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3.2.1. 사건의 연대적 두 측면:시 간과 공간

사건에는 뚜렷한 두 가지 측면(側面)이 있다. 하 나는 관계(關係)이고 다른 하나는 과정(過程)이다. '바삭하는 소리'에는 향엄과 돌멩이의 관계가 있고, 돌멩이와 대나무의 관계가 있으며, 또 그 사건을 채 우고 있는 공기와의 관계가 있고 공기의 진동과 향 엄의 귀와 뇌의 관계가 있다. 이러한 관계들이 바삭 하는 소리가 나는 사건을 형성하는 관계이다. 한편 '바삭하는 소리'에는 이러한 관계들 외에 향엄이 돌 멩이를 던지고,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고, 그것이 공기의 진동을 야기하고, 공기의 진동이 귀를 자극 하고, 귀의 자극을 소리로 번역(飜譯)하는 과정이 있 다.

사건을 형성하는 관계들의 성격은 공간을 차지하 는 성질로서 연장성(延長性)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은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이고, 물질적인 관계들이다. 한편 사건의 과정은 매순간 새로운 것의 출현(出 現)이다. 돌멩이가 날아가는 과정은 향엄과 돌멩이 로 환원(還元)하여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고, 돌멩이와 대나무의 부딪침과 소리는 존 재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것의 출현이다. 사랑하 는 부부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부부의 존재로 환원하 여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창조(創造)이다. 그리하여 사건의 과정적 성격은 매순간 어떠한 창조성이 역동 적(力動的)으로 분출(噴出)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건은 두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하 나는 연장적 성격을 가지는 관계들의 총체라는 것이 며, 다른 하나는 매 순간 분출되는 새로움으로서의 창조적 역동성의 발현이다. 전자를 우리는 공간이라 고 규정하고 후자를 우리는 시간이라고 규정한다. 화이트헤드가 지적대로 모든 사건의 " 기저(基低) 에 있으면서 개체화(個體化)되는 실체적 활동력(活 動力) " 으로 규정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역동성이고 시간이다. 또한 사건은 이러한 " 활동력에 의하여 통합되는 여러 관계(關 係)들의 복합체(複合體) " 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 에 다른 모든 사건들과의 연대적 관계를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관계의 총체로 서의 공간이다.1) 이것은 사건의 규정이기도 하고 연대성의 규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드라법망계의 비유에서 하나의 사건이 다른 모든 사건들과의 관계 의 총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연대성의 공 간적 측면이다. 우리는 시간에 대한 논의에서 하나 의 사건은 역동적인 연대성이 구현된다고 규정하였 다. 이것이 연대성의 시간적 측면이다.

세계에 대한 이러한 규명은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위상(位相)을 규정할 수 있게 한다. 세계를 존재로 해석하려는 관점은 세계를 연대성의 하나의 측면 즉 공간적 연대성으로 환원(還元)하려는 노력이다. 이것 은 사물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아 니라, 그러한 관점으로 사물이나 세계를 충분히 해 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2)

3.2.2. 공간 : 총체적 관계장(總 體的 關係場)

사물들에서 가장 먼저 관찰할 수 있는 평범한 사 실은, 모든 사물들이 허공을 차지하는 연장적(延長 的)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공간이라는 이미지는 세 가지 방향의 거리의 종합으로 이루어지는 부피이 다. 그리고 이러한 부피로서의 공간은 우리에게는 명백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이러한 연장성을 가지며 사물들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사건 (事件)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인식되는 공간은 바로 허공(虛空)의 이미 지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허공이란 존재가 아 니라 관계이다. 여기에 한개의 돌멩이가 있다 하자! 그 돌멩이를 들어내 버리고, 그 돌멩이가 차지했던 공간(허공)이 절대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구가 거대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black hall)이라 고 상상해 보라. 그러면 그 돌멩이는 블랙홀에 빠져 들어 가버리고 그만한 공간은 없어져 버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허공)이란 사실은 돌 멩이와 지구(블랙홀이 아닌)와의 관계, 또는 여러 혹 성간의 상호관계를 이미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돌 멩이가 차지하는 공간은 지구와의 관계이며, 돌멩이 의 무게나 질량(質量)은 지구의 중력(重力)과의 관계 에서 규정된다. 그리고 돌멩이라는 존재의 가장 중 요한 본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돌멩이의 질량이라 면, 공간이야말로 돌멩이의 본질적 요소가 되는 것 이다. 따라서 공간은 돌멩이 외부(外部)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의 내부(內部)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며, 돌멩이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統一) 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3) 그리하여 존재와 사건 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돌멩이 그 자체가 아 니라 돌멩이와 세계의 다른 모든 존재와의 관계이 다. 이러한 관계의 총체가 바로 돌멩이가 차지하 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은 단순한 허공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건과의 상호의존적인 총체적 관계(總體的 關係)이다.

