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어 : 새로운 문제

1. 경제공동체(經濟共同體)와 국가공동체(國家共同體)

우리는 2부(제1권 下卷)에서 사회, 체제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대부 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경제체제에 관한 논의에 대해 하나의 국가(國家) 를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그 국가의 경제체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받아들 였을 것이다. 우리의 논의는 사실은 국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논의에서 경제체제는 국가와는 무관하게,(어떤 의미에서는) 독립 적인 것으로 규정되었다. 즉 연대부문(連帶部門)은 국가와 다른 것이고, 달리 경제에 관하여 국가가 관계하는 측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체제의 문제는 국가의 문제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다른 두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즉 전쟁의 폐지와 문명의 지양이 그것 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경제체제의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 하여 우리는 2부를 종결하면서 경제체제의 문제의 위상을 전체적인 구조 에서 재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국가, 경제체제, 등을 동등한 범주(範疇)로 규정하며 이것을 공동체(共同體)의 개념으로 규정한다. 즉 국가는 공동체의 한 양상이다. 그리고 경제체제 역시 공동체의 한 양상이다. 즉 경제체제와 국가는 모 두 공동체의 조직양식이다. 이것이 경제체제의 새로운 정의(定義)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경제체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왔으나 3부에서는 경제 공동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은 국가공동체와 분별되는 하나 의 공동체이다.

국가와 경제체제는 반드시 동일(同一)한 공동체의 정치적 측면과 경 제적 측면일 필요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의 사회를 보는 관점이다. 다만 근대사회에서는 항상 국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는 동일하였다. 그러 나 이것은 근대사회의 독특한 특징일 뿐이지 새로운 사회에도 반드시 그 래야 할 이유는 없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시대 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연대의 매개양식으로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 자본과 가치매체, 법률과 권력을 들었다(上卷 제6편 참조). 경제공동체는 자본 과 가치매체의 헤게모니가 조직되는 인간연대의 범위이다. 이에 대하여 국가공동체는 법률과 권력헤게모니가 조직되는 인간연대의 범위이다. 근 대사회에는 이러한 경제공동체와 국가공동체가 항상 동일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경제공동체와 국가공동체는 동일한 공동 체가 아니었다. 장원(莊園)과 국가는 다른 것이었다. 또한 현재에 이르 러서도 경제공동체와 국가공동체는 분리(分離)되고 있다. 유럽경제공동 체가 그러한 것이다. 또한 소련에서의 최근의 변화에서 관리사회주의 붕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경제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분리이다. 쏘연 방(蘇聯邦)은 경제공동체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각 공화국이 국 가공동체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 유럽경제공동체나 쏘연방 경제공동 체나 모두 다 국가와는 다른 범위에서(오히려 더 넓고 상위의 차원에서) 근대와는 다른 경제공동체가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근대적 집합표상에서의 국가공동체 중심에서 벗어 나는 새로운 현실의 흐름이다. 한편 근대이전의 사회에 있어서는 경제공 동체와 국가공동체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공동체가 있었다. 그것은 문화 공동체(文化共同體)나 집합표상공동체로 규정할 수 있는 것으로 공통의 사상과 문화와 집합표상을 기반으로 하여, 집합표상의 헤게모니가 조직 되고 작동하는 인간연대의 범위이다. 서구중세세계는 집합표상의 공동체 즉 보편교회(普遍敎會)에 의하여 세계질서가 규정되었다. 당시의 서구는 국가공동체에 있어서는 분리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집합표상공동체에 있어서는 하나의 통합된 세계적 공동체였다. 근대사회는 일체의 다른 공 동체를 분해하고 모든 공동체를 국가공동체로 통합하였다. 그리고 전쟁 은 이러한 국가공동체 상호간의 국민적 투쟁이었다.

이러한 규정은 이제까지 우리의 논의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준다. 즉 우리는 2부(제1권 下卷)에서 경제공동체를 논의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는 제3부에서 국가공동체와 집합표상공동체를 포함하여 공동체 일반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근대국가(近代國家)를 어떻게 지 양(止揚)하고 세계질서를 어떠한 인간연대의 양식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 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제는 정치적 논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지만 반드시 그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일반에 관한 논의는 권력과 법률, 자본과 가치매체,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 모두를 통합하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간의 투쟁으로서 전쟁 과 평화의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전쟁이란 국가공동체간의 투쟁이다.) 동시에 경제공동체 역시 이러한 모든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제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 일반의 관점에서 재론될 것이 다. 여기에 세계경제로서의 연대경제체제의 문제가 포함된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그 주제의 설정방식에서 부터 접근방법에 이르 기까지 기존의 학문적 접근법과는 다른 것으로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 다. 그것은 사회와 경제, 정치와 국가에 관한 근대적(近代的) 집합표상 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근대적 집합표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합표상에 의하여 세계를 해석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제1부 제1장 집합표상의 장에서부터 제기한 우리의 주장이 었다.

