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2. 연대인(連帶人)과 노동(勞動)

연대체제에서는 시장의 노동소득이 없이 연대소득과 연금소득으로 생 존하는 사람들을 예정(豫定)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이들은 실업자(失 業者)이거나 유한계급(有閑階級)이다. 연대체제에서는 이들을 연대인(連 帶人)으로 규정한다. 연대체제는 이러한 연대인을 긍정(肯定)하는 체제 이다. 연대체제는 연대인에 대한 보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시장이 아닌 기제를 통하여 그들을 활용한다. 이것이 노동의 상품화를 폐지하고 노동시장을 지양하는 기반이다.

A.1.1. 연대인(連帶人)

연대경제체제에 있어서 주요한 소득의 유형은 시장소득, 연대소득, 연금소득이다. 그러나 시장소득을 취득하는 사람은 연금소득을 취득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연대소득과 시장소득을 취득하거나 아니면 연대소득과 연금소득을 취득한다. 이것은 연대경제체제에 있어서 사람들 이 두 부류(部類)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시장에서 노동을 하여 이윤의 분배분을 포함한 시장소득을 취득하며, 그에 더하여 연대소득을 취득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로서 연대소 득과 연금소득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연대경제체제 그 자체 가 시장에서 노동소득을 취득하지 않고, 그리하여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 을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들 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들은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소득(市場所得)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 떠한 일을 하건 상관없이 다만 시장소득을 얻지 않고 있으며, 설사 노 동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은 그들의 노동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이다.

가령 두 사람이 항상 도심(都心)의 거리를 청소한다고 하자. 그 중 한 사람은 용역회사(用役會社)에 고용되어 청소라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 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시장소득자이며 첫째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역회사에 고용되지 않고) 연대소득과 연금소득으로 생 활하면서, 자원봉사(自願奉仕)로서 도심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이라면, 시장(市場)은 그의 청소라는 노동에 대하여 임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 다. 그리하여 그는 둘째 부류의 사람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연대소득 과 연금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반드시 놀고 먹는 사람은 아니며, 시장소득이 없다고 하여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소득을 받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회를 위한 봉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연대 소득과 연금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우리는 연대인이라고 부를 것이 다.

우리가 연대인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하는 사람, 즉 연대소득과 연 금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실 업자(失業者)이고 다른 하나는 은퇴자(隱退者)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비교하여 우리가 용이하게 추론할 수있는 연대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연대체제에서는 연대인의 범주에 속하 나,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실업자나 은퇴자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 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재산소득 계층으로서 유한계급(有閑階級) 이다. 자본주의에서 다량의 재산을 축적하여 이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유 한계급은 실업자도 아니고 은퇴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에서 해 방되어 있다.

연대체제에서는 유한계급은 존재하지 않으며 재산소득자도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연대체제에서 연금소득자는 공식화되고 정당화된 재산소득자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체제에 있어서 재산소득자나 유한 계급에 대응하는 사람들이 연대체제에 있어서는 연금소득자이고 연대인 인 것이다. 연대인은 실업자나 은퇴자의 개념 뿐만아 아니라 정당화(正 當化)된 재산소득자를 포함한다. 자본주의체제에 있어서 재산소득자는 결코 실업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성공한 사람들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를 표상하는데 필요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재산소득을 관리하고 취득하는 노동에 종사하는 셈이다. 그러나 연대체제에서는 이러한 사람 들이 없으며 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노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대 체제에 있어서 재산의 가장 주요한 형태는 연대매체의 축적이다. 실제로 다량의 연대매체를 축적하고 노후를 물질적으로 즐기려는 사람은 유한계 급과 유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서는 자본주의와 비교한 다면 시장에서 가장 실패한 사람으로서 실업자와,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서 유한계급이 모두 다 연대인의 범주(範疇)에 속하게 된다. 그들은 연금소득에서 양적(量的)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상식적 집합표상에 의하면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실업은 나쁜 것이다. 따라서 실업은 정책적으로 없애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다. 또한 유한계급 역시 나쁜 것이다. 따라서 유한계급도 정책적으로 줄 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대인은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된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장소득을 얻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원칙적으로 소득은 시장적 노동에 대해서만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장(勞動市場)이 존재하는 한 실업은 불가피(不可避)한 것 이다. 실업은 시장의 본질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관리사회주의와 같이 노동시장을 폐지해야 하는가? 이것은 과연 올바른 가치관인가? 노동시 장을 폐지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A.1.2. 연대인과 계급(階級)