이러한 총체적 관계로서의 공간의 성격은, 돌멩 이와 같은 존재물(사실은 특수한 사건의 한 단면임) 아닌 보통의 사건에서는 더욱 쉽게 인식될 수 있다. 향엄이 경험한 바삭하는 소리에는 대나무와 돌멩이 그리고 근처의 공기 등이 형성하는 총체적 관계망 (總體的 關係網)으로서의 공간이 정의된다. 보리알 이 싹이 트는 사건에 있어서는 공간은 엥겔스가 예 를 든 대로 보리알, 흙, 흙속의 영양분과 수분, 태양 빛, 공기 중의 산소 등이 형성하는 연장적(延長的) 관계망이다. 보리알은 그것이 만나는 다른 사물과 의 관계에 의하여 보리식물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살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건에 있어서 엥겔스 가 조건(條件)이라고 불렀던 다른 사물과의 총체적 관계가 바로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과의 관계 를 떠나서 지구와의 관계만을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이유없이 특수한 관계만을 다른 관계와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그것 이 우리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는 물질적인 관계 들이며, 모든 존재들이 형성하는 총체적 관계망(總 體的 關係網)이다.

공간을 형성하는 관계들은 특정한 몇 개의 관계 가 아니라 무한(無限)한 관계들이다. 돌멩이의 공간 은 우선 지구와의 관계이다. 그리고 지구와의 관계 란 지구 위의 모든 사물과 지구내부를 형성하는 모 든 사물과의 관계이다. 나아가 돌멩이의 공간은 지 구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별(星)들, 즉 우주와의 관 계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계들의 망 (網)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계의 연대성이 다. 보리알이 싹이 트는 사건에 있어서의 공간도 마 찬가지이다. 그것은 개념적으로는 흙, 흙속의 영양 분, 습기(濕氣), 온도, 산소(酸素), 이산화탄소 등으로 이루어지는 몇 개의 관계로 한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고찰하면 그것은 바로 지구 와의 관계이며 우주와의 관계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게 무한하게 많은 관계들 중에서 몇 개의 관계 를 한정하는 것은, 장자(莊子)의 '서 있는데 필요한 땅'이나 인드라 법망계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의 주 관(主觀)의 투입(投入)에 의한 것이지 세계의 실제적 인 모습이 아니다. 그리하여 공간이란 하나의 사건 에 대한 우주의 다른 모든 사건들의 관계, 총체적 관계망이며, 바로 연대성이다. 다만 그것은 연장적 측면의 연대성(連帶性)이다.

우리가 미시세계(微視世界)의 관점에 선다면, 이 러한 관계의 통일성(統一性)은 더욱 용이하게 인식 할 수 있다. 물질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전자나 양성자, 원자핵을 포괄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한 다. 또한 공간은 원자나 전자 양성자의 운동체계에 집결(集結)된 총체적 관계망이 하나의 통일된 장(場) 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사건(즉, 主觀을 投入하여 다른 사건과 分別한 사건)이 가지는 세계의 다른 사건과의 총체 적 관계망이다. 이러한 관계망은 하나의 통일을 이 루고 있는 관계의 체계(體系)로서의 장(field)이다. 장으로서의 공간은 다른 일체의 존재나 사건이 우리 가 관심을 가지는 사건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력(影 響力)이 종합적(綜合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 은 개별적 존재물의 속성이 아니라 법칙성(法則性) 이 전체를 통일하는 장(場)이다. 이러한 총체적 관계 망이 형성하는 장의 통일성은 세계의 연대성이 연 장적 차원에서 구현된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은 세가지 이미지를 가진다. 첫째 로 그것이 부피를 차지하는 연장성(延長性)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연장성은 허공이 아니라 다 른 모든 사건과의 총체적 관계망(總體的 關係網)이 라는 것이다. 세째는 이러한 공간은 통일되어 있으 며 법칙성을 내재하고 있는 정합적(整合的)인 장(場) 이라는 것이다. 공간은 총체적 관계장(關係場)이다.

