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1. 존재론적(存在論的) 경제체제

1. 경제적 변화와 집합표상의 변화

역사적으로 경제적 변화는 바로 연대매개양식의 변화이며 또한 그 사 회의 집합표상을 변화시켰다. 근대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 환하면서 자본주의화 하였다.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농업사회와 비교하여 공업적 생산이 산업의 대종을 이루는 경제이다. 산업사회는 농업사회에 새로운 산업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변화한 것이며, 연대매 개양식의 차원에서는 자본(資本)과 가치매체(價値媒體)의 대전환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기초를 이루는 산업사회의 핵심은 두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생산자본(生産資本)의 일반화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매체인 화폐의 보편적 사용이다. (우리는 토지와 같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한 물질적 설비가 자본의 기능을 하는 것을 생산자본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간이 생산한 자본이며 공업적 생산을 위한 자본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첫째로 생산수단으로서 공장설비와 같은 생산자본 이 사회전체 자본의 대종(大宗)을 이루는 사회이다. 사회적 연대의 매개 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을 볼 때 농업사회는 토지자본(土地資本)에 의 하여 매개되는 사회이다. 이에 대하여 산업사회는 생산자본(生産資本)에 의하여 매개되는 사회이다. 둘째로 산업사회는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 화 폐(貨幣)라는 가치매체의 사용이 보편화된 것이다. 농업사회는 기본적 으로 자급자족의 체제이며 자신이 소비하는 경제적 자료를 스스로 생 산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생산물의 교환은 부수적인 것이며 화폐가 사용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이에 대하여 자본 주의산업사회에 있어서는 판매(販賣)를 위하여 생산되고 그리하여 가치 매체가 모든 경제관계를 보편적으로 매개한다. 가치매체의 일반적인 사 용은 시장(市場)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시장이야말로 경제의 중심적 영 역이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산업사회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컴퓨터, 인공위성, 텔리비젼 등의 기술혁신을 중심으로 야기된 변화이 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혁명적인 변화를 야기하 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기술혁신이 산업사회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말하며 미래는 `후기산업사회(後期産業社會)' 가 될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견해에 의하면 새로운 기술혁신은 산업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며 그것은 `제3의 물결'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또 다른 견해에 의 하면 이러한 기술혁명과 함께 야기될 새로운 변화는 우리의 문명(文明)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며, 현재의 물질적 사회에 대하여 지식의 가치(知 價)가 경제적 가치의 중심을 형성하는 `지가사회(知價社會)가 될 것이라 고 규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일반적인 용어로서 정보혁명(情報 革命)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연대매개양식 가운데에서 집 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중대한 혁명이다. 농업사회에서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로의 전환이 자본과 가치매체의 대변혁이었다면, 새로운 기술혁신 은 집합표상과 커뮤케이션의 대전환이다.

오늘날 경제에 관한 집합표상은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전환하면서 형성되었다. 그것은 토지자본과 신분적 계급사회에서 형성된 중세적 집 합표상을 붕괴시키고 들어선 개인(個人)의 개념과 소유(所有)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중세의 세계관에 대하여 근대의 합리주의에 기초한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자본과 가치매체의 변화와는 전혀 다른)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의 변 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경제와 경제체제를 지배하는 것은 (자본과 가치매체 차원의 변화에 대응하였던) 과거의 집합표상인 것이 다. 그리하여 세계와 경제는 과거와 미래가 대립(對立)하는 장으로 변화 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는 이 새로운 변화로서의 정보혁명을 현실화하는데 실패함으로써 붕괴되었다.1) 이에 대하여 자본주의는 정 보 기술을 이윤성(利潤性)의 기준으로 제약하고 있으며, 한편에 있어서 는 정보 기술을 자산시장(資産市場)으로 현실화함으로써 체제유지적(體 制維持的)인 기술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불안정성을 더하 고, 더욱 격렬한 경제적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와 마찬 가지로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 차원의 대전환에 대하여, 자본헤게모니 에 기초하는 근대의 존재론적인 집합표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자 본주의에서 그것은 소유의 집합표상이고 관리사회주의에서 그것은 가치 의 집합표상이다. 이들 개념에 기초하는 우리의 경제체제에 관한 집합 표상은 서구 근대사회에서 기원(起源)하는 것으로 대단히 진부(陳腐)한 것이다.