인류의 역사에서는 노동에서 해방되고 물질적 부(富)를 장악한 계급 이 항상 있었다. 노동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소 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산물을 소득의 형태 로 이전(移轉)받는 것이다. 이전소득(移轉所得)의 취득방식이 하나의 특권을 구성할 때 그것이 계급이다. 그러한 특권이 국가권력에서 올 수 도 있고 법과 제도적 장치에서 올 수도 있다. 권력집단과 관료들은 국 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로 징수된 조세에 의하여 이전소득을 취득한다. 이러한 권력이 특권화되고 신분화되어 고정된 것이 신분적 계급이다. 봉건계급은 이러한 신분적(身分的) 특권에 의하여 이전소득을 취득한 다. 한편 자본주의의 유한계급은 자산시장을 이용하여 소유(所有)에 의 하여 이전소득을 취득한다. 이 모든 경우에서 부와 권력은 공존하며 권 력이 부의 원천이기도 하고 부가 권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 사에서 계급의 양상은 변화하여 왔지만 이전소득 내지 비노동소득은 항 상 있었다. 그리고 물질적 부의 차등은 항상 있었다. 부의 차등이나 비 노동소득을 없앤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기동을 억압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또한 비노동소득(非勞動所得)을 없애는 것은 정당한 것도 아니다. 소득이 반드시 현재(現在)의 노동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근거 없 는 논리이다. 그것은 공간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그것은 시간적 사 고방식의 결여인 것이다. 인간은 평생동안 동일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 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시간적인 것이며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씨를 거 둘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은 인간의 삶의 한 시기의 문제이며 인간의 생존은 평생의 문제이다. 이처럼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이다. 현 재의 노동과 현재의 소득을 연결시키는 것은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것 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린이나 청소년이나 노인이나 불구자의 삶을 박 탈하는 것이다. 그것은 강한자가 약한자를 소외시키는 것이며 운이 좋 은 사람이 운이 나쁜 사람의 삶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완 전히 존재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연대를 단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富)와 비노동소득은 존부(存否)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 성(正當性)의 문제이다. 비노동소득을 부정할 것 아니라 정당한 부와 정당한 비노동소득의 조건을 규정하고 그것을 체제화시키는 것이 중요 한 것이다. 특권화된 비노동소득이 부당한 것이다. 계급화된 비노동소 득이 부당한 것이다. 소유소득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노동소득이 물질적 부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 가치를 지배할 때 부 당한 것이다. 연대체제에서는 부와 비노동소득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그 정당성의 조건을 다르게 규정한다. 그것은 합리화되고 정당화된 비노동 소득이다.

연대체제에서 다량의 연대매체를 축적하여 은퇴한다면 그는 다액의 연금소득을 받게 될 것이다. 연대매체에 대한 연금소득의 비율이 어떻 게 규정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평균적인 시장소득에 비하여 대 단히 많은 액수의 연금소득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연대체제는 이러 한 연금소득을 긍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거대한 재산소득 자에 비하면 연금소득은 합리화된 것이며 동시에 정당한 것이다. 그 정 당성의 근거는 첫째로 연대매체의 축적량은 상속이 부정되고 있으므로 그 자신이 당대(當代)에 시장소득을 통하여 형성한 것이다. 둘째로 축 적된 연대매체는 본질적으로 노동소득이 축적된 것이다. 즉 재산소득 이 축적된 것이 아니다. 세째, 연대매체의 축적분에 대한 연금소득의 지불은 비록 소유소득이기는 하지만 원금(元金)을 연대화하여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 자본주의적 소유소득과는 다르다. 그것은 노동소득이 시 간적으로 지연(遲延)되어 지불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네째, 연금 소득의 비율은 역진적(逆進的)으로 제약이 가능하다. 연금소득은 연대 부문에서 공식적으로 지불하는 소득이다. 그것은 실업자에게 지불하는 연금소득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양적으로 대단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 정당성이 다시금 문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 당성은 실업자에게 지불되는 소액의 연금소득이 정당한 것과 본질적으 로 같은 것이다. 더구나 그는 영원히 원금을 인출하는 것을 포기한 대 가로 연금소득을 받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연금소득을 받음으로써 그가 평생 저축한 연대매체의 가치는 그의 사망과 함께 완전히 사회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노력의 축적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예 정하고 은퇴 후에 풍부한 연금소득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고액의 연금 소득에 대하여 우리가 부여하는 정당성이다.1)

