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집합표상의 카르마(業)






************ 緣 ************

달마(達摩)대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황제와 인연이 없음을 알고 양자강을 건너 하남지방의 소림사에 들어가 9년 동안 벽만 바라보면서 참선 하고 있었다. 혜가(慧可)가 진리를 듣기 위하여 달마를 찾아갔다. 그러나 달마 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눈이 내려 무릎을 넘는 추운 겨울에 3일을 문전에 서 기다린 혜가는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비수를 꺼내어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마침내 혜가는 달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진리를 찾지 못하고 괴 로운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 제 마음은 평안을 찾지 못했읍니다. 청컨대 제 마음을 진정시켜 주십시 오."

이에 달마가 말했다.

" 어디 자네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아 보게. 그러면 내가 그것을 진정시켜 주겠네 ."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끝에 혜가는 스승에게 오랫동안 마음을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달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자, 이제 내가 이미 자네의 마음에 평화를 주었네! "

(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祖曰 將心來 與汝安 可良久 曰 眠心了不 得 祖曰 我與汝安心竟)

(吳經熊 저. {禪學의 황금시대} 이남영 등 공역. p. 91)



************* 說 **************



1.3.1. 데카르트와 혜가(慧可)

앞에서 인용한 예화는 선종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명상의 주제 로 삼는 공안(公案)의 하나이다.1) 이것을 우리는 혜가의 공안이라고 하자. 혜 가의 공안은 합리적 집합표상에 있어서는 대단히 생소한 것이다. 혜가는 마음 의 평화를 찾아달라고 하였고 달마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혜가가 마 음을 찾지 못했다고 하자 달마는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혜 가가 자신의 팔을 자르면서까지 구하려고 하였던 진리라면 그 의미는 무엇인 가. 달마가 혜가에게 던진 "어디 자네 그 불안에 떠는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 아 보게 " 하는 질문에, 혜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가는 고뇌하는 마음을 내 놓을 수는 없었다. 이제까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던 그 '마음'에 대하여 달마는 문제를 제기(提起)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혜가는, 이 제까지 당연히 자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여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혜가가 자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그 불안에 떠는 마음이, 사실은 마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고, 혜가가 스스로 형 성한 마음의 '집합표상'이었던 것이다.

마음이라는 집합표상을 던져 버린다면, 이미 마음은 규정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정확하고 엄격하게 마음을 규정하더라도 그것 역시 자신이 만든 집합 표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자신이 마음이라 고 불렀던 것이 실재(實在)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떠한 모습인지, 마음이 마음 아닌 다른 것과 구별되는 것인지, 마음이 외부세계와 다른 것인지, 등등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2)

우리는 혜가의 공안과 함께 데카르트의 논의를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확실한 지식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의심 (疑心)하였다. 가령 나 자신이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의심할 수 있 을 것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자면서 꿈 속에서 책상에 앉아 있 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마치 장자(莊子)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는 자신이 인간인지 나비인지 의심한 것처 럼 그렇게 철저하게 의심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크는 의심할 수 없는 명확한 것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의 의심하는 정신이었다. 무가 사유하고 의 심할 수는 없기 대문이었다. 그리고 의심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며, 정신은 육체보다 더욱 명석판명(明晳判明)하게 존재하는 것이었다. 육체의 존 재를 의심할 수 있어도 정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3) 이것이 서구 근대철학의 출발이었고, 합리적 집합표상의 새로운 시작이었으며, 유물론 (唯物論)과 관념론(觀念論)의 근대적 대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데카르트와 혜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의심하고 사유하는 정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혜가는 불안에 떠는 자신의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 데카르트에게 있 어서는 모든 것에 앞서서 가장 명백(明白)한 실체였던 마음이, 혜가에게 있어 서는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제1원리로서 정신의 존재에서 출발하는 데 비하여, 혜가는 반대로 지극히 당연하고 확실하게 보이 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을 구도(求道)의 제1원리로 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관찰하면 데카르트와 혜가의 결론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집합표상에 대한 태도는 동일하다. 데카르트는 그의 시대 이 전에 일체의 집합표상을 지배하던 초월적(超越的) 집합표상을 부정하고 있으 며, 혜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집합표상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1.3.2. 초월적 집합표상의 카르마(karma)

우리는 데카르트와 혜가에서 집합표상의 2중적(二重的) 측면을 본다. 하나 는 집합표상의 긍적적 측면, 즉 집합표상에 의지함으로써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 해석에 따라서 실천에 이르고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집합표상의 부정적(否定的) 측 면, 즉 우리가 직접 의지하는 것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집합표상인데, 그 집합표상은 항상 우리 스스로가 형성한 허구가 개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허구가 개입된 집합표상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합표상의 부정적 측면을 우리는 집합표상의 카르마(業)라고 부를 것 이다.