2. 소유의 존재론적 집합표상(集合表象)

소유라는 집합표상은 전형적인 존재론적인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우 리는 갑이 을을 소유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갑이 을을 완전히 배 타적(排他的)으로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갑이라는 소유의 주체가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하 는 것이다. 또한 을이라는 소유의 객체 역시 다른 모든 물질들로부터 분 리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인간 의식에 있어서 이러한 의제(擬制)는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다.

봉건적 농업사회에 있어서 인간은 계급적 질서의 한 부분(部分)이었 다. 그것이 하느님 안에서의 연대의 한 부분이든 사회의 계층적 구조의 한 부분이든 간에, 인간은 모두 각자의 지위와 역할에 의하여 사회전체 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산업사회에로의 전환에 따라 모 든 인간은 독립된 개인적 존재로 규정되게 되었다. 인간이 모두 자유롭 고 평등하다는 것은 동시에 독립되고 분리되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의미 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자신에 대한 규정에 서 이와 같이 개인적 존재성(存在性)이 강조된 일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 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구조 속에 독립하여 운동하는 원자(原子) 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존재와 물질 적 가치와의 관계가 소유(所有)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적 현실은 이와 같이 존재론적인 것은 아니다. 현실에 있어서 인간과 다른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물건과 다른 물건 역시 그러하다. 말하자면 사회 경제적 관계는 자연적으로 성 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집합표상에 있어서 인간과 사물을 분리하 고 그것을 제도화함으로써 배타적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유라는 것은 다른 모든 사회구성원이 갑이라는 소유주체에 대하여 을 에 대한 완전한 배타적 지배를 인정해 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규범적 (規範的)인 합의(合意)이다.

근대서구사회는 이러한 의제적(擬制的)인 소유권의 개념과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그것이 진보적(進步的)인 집합표상으로 간주되 어 왔다. 인간의 사회적 의식에 있어서 모든 인간과 사물을 각각이 분 리된 존재로서 집합표상을 형성한다. 이러한 세계관과 사회관에 있어서 모든 인간과 사물은 시간과 공간의 구조 속에 분리독립된 존재로 정위 (定位)하며 이러한 존재들이 다른 것과 분리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것은 전형적인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며 '단순정위(單純定位)'의 카르마 를 야기한다.

자본주의는 이와같이 존재와 소유의 집합표상에 기초하여 모든 경 제관계가 형성된다. 인간과 물질의 관계는 소유의 관계이다. 그리고 인 간과 인간의 관계는 분리독립된 존재로서의 개인의 동의에 기초하는 계 약의 관계이다. 그리하여 소유와 계약이 모든 관계의 기초이다. 이러한 관계는 소비재에 대하여는 개인의 자유(自由)를 확보하는 장치로서 작 용하며 적절한 것이다. (그것은 뉴톤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가시세계(可 視世界)에서는 적절하게 통용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이 물질적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활자료를 소비하는 차원에서는, 완전한 배타적 인 지배로서의 소유는 필요한 것이고, 그리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것 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단순히 소비재로서의 생활자료에 대해서만 소유의 개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에 대해서도 동일한 소유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즉, 존재론적인 단순정위의 카르마는 자 본과 노동의 소유에서 나타난다.

3. 노동과 자본의 소유

인간의 노동을 통합하고 조직하는 방식은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임 금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노동계약이다. 노동시장에서 고용주와 노동자는 각자 소유물(所有物)을 가진 개인으로 만난다. 고용주는 임금 을 지불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있고 노동자는 노동력을 가지고 있 다. 그리하여 노동의 가격을 흥정하여 임금을 정하는 계약으로 노동이 조직된다. 이러한 과정은 권력이 개입되지 않는 당사자간의 동의(同意) 를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소유물을 교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노동계약은 자본가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계약인 것이다. 그것은 헤게모니에 대한 정당성의 문제를 경제적인 상품교환거래로 의제(擬制)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헤게모니의 노동자에 대한 지배는 정당성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품의 매매계약과 같은 것 으로 규정되고 그러한 매매에 당사자가 동의(同意)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동의하였으므로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계약에 관한 우리의 정당성의 집합표상에는 심 각한 은폐(隱蔽)가 있다. 노동계약이 사실은 소유물을 매매하는 계약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인 과정을 형성하는 조직에의 가입계약이고, 동 시에 그 조직을 지배하게 될 고용주에 의한 노동자의 지배계약인 것이 다. 그것은 상품의 매매계약이 아니라 헤게모니의 조직인 것이다. 노동 의 조직과정은 바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과정이다. 자본주의적인 존재론적 집합표상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 가능 할지 모르나, 노동력은 소유물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다. 따라서 노동의 조직과 헤게모니의 설정(設定)에 상품의 매매에 관한 정당성의 논리가 적용될 수 없다.

