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음(陰)과 양(陽)




3.4.1 음(陰)과 양(陽)

총체적 관계장으로서의 공간과 창조적 역동성으로서의 시간의 이미지로 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음양(陰陽)의 이미지가 제출되어 있다. 음양이 바 로 연대성의 기본양식이라는 것이다(一陰一陽之爲道. 周易 繫辭傳).

음양은 우선 어떠한 존재가 아니라 사건의 측면에 대한 규정이다. 그리고 음양은 개념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러나 음양은 불확정적이나마 어느 정 도 공통된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동양인에게 어떠한 사건이나 존재의 측면에 대하여 음(陰)과 양(陽)을 가리라면 비교적 용이하게 그리고 서로 일치되는 견해를 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음양(陰陽)은 다음과 같이 예증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에서 유추될 수 있는 이미지이다.

陰--地,月,暗,夜,下,冬,後,弱,凹,低,曲,吸,屈,退,死,女,靜,小,閉

陽--天,日,明,晝,上,夏,前,强,凸,高,直,呼,伸,進,生,男,動,大,開

가장 단순하게 생각할 때 음(陰)은 여자에게서, 양(陽)은 남자에게서 유 추될 수 있는 이미지이다. 부부(夫婦)의 삶의 관계에서 능동적이며, 추진적이 고, 어떠한 구상(構想)을 하고, 이를 실천하며, 무엇을 생성시키는, 그러한 남 성적 이미지가 양(陽)이다. 이에 대하여 수동적이며, 수용하고, 보완하고, 보 조하며,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 여건을 형성하는, 그러한 여성적, 모성적(母性 的) 이미지가 음(陰)이다.

3.4.2 변화(變化)의 생성(生成)

음양의 관계로서의 연대성의 이미지도 두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우선 음 양은 추진적 역동성과 수용적 관계장이 결합(結合)되어 하나의 사건을 야기 시키는 그러한 이미지가 있다. ( 天地, 上下, 凹凸, 高低, 曲直, 男女, 動靜, 大小, 虛實). 사회적 상하관계(上下關係)나 자연적 상하의 질서도 이러한 창조 적 추진과 수용적 완성의 이미지이다. 동양에서 왕과 신하, 권력계층과 민중 의 상하관계는 지배와 복종의 이미지가 아니라 권력이 역동적으로 민중을 위한 일을 추진하면, 민중은 이것을 수용하여 완성시키는 것이다. 민중이 수 용할 수 없는 권력의 역동성은 공허한 것이며, 권력이 추진하지 않는 민중의 요구는 실현되지 못한다. 이것이 음양으로서 상하의 이미지이다. 다른 것도 이와 같은 이미지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인(因)과 연(緣), 시간과 공간의 이미 지와 같은 것이다.

또한 창조적 역동성으로서의 양(陽)과 수용적 관계장으로서의 음(陰)은 상호 왕래(往來)함으로써 사건을 야기한다. 이것은 창조적 역동성과 수용적 관계장의 결합의 한 양식이다. (日月, 明暗, 晝夜, 夏冬, 前後, 呼吸, 屈伸, 進退, 生死, 開閉). 동양에서는 주야가 순환적으로 바뀌고 여름과 겨울이 순 환적으로 바뀜으로써 세월이라는 시간적 전체를 형성한다고 보았다(寒署相推 而歲成焉 繫辭傳). 즉 세월이란 외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흐름이 아니라 사 건의 연대양식이다. 태양이나 낮, 여름, 밝음 등은 창조적 역동성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에 대하여 달과 밤, 겨울, 어두움 등은 모든 것을 수용(受容)하고 저장(貯臧)함으로써 새로운 생성을 야기하는 기반(基盤)을 다 지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관계가 반복됨으로써 세월과 같이 전체로서의 사 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뿜는 호흡이 되풀이됨으로써 생 명이 유지되는 것이며, 계속적으로 내뿜는다거나 들이마신다면 이미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자벌레 등 땅을 기어가는 생물은 나아감과 물러서는 것을 되풀이함으로써 지면을 이동하는 운동을 완성한다(變化者 進退之象也 繫辭傳). 어느 경우에나 역동적 추진과 수용적 축적의 순환이 전체적 변역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건의 연기(緣起)는 음양의 왕래 (往來)의 과정이다.

