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연대성(連帶性)
*********** 緣 ***********(1) 언젠가 혜자(惠子)는 장자(莊子)에게 이렇게 비평했다.
" 자네의 이론은 현실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 소용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소용이 있는 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네. 예를 들 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끝없이 넓지만, 당 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을 디딜 수 있는 넓이 뿐이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바닥 밑면만을 남 겨두고 그 주위의 땅을 밑바닥까지 파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그래도 발바닥 밑만이 소용있겠는 가. "
혜자가 대답했다.
" 그야 소용이 없지."
장자가 말했다.
" 그것보게, 소용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소용이 되지 않는가."
(莊子. 外物篇)
(2) 인드라 하늘에는 진주 그물이 있고, 그 그 물들은 잘 정돈되어 있어 만일 사람이 어떤 하나의 진주를 보면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속에 반영되어 있 는 것을 볼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 세계 내의 각각의 사물들은 단지 그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 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물들을 동반하고 있다. 그러 므로 사실상 각각의 대상들은 서로 다른 모든 것이 기도 하다. 모든 티 끌의 알 속에도 무수한 부처들 이 현전(現前)한다. (華嚴經)
*********** 說 ***********
존재와는 달리 사건은 불가분적(不可分的)이다. 우리가 주관을 투입하여 하나의 사건을 다른 것과 분할하는 것을 증지하면, 즉시 하나의 사건에 전우 주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세계 가 불가분의 전일성(全一性)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이러한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서 있다' 는 단순한 사건에도 벌써 지구 전체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다. 그리하여 우리가 임의로 규정하는 하나의 사건 에도 그 사건 이외의 모든 사건, 세계, 우주, 그리 고 아득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의 전역사 (全歷史)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본질적 요소도 사건 그 자체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본질(本質)과 현상(現象)의 구별 같은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어떠한 사건 의 본질 역시 우리가 그 사건의 집합표상을 어떠한 관점에서 형성하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본질이란 우리의 주관성의 투입에 의한 전체적 연관성의 절 단(絶斷)이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가 임의로 규정하 는 어떤 사건의 본질적 속성은 그 자체에서 연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외의 전 우주(시간과 공 간)와의 관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원자(原子)와 같은 미시세계(微視 世界)에 있어서는 당연하게 인정된다. 원자적 입자 들이란 인간의 집합표상으로 규정된 것으로서, 그들 의 속성은 다른 세계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정의되고 관찰될 수 있다. 현대물리학에서의 소립자 (素粒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견고한 입자가 아니라,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모든 것에 미치는 일련의 작용과 관계, 그리고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수용적 관계의 총체이다. 양자적(量子的) 차원에서는 전 우주의 불가분적인 양자적 상호연결 성이 세계의 근본적 모습이고, 상대적으로 독립하여 행동하는 부분들은 시공적 차이에 의하여 다른 것 과의 비교에서 독립적이라는 이미지를 줄 뿐이다. 이것은 거시적(巨視的) 차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 다. 우리는 달이나 별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달이나 별이 우리의 일생 이라는 기간 또는 인간의 역사적 시간에 있어서는 동일한 운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우리가 달이나 별에 의하여 인간 자신이 규정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인 간이라는 규정 속에는 달이나 별의 움직임도 포괄되 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 늘날의 과학의 발전은 우주의 멀리 떨어진 부분들과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으며 상호규정 속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1)
우리는 이러한 사건의 상호의존성, 상호의존된 사건의 세계에 대한 표현으로서 연대성(連帶性)이라 는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 우리가 무엇과 무엇이 상 호 연대되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독립한 두 개 가 단순히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여 전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드라 법망계(法網界)는 이러한 연대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인드라의 하늘에 걸려 있는 진주 그물은 전체가 하나의 사건이며, 개개의 진주는 결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모 든 것과의 과정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며, 하나의 진주에는 다른 모든 것들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 중에 하나의 진주를 떼어낸다면, 그 진 주는 떼어낸 즉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 이지만, 동시에 그물 전체는 이전과는 다른 그물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진주를 떼어낸다는 것이 그물 전체 중에서 일부를 절단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물 전체의 관계성(關係性)이 재조정되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분과 부분이 상 호의존함으로써 서로를 규정하고, 또한 이러한 부 분들의 상호의존 관계가 전체를 규정하며 동시에 전 체가 이러한 부분들을 규정하는 이러한 관계에 대하 여 연대성(連帶性)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의 전일적(全一的) 연대성을 직접 파 악하는 어려운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연대성의 시각(視角)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교정하게 해 준다. 세계전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의 돌멩 이, 번개와 천둥, 백합과 고양이, 그리고 당신과 나 의 문제도 역시 연대성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사물, 모든 사건, 당신과 나, 이 모든 것이 세계의 부분적 사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세계전체가 참여하고 반 영되는 그러한 사건이다.