연금소득제도는 그 제도가 작동하는데 인력(人力)이 낭비되지 않으 며 비용(費用)이 들지 않는다. 자본주의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은 수많은 고급인력들이 낭비되는 체제이다. 그러한 고급인력들이 사회적으로 기 여하는 것은 거대한 재산소득자들의 재산가치를 유지시켜 주는 일이다. 그러나 동일한 이전소득, 소유소득이라고 하더라도 연대체제의 연금소 득은 이러한 낭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연금소득은 단순한 계산(計 算)에 의하여 지급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대인 제도는 인류의 역사에서 특권계급과 신분계급 그리 고 자산적 계급이 폐지되고 대체된 것이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규정되 고 정당성에 근거하는 비노동소득이다. 그것은 계급에 의한 소외가 지 양된 것으로 연대적 삶을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연대인은 특권이나 계 급이 아니라 삶의 시간성(時間性)과 사회적 연대성의 구현이다.

A.1.3. 연대인과 실업

현대사회에서 실업은 좋지 않은 것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실업율(失業率)이 낮 을 수록 성공적인 경제라고 평가되고, 완전고용(完全雇用)이야말로 국 가의 경제적 목표이다. 한편 관리사회주의에서는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자랑이다. 그러나 관리사회주의에서 실업을 없애려는 노력은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고, 그것은 중대한 다른 가치를 희생시킴 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2) 한편 시장체제를 전제로 하는 한 실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시장은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시장의 결함이다. 시장은 항상 일부의 실업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산업예비군(産業豫備軍: 실업자)은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장치이다. 또한 시장에서 취업자들이 모두다 인간과 사 회를 위하여 유익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무익하거나 유 해한 많은 일들이 시장소득을 얻기 위하여 행해지고 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소득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저속하거나 충동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이나 서어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낳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에서의 고용의 가치는 의심스 러운 것이다. 인간과 사회를 시장에 매몰시키려고 하면 할 수록 그 문명은 물질적으로 되고 또한 그 문화는 저속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 람들이 시장소득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원하지도 않고 자신이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완전고용이 항상 사회적으 로 유익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소유소득을 얻는 과정으로서 자산시장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고용 역시 사회적 으로 별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완전고용이 항상 좋은 것 은 아니다. 고용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용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한편 실업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실업이란 현재 일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과거에 일했고 미래에 일할 것이다. 그리하여 실업이란 일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이다. 청소년기와 같은 일정한 시기에만 지 식을 취득하는 것이 충분하거나, 전혀 지식이 없이도 일을 할 수 있었 던 근대산업사회에서는 일을 하는데 따로 특별한 준비가 필요없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경제가 지식화되고 정보화됨으로써 노동에는 항상 지 식과 정보가 필요하며, 따라서 일하기 위한 준비기간은 인생의 한 시기 에만 한정할 수 없다. 실업은 미래에 일하기 위하여 항상 긍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필요한 교육(敎育)과 학습의 시간인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을 시장의 논리와 이윤의 논리에 따라 사는 것이 가치있 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논리가 사회의 모든 측면과 일체의 인간을 지 배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장소득과는 무 관하게 하고 싶어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자아실현 욕구이다. 시장사회는 시장의 논리에 따르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고, 그러한 사람 들을 실업자로 전락시킨다. 실업이 나쁜 것이 아니다. 실업이란 시장이 포용할 수 없는 인간성의 한 측면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하여 고용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실업이 반드시 부정되어 야 하는 나쁜 것은 아니다. 연대체제에서는 연대소득이 생존을 보장하 고 연금소득이 지불됨으로써 실업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연대체제는 원칙적으로 시장체제이다. 그리고 시장은 반드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시장의 결함이다. 따라서 시장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한 실업을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대인제도 는 실업을 긍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적 기여를 위하여 무(無)와 역동성(力動性)의 상태로 환원하는 기간이다. 사회는 항상 놀고 먹는 상당한 사람을 부양(扶養)하게 마련이다. 완전고용을 달성한 자본주의체제에서도 연대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재산소득 자들은 놀고먹는 사람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일부 사람들을 실업자로 매도하며, 그들의 고통 위에 사실상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유한계급이나 무익하고 낭비적인 일에 종사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취업자로 간주하고 그것을 정당화한다. 연대체제는 그 반대인 것이다. 즉 유한계급과 무익 한 노동을 배제하는 대신에 실업을 긍정하는 것이다. 실업자는 미래에 사회에 기여할 사람들이다. 따라서 실업은 그 사회의 짐이 아니라 미래 를 위한 자산(資産)이다. 이것이 연대체제의 연대인 제도의 의미이다. 그것은 사회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비시장적 기여에 대한 사회의 최소한의 보상인 것이다. 한편 연대체제는 연대인에 대하 여 이러한 소극적 긍정만이 아니라, 적극적 긍정으로서 비시장부문(非 市場部門)의 증대를 정책적으로 추구한다. 그것은 연대부문의 일이다.