음양의 결합은 공간장에 시간이 실현되는 것이고, 음양의 왕래는 공간장 이 역동성에 의하여 전환되거나 역동성이 공간장에 저장되는 것이다. 전자가 생성(生成)의 집합표상이라면 후자는 변화(變化)의 집합표상이다. 그러나 이 러한 차이는 관점의 차이이다. 생성은 관점을 달리하면 기존의 사물의 변화이 고, 기존의 사물의 변화 역시 관점을 달리하면 항상 무엇인가의 생성이다. 즉 생성과 변화의 구별은 존재(存在)를 전제로 하여 역(易)을 보는 관점인 것이 다. 그리하여 결국 역(易)이란 통일적으로 말하면 끊임없는 생성이다( 生生 之謂易 繫辭傳).

사건은 상보적(相補的)인 두가지 측면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 하나는 발생하고 출현하며 추진하는 그러한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발생시키고 출 현시킬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을 형성하며 발생과 출현을 수용하고 완성시키는 그러한 이미지이다. 전자를 양(陽), 인(因),무(無),하늘(天), 시간이라고 규정하 고, 후자를 음(陰), 연(緣), 유(有), 땅(地), 공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것 은 사건과 세계의 연대성을 해석하는 범주(範疇)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 등한 두 개의 차원을 사건과 연대성의 범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 역동성(時間)--- 하늘(天), 인(因), 무(無), 양(陽)

총체적 관계장(空間)--- 대지(地), 연(緣), 유(有), 음(陰)

3.4.3 음양(陰陽)의 이미지 I

음양은 우리가 규정한 총체적 관계장과 창조적 역동성의 집합표상에 풍부 한 내용을 준다. 5) 음양의 가장 구체적인 이미지는 하늘(天)과 땅(地)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의 전형적인 이미지이다. 주역의 사상에 있어서 일체의 만 물은 창조적 역동성으로서의 하늘의 기운과 총체적 관계장으로서의 땅의 기 운이 상호작용하여 생성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하늘은 단순한 창조성이나 역 동성이 아니라 거대한 전일성이며, 무한한 조화를 야기하는 것으로 모든 것 의 시초를 이룬다. 이것은 자신은 연장성이나 존재성이 없는 무(無)이지만 일 체의 존재성을 변역하는 길을 알고 추진하는 능동성이다. 대지(大地)의 이미 지는 단순히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물리학의 장(field)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총체적 관계가 단순히 관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존재나 생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내부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 이다. 이러한 관계장의 성격은 특정한 시간(陽, 力動性)을 선택하고 유인하는 능력이 있다. 음양의 조화에 의하여 생성(生成)이 야기된다. 이때 생(生)과 성(成)은 구별된다. 생(生)은 사건이 야기되고 만물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 하는 데, 그것은 창조적 역동성으로서의 하늘의 작용이다. 이에 대하여 성 (成)은 사건이 완성되고 만물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것은 총체 적 관계장으로서의 땅의 작용이다. 모든 사건은 그 생성의 의지(意志), 모습 (象), 구상(構想) 포괄하는 정보(情報)를 역동적 창조성(天,陽)으로부터 부여 받으며, 이러한 생성의 과정에는 기존의 총체적 관계장(地, 陰)의 흐름에 내재 하는 규제(理, 法)를 받게 된다.