자본에 대해서도 노동과 꼭같은 정당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인간이 자본을 소유한다는 것도 인간이 생활자료로서 소비재를 소유한다는 것 과 전혀 다르다. 가령 인간이 토지, 공장, 건물, 기계설비 등의 형태로 된 물적(物的) 자본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 러나 이러한 물적 시설은 그것이 노동과 결합됨으로써 자본으로 기능 하는 것이다. 로빈손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동일한 공장설비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가 물적 시설을 소유하 고 있을 때, 사실은 그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그로 인하여 노동자 와의 관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측면이 더욱 본질적인 측면이다. 또한 자본의 소유는 노동과 자본의 결합으로 생산된 생산물에 대한 소 유권이 자본가에게 귀속(歸屬)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자본을 소유 하는 자에게 생산물의 소유권과 이윤이 귀속된다. 이것이 자본을 소유 하는 의미인 것이다. 노동조직에 대한 헤게모니와 생산물의 소유권 귀 속이 배제된다면 자본의 소유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 본주의에 있어서 생산자본의 소유라는 것은 노동조직에 대한 지배헤게 모니와 생산물과 이윤에 대한 소유권의 귀속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 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소유는 경영 헤게모니나 이윤의 귀속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즉 자본을 소유한다고 하여 경영헤게모니와 이윤이 그 자 본소유자에게 귀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사회를 형성하는 존재 론적 집합표상의 의제(擬制)이다. 그러나 소유한다는 사실과 소득이 창 출되는 것은 무관한 것이다. 소유하는 상태에서 무엇이 생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존재와 소유의 집합표상이 이러한 소득의 귀속 이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또한 소유한다는 사실과 지배한다는 사실(헤 게모니) 역시 관계가 없다. 자본을 소유한다는 이유로 기업조직을 지배 한다는 것은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의제가 우리에게 상식 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자본의 소유제도는 생산조직에 대한 헤게모니를 정당화하고 생산물의 분배와 귀속, 그리고 소유소득(所有所得:재산소득)의 귀속을 정당화하는 의제(擬制)이다. 봉건사회에서는 이것이 신분적 특권으로 정당화되었다. 그것이 자본주의에서는 소유와 계약의 이름으로 정당화 된다. 그리고 그것의 기초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단순정위의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4. 자본주의의 대상(對象)의 원리

자본주의에서 모든 개인은 존재론적으로 분리독립된 존재이다. 인간 은 자신의 소유물로 자신의 존재영역(存在領域)을 형성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인간들은 나의 존재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대상(對象)이 된다. 대상의 원리가 공식적인 이념으로 작동하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대상의 원리는 자유와 경쟁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 처럼 대상의 원리가 공식적 교리로 채용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 지되고 발전된다는 근거야말로 근대 경제학이 수립한 경제의 신비이다. 모든 인간은 대상의 원리에 따라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라! 그 리하면 경제의 신비가 모든 사람들을 낙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것이 야말로 경제학이 해명하는 신비한 원리이다. 아담스미스는 이것을 '보 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하였고 신고전파경제학은 정치(精緻)한 가격 이론을 통하여 이것을 해명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소유를 추구하고 다 른 인간에 대하여 대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더라도, 시장과 가치매체 가 그것을 통합하여 전체에게 유익한 거시적(巨視的) 결과를 가져온다 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신비--보이지 않는 손--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보장하 는 것은 없다. 자본주의는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업과 공황, 불평등과 계급적 적대, 타락과 전쟁, 환경의 파괴와 인간을 물질 화를 야기한다. 오늘날 경제와 시장을 방치할 때 전체에게 유익한 결과 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졌다. 우리는 미시적(微視的) 차원에서 의 대상의 원리가 전체적으로 선(善)한 거시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이러한 신비를 버린다면 자본주의가 결함을 가진 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왜 결함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야말로 신 비한 것이고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장점이야말로 미시적 차원에서의 대상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한 거시적 결과를 야기 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에 기반하는 체제이며 인 간의 창의성을 발양(發揚)시키는 탄력적인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물질 적 삶의 발전에 있어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최초로 전세계를 통합 하는 거대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신비한 논리이 며 자본주의는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골적인 대상의 원리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급한 물질적 욕망과 부도덕한 탐욕이 이처럼 노골적 으로 정당화되고 찬양되고 선망되는 체제는 인류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진보를 야기하는 추진력으로 찬양된다. 한편 자 본주의에서는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연대의식, 이웃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는 욕구를 억압한다. 존재론적 사회에 있어서 물질적 소유 이외 의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인간은 성자(聖者)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환경오염을 경고하고 저질의 문화에 대하여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적인 동기는 자본주의에서 실천으로 현실화(現實化)되지 못하며 기동성이 없다. 자본주의에서 돈 을 벌지 않고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러한 행동을 오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존재성에 기초하는 체 제이며 인간의 연대성(連帶性)을 억압하는 체제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결함이다.

