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집 합 표 상(集合表象)
- 1.1.1. 서로 다른 세계관, 가치관, 사고방식 : 집합표상의 차이
- 1.1.2. 이미지와 집합표상
- 1.1.3. 매개양식(媒介樣式)으로서의 집합표상
- 1.1.4. 인식(認識)과 깨달음(求道)
1.1.1 서로 다른 세계관, 가치관, 사고방식: 집합표상의 차이앞에서 인용한 예화에서 사람들은 소속된 사회와 문화에 따라서 서로 다 른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부처님도 또한 먼지 " 라는 일본 노인의 말은 서구적인 신(神)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 려운 것이다. 예수나 여호와를 먼지라고 하였다면 그것은 신을 모욕(侮辱)하 는 말이 될지언정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처럼 문화와 종교에 따라서 신의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기독교의 신은 우상숭배를 금하고 진노(震怒)하며 복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양인에게는 이러한 신의 이미지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 신이 인 간과 계약(契約)을 맺는다는 것은 인간과 대등한 이미지를 풍기며, 진노하고 복수를 하는 신은 어쩐지 신으로서는 체통이 없어 보인다. 동양인의 신(神) 은 벌레나 똥막대기에 편재(遍在)하는 도(道)이며,1) 심지어는 부처님도 먼지 처럼 털어 버려야 갈 수 있는 길(道:way)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이나 도의 이 미지는 서양인에게는 대단히 생소한 것이다.
이런 차이는 언어가 다른 경우에는 더욱 현저하다. 예를 들면 영어권의 "권력(power)"의 이미지는 힘을 나타내는데 비해, 한자권(漢字圈)의 "권력 (權)"의 이미지는 저울의 균형을 함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신이 진정한 신인가, 또는 권력이란 진실로 힘인가 아니면균형인가가 아니라, 사람 들이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개념, 다른 가치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에 따라서 개념이나 세계관이 다를 뿐만 아니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아름답고 추한 것, 등에 관한 정감(情感)이나 윤리의식도 다르 다. 예를 들면, 뉴기니아의 한 부족에서는 가까운 여자 친척에 대한 시체애 호풍속(necrophilia)이 있다. 즉 여자가 죽었을 때는 장례절차에서 그녀의 아 들들이 시체(屍體)와 성관계를 갖는다. 뉴기니아 원주민은 이러한 풍속행위에 서 사자(死者)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느끼고 동질감이 강화되는 정감을 가진 다. 여기서 우리는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혐오감(嫌惡感)을 느끼지만, 우리의 느낌이 반드시 인간의 보편적인 정감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2)
인간의 세계관, 가치관, 사고방식은 문화뿐만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체제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고대에는 지구가 평평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노 예제도는 수천년동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지구가 둥글다고 생 각하거나, 노예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대에 와서는 오 랫동안 두 개의 다른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서로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대립하여 왔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가 이윤을 차지하는 것은 정당하 고 당연한 것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는 임금(賃金)이며, 생 산물에 대한 소유권이나 이윤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에 대하여 사회주의의 관점에서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노동이다. 따라서 창 조된 가치의 일부분으로서의 이윤은 당연히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하고, 자 본가가 이것을 차지하는 것은 착취(搾取)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쪽 사회에 서의 정의(正義)가 다른 사회에서는 부정의(不正義)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사고방식과 이념의 차이는 문명인에게도 극단적인 대립을 가져오기 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모든 생각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기위하여 집합표 상(集合表象)을 정의(定義)하기로 한다. 집합표상은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 지는 이미지, 표상, 개념, 등 인간이 인식(認識)하고 생각하는 의식(意識)의 전 내용(全內容)을 말한다. 따라서 정감, 가치관, 윤리의식, 세계관, 사고방식 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집합표상을 특정한 부분(部分)에 대하여 구체적으 로 한정하여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집합표상이라는 용어를 정의한다면, 우리는 서양의 기독교인과 동양의 불교도는 신(神)에 대 한 집합표상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양인과 서양인은 권력에 대한 집합표상이 다르다. 