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연대의 매개양식(媒介樣式)
************* 緣 ***********11세기의 상업부활은 화폐경제(貨幣經濟)와 도시의 시장활동을 활발 하게 만들었다. 화폐가 유통됨에 따라 농촌의 자급자족 경제도 무너지 기 시작하였다. 농산물이 시장으로 나가 매매되고 장원(莊園)은 외부와 접촉하게 되고 점차로 폐쇄적인 구조는 깨뜨려지게 되었다. 화폐가 편 리하고 더 유용함을 알게 된 영주는 직영지(直營地)까지 소작인에게 대 여하여 수입증가를 꾀하게 되었다. 농촌의 임금노동자는 흑사병(黑死 病)(1348-50) 이후의 일반적인 인구감소로 더욱 구하기 어려워져서 14 세기 후기에는 임금이 2배로 상승하였다. 영주직영지의 소멸과 함께 병 행된 금납화(金納化:commutation), 즉 영주가 지대(地代)를 현물(現物) 보다 화폐로 받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영주와 농민 간의 계약관계--물납(物納)과 노역을 통한 예속관계--는 토지의 대차관 계(貸借關係)로 변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장원내에 있어서의 농민의 노 역이 화폐로 환산되어 지불됨으로써 종래와 같은 토지에의 예속도가 희 박해졌다. 농민은 돈을 주고 이사할 수 있는 자유(自由)를 사게 되었는 데, 예컨대 영국에서는 15세기말까지 농노(農奴)가 거의 사라져 버렸 다.
( 차하순 저 {서양사 총론} p. 259)
********** 說 **********중세사회가 신분적 계급사회라면 근대사회는 화폐적(貨幣的) 시장사 회이다. 위의 예화는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화 폐가 어떻게 신분적 계급을 대체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화 폐로서 자우를 구입하고, 신분적 계급이 시장으로 대체되는 것이라면, 연대의 원리 역시 화폐와 중대한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제까지 추상적인 차원에서 연대의 원리를 논의하였다. 그러나 도부섬이 나 부시멘의 사회, 또는 중세의 신분적 계급사회와 근대의 화폐사회에 있어서의 연대의 원리는 사회의 매개양식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 다. 왜 화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사회와 그렇지 않는 사회는 근본적 으로 다른가? 인간의 사회적 연대에 있어서 화폐란 무엇인가?
사회는 인간의 연대양식이다. 개인은 사회적 위상에 의하여 규정되 며 사회전체는 매개에 의한 인간의 결합이다. 그리하여 사회는 인간의 위상을 규정하고 인간을 결합시키는 매개기능을 하는 매개요소(媒介要 素)들을 발전시켜 왔다. 화폐가 바로 이러한 매개요소인 것이다.
사회는 개인과 전체의 관계이다. 그리고 개인과 전체를 매개하는 것 이 이러한 매개요소인 것이다. 개인이 이타적(利他的)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전체에 유익한 거시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개인이 이기적(利己的)으로 행동한다고 하여 반드시 사회전체에 유해한 결과를 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개인의 행위와 사회적 결 과에는 차이가 있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는 자신과 함께 사회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1) 이와 반대로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 가 자신의 발전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유익한 거시적 결과를 가져온다 는 신념에 입각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시장에서의 화폐 의 가격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는 화폐가 개인의 이기성을 사회전체의 선한 결과로 유도하는 오묘한 매개체인 셈이다.
이와 같이 사회에는 개인의 미시적 행위와 사회전체의 거시적 결과 와의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물(媒介物)이 있다. 사회는 이러한 매개물에 의하여 개인과 사회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화폐 (貨幣)가 그러한 것의 하나이다. 화폐는 개인의 행위를 유발하고 그 행 위를 통합하여 거시적 결과를 산출하는 매개물이다. 사회는 단순히 인 간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매개하는 매개양식에 의하여 전 체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관계망이다. 그렇다면 연대의 원리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개인의 본능(本能)보다는 오히려 화폐와 같은 매개요소 의 작용이 더욱 중대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 의 범주(範疇)를 발견한다. 즉, 그것은 화폐와 같은 사회의 매개요소 이다. 매개요소는 개인의 사회적 위상을 형성함으로써 인간의 실천을 규정하고, 인간과 인간을 매개함으로써 사회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 이다.