5. 마르크스주의의 존재론적 집합표상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이었던 마르크스주의 역시 전형적인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자본주의가 '단순정위(單純定位)의 카르마'에 기초한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추상(抽象)의 카르마' 카르마에 기초하고 있다. 그 카르마는 경제적 실체로 규정되는 '가치'에서 야기 된다. 집합표상으로서의 '가치'란 관계를 존재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 가치는 추상적인 관계가 구체적 실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오랫동안 경제학적 관심사는 시장에서의 상품의 '가격'이었다. 이러한 '가격'을 설명하는데 존재론적 집합표상을 적용할 때에, 당연히 '현상'으로서의 가격의 배후에 있으며 가격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본질적 실재(本質的 實在)'로서 '가치'를 추론하게 되었다. 이것은 시대적 집합표상이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하나의 예이다. 그리하여 '가 치'는 상품에 내재(內在)하는 본질적 실체로서 그 가치의 움직임이 가 격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격결정의 연구는 이러한 실 재(實在)로서의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리하여 자본주의 경제라는 '구조적 존재' 의 운동법칙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본질적 실체로서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결정적 인 열쇠가 된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가치의 실체는 노동 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발견한 본질의 열쇠(노동 가치 설)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과학적(科學的)으로 해명하였다.(이것은 그와 엥겔스 그리고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신념이다.) 엥겔스가 찬양 한 대로 다윈이 진화론(進化論)으로 자연이 발전하는 법칙을 해명하였 듯이, 마르크스는 그의 가치법칙으로 자본주의의 발전 법칙을 해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추상(抽象)의 카르마이다. (1卷{존재로부터의 해방} 제2편 참조)

우리가 존재론적인 집합표상을 부정하고 연대적 집합표상에 설 때 에는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어떠한 상품에 내재하는 가치실재(價値實 在)라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는 다 른 모든 사물이나 인간과의 관계(關係)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있어서 는 규칙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정한 관계들을 존재로 규정하여 사고하 는 것이 편리하다. 가령, 지구와 돌멩이의 중력관계를 그 사물에 내재 하는 무게나 질량으로 규정하는 것이 편리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경우 그 존재로 의제(擬制)된 관계가 항상적(恒常的)으로 일정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논리를 상품가치에 적용할 때, 상품의 '가치'는 일정하게 규정되는 관계의 총체가 아니다. 스라파(Piero Sraffa)는 (분 배관계를 배제한) 생산의 물질적 관계들만에 의하여 규정되는 불변의 가치척도를 표준상품(標準商品)으로 규정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러한 가치척도재(價値尺度財)는 생산의 물질적 관계들이 항상적으로 변 화한다는 점에서 본질적 실재로서의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 물며 마르크스가 규정한 '사회적으로 필요로하는 추상적이고 평균적인 노동'이라는 가치의 실체는 자본주의의 시장가격을 설명하는데나, 관리 사회주의에서의 계획가격을 설정하는 지침으로도 기여할 수 없는 것이 다. 가치라는 추상의 카르마는 집합표상에 있어서는 사람들에게 신념으 로 고취시킬 수는 있으나, 현실에서는 그것이 카르마라는 것이 드러나 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관계(關係)인 것을 어떠한 존재로 찾아 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치개념은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집 합표상으로서는 효과가 있으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지침으로서는 무 용한 것이다.2)