데카르트가 대상으로 삼은 중세의 집합표상의 카르마는 우리의 합리적 집 합표상으로 용이하게 규정할 수 있다. 중세의 집합표상은 초월적 집합표상이 었다. 그러나 중세의 사람들이 비합리적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중세 의 집합표상은 초월적 집합표상에 의하여 제약된 한계 내에서의 합리성이었 다. 그것은 과거에 형성된 신(神)에 대한 집합표상이 모든 합리적 집합표상의 전제(前提)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초월적 집합표상의 의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우화(寓話)를 예로 들 수 있다.

중세의 유명한 석학(碩學)들이 말의 이빨이 몇 개인가에 관하여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어떤 학자는 성경(聖經)의 어떠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것을 근거 로 말의 이빨의 개수(個數)를 추정하였다. 어떤 학자는 또 다른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토론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시중을 들던 하인이 의견을 제시하였다. 밖에 나가서 여러 학자들이 타고 온 말의 이빨의 수를 세어보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 하인은 심하게 꾸중 을 듣고 쫓겨나왔다. 그 학자들이 실제 말의 이빨의 개수를 세어보지 않은 것 은 아니었다. 실제 말의 이빨의 개수는 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하 느님이 부여한 진정(眞正)한 말의 이빨의 개수는 몇개인가, 이것이 그들의 문 제의식이었다. 말 이빨의 개수에 대하여 초월적 집합표상이 작용할 때 집합 표상의 카르마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형성한 신의 의지에 관한 '집합표상'을 신의 진실한 의지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중세에는 천사와 악마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가령, 핀(pin) 머리 위 에 몇 명의 천사가 춤출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등은 대단히 논쟁적인 주제였 다. 한편 악마에 대해서도 악마의 모습, 성격, 행태, 영향 등이 연구되었고, 악 마의 성행위(性行爲)는 대단히 중시되었다. 그리하여 악마의 성기(性器)는 얼 음처럼 차디차며 악마와 성행위를 한 여성은 마녀(魔女)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 악마의 연회장(宴會場)에 참석하여 악마와 성교하였다 는 경험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악마의 행태 연구에 있어서 중대한 단서 (端緖)가 되었다. 마녀(魔女)를 색출하는 문제들도 대단히 중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사실은 독초를 먹고 야기된 환각을 사실처럼 진술한 것 이었다.4) 그러나 그 결과는 체제유지의 정치적 목적과 관련되어 50만의 여자 를 마녀로 몰아 처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악마가 존재한다는 초월적 전제 에 입각할 때, 객관적 현상에 대한 대단히 합리적인 연구도 이와 같은 카르마 를 야기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류의 사고에서 이러한 초월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제거하였 다. 그는 당시의 인류의 집합표상을 지배하던 허구적인 악마, 정령(精靈), 귀 신, 마법 등 신(神)에 의한 일체의 초월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쓸어버렸다.5) 신도 객관세계의 합리성을 침해하지 않는 집합표상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진실되게 세계를 비추어 준다고 생각된 이성(理性)의 기초 위에서 합리적 집 합표상에의 길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합리적 집합표상은 인류에게 과학이라 는 선물을 안겨 주었고, 근대의 인류역사를 추진해 온 원동력이 되었다

1.3.3. 집합표상의 카르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중세의 초월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세인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익숙한 합리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는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집합표상의 카르마는 합리성의 결여(缺如)에서 야기(惹起)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집합표상 이 우상(偶像)으로 작용할때 야기되는 것이다. 가령 진화론(進化論)이 합리적 집합표상이라고 하더라도, 진화론을 우상화한다면, 현실에서 패배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進步)의 대가(對價)이고 그들을 구제하는 것은 진보를 방해한다 는 논리의 카르마를 야기한다. 집합표상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매개(媒介)이다. 그러나 일단 형성된 집합표상은 반대로 인간의 사유를 지배 하고, 나아가 인간 자체를 지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 집합표상이 보 편적이면 보편적일수록 그 지배력은 강화된다. 이와 같이 인간에 의하여 형 성된 집합표상이 독립하여, 반대로 인간의 사유와 인간을 지배하는 경향이야 말로 집합표상의 카르마(karma)인 것이다. 그것은 이미 생성된 것이 자신의 존재성(存在性)을 고집하는 경향이다.