또한 뉴기니아 원주민과 우리는 정감적 집합 표상이 상이하며, 고대인, 중세인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관한 집합표상을 갖 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분배 (分配)의 정당성에 관한 집합표상이 서로 다르며, 포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집합표상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회나 문화에 사는 사람들의 집합표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야만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집합표상을 공기나 물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행동한다. 따 라서 다른 문화나 다른 사회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거나 야만적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들 자신의 집합표상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想起)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집합표상은 공간적 차원뿐만 아니라 시간 적 차원에서도 결코 당연하게 옳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다른 사회 의 집합표상을 야만적이라고 판단하듯이 고대나 중세의 집합표상을 원시적이 라고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집합표상 역시 미래의 사람들은 원시적이 거나 야만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합표상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집합표상으로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표상(表 象)'들의 '집합(集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때 '표상' 이라는 것 은 단순한 이미지(image)에서부터 엄격한 개념에 이르는 의식의 단위를 뜻하 는 것으로 사용한다.3) 또한 '집합' 은 이러한 이미지(표상)들이 서로 유기 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인간의 의식의 내용은 이미지로 형성되어 있다. 언어를 배우지 못한 유아 (乳兒)라 할지라도 불(火)에 덴 경험이 있으면 불에 대하여 뜨겁다는 이미지 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그 아이에게 불을 가까이 가져가면 피하려고 한다. 이 러한 아이는 불이라는 언어를 모르고 불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더 라도 불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한도 내에서 불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成人)이 정치(精緻)한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도 이와 근본 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개념(槪念)은 이미지를 구체화하여 확정한 것이다. 4)
인간이 무엇을 인식(認識)한다는 것은 그것에 관하여 어떠한 내용의 이미 지를 만들고 그것을 확정하며 체계를 구성하여 집합표상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담배' 를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담배라고 할 때 떠오르는 여러가지 이미지의 집합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작은 원통형의 모양이라는 시각적(視覺的) 영상이 있으며, 피울 때의 맛이 떠오르 고, 또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지식이 떠 오르며, 담배를 피운 사람들의 변색된 허파를 상상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담배에 대하여 공포의 정감을 가 질 수도 있으며, 그럼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모여서 담배에 대한 집합표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이미지(표상)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며, 모른다는 것은 이미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그것에 관한 이미지를 갖고서 기 존의 다른 이미지와 어떤 관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집 합표상에서의 '집합'의 의미이다. 집합표상의 '집합'은 이러한 이미지들이 상 호간에 유기적(有機的)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개개의 이미지들은 전체를 반영(反映)하고, 전체집합은 개개의 이미지 의 변화에 따라 관계구조가 재편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집합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식의 내용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유기체처럼 전일성을 형성한다. 가령 '아름답다' 는 이미지는 추하다, 더럽다, 예쁘다, 미인, 꽃, 진리, 선(善) 등의 다른 이미지와 상호관계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집합'표상이 갖는 이러한 전체와의 관계성(關係性)은 개개의 개념만이 아니라 부분적인 집합표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은 여러가지 부분적인 집합표상을 규정할 수 있다. 가령, 세계관적 집합표상, 가치관적 집합표상, 윤리적 집합표상, 문화적 집합표상, 종교적 집합표상, 상식적 집합표상, 이데 올로기적 집합표상, 인종적 집합표상, 물리학적 집합표상, 마르크스주의 집합 표상, 경제학적 집합표상, 규범적 집합표상,.........등등, 우리는 집합표상에 적절 한 제한을 부가함으로써 많은 구체적인 집합표상들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세분하는 경우에도 그 각각의 집합표상이 다른 집합표상과 독립적으 로 규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전체 집합표상 가운데 한 부분을 특정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규정하는 '표상'의 '집 합'으로서의 집합표상의 의미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인식(認識)에 대한 우리의 관점(觀点)이기도 하다.