길섶에 피어난 한 떨기 들국화도 단순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수억년에 걸쳐 전우주가 참여한 시 간적 축적(蓄積)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전우주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과 산 세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들국화의 모습은 조금 은 달라졌을 것이다. 비와 바람이 그렇게 불지 않았 다면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토양과 영양이 그렇지 않았다면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것이 동일하 였더라도 바람이 그 씨앗을 바위 모퉁이에 실어 날 랐다면 아마도 들국화는 말라서 죽어 다른 식물의 영양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존재론적 집합표상에 서는 이러한 연대성을 들국화가 가지고 있는 가능태 (可能態)가 현실태(現實態)로 전환하는 것으로 생각 한다. 그럼으로써 연대성은 존재로 재단 되어버리고, 따라서 세계와의 연대성은 사상(捨象)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성은 들국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 세계적 연대성의 한 매듭이다. 우리 자신 역시 수백억년에 걸쳐 전우주가 참여한 시간의 축적 이며 여전히 전우주가 참여하고 있는 현실의 사건 이다. 이러한 사건으로서의 인간은 현실에 있어서도 그날그날의 실천(實踐) 속에서 끊임없이 재형성되고 재규정(再規定)되는 지속적인 사건의 흐름이다. 한 순간도 쉬지 않는 우리의 호흡과 심장의 박동과 음 식물의 섭취와 그 소모의 신진대사에 의하여 우리 의 육체는 끊임없이 재형성된다. 이러한 과정은 우 리의 자연에 대한 긴밀한 상호의존성을 의미하는 것 이다. 우리의 육체(肉體)는 전 자연이 참여하고 반영 되는 관계망이다. 또한 우리는 그날그날의 노동과 소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인간관계의 망 속에서 우리의 삶을 재형성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에서 우리 자신의 동일성(同一性)은 끊임없이 재규 정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 계의 총체(總體)이다. 또는 세계적 과정의 총체적 사 건인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사건들에 의하 여 규정되는 그 실천적 삶의 총체가 우리 자신인 것 이다. 주체와 자아는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규정 되고 형성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수억년 수십 억년에 걸쳐 규정된 유전자(遺傳子)와 그에 따른 특수한 실천적 행동경향으로서의 인간이다. 당신 과 내가 태어나는 데 역시 전우주가 관여한 것이다. 2)
우리는 상호의존함으로써 상호규정되고 전체와의 관계의 총체인 부분, 부분이 유기적으로 통일된 전 체, 그 상호의존성 등의 이미지를 연대성(連帶性)으 로 표현하였다. 연대성의 가장 간결한 이미지는 인 드라 그물의 진주, 진주의 연결망으로서의 인드라 그물이다. 연대성의 가장 고양(高揚)된 의미의 체험 은 젊은 남녀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 어서 나의 의미와 삶 그리고 나자신은 바로 당신의 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나의 당신인 것이다. 사 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의미가 나의 존재가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關係)에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자신의 의미와 인생의 가치는 상호규정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두 개의 독립된 존재의 관계가 아니라, 두사람의 관계에 의 하여 서로의 인생의 의미가 규정되는 것이다.3) 그 리하여 사랑은 연대성의 인식(認識)이고 연대는 사 랑의 실천이다. 이러한 사랑은 사회의 모든 인간 그리고 인류에게로 확장될 수 있다. 전 인류에 대한 나의 관계의 총체가 나이며 인류는 각 개인의 상호 관계의 망으로 부분과 전체가 동시에 규정되는 것이 다. 개인의 모든 삶은 다른 모든 인간들과의 관계 에서 규정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회와의 연대성이 며 동시에 자연과의 연대성이다. 동시에 사회와 세 계는 인간의 연대인 것이다.