3.2.3. 시간 : 창조적 역동성(創 造的 力動性)

사건은 총체적 관계장만으로 해명(解明)되지 않 는다. 모든 사건은 항상 새로운 것의 생성(生成)이 다. 이러한 생성은 총체적 관계장으로서의 공간이나 물질적 존재로 환원(還元)되지 않는다. 우리는 돌멩 이에서도 대나무에서도 `바삭하는 소리'를 찾아낼 수 없다. 사건의 공간적 존재적 설명에서는 새로운 질(質)의 출현이나 생성을 해명할 수 없다. 세계는 끊임없는 새로움의 창조이며 역동적인 무엇의 생성 이다. 여기에 사건과 세계의 연대성에 또 하나의 다른 차원이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차원을 우리는 창조성(創造性), 역동성(力動性)으로 이름붙일 수 있 는 것이다. 그것의 성격이 끊임없는 새로움의 창조 이고, 존재의 동일성에 비교하여 역동적이기 때문이 다. 그것은 존재와 무의 차원이 아니라 전혀 다른 비존재(非存在)의 차원이다. 그것은 공간의 차원에 대한 시간의 차원이다. 시간은 연장성의 유무(有無) 로 규정되는 그러한 존재의 차원이 아니다.

산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백합꽃은 어디에서 왔는 가. 우리는 그것이 백합꽃의 씨앗에서 생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생성을 존재로 환원하고 시간을 공간으로 환원하는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우리가 굳이 말한다면 백합꽃의 씨앗 속에는 백합꽃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은 연장적 존재가 아니라 시간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중 국의 궤변학파인 혜시(惠施)는 "알(卵)에는 털(毛) 이 있다" 는 궤변을 하였다. 이것은 알 속에 털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병아리의 털이 생성되는 것 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 속에 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궤변은 생성을 존재의 속성 (屬性)으로 환원(還元)하는 카르마를 지적하는 것이 다. 우리가 굳이 말한다면 새의 알에는 털의 '시간 (時間)'이 잠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백합꽃의 시간은 씨앗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영양분, 흙, 수 분, 태양열, 이 모든 연장적 조건(즉 공간) 속에 내 재되어 있는 시간의 합성(合成)이기 때문이다. 그렇 다고하여 시간이 개개의 사물의 속성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흙 속에 묻힌 보리알은 비록 모 든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수분이 없으면 싹 이 트지 않는다. 즉, 수분 속에 보리식물의 시간(가 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 간은 특정한 사건에 참여하는 전우주(全宇宙)의 전 일적(全一的) 관계양식의 하나의 차원이라고 말하 지 않으면 안 된다. 굳이 말한다면 모든 사물을 초 월하며 동시에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그러한 것이 다. 그러나 시간은 존재나 무(無)의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의 실체적 의미를 추구한다면 그것 은 역동성(力動性)이고 정보(情報)이다. 그것은 단순 한 정보(情報)가 아니라, 그 정보를 존재적 사물로 실현(實現)시키는 역동성을 가진 정보이다. 생성은 정보가 역동화(力動化)하여 물질적 사물로 구현되는 것이다. 백합꽃의 씨앗에는 백합꽃을 피어나게 하는 역동적인 정보가 내장되어 있으며, 이것은 다른 정 보적 역동성과 만남으로써 연장적 존재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 이 존재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정보는 우주 적 연대성의 한 양상(樣相)으로서 개개의 사건에 출 현하는 것이다. 정보적 역동성으로서의 시간은 존 재적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초월하여 작용하는 연대 성의 한 측면이다. 인과관계 개념은 존재물들의 관 계이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리듬과 인간이 호흡하는 리듬사이에는 이러한 존재적 인과관계를 초월하여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1장에서 규명 한 존재적 인과관계를 초월하는 세계의 연대성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보적 역동성으로서의 시간인 것이 다. 이것은 불교적 카르마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말하는 시간은 세계의 연대성의 한 측면 이며, 존재나 실재가 아니다. 따라서 시간은 또 하나 의 이데아의 세계인 것은 아니다. 시간은 세계의 연대성이 구체적 사건에 관계하는 또다른 하나의 차 원이며, 구체적 사건에 나타나는 연대성의 비존재 적(非存在的) 측면이다. 따라서 창조적 역동성은 독 립적인 실재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총체적 관계 장과의 관계에서 연기(緣起)하는 것이다. 도대체 독 립적인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총체적 관계장 역 시 창조적 역동성과의 관계에서 연기하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은 연대성으로서의 세계일 뿐이다. 하나 의 사물도 연대성이다.