A.1.4. 연대인과 노동시장(勞動市場)

연대인과 실업의 문제는 노동시장의 문제를 제기한다. 자본주의에서 실업이란 노동시장에서 수요를 만나지 못한 공급과 같다. 폴라니는 노 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규정하면서 노동시장을 배격한다. 관리사회주의 도 노동시장을 배격한다. 그러면 노동시장을 폐지(廢止)하는 것은 무엇 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의 노동시장은 자유를 보장하면서 노동을 조직(組織)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을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자유를 전제로 하여 노동을 조직하는 방식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관리사회주의에서 노동시장을 폐지하는 것은 기업에 임금기금을 설치하고 그 임금기금에 맞추어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에서 노동시장을 폐지하 는 것은 임금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가 가 모든 노동자를 고용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노동자의 자유(自由)와 창의(創意), 그리고 자아실현을 억압하는 것이다. 왜냐하 면 모든 사람들은 국가계획에 포함된 노동만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연대체제에서는 노동시장이 지양(止揚)된다. 연대체제에서 노동은 가격에 의하여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 노동은 더 이상 기아에 위협당하 여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다. 또한 노동은 시장에 인간을 매몰시키는 것 이 아니다. 연대체제에서 노동시장이 지양된다는 의미는 노동이 가격 (價格)과 기아(飢餓)와 시장(市場)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 시에 조직화 사회로의 변화에 따라 노동이 자아실현으로 전환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노동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아실현의 조직이 다. 이것이 연대체제에서 노동시장이 폐지되고 노동이 인간화한다는 것 의 의미이다.

연대체제에서는 우선 노동에 대한 가격(즉, 임금)제도가 폐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연대체제에도 임금수준이 존재한다. 그러나 연대체제에 서는 임금은 회계적(會計的)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이윤(利潤)이 노동 자에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체제에서 노동자의 임금투쟁은 자본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임금을 인상시키지 않아도 기업의 이윤은 다시금 노동자에게 배분되기 때문이다. 임금을 극단적으로 인상시킨다 는 것은 노동자가 이윤의 다른 분할 부분, 즉 사내유보와 자본세를 탈 취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사내유보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자본세를 내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그 기업에 대한 투자가 철퇴되어야 할 것이 다. 즉 노동자는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임금이라는 노동의 가격은 연 대체제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기업에서 얼마나 이윤을 달성하였는가에 의하여 그들의 보수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하 여 노동을 상품화한 가격으로서의 임금은 의미를 상실하고 따라서 노동 은 가격에서 해방된다.