합리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는 인간의 사유에 개재(介在)하고 있는 더욱 근 본적인 바탕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는 언어(言語)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세계는 언어적 해석을 초월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이라고 이름 붙이자말자 정신이라는 그 무엇이 실재하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 가 '원자'라고 이름 붙이자말자 조그만 당구공과 같은 원자라는 존재가 실재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의 진실한 모습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노자(老子)는 이름붙인 것은 이미 세계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는(名 可名 非常名) 진술부터 그의 도덕경(道德經)을 시작한다. 세계의 진실한 모습 은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다. 현대의 양자역학은 언어가 아닌 수학적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5)

한편 우리의 합리성은 가시세계(可視世界)의 합리성이다. 우리는 다른 속 도로 운동하는 두 계(界)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 지 못한다. 우리는 인과관계가 불확정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의 이성은 가시세계에 익숙해 있으며, 가시세계를 초월하는 논리에 대하여 저 항한다. 다만 과학이라는 권위로 말해지면 그것을 믿어버릴 뿐이다. 마치 평소 에는 전혀 지구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교과서에서 공처럼 그려 진 지구궤도를 상상하면서 지구가 초속 29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고 믿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6)

나아가 모든 이론적 집합표상은 합리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초월적 전제 (前提)를 가지고 있다. 과학적 집합표상은 세계가 단순한 법칙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또한 근대과학은 세계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 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 자체는 합리적 집합표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초월적 집합표상이다. 우리는 중세인(中世人)과 별로 다른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7)

혜가의 공안은 이러한 일체의 집합표상에 대한 카르마를 지적하고 있는 것 이다. 가령 데카르트에게 혜가의 공안을 적용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가장 명 백한 철학의 제1원리로서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정신의 존재를 확립하였다는 것은, 혜가의 관점에서는 정신이라는 새로운 집합표상을 형성한 것이었다. 사 유(思惟)가 확인되고, 사유의 주체로서의 존재(存在)가 확인되고 (나는 생각한 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존재는 사유를 속성(屬性)으로 하는 정신(精神)이 라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는 이것이 그가 발견한 실재적(實在的) 세계이겠지 만, 혜가의 관점에서는 데카르트가 스스로 형성한 사유, 존재, 정신은 '집합표 상'일 뿐이다. 혜가에게는 그것은 결코 정신의 진면목이 아니다. 또는 데카 르트가 규정한 그러한 정신이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혜가에게 있어서 정 신이란 인간의 집합표상일 뿐이고,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의 진실한 모습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으며 집합표상으로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 이 혜가의 공안의 의미이기도 하다.8) 결론적으로 데카르트가 초월적 집합표 상의 카르마를 단절(斷絶)시켰다면, 혜가는 개념에 입각하는 모든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규명하는 것을 우리의 주제로 삼을 것 이다. 우리에게 서구 근대의 집합표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 적 집합표상이 카르마를 야기하고, 그 카르마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 이 현실의 대립과 투쟁을 야기하여 왔다. 우리는 시대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에 묶여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집합표상 그 자체에 대하여는 반성할 수 있는 관점(觀點)을 가지지 못하였다. 다만 우리는 하나의 동질적인 근대적 집합표상 내에서 서로 다른 이념적 집합표상에 기초하여 반대이념과 투쟁해 왔다. 그러나 동양적 집합표상과 비교해 볼 때, 근대적 집합표상은 새로운 위 상(位相)을 가지게 된다. 백년 후의 사람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집합표상에 대하여, 마치 우리가 중세의 집합표상을 평가하는 것처럼 그렇게 평가하게 될 것이다.

1.3.4. 진리(眞理)와 무명(無明)

인간에게 집합표상의 카르마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극단 적으로 카르마가 전혀 없는 인식의 상태를 가정할 수 있다. 이것을 진리(眞理)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집합표상이 인간에게 순전히 카르마로서만 작용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무명(無明)이라고 부르기로 한다.9)

혜가가 가지고 있던 '불안에 떠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집합표상은 혜가에 게는 순전히 카르마였으며, 그리하여 혜가는 무명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형성 한 자아의 집합표상을 진정한 자아(自我)라고 생각하고 그에 집착(執着)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는 무명 속에 있는 불우한 중생(衆生)인 것이다. 자아에 대 한 집합표상의 카르마가 삶의 무명을 야기한다면, 사회나 세계에 대한 집합표 상의 카르마는 사회적인 무명과 투쟁을 야기한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한 집합 표상에 집착하여 그것을 우상화함으로써 다른 인간을 투쟁의 대상(對象)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리를 위하여 타인을 적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진리는 자신의 이익의 위장(僞裝)이다.

