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蓮(청련):
    '청련'은 맑은 물에 씻기운 연꽃이란 뜻. 원래 연꽃은 군자가 좋아하는 꽃이라하여 唐宋이래 이꽃을 두고 지은 시문이 많았으며 특히<愛 蓮說>이 유명하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호가 靑蓮居士로 그것을 본따 만들었다.

  • 성명:李後白(이후백:이백의 뒤를 이음.)
  • 소개:조선 明宗시대의 문관으로 이조판서*(총무처장관)를 지냈으며 재임당시 철저히 공평무사한 처결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에도 일가견이 있어 많은 시를 남겼다.


  • 釣隱(조은):
    어려운 정치현실에서 몰을 숨기고자하는 뜻과 함께 신유학(주자학)추종자들의 학문적 지향점을 니타내고 있다. 특히 낚시(釣)는 은자의 최대의 소일거리 였다.

  • 성명:崔致雲(최치운:조선 세종때)
  • 소개:태조,세종대의 관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성품이 술을 좋아하여 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가 많이 전한다.


  • 無爲子(무위자):
    道家에서 말하는 '無爲自然' 즉 자연의 상태대로 맡겨놓고 아무런 인공적인 작위를 가하지 않는다는 뜻. 즉 자연의 山水間에 노닐며 한가로이 지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 성명:姜希孟(강희맹:1442~1483)
  • 소개:24세에 문과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으며 문장의 솜씨가 탁월하였다. 유교적인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이 詩想을 전개하였다. 문집에 <<私淑齋集>>이 있다.


  • 占畢齋(점필재):
    占(점)은 본다는 뜻이며 畢(필)은 간략하다는 뜻이다. 본것이 적어 견식이 얕은 까닭으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의미.자신의 학문을 겸손히 표현하였다.

  • 성명:金宗直(김종직:1441~1492)
  • 소개:영남지역 士林(사림:공부에 파뭍힌 유학자들)의 스승으로 신유학(성리학)에 달통한 문인. 성 종의 총애에 힘입어 신진세력을 형성하였으나 죽은 후 士禍에 휩쓸려 부관참시(죽은 후 관에서 시체를 토막냄) 당하였다. <<점필재집>>을 남기었다.


  • 梅月當(매월당):
    매화와 달을 벗삼아 현실에서 초연하여 은둔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김시습이 자신이 거처하던 서재의 이름으로 지은 堂號

  • 성명:金時習(김시습:1435~1493)
  • 소개: 어려서 부터 시문에 재주가 있어 五歲神童(오세신동)으로 불리웠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 자 분개하여 승려가 되어 산수를 방황하며 일생을 마치었다. 저서로 <<금오신화>><<매월당집>>이 전한다. 지금도 설악산에 그가 거처하였던 오세암이 있 다.


  • 老歌齋(노가재):
    늙은 시조가인들이 모여 시와 시조를 읊는 서재라는 뜻. 조선조 추기에 김수장은 가객들과 자신의 화개동(한양, 지금의 삼청동 부근)집에서 歌客(가객:시 조창을 하는 사람)들고 교류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시조를 지었다.

  • 성명:金壽長(김수장:1960~?)
  • 소개:아전(양반과 평민 사이계급) 출신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시조작가. 사실적 수법과 새로운 주제를 사용하여 시가 사상에 새로운 면을 개척한 시인으로 높이 평가된다.<<해동가요>>를 편 찬하였다.


  • 訥齋(눌재):
    자기자신이 아주 못났음을 나타내는 뜻. 옛 선비들은 자신의 서재에 이름을 붙일 때 拙(못날 졸)이나 訥(어눌할 눌)자를 써서 자신의 재주 를 감추고자 하였다.

  • 성명:朴詳(박상:1474~1530)
  • 소개:조선중기의 시인이자 관료. 당시 四大詩人의 한사람으로 평가 받았으며 中國唐風과 흡사한 웅장한 시를 많이 창작하였다. 저서에 <<눌재집>>이 있다.


  • 轢翁(역옹):
    자신은 나라의 큰 일을 할 사람이 못되며 단지 오래나 살고 싶다는 겸손한 소망을 표 현하고 있다. 轢(상수리나무 역)은 재목감이 못되는 하찮은 나무를 나타냄.

  • 성명:李濟賢(이제현:1287~1367)
  • 소개:고려후기의 문신 젊어서 신유학(新儒學,성리학)을 배워 일가를 이루었으며 시문에 탁월한 재 주를 보였다. 우리나라 한시사상 제일의 대가로 불리우며 정통 고문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저서로 <<益齋亂稿>>(익재난고)가 있다.


  • 三酷好(삼혹호):
    세가지 지독히 좋아한다는 뜻. 시(詩)와 술과 거문고를 매우 좋아한다는 버릇이 있다하여 스스로 지은 호. 고려 중엽의 은둔사조를 잘 보여주는 예로 중국 晉(진)나라 죽림칠현의 도피사상을 답습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 성명: 이 규보(李 奎報)(1168-1241)
  • 소개: 고려 무신정권시대의 관료적 문인으로 당시 계관시인(桂冠詩人)과 같은 존재였다. 그의 문 학은 자유분방하며 웅장한 기풍을 띠고 있다. 또한 시론에 있어서도 창의와 기발함과 새로움을 중시하였다.


