만족이고 대중의 내세에 대한 위안에 불 과할 뿐이다. 화폐의 문제는 도덕과 종교의 전제(前提)가 되는 문제 이다.5)

인간은 사랑과 연대의 동기(즉, 連帶意識)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이 러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면, 사회와 경제체제는 이러한 동기를 현실화 할 수 있는 형식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대체제에 있어서 연대매 체(連帶媒體)는 바로 이러한 사랑과 연대를 기동의 기제로 활성화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가치매체인 것이다. 동일한 문제를 불교적 집합표상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사회를 구원하는 것은 1차적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화폐적 무명(無明)을 씻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연대 성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는 진실이다. 화폐사회는 이러한 진실이 화폐적 무명에 의하여 가리워진다. 화폐사회는 인간의 사랑과 연대적 동기를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럽게 억압(抑壓)하고 있는 체제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매체에 의하 여 통합되는 경제체제의 문제이다. 사랑의 문제, 무명의 문제, 도덕과 종교의 문제는 가치매체를 다리(橋)로 하여 경제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 는 것이다. 연대사회는 화폐적 무명을 제거하고 사랑이 현실화하는 방 향을 지향하는 것이다.

연대사회는 도덕과 종교의 차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그 것은 주일에는 하느님에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거 나, 내세에는 안식을 달라고 기도하고, 나머지 6일의 평일에는 열심히 경쟁하고 대상의 원리를 실천하는 그러한 현실적 상황을 제거한다. 연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존이나 타인에게 승리하기 위하여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회적 연대에 기여함으로써 자아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를 걱정하는 위상을 제공한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체제적 위상 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여와 자아실현을 통하여 자신의 생존과 삶의 의미를 사회로부터 되돌려 받게 되는 그러한 연대양식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정신적으로 진보(進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 신적 진보로서의 인간의 고양(高揚)이야말로 진보의 역사적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