그리하여, 시간은 세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시간은 사건에 출현하는 새로운 생성의 원천과 그 리듬으로서 창조적 역동성(創造的 力動性)이다. 둘 째로, 이러한 역동성은 모든 사물에 내재하며 동시 에 그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세계적 연대성(連帶性) 의 실현(實現)이다. 이러한 역동성은 정보적(情報的) 성격을 통하여 세계의 연대성을 구현한다. 이러한 정보적 연대성은 존재적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초월 하는 상호의존성에서 나타난다. 세째로, 이러한 역동 성은 항상 총체적 관계장과의 관계(關係)에서 연기 (緣起)한다. 그리하여 역동성은 제3의 실재나 또 다 른 차원이 아니라 세계의 연대성의 한 측면이며 공 간과의 관계를 계기(契機)로 기동(機動)한다는 것이 다.

3.2.4. 연대의 화원(花園)

세계는 연대성이고, 연대성은 총체적 관계장과 창조적 역동성의 연기(緣起)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공간이란, 이러한 총체적 관계장에서 일체 의 사물을 사상(捨象)한 허구적인 개념이다. 상식적 집합표상으로서의 시간이란, 새로움으로 분출하는 창조적 역동성을 사상(捨象)해 버린 채, 사물의 표면 적인 변화리듬만 관찰한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진 실한 모습은 물질성 연장성, 존재성을 내포하는 총 체적 관계장이며, 시간의 진실한 모습은 리듬을 내 포하는 창조적 역동성이다.

세계에 대한 이와같은 규정은 물질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가정(假定)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 세계 자체가 연대성이라는 것이다. 물질이나 존재에 대한 집합표상만으로는 물질세계마저 설명할 수 없 다. 가능태(可能態)나 물질의 부정성(否定性)의 개념 은 여전히 존재를 전제로 한 존재론적 집합표상이 다.4) 우리는 물질이나 존재의 속성(屬性)으로서의 가능태나 부정성이 아니라, 연대성의 한 측면으로서 시간과 공간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물질이나 존재를 논리적 전제로 삼을 때에는 단순정위(單純定位)의 카르마에 빠진다. 세계관은 관념론이나 유물론의 진리성 문제가 아니라 집합표상의 카르마의 문제이 다.5)

단순정위의 가정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존재의 외 부(外部)에 있다. 그러나 연대적 집합표상에서는 시 간과 공간은 사건과 연대성의 내부적(內部的) 측면 이다. 사건은 공간과 시간의 만남에 의한 생성이며, 시간이 공간화하는 것이고 공간이 시간화하는 것이 다. 사건은 시간이 공간의 옷을 입고 출현하는 것이 며, 공간이 시간을 얻어 새로운 창조(創造)에 이르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이 시공적 차원의 우주전체와의 전일적(全一的) 연관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전일성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순수한 이미지를 추구한다면 시간은 개별적 사물이나 사건 이 세계적 연대성으로 귀환(歸還)한 것이다. 그것은 부분의 전체로의 귀환이다. 이것은 파도(波濤)와 바 다(海)에 비유할 수 있다. 개별적 파도는 바다물로 되돌아 감으로써, 이미 파도가 아니지만, 다시금 여 러 종류의 새로운 파도가 될 수 있는 시간으로 되돌 아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구체적 시간의 출현이다. 이러한 비유는, 시간을 공 간화 하였다는 카르마를 제거한다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은 부분의 전체 화(全體化)이다. 반대로 공간은 전체가 구체화한 모 습이며 전체의 부분화(部分化)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전체와 부분의 교류이다.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상 호교류이고 시간과 공간의 연대성이다. 현대물리학 적 세계관에 있어서도 시간과 공간이 사건의 내부적 규정이며 다른 모든 물리량들은 이러한 시간과 공간 의 개념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6)