이와같이 가치를 실재로 간주하면 그에 기반하여 잉여가치와 착취의 개념이 존재론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 의의 정당성의 집합표상에 충격을 가하는 새로운 정당성의 집합표상을 형성하였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경제이론에서는 자본의 소유에 의거한 노동자와의 관계는 착취적 관계이며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하인이 떼온 뗏장은 주인의 소유"라는 로크의 자본주의적 논리는 정당 성을 상실한다. 오히려 경제적 가치는 노동에 의하여 창출되는 것이며 그 가치는 노동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정당하다. 그리하여 자본에 귀속 되는 이윤은 착취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원인을 단 하나 의 존재에 귀속시키는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의 연대성을 사상하는 존재론적 인과관계의 카르마이다. 마르크스의 집합 표상은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공격하는데는 유력한 것이지만 새로운 경 제체제를 형성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흔히 비판자는 압제자(壓制者)가 된다. 이것이 관리사회주의에서 현실화하였다.

6.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

마르크스의 집합표상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것 은 논리적으로 화폐와 소유와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되는 것을 대체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는 명백히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실화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집합표 상이 아니라, 서구근대의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또 하나의 지류가 첨가 되었다. 그것은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국가적 존재(國家的存在)가 사회 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서구를 관통해 온 또 하나의 존 재론적 집합표상인 바, 사회전체가 구조를 가진 단일의 존재(存在)이 며, 개인은 이러한 구조적 전체존재의 한 부분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심적 존재는 개인에서 국가로 이동한다. 그럼으로써 소유와 화폐와 시장이 부정된다. 왜냐하면 소유나 화폐나 시장은 개인을 전제 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은 국유로 이전되고, 시장 은 국가의 계획으로 대체되고, 화폐는 사실상 배제된다. 우리는 이렇게 소련에서 현실화된 사회주의를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라고 부른 다.

관리사회주의체제에서 국가는 여러가지 기능을 행한다. 첫째로, 국 가는 자본주의에서의 이윤과 소유소득을 부정하고 투자자본의 배분을 실물적 차원에서 실시한다. 임금 이외의 사적 소득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의 문제는 소득의 흡수와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물자본재(實物 資本財)의 생산과 배분에 관한 계산(計算)의 문제가 된다. 둘째로, 사적 자본헤게모니는 국가적 헤게모니로 이동한다. 기업 의 헤게모니나 상품의 가격, 자원의 배분 등 모든 경제관계는 사적 존 재가 아니라, 통일된 전체존재로서의 국가의 권력헤게모니의 대상이 된 다. 세째로, 국가가 시장을 대체하고, 국가의 실물베이스 계획이 시장 의 가격을 대체한다. 그리하여 관리사회주에서는 전체사회가 국가라는 거대한 구조를 가지는 존재로 통합된다. 그것은 또 다른 존재론적 체제 이다. 자본주의가 수많은 원자적 존재들의 관계적 구조라면, 관리사회 주의는 피라미드적 구조를 가진 단 하나의 존재의 모습이다.

이러한 체제는 봉건사회로부터 산업사회에로의 전환의 특징을 자본 주의와는 다르게 변용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에로의 전환은 인간연대 의 매개양식에 있어서 두가지 차원의 변화에 기반을 둔다. 하나는 자본 의 차원에 있어서의 생산자본의 등장이며, 그에 따라 자본헤게모니가 신분적 계급헤게모니를 대체하는 사회이다. 두번째는 신분적 특권을 대 신하여 가치매체와 시장기구에 의하여 통합되는 사회이다. 이에 대하여 관리사회주의는 자본헤게모니와 가치매체에 의한 통합을 모조리 권력헤 게모니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국가가 개인을 대체하고, 조직과 계획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었으며, 권력이 가치매체를 대체하는 것이 었다.

현실의 관리사회주의는 붕괴하였다. 그것은 오랫동안 누려온 그 장 대한 세력에도 불구하고 실로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경제적 정 의, 평등, 풍요, 계급의 적대가 소멸한 연대적인 사회 그리고 권력과 국가의 소멸과 같은 사회주의의 이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실로 아직도 의미가 있는 사회주의가 있다면 현실에 대하여 이러한 이상을 추구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해진 사실이 있다면 그동안 지 구의 상당부분에서 실현되었던 관리사회주의는 정의와 평등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7. 관리사회주의의 카르마

관리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와의 경쟁이나 투쟁 때문이 아니었 다. 그것은 누적되어 온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가 현실화한 것이 었다.