이러한 사회연대의 매개요소로서 화폐 이외에 집합표상, 권력 , 법 률 등을 들 수 있다. 화폐는 물질적 가치의 귀속(歸屬)과 분배를 매개 한다. 화폐와 같이 가치의 귀속과 이전 그리고 분배를 매개하는 매개체 를 우리는 가치매체(價値媒體)라고 부를 것이다. 한편 집합표상은 사회 구성원의 사고방식을 같게 하고, 인간은 이러한 공통된 집합표상을 매 개로 하여 서로 협력하고 연대에 이르는 것이다. 권력과 법률은 개인 에 대한 사회적 규제력이며, 그것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행동이 규제되 고 통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미시적 행동을 기동(機動) 시키고 그것을 거시적으로 종합하는 사회적 연대의 매개체이다. 사회는 인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매개적 범주(範疇)가 함께 기 능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을 사회적 연대로 통합하는 매개체이며, 연 대의 원리가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구체적(具體的) 형식을 부여하는 것 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매개적 범주를 연대의 매개양식 (媒介樣式)이라고 부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매개양식에 의 지하여 다른 사람들과 결합되고, 사회적 연대 속에 흡수된다. 연대의 원리 또한 이러한 매개양식에 의하여 그 구체적이고 현실적 형식을 획 득한다.
인류는 사회적 연대를 보조(補助)하고 매개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왔 다. 사회는 역동적 의식이 법칙적 존재장, 속에서 나타나는 거시적 실 천을 통합하는 매개양식의 작동방식이다. 개인의 창조적 역동성은 집 합표상의 매개에 의하여 사회적인 역동성이 된다. 총체적 관계장의 법 칙성은 화폐와 같은 매개요소의 작용으로 형성되는 사회적인 법칙성이 다. 집단의 거시적 실천은 제도화된 영향력으로서 권력을 매개요소로 하여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연대양식은 지극히 복잡하다. 그러나 보다 단 순한 사회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보다 용이하게 인간의 연대양식을 규 정할 수 있다. 단순한 전통사회에서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制度的裝置) 를 마련하지 않고도, 다만 가족이라는 소규모 유대를 연결함으로써 사 회 전체의 연대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인간의 연대를 이룩하 는 기반, 즉 가족을 결합시키고, 사회적 연대에 이르는 매개는 공통된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communation)이다. 개인 상호간에 의사(意思) 가 소통되는 것이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소통의 침전(沈澱)으로서 사회와 세계를 해석하고 실천의 방향성을 규정하는 것이 공통(共通)의 집합표상이다. 그것은 공통적이 고 동질적(同質的)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매개가 된 다. 이처럼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 연대의 기반(基盤)이 다. 그것은 사회의 역동적 의식을 매개한다.