주역(周易)은 하늘을 표상하는 건위천괘(乾爲天卦)와 땅을 표상하는 곤 위지괘(坤爲地卦)로 시작하며, 그것은 음양의 구체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 이기도 하다. 양(陽)의 건(乾)은 크고 위대하다. 만물이 그것을 근본으로 하 여 시작되고 하늘을 다스린다. 구름이 형성되어 비를 뿌리니, 온갖 사물이 그 모양과 흐름을 이룬다. 양의 건도(乾道)가 변화하여 만물의 본성을 부여 하고 큰 조화를 이루어 보존하니 곧고 바르다.6) 이에 대하여 음(陰)의 곤 (坤)은 지극하다. 만물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생겨난다. 하늘의 뜻을 이어 받고 순종한다. 곤의 덕(德)은 두터워서 만물을 그 위에 싣는다. 곤의 덕(德) 은 한이 없어 건(乾)에 합치한다. 포용성과 넓음과 빛남과 두터움을 갖추어 만물을 품어 성장시킨다. 묵묵히 대지를 한없이 걸어가는 암말(牝馬)과 같이 부드럽고 순종하며 곧고 바른 것이 땅의 덕이다.7)

3.4.4 음양의 이미지 II :정보(陽), 구체화 능력(陰)

양(陽)의 독특한 이미지의 하나는 인식(認識) 그 자체, 또는 정보(情報) 그 자체가 주체적으로 작동하는 역동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대성(道)은 인식적 존재물(가령 인간)과 같이 사유(思惟)하거나 의지를 가지고 작위(作 爲)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모든 사건을 통찰하고 파 지(把知)하는 감(感)이다.8) 즉, 양(陽)은 정보(情報)의 이미지를 가진다. 말 하자면 순수(純粹)한 정보 그 자체가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양(陽)은 시작하는 것을 알고 있다(乾知大始). 이에 대하여 음(陰)은 단순히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법칙성(法)이, 시간(陽)을 출현시키는 계기 (契機)를 형성하며, 그 시간의 성격을 선택하고 그것을 수용하여 완성시키는 그러한 종류의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음은 구체화(具體化)의 능력이다. 정보와 능력, 이것이 양(陽)과 음(陰)이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이 미지이다.9)

역동성은 어떤 공간적인 실재(實在)가 아니다. 그럼에도 존재적 관계장에 연대성(連帶性)을 구현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주적 연대성을 존재성(存在 性)이 아닌 형태로 포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정보(情報)이다. 정보란 전체가 부분에 내재(內在)하는 양식이고, 부분이 자신을 초월(超越)하여 전체 화하는 양식이다. 사물은 이러한 정보가 존재적 연장성의 옷(衣)을 입은 상태 이다. 이것이 역동성에서 정보에 이르는 논리적 길이다. 고대의 동양인들은 역동성이 진실로 역동적이기 위해서, 그리고 연대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 식한다는 것, 즉 연대성에 관한 정보가 불가결(不可缺)하다는 통찰에 이르렀 던 것이다.

생성에 있어서, 창조적 역동성(陽)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음(陰) 의 능력(能力) 속에 자신을 실현한다. 또한 총체적 관계장(陰)은 스스로는 역동성이 없으므로 양(陽)의 창조성을 받아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 하여 음양은 그 자체는 존재적 개념이 아니다. 양은 순수한 창조적 역동성이 지 생성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양은 혼자 독립(獨立)하지 못하며, 반드 시 음을 얻어 성립한다. 그러므로 양은 음을 그 기반(基盤)으로 한다. 한편 음은 총체적 관계장으로서 스스로 나타나지 못하고 반드시 양을 얻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은 양의 인도(引導)에 따른다. 양이 그 시작을 앎(知)으 로써 그 이룸(成)에 이를 수 있고, 음은 그 법칙성에 따라 그 노력(勞)을 완성(終)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양은 능히 알 수 있으나(정보를 가지고 있으 나) 음은 알지를 못하고, 양은 스스로 나타날 수 있으나 음은 스스로 나타나 지 못한다. 10)

이러한 점은 음이나 양이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독립한 두 개의 힘도 아니고, 독립한 두 개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규정한 음양, 인연, 유무는 모두다 개별적 실체가 아니라, 연대성의 양 측면이며, 그 리하여 연대의 양식이다. 여기에 또 다른 범주가 있다. 즉 이기(理氣)가 그것 이다. 기(氣)는 역동성을 실체화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理)는 관계장의 원리 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동성을 기(기)로 표현하고 관계장을 이(리)로 표현해 도 무방할 것이다.11)