첫째로, 관리사회주의는 기동(機動)의 기제(機制)를 경시하였다. 인 간의 기동은 인간 존재의 속성으로서 본능의 발현이다. 관리사회주의는 오히려 그것을 악(惡)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역 동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욕망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였다. 관리사회주의에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지양(止揚) 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실천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기 동의 기제는 무시되었다. 자본주의의 최대의 추진력이자 동시에 자본주 의의 최대의 결함인 이기주의적인 기동의 기제는 배제되었다. 모든 사 람은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행동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 다. 그러나 그러한 연대적 실천이 기동할 수 있는 기동의 기제는 현실 화되지 못하였다. 이데올로기에 기초하는 사회적 압력(壓力) 커뮤니케 이션은 연대적 기동을 현실화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랑이나 창조성은 강요나 지시나 압력에 의해 기동(機動)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산업사회, 생산이 단순히 존재물의 변 화일 때에는 이러한 관리사회주의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이 공간적이 아니라 시간적이며, 존재물의 변형이 아니라 시간의 출현(出 現)일 때, 관리사회주의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보혁명(情報革 命)은 경제에 있어서 새로운 측면을 부가하였다. 그것은 일반적인 노동 과 인간의 기동에 있어서 창조적 역동성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람은 연대성의 한 부분이며 사람들의 행동은 모든 사람 상호간에 유통되는 지식과 정보를 수용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기동이 창조적 역동성의 실현으로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 리사회주의는 이러한 측면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화를 잃은 음(陰)의 체제, 연(緣)의 체제, 지(地)의 체제였다. 관리사회주의 의 존재론적 집합표상은 공간적 집합표상이다. 그것은 시간의 측면, 창 조적 역동성이 사장(死藏)된 것이다.

둘째로, 관리사회주의는 경제통합양식은 역사를 역류(逆流)하는 것 이었다.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관점에서는 모든 경제관계는 가치의 현상 형태였다. 그리하여 모든 경제의 문제는 본질적인 실재로서의 가치법칙 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사회의 통합방식으로 서 가치법칙과 같은 진리에 입각하는 합리적 계획이 가능하다는 결론으 로 유도될 수 있다. 이것이 국가가 화폐와 소유와 시장을 대체가 가능 하다는 전제인 것이다. 오히려 시장보다는 계획이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이고, 그 카르마는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게 만들었다.

경제의 통합(또는 계획)이란 현상의 이면에 있는 가치법칙을 구현하 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에 있어서의 경제계산의 문제는 현상의 이면 에 있는 본질적인 경제법칙과는 다른 정보(情報)의 차원이 존재해야 한다. 경제계획과 경제적 계산이란 전체를 부분에 반영하는 것이고 부 분을 전체로 종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부분에 대하여 전체적 연대성에 대한 정보를 인식시키는 것이고, 부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연대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의 통합이란 일체의 관계와 상호의존적 연대성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상호의존적인 연대성의 인식이 바 로 정보이다. (시장은 가치매체(價値媒體:貨幣)가 이동하면서 이러한 정보를 전달하고 행동을 통합한다. 가치매체는 그 자체가 정보를 결집 하고 이동시킨다. 시장은 부분에 전체의 정보가 반영되는 과정이며, 부 분의 정보가 전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시장을 대체하는 계획은 이 러한 정보를 조직에 의하여 중앙에 결집하고 처리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조직에 의하여 수집되고 정리된 자료로서의 정보는 죽은 정적(靜的)인 정보이다.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닌 관념인 것이다. 시장은 살아있는 동적(動的)인 정보를 통합하는 기제이다. 그러나 국가 와 계획은 살아있는 동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조직하는 통합양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가치매체가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서 계 획이란 물물교환경제의 또 다른 형식인 산품경제(産品經濟)에 불과한 것이었다. 무한한 동적인 정보들은 계획을 위한 데이타로서 정적인 정 보로 전환하지 못하면 그 존재성을 상실한다. 무한한 구체적이고 현실 적인 인간의 요구들과 통합의 필요성은 현실적으로 표현되고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가치매체의 실질적 기능이 배제되어 "경제가 사실상 비현 금 실물교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일 때, 수백만의 이익이 국가공급위원 회(國家供給委員會)의 명령서(命令書)로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아무런 현실적인 존재가치를 갖지 못한다."3)