1.1.3. 매개양식(媒介樣式)으로서의 집합표상 집합표상은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매개양식이다. 집합표상은 매개양식으로서 의 기능을 갖는다. 세계의 인식은 흔히 거울로 비유(比喩)되어 왔다. 인식은 객관적 세계가 인간의 이성(理性)이라는 거울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합표상은 이성에 비친 세계의 모습이 아니라 집합표상은 의식의 내 용을 존재로 전환시킨 인간의 창조물(創造物)이다. 가령 공간의 가장 기본적 인 개념으로 '거리' 라는 집합표상은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러 나 우리는 '거리'를 자(尺 또는 미터)라는 존재로 집합표상을 창조하여 사용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집합표상에 대하여 거울의 비유보는 오히려 화폐(貨 幣)의 비유가 적절하다고 본다. 화폐가 상품과 인간의 관계를 매개하듯이, 집 합표상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매개하는 것이다. 5)
첫째로, 화폐가 인간의 창조물이듯이 집합표상 역시 인간의 창조물이다. 이것은 화폐가 상품이 아니듯이 집합표상 역시 사물이나 세계 그 자체가 아 니라는 말이다. 화폐가 개개의 상품을 사진찍은 것이 아니듯이 집합표상 역시 사물과 세계의 반영이 아니다. 화폐가 상품이나 인간이 아닌 제3의 존재이듯 이 집합표상도 세계나 인간이 아닌 제3의 존재이다.
1.1.4. 서구적 인식(認識)과 동양적 깨달음(求道) 집합표상이 인간의 이성이라는 거울에 비친 세계의 모습이라면, 그 거울에 비친 상(像:集合表象)이 세계와 일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반 대로 집합표상이 인간이 창조한 것이라면 인식의 문제는 달라진다. 즉 우리는 인간의 인식과정을 탐구하여 진리(眞理)의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과정에 대한 논리는 집합표상에 불과하지 세계는 아니 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진리의 기준(基準)이 진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바른 인식에 관한 탐구는 더욱 유용한 매개양식의 조건이 무엇인 가 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아이디어이며 세계의 궁극적 진리에 접근하는 길 이 아니다.
또한 집합표상이 순전히 인간정신의 창조물이라면, 그것이 세계에 잘 들어 맞는다는 것은 하나의 신비(神秘)이다. 가령, 수학은 순수한 인간정신의 창조 물이다. 그런데, 어째서 수학적 집합표상이 세계와의 실천적 관계에서 그렇게 훌륭하게 적용되고 응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신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다.8) 그것은 인간정신과 세계의 본질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인간의 정신과 세계의 본질이 일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계가 인간의 정신으로 이입(移入) 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9) 그러나 이점은 명백해진다. 세계에 대한 인식과정 그 자체가 인간이 세계의 참다운 모습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唯 一)한 통로(通路)라는 것이다. 객관적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다만 열심이 집합표상을 창조하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객관적 대상이 아닌 인식과정 자체 는 인간정신의 본질과 세계의 긍극적 실재가 직접(直接) 관계를 가지는 것이 다. 이것이 인식과는 다른 구도(求道)이다.
동양에는 구도(求道)를 향한 정열은 있었으나 인식론(認識論)이란 없었다. 구도는 진리를 위한 전제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관과 객관이 합치 하는 통로를 통하여 세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계의 진실한 모습은 정신 외부에 있는 객관적 세계의 인식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정신이 하나가 되는 상태에서 깨달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祈禱)나 종교적 명상(冥想)을 통한 구도가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향한 구도와, 인식에 의한 집합표상의 문제는 구별된다. 구도는 정신과 세계의 궁극에 이르는 통로이고, 인식은 인간의 지 식과 신념에 대한 반성(反省)의 문제인 것이다. 구도가 종교의 문제라면 인식 은 철학의 문제이다. 그리고 철학은 우리의 집합표상에 대한 반성으로서 기존 (旣存)의 집합표상의 근본적인 전제(前提)를 검토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서 돌멩이라는 개념이 객관적 세계의 특정한 대상을 지 칭하는 것처럼, 집합표상이 사물을 반영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시세계(可視世界)의 논리일 뿐이다. 미시적 세계에 대한 과학은 인간의 집 합표상이 화폐와 같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창조 된 이론과 세계와의 관계 자체가 그 이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6) 집합 표상이 화폐와 같다는 것은 동양고전의 하나인 주역(周易)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주역의 64괘(卦) 각각은 이 세계의 사물이나 현상을 직접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괘는 인간이 창조한 매개양식이다. 그리하여 주역은 상(象:表象) 의 체계적 집합이며 인간이 창조한 집합표상이다. 그럼에도 동양인은 그것으 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으며, 유용한 지혜를 제공하는 매개양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