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인간의 연기(緣起)




4.1.1. 인간: 인식적(認識的) 주체(主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영혼과 육체를 가진 이원적(二元的) 존재 라든가, 이성적 존재라든가, 충동적인 역동성으로서의 무의식이 지배하는 존재라든가, 환경의 함수라든가 등등의 여러가지 대답이 있다. 그러나 인 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자체가 이미 인간이 존재라는 것을 전제(前提)하 고,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또는 인간이라는 객관적 존재의 본질(本質) 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인 간에 대하여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란 무엇 인가 하는 질문은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또는 인간은 스스로를 무엇이 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정(固定)된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동일성(自己同 一性)을 스스로 규정하고 형성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규정(規定)하고 그러한 규정에 의하여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삶을 추구하는 존재 라고 말해지지만 스스로 삶이 무의미하다고 규정하고 자살(自殺)할 수도 있 다. 인간은 본능과 욕망에 의하여 지배되지만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고 본 능과 욕망으로부터 초월(超越)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은 객관(客觀)이면 서 동시에 주관(主觀)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주 관을 형성하고, 주관적인 규정이 스스로의 객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동일성을 스스로 인식(認識)하고 그러한 인식에 의해서 자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식적 주체(主體)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 하는 존재라거나 이성적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주체라는 것은 존재 라는 뜻이 아니며, 인식한다는 것은 외부세계에 대하여 사유한다는 뜻이 아 니다. 따라서 인간의 주체에 대한 인식은 합리적 집합표상을 초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자신으로서의 주체는 육체적 존재에서 우주적 연대성에 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의하여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것이 현실화할 수 있는 주체 성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모든 규정에 선행(先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리 적 존재들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자기동일성 또는 본질의 개 념은 인간에게는 진리의 반면(半面)일 뿐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육체와 정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든가 또는 성적 본능에 의하여 지배된다든가, 공격성 이 중요한 본능이라든가 하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인간의 실천행동에 의 하여 유추하는 해석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전제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다. 인간에게 존재적 본질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가정(假定)하고, 인간의 실천 행동에서 그러한 본질을 유추(類推)한 것이 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본질이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스 스로를 규정하는 인식적 주체인 것이다.

4.1.2. 존재성(存在性), 무명(無明), 악(惡)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에서는 인간이 주체적 인식, 인식적 주체라는 점이 간과(看過)되었다. 인간은 인식의 주체로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대상으로 관찰되었다. 이렇게 인간이 객관적 대상으로 관찰될 때 분리독립된 자기동일성으로서의 존재성(存在性)은 모든 사고의 당연한 전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존재성의 내용이 인간에 대한 규정의 주제가 되었다1) 따라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집합표상은 반성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전제가 되었 다. 인간은 확정된 존재적 자아의 집합표상을 전제로 하여 그것을 충족하고 유지하는 것에 몰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현실 적 상황 속에서 매일매일의 경험이 존재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 연한 것으로 확정해 주었다. 2)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집착은 자아의 집합 표상을 당연한 상식으로 규정하고, 욕망을 추구하며, 그러한 자아를 우상화 한 것이다. 그것은 이기주의(利己主義)이며 허구적 자아를 지배하는 정신분 열(精神分裂)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을 존재로 규정할 때, 세계는 즉각 양분된다. 하나는 존재로서의 자신이고 하나는 다른 모든 인간과 자연을 포괄하는 존재로서의 세계이다. 이러한 구별은 절대적이고 건널 수 없는 강(江)이 된 것이다. 그 리고 인간은 이렇게 대립된 세계와의 관계에서, 세계가 자신의 존재성(삶) 을 보장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적대적(敵對的)이라는 것을 발견한 다.3) 자신의 존재성에 집착할 수록 세계의 적대성은 증가한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존재로서의 자신을 유지하려고 할 때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실천에 있어서 유일한 가치이다. 그리하여 연대성 은 단절되고 다른 인간과 세계는 대상(對象)이 되고 적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하 자아와 세계의 분리와 적대가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 경우에 죄(罪)와 악(惡)이 야기된다