존재론적 집합표상에서의 세계의 문제란 궁극적 실재(窮極的 實在)의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연대적 집합표상에서의 세계의 문제는 부분(部分)과 전체 (全體)의 문제이다.
세계가 만일 완전히 분리되고 독립적이며 불변하 는 자기동일성을 가진 존재물의 집합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개개의 존재물들을 해명할 수 있는 실재나 본질, 또는 보편이 되는 궁극적인 실재가 있을 것이 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에 내 재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연장성이거나, 영원한 것이거나, 일체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고 일체를 생 성시키는 것이거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기동일성 이다. 이러한 유추는 돌멩이와 같은 가시세계에서 형성한 '존재'의 집합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러나 세계는 연대성이다. 세계는 실재, 본질, 보편, 선재(先在)하는 것으로 환원(還元)될 수 없는 연대성 이다. 궁극적 실재의 개념은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며, 하나의 추상의 카르마이다.
연대적 집합표상에서는 궁극적 실재의 문제가 아 니라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분(현실, 경험 세계)의 집합표상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돌멩이의 존재에 대하여 연장성의 이미지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원자에 대하여 연장성의 이미지를 적용할 수 있는 가? 그리고 시간에 대하여 연장성의 이미지를 적용 할 수 있는가? 전체라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 간도 포괄하여야 하며, 관계와 과정도 포괄하는 것 이며, 사유(思惟)까지도 포괄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 냐하면 연대성은 모든 부분의 연대성이기 때문에 부 분의 이미지를 모두 포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 나 가시적(可視的) 세계의 이미지를 우주적 전체에 대하여 얼마나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의 문제는 부분과 전체에 대 한 적절한 집합표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 리가 인식의 범위를 넓혀 가면서 좀더 많은 부분들 을 종합(綜合)함으로써 전체에 이르는 과정인 것이 다. 종합이라는 것은 우리의 집합표상에서 야기되 는 카르마를 끊임없이 제거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 것이 도(道)와 `공(空)'의 이미지이다. 도와 공은 궁 극적 실재가 아니라 연대성의 이미지이다. 연기법은 이러한 도와 공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인드라 법망계는 이러한 부분과 전체, 연대성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이다. 그것의 이미지는 부분과 부분이 상호의존하고 전체와 부분의 상호의존하는 그러한 이미지이다. 하나의 진주는 다른 모든 진주 에 의존하여 규정되며 인드라법망계 전체는 모든 진 주들의 연대성이다. 중요한 것은 부분과 전체가 결 코 독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다. 즉, 전체는 부분을 지배적으로 규정하는 그러한 전체가 아니며, 부분 역시 전체성을 배제하는 그러 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우리는 연대성(連 帶性)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성 은 공간적(空間的) 전체존재(全體存在)라는 이미지를 함축하는 것 같지만, 연대성은 공간적 전체존재가 아니다.4) 연대성은 가시세계에 익숙한 우리의 이 성(理性)을 초월하는 것이다.
************ 願 ***********
어떤 중이 조주(趙州)에게 물었다. " 만법(萬法) 은 하나로 돌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는 어디 로 돌아갑니까? " 조주는 대답했다. "내가 청주(靑 州)에 있을 때 적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나 되더군." (碧巖錄 第45則)...
이런 선체험(禪體驗)은 언뜻 보면 그리스도교와 이질적인 체험으로 여겨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인 어느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읍니다. " 마음과 힘을 다해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행위로 동시에 전세계 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은 그리스 도교 신앙에 근거를 둔 깊은 체험을 드러내고 있읍 니다. 깊은 영적 경험을 해 본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이 말을 이해하는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사람으로부터 사물로 옮길 수 있다면, 앞에서 말한 "만법귀일(萬法歸一)" 공안(公案)이 목표로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어떤 것 인지 짐작할 수 있읍니다.
( 門脇佳吉 엮음. {禪과 聖書} 김윤주 역. p. 86. 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