3.4.5 연대성과 조화(調和)

우리는 이제까지 사건과 변화만을 이야기하였으나, 연대적 집합표상에서는 존재와 변화는 통합된다. 존재는 단일의 질(質)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음양의 조화(調和)가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존재는 음 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건이다. 그것은 내부적 관계들(陰)이 정합성(整合 性)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적 정합성이란 어떠한 존재가 존재로 인정 될 만큼 내부적인 관계구조가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합성과 조화는 불변의 정지(靜止)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 다. 존재는 관계장의 정합성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시간(時間 즉 力動性)을 출 현(出現)시키는 문제이다. 출현하는 역동성이 관계장의 정합성을 변경시키는 것이라면 존재의 자기동일성은 변경되고 그리하여 존재는 유지될 수 없다. 그 리하여 존재장이 어떠한 종류의 역동성을 깨워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것이 역동성의 기동(機動)이다. 씨앗의 눈과 같이 생성변화를 일으키는 열쇠 가 되는 유무(有無)의 접촉점을 기(幾, 機)라고 한다. 적당한 온도와 양분이 주어졌을 때, 발아(發芽)하기 위하여 최초로 움직임이 일어나는 부분이 기(機) 인 것이다. 주역(周易)은 기를 생성변화의 미묘한 시발점( 幾者 動之微)이라 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기(機)가 움직이는(動) 것이 기동(機動)이다.)

그리하여 존재란 관계장의 정합성과 조화를 이루는 역동성이 반복적(反 復的)으로 기동하는 사건이다. 존재의 자기동일성은 바로 음양의 조화에 의한 존재의 항상성이다. 존재란 음의 정합성이 일정하며 이에 조화를 이루는 역 동성의 기동이 반복되는 그러한 사건이다.

인간이 다량(多量)의 아편(阿片)을 먹고 사망하거나, 미량(微量)의 아편을 먹고 질병을 치유하거나, 하나의 사건인 점에서는 동등(同等)하다. 그러나, 우 리가 삶을 추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관점에 설 때에 (즉 존재의 恒 常性을 유지한다는 관점에 설 때에) 질병의 치료(治療)라는 사건은 사망(死 亡)이라는 사건과 엄청나게 구별된다. 미량의 아편은 인간의 음양의 조화를 고양하나 다량의 아편은 인간의 음양의 조화를 파괴한다. 그리하여 존재에 대한 규정은 사건을 음양의 조화로서 분별하는 것이다. 사건 일반이 음양의 연대성이라면 존재의 유지는 음양의 조화인 것이다. 연대적 집합표상에 있어 서 존재는 변화 속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는 문제이다.

동양의학(東洋醫學)은 인간의 신체에 깃든 음양의 조화의 체계(體系)가 어 떠한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을 문제의식으로 한다. 질 병은 이러한 조화가 일부 파괴된 것이다. 그리고 치료는 이러한 음양의 조화 를 회복(回復)하는 것이다. 경제체제나 사회체제도 그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 으며,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발전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음양의 조화로써 이루어진다.

세계나 사물을 연대성으로 파악한다면 이러한 음양의 조화의 문제가 제 기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간(人間)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조화와 연대의 문제이다. 조화는 연대의 다른 이름이다. 양으로서의 하늘과 음으로서의 땅의 가운데 위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세계에 있어 서 인간의 위상(位相)이다. 하늘은 항상 아래(下)로 베풀려고(施) 하기 때문에 그 기운은 아래로 흐르고, 땅은 항상 위에서 구(求)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기 운은 위로 합하며, 양기(兩氣)가 중앙에서 만나 사귀니, 사람이 그 중앙에 위 치함으로써 올바르게 자리잡게 된다. 여기에 인간과 사회의 문제가 제기된 다.


Last Updated: 1995년 7월 1일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