가격에서 해방된 노동은 연대소득과 연금소득이 보장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노동자는 더 이상 기아(飢餓)의 위협에 의하여 자신의 노동 을 상품으로 팔지 않아도 된다. 연대체제에서 노동자는 생존하기 위하 여 자신의 노동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 하여 노동조직(기업)에 가입하는 것이다. 연대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은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노동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노동 상 품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아가 노동의 기동기제로서 작용하기 때문이 다. 자본주의는 기아로 인간을 위협함으로써 거대한 물질적 발전을 이 룩하였다. 그러나 현대는 노동이 지식화의 경향에 있으며, 그리하여 기 아가 적절한 노동의 기동기제는 아니다. 또한 현대의 생산력 수준은 기 아를 제거하더라도 생산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 연대체제에서는 연대부문이라는 광범한 비시장부문(非市場部 門)이 있다. 연대부문의 연대사업기관(連帶事業機關)은 이윤성의 논리 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연대사업기관은 이윤성이 없는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시행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합의(價値合意)의 문제이 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사업이나 실업자에 대한 재교육사업 등 이 그러한 것이다. 산에 나무를 심는 사업은 이윤성이 없을 수도 있으 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업일 수 있다. 이윤성이라는 것은 그 상품이나 서어비스에 대하여 수요자의 구매력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거나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사업이라도 개인적인 수 요가 없거나 수요자에게 충분한 구매력이 없다면 이윤성이 없다. 이러 한 비이윤성 사업, 비시장적 사업은 그 사업의 고용에 의하여 실업의 해소에 공헌하며 동시에 그 대상을 실업 중인 사람에서 찾는다. 이러한 경우 비이윤성(非利潤性)의 비시장적 사업은 실업 중의 사람들의 노동 력을 어떻게 사회전체적으로 활용하고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된다. 연대사업기관은 광범한 비이윤성 비시장적 사업이 시장의 논리에서 노동과 인간과 사회를 해방하는 것이다. 자본 주의 사회에 있어서도 비이윤성의 사업은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광범 한 민간부문의 자원봉사와 자본의 재분배에 기초한다.3)

마지막으로 연대체제에서는 이윤성 비이윤성 사업을 막론하고, 대중 이 조직을 형성하여 연대자본을 배분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 적이다. 이것이 조직의 사회, 네트워크 사회로서의 연대사회이다. 연대 기업은 이러한 대중조직이 하는 한 종류의 사업이다. 그러나 대중조직 의 사업으로서는 연대기업은 유일한 형식은 아니다. 대중의 자발적(自 發的) 조직에 의한 비이윤성 사업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자들이 수동적으로 어떠한 기업에 고용되는가에 의하여 삶 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미있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업의 종류에 따라서 신탁하는 연대매체의 가 치와 배분받는 연대자본이나 운영자본의 크기가 다르다. 이윤성의 기준 으로 따질 수 없고 다른 기준으로서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비이윤성 사업에 연대자본을 배분하는 것은 위험부담(危險負擔)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가령 환경보전 사업과 같은 것은 이윤성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부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업의 구체 적인 내용에 의하여 성과측정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 사 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한가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중요한 점 은 이러한 비이윤성 사업이 국가나 행정기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조직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에서 인간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노동 은 자아실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자본이 연대화하면 그것은 인간을 자본헤게모니에서 해방하는 것이 다. 그리고 헤게모니는 자본에서 점차로 지식과 정보에로 이동하는 것 이다. 이러한 헤게모니의 이동과 자본의 연대화는 인간 노동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노동의 조직은 자본헤게모니에 의한 고용(雇用)의 문제에 서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한 조직(組織)의 문제로 전환된다. 연대사회란 인간이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화될 때 거기에 연대자본이 배분되 는 체제이다.

그리하여 연대체제에서 노동은 기아노동과 임금노동에서 해방된다. 또한 그것은 반드시 시장에 의해서 제약되지 않으며 자아실현의 성격이 강화된다. 노동이 인간의 능동적인 자아실현행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지양에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연대인제도인 것이다.


***주1)***
연금소득은 최대한으로 合理化된 移轉 所得이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며 특권도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에 특권적으로 부여하는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사용 하여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이전소득이 아니다. 연금소득은 다른 사회 적 가치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회적 가치에 우선하는 것도 아 니다. 그것은 다른 사회적 가치와 分離된다. 연금소득을 취득하기 위해 서는 정치적 가치나 조직적 가치를 抛棄해야 한다. 그가 기업의 경영주 체로서 활동하고 그러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한 그가 축적한 연대매 체의 량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연금소득을 받지 못한다. 그가 그의 연대매체를 정치적으로 신탁하여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역시 연 금소득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연금소득은 평생을 노동과 경영 기타 사 회정치적인 일로 사회에 기여한 사람이 노후에 은퇴한 후 안락한 은퇴 생활을 누리거나 노후에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의 생활소득이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신분적인 특권이 아니라 평생을 일 하고 은퇴한 사람에게 지불하는 연금인 것이다.