  • 秋江(추강):
    정치현실에서 환멸을 느낀 시인(詩人)이 강가에 살며 낚시와 술과 시작(詩作) 소일하 며 지내겠다는뜻의 호. 흔히 가을강은 고독과 은둔의 이미지를 표현할 때 많이 쓰였다.

  • 성명: 남 효온(南 孝溫)(1454-1492)
  • 소개: 조선 초기의 문인. 세조의 왕위찬탈에 불만을 품고 성종대에 세종에 의해 축출된 단종의 어 머니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을 청하였으나 용납되지 않았다. 이후 술과 시로 은둔의 보내었다. 생육신의 한사람


  • 花潭(화담):
    화담(花潭)은 조선 황해도 개성의 교외에 있던 못으로 경치가 아름다와 여기에 은둔 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교지식인들이 호를 지을때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식은 자신의 향리나 은둔 지의 저명한 승경(勝景)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였다.

  • 성명: 서 경덕(徐 敬德)(1489-1546)
  • 소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독학으로 주역과 유교경전을 익혀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신유 학(성리학)중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체계화하였고 수학.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 防翁(방옹):
    송(宋)나라 시인 육유(陸遊)의 호. 세속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사색하고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호로 표출하였다. 그의 시도 역시 맑고 초일(超逸)하여 이러한 의지가 잘 나 타나고 있다.

  • 성명: 육 유(陸 遊)(송 효종시인<宋 孝宗詩人>)
  • 소개: 진사과(進士科)(과거자격시험)에 급제한 뒤 평생을 임금을 위해 글을 짓는 관직에 종사하하 였다가 물러났다. 산천시(山川詩)에 특히 능하며 그의 시파를 검남파<檢南派>라 부른다.


  • 摩詰(마힐):
    당시인 왕유(唐詩人 王維)의 호로 그는 불교를 신봉하여 자신의 호도 불교의 거사(居 士)인 마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 마힐: 인도의 석가제자. 이름의 발음을 한자로 표현한것이 마힐(摩詰)

  • 성명: 왕 유(王 維)(당 현종대인<唐 玄宗代人>)
  • 소개: 당나라의 시인이자 관료.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여 사람들은 그의 시를 평하기를 ,"그림속에 시가있고 , 시 속에 그림이 있다."고 하였다.


  • 六一居士(육일거사):
    송(宋)나라 구양수가 만년에 지은 자호(自號). 영수에 은퇴하여 지은 것으로 장서 만권, 김석문(金石文) 일천권, 거문고 1개, 바둑판 1개, 술 한병,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늙은 자신을 가리켜 육일(六一)이라 하였다.

  • 성명: 구 양수(歐 陽修)(송인<宋人>)(1007-1072)
  • 소개: 송나라의 현신(賢臣)으로 임금에게 직간(直諫)을 잘했으며 뒤에 왕 안석(王 安石)과의 불화 (不和)로 벼슬을 그만 두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명으로 문장(文章)이 천하제일(天下 第一)이라 일컬어졌다.


  • 酒仙翁(주선옹):
    당나라 이백은 술을 즐겨 스스로 호를 주선옹이라 하였으며 또한 시에도 능하여 사람들이 그를 시선(詩仙)이라 불렀다. 행동거지가 세속에 초연하였기에 이 세상으로 귀양온 신선 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 성명: 이 백(李 白)
  • 소개: 성당(盛唐)의시인. 성격이 호방하고 시에 능해 당 현종 아래에서 벼슬을 지내며 총애를 받 았으나 곧 그만두고 시와 술로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


  • 三峰(삼봉):
    작가가 젊은 시절 학문을 닦았던 한양 삼각산(三角山)의 세 봉우리를 따서 지은 호. 이단의 학문을 배격하고 자신의 학문을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봉[峰]으로 표현하고 있다.

  • 성명: 정 도전(鄭 道傳)(?-1398)
  • 소개: 정 도전은 할머니가 종 신분이였다. 그는 한미(비천)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독신이었으나 독 실하게 학문을 닦아 문학과 신유학(성리학)에 일가를 이루었다. 고려정권에 회의를 이 성계를 도 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최고의 공을 세웠으며 국가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 不憂軒(불우헌):
    세속의 모든 욕망에서 벗으나 걱정없이 한가로이 지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호. 자신의 당호(堂號)로 사용할때 흔히 헌(軒)이라고 쓴다. 불우헌을 현재 전북 태인(泰仁)에 현존하 고 있다.

  • 성명: 정 극인(丁 克仁)(1401-1481)
  • 소개: 세조의 와위 찬탈 후 벼슬을 물러나 고향(泰仁)에 은거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가 지은 상춘곡<賞春曲>.<불우헌곡>.<불우헌가>는 시가문학사상 주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