사회에서 생산과 분배의 경제적 관계가 복잡해지면, 공동의 자연과 인간이 생산하여 공동으로 이용하는 자산(資産)에 대한 관계가 사회의 중요한 측면을 구성한다. 자연, 특히 토지(土地)는 그 사회구성원의 물 질적 삶의 공동기반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연대적이고 사회적이다. 부시멘 족의 사냥터가 그러한 것이다.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자연과 토 지만이 아니라 생산된 생산수단(生産手段)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의 물질적 삶의 공동의 기반이다. 그것들은 생산에 있어서 공동의 물질적 기반이고, 물질적 삶의 공동의 자산(資産)이며, 경제적 조직의 물질적 토대이다. 이러한 공동의 자산을 우리는 자본(資本) 또는 연대자본(連 帶資本) 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아가 생산물을 상호 교환하게 되고 이 러한 교환에 화폐와 같은 매개체가 사용되면, 이러한 매개체가 인간의 연대를 확장하게 되고 연대양식을 변화시킨다. 화폐나 주식(株式)과 같 이 가치의 귀속(歸屬)과 이전(移轉)을 매개하는 매개체를 우리는 가치 매체(價値媒體)로 규정하였다. 이제 인간의 사회에 관한 공통의 집합표 상을 넘어서 확장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집합표상을 달리하고 문화 가 다르더라도 가치매체에 대한 공통된 신뢰(信賴)의 집합표상이 형성 되면 경제적 관계가 형성된다. 무역(貿易)은 집합표상의 공통성이 아니 라 그것을 매개하는 가치매체의 매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처럼 연대자본과 가치매체는 인간의 물질적 삶과 총체적 관계장(地)을 매개하는 매개양식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적 연대는 공통의 집합 표상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자본과 가치매체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 다. 서로간에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집합표상을 달리할 수도 있으며, 커뮤니케이션이 합의(合意)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자본과 가치매체 의 귀속은 자연적으로 지켜지지 않으며 항상 질서는 침해당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 우월(優越)한 힘이나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권위(權威)가 구체적인 상황에 있어서 인간과 집단의 관계를 조정하고 규제하고 명령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는 사 회현상을 권력(權力)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사회관계가 복잡해 지고 동태화(動態化)되어, 규범적 집합표상이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합의만으로 전체적인 연대를 형성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 질수록 권력 의 역할은 증대한다. 나아가 복잡한 사회에서는 구체적인 경우에 행사 되는 권위적 결정으로 기능하는 권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자연 적으로 형성되는 규범적(規範的) 집합표상을 넘어 인위적(人爲的)으로 규범을 창조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행 동하는데 지켜야 하는 일반적인 지침으로서 인위적으로 규정되고 시행 되는 규범(規範)을 법률(法律)이라고 부를 수 있다. 권력과 법률은 사 회에 대한 거시적 규제와 조정의 차원(人의 차원)에서의 매개양식이다.
이로서 우리는 인간의 연대를 매개하는 세 가지 차원을 발견한다. 첫째로, 인간의 의식 차원(天)에 있어서의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이 며, 둘째로 사회의 물질적 경제적 차원(地)에 있어서의 자본과 가치매 체이며, 세째로 의식과 물질적 세계를 연결 시키고 현실을 바램에 조화 시키는 인위적 차원(人)에 있어서의 법률과 권력이 그것이다.
인간의 연대를 확대하고 고양하기 위하여 인류는 지혜를 동원하여 왔다. 역사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많은 영웅(英雄)들은 권력이라는 매개양식을 통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였다. 한편 성인(聖人)들은 인간의 집합표상의 차원에서 근원적인 혁명을 추구하였 다. 문명(文明)에 따라서는 법률의 발전을 통하여 사회를 통합하려고 하였으며, 그리하여 법률문화가 그 사회의 성격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 근대에 이르러서는 자본과 가치매체의 차원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토지자본에 대한 산업자본의 등장, 화폐라는 가치매 체의 보편적 사용이 중세사회와 비교한 근대사회의 특징이다. 이 모든 것은 매개양식의 변혁에 의하여 인간의 사회와 연대가 어떻게 달라지고 또 어떻게 고양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 정치와 경제, 사회 체제(社會體制)와 국가(國家), 문화와 문명의 문제는 이러한 연대의 매 개양식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연대의 매개양식은 사회 를 통일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범주이다. 사회의 변동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가 사회를 통일된 전체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대의 매개양식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즉, 연대의 매개 양식을 집합표상, 커뮤니케이션, 자본, 가치매체, 법률, 권력, 헤게모 니으로 구분하여 다음 제2장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