악(惡)은 어떠한 독립된 실재가 아니다.4) 우리가 말하는 악은 연대성 으로서의 진정한 자아를 망각하고, 그 대신에 우리가 스스로 형성한 분리 독립되고 세계와 대립적인 존재론적인 자아의식이 일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 태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해(殺害)하는 것은 그 살인자와 피살자와 의 연대성의 완전한 단절(斷絶)이다. 그는 피살되는 인간에 대하여 전혀 연 대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 피살자를 자신의 존재성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대 상적(對象的) 존재로 규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 는 것에 대하여는 아픔을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가락과 자신은 연대성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기나 파리를 손바닥으로 쳐서 잡아 죽이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기나 파리에 대하여 연대성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심각 한 악은 살인을 모기나 파리를 죽이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 연대성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에게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경험은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카르마(業)를 축적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연대성 에의 지향, 연대의식(連帶意識)을 파괴시킨 데서 오는 상처(傷處)이다. 즉, 인간에게는 원래 연대성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성의 망각, 또는 연대성이 덮여지는것을 우리는 무명(無明)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무명 (無明)이란 연대성으로서의 진실한 자아가 덮여져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무명은 인간이 자기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에 지배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가령 재산만이 자기자신이라고 간주될 때 다른 일체의 것은 가치를 상실한다. 강도(强盜)행위는 눈 앞의 현금(現金) 이외에 일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실천이다. 눈 앞의 재물을 획득하기 위하여 다른 인간 은 희생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리하여 악은 이러한 무명에서 기동(機動)하 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분리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인간과 분리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리된 존재로서의 육체와 자아의 식을 진정한 자신으로 간주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당연한 집합표상으로 여겨 진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성에는 근원적(根源的)인 무명이 놓여 있는 것이 다. 연대성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무명의 제거하는 것이다.

4.1.3. 인간: 연대성에의 지향(志向)

인간에 대한 연대적 집합표상은 두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부정적 함축으로서 인간의 존재성을 지양하는 것은 존재적 자아라는 집합표상의 카 르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함축으로서 인간은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연대성(連帶性)의 한 매듭이며, 세계의 연대성의 반영이 라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다른 사물이나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은 그러한 세계의 연대성을 주체적으로 인식(認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인식을 통하여 스스로를 고양(高揚)할 수 있는 인식적 주체이다. 혜 가가 자신의 팔을 잘르면서까지 찾으려고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향엄 이 경전을 불사르며 방랑을 떠났던 것은 무엇을 찾기 위함이었던가? 그리고 그들이 도달한 곳은 어디였는가?

인간은 연대성 그 자체이다. 연대성은 최고로 고양(高揚)된 인간에 대한 규정이다. 다만 인간은 존재적 자아의 집합표상의 카르마에 묻혀 이러한 사 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정신은 이러한 연대성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이다. 진실한 주체에 대한 인식을 덮고 있는 존재적 자아의 집 합표상을 넘어서면 그곳에는 연대성의 지평(地平)이 열린다. 이러한 연대성 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표 현되기도 하고, 부처(佛)로 표현되기도 하고, 도(道)나 공(空)으로 표현되기 도 한다. 그들에게 세계는 연대성의 바다(海)이고 자신의 존재성(存在性)은 그 바다에 떠오른 하나의 물거품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자신과 삶은 이러한 연대성의 바다에로의 회귀(回歸)이며, 자아를 넘어 연대성에 도달하는 것이 다. 자신은 타인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 속에 함께 하는 것이며, 세계 는 자신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연대성 속에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성을 지향(志向)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그것이 이 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위상이다. 삶과 실천의 목적가치는 존재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이러한 연대성에의 지향이다. 우리의 존재성은 다만 이러한 연대성에로 건너가기 위한 뗏목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와 세계에 따라서 인간이 접근을 위해서는 인간은 존 재성과 연대성의 종합으로 가정(假定)하지 않으면 안된다. 깨달은 사람만이 사는 사회는 이미 인간의 사회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의 세계에 있 어서 인간은 존재성에 기반하여 연대성을 지향하는 과정적 존재라고 전제한 다. 이렇게 규정할 때 인간은 실천(實踐)이다. 그것은 인식적 주체가 아니라 인식에 의하여 규정된 가치를 추구하는 주체이다.5) 인간의 주체에 대한 인 식은 존재성과 연대성의 어느 하나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가치(價値)의 문제 로 된다. 즉 인간은 존재성으로서의 욕망과 연대성으로서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대의식 모든 것을 가치로 규정하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천적 사 건(事件)이다.

************ 願 ***********

***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0: 38)

***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 니다. (요한 1 서 4:7--4:9)

*** 옛날에 석가모니는 영산(靈山)에서 대중들에게 설법을 베풀었다. 그 는 설법을 마치면서 꽃 한송이를 집어들고 청중 앞에 보이면서 한 마디 마씀 도 없었다. 모여 있는 대중들은 이 정말로 신비한 기행(奇行)에 침묵했고, 이 뜻밖의 자태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 때에 가섭존자 (迦葉尊者)만이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 나는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涅槃)으로 통하는 말할 수 없는 미묘 한 통찰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 열반은 무형의 모습을 지닌 신비스러운 형상 의 관문을 여는 것이며, 문자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경전(經典) 밖의 방법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이 비전(秘傳)을 마하가섭에게 위촉합니다."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文 不立文字 敎外別傳 付囑 摩하迦葉)

( 吳經熊 저. 전게서. p.57)


Last Updated: 1995년 7월 1일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