이에 대하여 진리는 집합표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물론 완전한 자유 (自由)는 집합표상 그 자체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진리는 집합표상의 형태로 표현될 수 없다. 진리나 비진리(非眞理), 또는 진리의 기준에 관한 이론은 모 두 우리가 창조한 집합표상일 뿐이다. 우리는 특정한 집합표상을 진리로 규정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진리로 규정하는 이론(집합표상)의 진리성(眞 理性)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점은 집합표상이 객관세계의 반영이 아니 라 화폐와 같이 우리가 창조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연하게 도출되는 결론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진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념이 필요하고 그러한 신념을 채 워줄 수 있는 집합표상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집합표상의 카르 마를 반성하기 보다는 자신과 반대되는 집합표상이 비진리로 규정되기를 원한 다. 인간은 스스로의 신념을 바꾸기 보다는 반대신념을 가진 사람과 투쟁(鬪 爭)하기를 원한다. 플라톤의 후예로서의 서구적 사고방식은 이러한 경향이 특 히 강하다.10)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집합표상을 진리로 규정하고 그것에 헌신 (獻身)할 것이 아니라, 모든 집합표상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그것은 집합 표상의 카르마를 직시하는 것이며 무명으로부터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집합표상은 뗏목과 같다. 강(江)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 목이 필요하지만, 뗏목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강을 건넌 후에도 뗏목 을 지고서 산(山)을 올라가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현실과 상황 에 대처하기 위하여 집합표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한 집합표상이 우리가 부딪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특히 한 시대(時代)를 지배하는 집합표상에서는 더하다. 한 시대를 진전시키는 집합표 상은 흔히 다음 시대에는 다만 카르마를 야기하고 인간을 무명에 빠뜨릴 뿐이 다.

1.3.5.이성(理性)과 상상력(想像力)

그리하여 집합표상은 역사적인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집합표상 을 요구한다. 기존의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규명하고 새로운 집합표상을 창조 함으로써 인간은 진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극복하는 사 회적 역사적 방법이다.

그러나 새로운 집합표상을 건설하는 창조적 사유(思惟)는 이성(理性)에 의 한 합리적 과정이 아니다. 이성이란 객관세계를 반영하는 거울도 아니고 인간 의식의 한 부분을 점유하는 존재물도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성이나 합리성 이라는 것은 사실은 기존의 집합표상의 정합성(整合性)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 존에 가지고 있는 모든 집합표상의 상호간의 내부적 조화(調和)이며 기존의 집합표상을 관통하는 논리성(論理性)이다. 가령 빛이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이 라는 결론은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미시세계는 가시세계와는 다른 모 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후에는 이러한 결론은 합리적인 것이 되었 다. 왜냐하면 그만큼 기존의 집합표상의 정합성의 영역이 확장되었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기존의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규명하고 새로운 집합표상을 창조하 는 것은 이성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성을 넘어서는 창조적 직관의 깨 달음의 순간을 필요로 한다.12) 합리적 사고는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합리적 집합표상의 재조직(再組織)의 과정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합리적 사유란 새로 운 비합리적인 결론과 기존의 집합표상과의 정합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 리하여 창조적 사유는 이성보다 더 깊은 차원이 이성적 차원에로 이입(移入)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생성(生成)이고 창조이다. 그것은 불교의 선사들 이 공안을 깨치는 순간적 깨달음과 동일한 구조이다.11) 창조적 사유는 이성 을 초월하는 깨달음이 창조적으로 발현함으로써 기존의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깨뜨리고 이성이 확장(擴張)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을 초월하는 차원은 상상력(想像力)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성은 상상력에 의하여 확장된다. 코페르니쿠수가 지동설(地動說)을 구성할 때에는 이성보다는 상상력의 확장이 먼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당시의 모든 반대자들이 제기한 합리적 의문에 대하여 대답할 수 없었지만, 그의 상상력은 그의 이성의 확장을 가져오고, 그의 이론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가져왔던 것 이다.13) 근대물리학에 관하여 이성이 곤란에 부딪쳐 있을 때, 아인쉬타인은 시간이 상대적(相對的)일 수 있다고 당시의 합리성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발 휘하여 우리시대의 이성을 확장하였다. 그 후로 과학은 아인쉬타인 자신마저 도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성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하여 집 합표상의 발전은 기존의 합리성을 넘어 상상력이 발휘되고 그것이 이성을 확 장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적 사유와 근대적 현실이 낳은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삼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논의도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합리 성은 근대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 願 ***********

0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 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 은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하시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 하고 따졌 다.

(요한복음 8:31)


Last Updated: 1995년 7월 1일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