세계는 꽃밭과 같은 것이다. 그곳에는 역동성으 로서의 시간이 무한히 구체적 모습의 사건의 꽃으로 피어나고, 다시금 꽃이 지듯이 무형(無形)의 역동성 으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세계는 시간이 피어나 고 공간이 스러지는 모습이다. 이러한 꽃들이 피고 지는 그 자체가 연대의 화원(花園)을 형성하는 것이 다. 이러한 화원의 연대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구현 된다. 하나는 공간장의 법칙성이며 다른 하나는 시 간적 역동성이 출현하는 계기(契機)이다.

3.2.5. 역동성의 기동(機動)과 관 계장의 정합성(整合性)

공간을 형성하는 총체적 관계장은 사물들의 임의 적인 관계가 아니다. 사물들의 관계장은 그것이 포 괄하는 모든 사물들의 속성과는 다른 자체의 논리, 법칙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계장의 논리, 법칙 성은 관계장을 형성하는 제사물(諸事物)들의 관계가 어떠한 연대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다. 이처럼 제사물들의 공간적 관계장에서 구현되 는 연대성, 법칙성을 형성하는 연대적 관계구조를 우리는 관계장의 정합성(整合性)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러한 정합성은 우리가 흔히 존재(存在)라고 부르 는 것들의 내부에서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다. 존재 의 정합성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존재의 자기 동일성을 형성하는 것이고, 불변성의 원인이며, 분리 독립성의 계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합성은 우리 가 주관을 투입하여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들에만 한 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일반적 성격이다. 그것 은 바로 공간적 관계장에 있어서의 연대성의 모습인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장(場)의 만곡(彎曲), 공간의 곡률(曲率)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정합성의 한 표 현이다. 일체의 사물들은 이러한 공간장의 정합성 에 대한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본질을 형성한다.

한편 시간적 역동성은 이러한 공간적 관계장을 계기(契機)로 하여 출현한다. 창조적 역동성은 자기 마음대로 이 세계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며, 신(神)과 같이 가치나 의지를 가지고 이 세계에 지배하는 것 도 아니다. 창조적 역동성이 출현하는 계기는 공간 장과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시간장과 공간장의 관 계에서 역동성이 출현하는 계기를 형성하는 역동성 의 시발점이 기(機)이다. 가령, 기회(機會)란 역동성 이 출현의 계기(機)를 만난다(會)는 의미이다. 역동 성의 출현은 이러한 기(機)가 움직이는(動)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창조적 역동성이 움직이는 것을 기 동(機動)라고 부를 것이다. 세계의 연대성은 이러한 역동성이 기동하는 양식에서 구현된다. 세계는 역동 성이 기동하는 것이며 관계장의 정합성이다.

총체적 관계장으로서의 공간, 생성적 역동성으로 서의 시간의 개념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으로 보 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양의 우주관에 있어서 이러 한 개념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동양에 있어 서 세계관은 시공간 속에 운동변화하는 존재의 모습 도 아니었고, 무상한 현상계와 불변하는 본체계의 관계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체의 존재를 포 용하는 하늘(天)과 땅(地)의 연대성이었고, 일체를 초월하고 일체에 내재하는 음양(陰陽)의 연대성이었 다. 우리가 말하는 총체적 관계장으로서의 공간은 바로 땅(地)과 음(陰)의 이미지이며, 우리가 말하는 생성적 역동성은 하늘(天)과 양(陽)의 이미지이다. 또한 역동성의 기동이 천시(天時)가 움직이는 것이 며, 관계장의 정합성이 바로 지리(地理)이다. 또한 역동성을 실체화한 이미지를 기(氣)로 규정하고, 관 계장의 정합성을 리(理)로 표현하기도 한다. 서구철 학에 있어서의 우리의 집합표상은 대단히 새로운 것 으로 보이나 동양적 집합표상에 있어서는 가장 고전 적(古典的)인 것이다. 우리는 동양철학의 집합표상에 이르기 위하여 먼길을 걸어 온 것이다.


Last Updated: 1995년 7월 1일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