2. 비젼과 현실 그리고 전략(戰略)

제2부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논의와 그것에 비추어 본 기존 의 현실을 논의하였다. 제3부(제2권상권)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모델설정과 같은 것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체제의 문제나 공동체의 문제에 관한 우리의 논의가 단순한 모델의 설정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 주기 바란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해석이며 규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떠한 가치관을 기준으로 현실을 해 석하고 원인을 규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논의가 아니다. 현실을 해석하는 가치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적 기준이라면 그것은 쓸모 없는 비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령 자본주의를 계급사회(階級社會)라 고 규정은 관리사회주의가 현실성이 있을 때에는 의미가 있는 분석이 다. 그러나 관리사회주의가 현실성이 없다면 자본주의가 계급사회라고 비판하는 것은 마치 자본주의가 하느님에서 모든 권력을 주지 않기 때문 에 나쁜 체제라고 비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두가지 비판 모두 불 가능한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비판 을 위한 비판일 뿐이며, 학자의 생계를 위한 지식상품(知識商品)에 불과 할 뿐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비젼을 설정하는 것은 현실을 해 석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계급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성 이 없다면 계급이라는 개념 역시 불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변 경할 수 없는 자연질서와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 에 대한 비젼과 모델의 규정은 현실을 해석하고 변혁하는 방향을 제공하 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경제체제에 관한 논의는 자본주의적 계급이 철폐된 사회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의 모색이며, 그럼으로써 자본 주의적 현실에 대한 개선의 길을 찾는 작업인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이고 그 체제적 한계내에서 개 선을 모색한다면 이러한 논의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을 개선 하려는 수많은 온건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추구가 기존체제의 벽(壁) 앞 에서 허망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실천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들은 순교자(殉敎者)가 되거나 혁명가가 되어야 하는 기로에 선다. 순교 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희생으로써 다른 사람 들에게 기대하는 행위이다. 이에 대하여 비젼이 불명확한 혁명가는 체제 적 병리의 원인을 기존의 지배집단의 악(惡)으로 돌린다. 그리하여 혁명 에 실패한 혁명가는 악의 무리들에 희생된 순교자로 스스로를 자위하며, 성공한 혁명가는 새로운 지배집단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에 기여하 는 것은 혁명의 성공이 아니라 그들이 비젼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레닌이나 모택동은 무너져가는 봉건체제를 종식시킨 인물 일지 모르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새로운 시대는 적어도 근대적(近代的)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는 아 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혁명(革命)의 집합표상은 봉건사회에서 근대 사회에로 전환하는 시기에서 야기되는 역사적 변화의 양상에서 유추한 근대적 집합표상이다. 그러한 집합표상을 새로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다 고 믿는 것은 희생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혁명을 변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식의 혁명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에 새로운 세계를 실현하는데 관한 우리의 전략이론의 출발점이 있다.

3. 전략의 문제 : 이우위직(以迂爲直)

전략이란 시간(時間:역동성)을 공간(空間:관계장)에 피어나게 하는 방법론이다(제1권 상권 3편 참조). 그것은 기존의 존재(存在)를 깨어 부 수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존재의 동일성(同一性)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 니다. 이것이 전략에 대한 존재론적 집합표상과 연대적 집합표상의 차이 이다( 제1권 상권 제2편 참조). 전략은 잠자는 시간(인간의 역동성)을 깨워내어 기존의 공간을 재편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를 실 현하려는 전략은 역동성의 기동(機動)이다.