***주2)***
(소련에서) 총체적으로 보아 일하지 않 는 사람들은 노동력 인원수에 비해 2.5- 35를 이루고 있다. 주요 서유럽 국가나 미국과 비교할 떠, 이 숫자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현상의 反對面도 있기 마련이다. 소련이 完全雇用을 유지하기 위해 치른 對價도 크다. 우리는 생산의 效果性을 낮추는 것으로 실제 필요없는 餘分의 인원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개개의 취업을 계획에 따 라 실시하였다. 수백만의 일자리가 비어있는 동시에 기업마다 과잉 인원 수나 여분의 인원을 갖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순번체제의 모순이다.

그럼 왜 기업들이 餘分의 인원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당연히 제 기될 수 있다. 대답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총노임기금 예산은 <上部>에 서 이미 징정되었고 훌륭한 노동자들에 대한 보수를 국가노동및 사회문 제위원회가 설정한 임금요율 이상 지불하지 못한다. 만약 勞賃基金 예산 전부를 소비하지 못할 경우 다음 해에는 省이 그 노임기금을 축소할 수 있다. 그러니 만약의 경우를 고려하여 그 노임기금 예산의 전부 쓰게끔 여분의 인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T. 자슬라브스카야 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자료에 의하면 대다수 기업 들에서는 5% 내지 15%까지 여분의 인원수가 있다. 그리고 소련 공업분야 에서 25%까지 여분의 인원수가 있다는 조사도 있다.
(니콜라이 슈멜레프. 블라디미르 포포프 공저. {소련경제의 대변혁} 이일진 역. pp. 214--215)

***주3)***
그러나 동시에 미국사회는 선진국. 발 전도상국을 막론하고 혹은 자유주의국, 사회주의국을 막론하고, 다른 어 떤 나라와도 다른 異質的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서드 섹터(third secter), 즉 며천, 몇 만이라는 非營利의 非政府機關의 발달에 기인한 다. 미국에서는 병원이나 학교의 대다수가 이 서드섹터에 속하고 있다. 대학의 경우 더욱 많이 서드 섹터에 속해 있다. 국제적인 慈善團體도 있 다. 수천을 넘는 지사를 가지고 1백만 명의 봉사자를 확보하고 있는 미 국 적십자사와 같은 거대한 국내 자선단체도 있다. 모든 도시와 군 에 그 지역의 자선활동을 뒷받침하는 커뮤니티 체스터(공동기금)가 있 다. 봉사자가 집에서 요양하는 병자나 고령자에게 따뜻한 식사를 가져다 주는 이동식사 서비스와 같은 사회복지 단체가 무수히 있다. 또한 전미 국 심장협회, 전미국 폐장협회, 전미국정신위생협회와 같은 전국적인 대 규모 보건단체도 있다. 구세군도 있고, 미국 국민학교의 여자학생 중 4명에 1명 꼴로 들어 있다는 걸스카우트도 있다. 보이 스카우트도 있다. 도시에 사는 흑인을 위한 어반 리그(the Urban League)도 있다. 1만명의 신자를 가진 교회에서 25명을 가진 예배당까지 다양한 교회가 있다. 그 위에 다양한 각종의 문화적 기관이 있다. 수백개의 오케스트라가 있고 무수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이들 모두가 세금에 의하기 보다는 주로 회비나 寄附金으로 운영되 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독립한 기관이며 대부분이 資源奉仕者 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세금에서 비용 을 공급받고 있는 정부활동까지도 대부분 서드 섹터의 기관처럼 운영 되고 있다. 예컨대 공립 초.중. 고등학교나 주립종합대학이나 커뮤니티 칼리지 등이 그렇다. 이러한 서드섹터의 기관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중 앙정부에 의해서 관리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세금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해도 독자적인 예산 아래 그 지방의 이사회에 의해서 독 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드락카 저 {새로운 현실} 김용국 역 p. 237-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