세계는 존재의 본질이나 속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연대성이다. 이러 한 연대성은 역사의 진보에 따라서 상호의존성의 증대로 표현된다. 이 러한 연대성의 증대에 따라 인간의 연대양식, 사회적 통합의 더욱 발전 된 매개양식을 추구하여야 한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산업사회에로 의 전환은 신분적 계급의 통합구조에서 가치매체에 의한 시장적 통합구 조로 진보한 것이었다. 관리사회주의는 이러한 진보를 역행하는 것이 었다. 그것은 가치매체와 시장을 억제하고 대신 권력 헤게모니에 의한 통합양식을 채택하였다. 무질서한 시장을 대체하는 합리적 계획은 진 보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존재론적 집 합표상의 카르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카르마가 현실화됨으로써 관리 사회주의는 붕괴한 것이다.

관리사회주의의 붕괴는 근대 서구의 존재론적 경제체제의 한 지류 (支流)가 허물어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자본주의자들이 자만하듯이 자 본주의 체제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 질서가 자연의 질서임을 입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근대 서구의 집합표상과 그에 기초한 체제와 문명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오랜 투쟁의 종결이 아니라 거대한 전환의 시작이다. 역사의 종언(終焉)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 경제와 경제체제에 관한 존재론적 집합 표상은 근대에 형성된 것이다. 우리의 집합표상 역시 근대적 집합표상 의 연속이며 근대의 시대적 집합표상의 카르마 속에 있다.


***주1)***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자 나타나기 시작한 소비에트 경제의 비교적 낮은 성과는 스탈린주의적 경제구조가 노동력의 경우 量的 증대력의 한 계에 다다르고 자본의 경우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 다. 이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생산물의 품질개선이 며, 이것은 현대적 조직과 관리기술에 기초를 둔 生産效率의 개선 의해 서만 달성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성장에서 중요한 요소를 이루 는 것은 현대적 技術의 부단한 도입이다. 이리하여 사회주의적 경제는 外延的 성장에서 集約的 성장으로의 移行을 요구받게 되었다....

소련을 필두로 하여 모든 동유럽제국이 경제성장율의 급속한 하락(19 60년의 성장율 10퍼센트에서 최근에는 3퍼센트로 떨어졌음)을 겪게된 까 닭은 바로 이점에 있었다. 거기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충격적 이지만 사실이다. 즉 指令型 계획체제는 科學技術革命의 성과를 흡수하 지 못하고 있으며 흡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기술적 진보 에서조차도 커다란 경제외적 노력 즉 당에 의한 사회주의적 경쟁 캠페인 및 자원과 에너지의 막대한 낭비가 요구된다. 이와 같은 체제의 어찌할 수 없는 硬直性은 우주공간 정복에서 소련인이 달성한 놀라운 과학적 기 술적 대약진과 대부분의 현대무기의 개발에서 그들이 보여준 놀라운 성 과가 民需用 생산과정에는 적용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克明하게 드러났 다.
(실비우 브루칸 저. {岐路에 선 사회주의} 이선희 역. pp.51--52)

***주2)***
현재의 支出主義 지지자와 선전자에 대 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勞動價値說의 전통적인 擁護者로 가장하면서 실 제로 노동지출의 測定問題와 관련된 곤란, 즉 무엇보다도 우선 지출과 그것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가치(쩨노스찌)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무관심 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商品經濟의 전 역사로부터, 그리고 경제과학의 전 역 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根本的인 結論을 이끌어낼 수 있다. 노동에 의하 여 만들어진 사회적 가치(쩨노스찌)는 무게라는 尺度로도, 길이라는 척 도로도, 시간이라는 척도로도, 기타 물리적인 대상의 측정을 위해 만들 어진 그 어떠한 척도에 의해서도 測定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결론이 다. 다름 아닌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제 생 각으로는 경제적인 관계를 물리적인 양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이것에 못지않은 두 번째 결론은 수세기에 걸친 인류의 역사가 이러 한 악순환을 상품-화폐관계의 도움을 빌어서, 또한 시장이라는 동무를 빌어서 타파해 왔다는 점에 있다.
(야 뻬브즈넬 저. {자본론과 뻬레스트로이카} 고정일 역. p.42-43)

***주3)***
니콜라이 슈멜레프, 블라디미르 포포프 공저. {蘇聯經濟의 대변혁} 이일진 역. p.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