현실은 무수한 분야에서 무수한 시간들이 기동하는 있는 상황이다.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실은 항상 치열한 대치전(對峙戰)의 상황을 노 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체제가 형성하고 있는 정합성(整合 性)에 끊임없이 새로운 역동성이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대치 전에서는 (완고한 체제적 정합성에 의하여) 언제나 체제가 유리한 위치 에 있다. 공격(攻擊)이 성공하는 것은 수비보다는 압도적 우위에 있을 때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비자는 공간적인 측면에서 항상 유리하다. 그 러나 반대로 수비는 항상 승리해야 하지만 공격은 단 한번 승리하면 된 다. 이러한 점에서 공격자는 시간적인 측면에서 항상 유리하다. 현실의 수 많은 분야에서 공격과 수비가 되풀이되는 치열한 대치전이다. 노동자 는 자본가와 대치한다. 젊은이는 기성세대와 대치한다. 시민운동은 다양 한 이슈에 의하여 다양한 지배세력들과 대치한다. 정당은 정당과 대치하 고, 조직은 조직과 대치하고, 국가는 국가와 대치한다.

전략의 핵심은 이러한 대치전을 승리로 이끄는 방법에 있는 것은 아 니다. 대치전의 승리는 일체의 전략이 무력화 된 불가피한 상황에서 추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략의 요체는 대치전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대치전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현실을 본질적으로 변혁하는 우 회(迂廻)와 기동(機動)에 있다. 나폴레옹의 울름전투는 우회와 기동의 전형(典型)이다. 당시 나폴레옹은 소수의 부대로 오스트리아 군과 대치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은 오스트리아 군 북방을 우회하여 비엔타로부 터 연결되는 병참선을 차단하였다. 대치하는 적군을 우회하는 기동이 완 료됨으로써, 대치전은 무의미해지고 병참선을 차단당한 오스트리아 군은 탈출에 실패하자 항복하였다. 울름전투는 전략의 요체를 가장 단순하고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승리할 때까지 대치전을 계속하는 것은 전략 이 아니라 끈기와 용기에 불과하다. 전략이란 희생을 줄이고 승리를 의 미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전략이란 어떻게 우회하는 기동을 설 계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회기동은 대치전의 상황을 근 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는 그것은 간결하게 표현하였 다. 즉, 전략에서는 다투어야 하는 것이며, 전략의 어려움은 어떻게 하 여 우회하는 기동을 가장 주된 전략으로 구성하는가 하는 것이다(軍爭之 難者 以迂爲直). 모든 사람들이 대치전을 당연한 방법론으로 삼듯이, 전 략가는 우회하는 기동전(機動戰)을 가장 당연한 방법론으로 구상하고 실 천해야 한다.

군사전략에 있어서 일체의 우회와 기동은 공간적(空間的)인 것이다. 그러나 체제변혁의 사회적 전략에 있어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근대적 혁명전략은 권력을 두고 대중을 희생하는 대치전을 벌이는 것이 었다. 그러나 권력은 중요한 진지(陣地)이기는 하나 유일한 진지는 아니 며 결정적인 진지도 아니다. 나아가 연대체제를 실현(實現)하는 전략은 하나의 국가의 권력을 쟁취한다고 하여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 다. 또한 전쟁을 폐지(廢止)하려는 전략은 하나의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 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가체제 그 자 체를 변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우회와 기동은 이러한 관점에서 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세계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벌 어지는 현실의 대치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우회와 기동이어 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전략에서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지 않 으면 안 된다. 권력헤게모니 뿐만이 아니라 법률헤게모니, 연대자본헤게 모니, 가치매체 헤게모니, 커뮤니케이션 헤게모니, 집합표상의 헤게모니 등 일체의 헤게모니 영역이 우리의 전략공간(戰略空間)이다. 나아가 하 나의 국가가 아니라 세계 전체가 우리의 기동공간(機動空間)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개개의 국가에 대하여 우월한 기동공간을 확보 할 수 있다. 이렇게 우월한 기동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특정한 국가에 대 한 우회와 기동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대체제 의 실현전략을 구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혁명과 투쟁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와 호혜가 자연스럽게 선(善)의 카르마로 축적되는 기제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가 표현한대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모 든 사람들은 우리의 편으로 되어버리는 그러한 전략상황을 창출해야 한 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회와 기동을 설계하는 것이 전략적 문제의 요점 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의 문제에 대하여 제2권의 하권에서 제4부로 논의하게 될 것이다. 전략의 관점에서는 그 이전의 경제체제(제2부)와 공동체에 관한 논의(제3부)들은 모두 전략의 한 구성요소(構成要素)가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논의한 모든 요소들은 모두 전략적으로 기동 (機動)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동체 일반과 전략의 문제가 제2권의 상하권(제3부, 제4부)에서 다루게 될 새로운 문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