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매개양식과 헤게모니
6.2.1. 집합표상(集合表象)인간연대의 매개양식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집합표상이다. 집 합표상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고, 사회의 기반이다(제1편 제2장). 사회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과거의 역사적 문화적 축적에서 이루어진 공통된 집합표상이다. 이러한 집합표상은 흔히 상식(常識)이 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그 사회 공통의 사고방식, 가치관, 세계관 등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기에게 있어서 물과 같이 당연한 것 이다. 이처럼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통된 집합표상을 기반으로 하여 상호의존의 관계망이 형성된 것이 사회이다. 우리는 도부섬의 사 회와 부시멘의 사회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 보았는데, 그 것은 서로 다른 문화적 집합표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사회의 성격 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집합표상인 것이다.
집합표상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존재장(地)과 함께 연기(緣起)하 는 것이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는 그것을 형성하는 원칙에 대하여 정 당성(正當性)의 집합표상과 신뢰(信賴)의 집합표상을 기반으로 성립한 다.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다수의 지지(支持)는 정당성(正當性)을 획 득한다. 선거에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한 사람이 정당한 권력자가 되고, 국회의 표결에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한 법안이 정당한 법으로 통용된 다. 이러한 정치제도는 모든 사람들의 정당성의 집합표상에 기반을 둔 다. 사람들은 화폐(貨幣)에 대하여 그것을 가지고 다른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며, 저축을 할 수 있고, 기타 여러 경제행위에 있어서 화폐가 물질적 가치를 획득하고 처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당연한 신뢰(信 賴)를 가지고 있다. 만일 화폐의 신뢰성이 파괴된다면 우리의 경제생활 은 즉시 수습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공황(恐慌)은 경제적 원 인에 의하여 이러한 신뢰의 집합표상이 붕괴됨으로써 야기되는 것이다. 이처럼 집합표상이 국가나 사회체제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그것이 다 른 매개양식들의 전제(前提)가 되기 때문이다.4)
집합표상은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일 뿐 아니라, 사회의 변동 역시 집합표상의 변동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집합표상의 상식화(常識化)로 종 결된다.2) 동양사회는 근대에 이르러 서구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을 때, 기존의 집합표상들이 붕괴하고 새로운 집합표상에 적응하는 격심한 변화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과정이 보여주는 것은 사회에 있어서 집합 표상의 기능이었다. 어떤 사람은 기존의 집합표상에 입각하여 서구문명 을 평가함으로써, 서구문명을 지극히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때 문에 그들은 서구문명에 의하여 타락(墮落)하는 자신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다. 한편 서구인들에게 있어서는 서구적 집합표상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이었고, 다른 문명권의 낡은 집합표상을 타파하고 미개한 야만인을 개화(開化)시키는 것이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다른 문화민족의 집합표상을 바꾸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근대서구 문명에 기인하는 기존(旣存)의 집합표상은 정치, 경제, 환경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이미 낡은 것이 되었음에도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집합표상 차원에서의 변혁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킨다.
공자(孔子)는 인간의 사회가 집합표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집합표상에 작용함으로 써 사회와 인간을 고양(高揚)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실천하였으며 성공하였다. 그는 정치와 권력으로 사회를 고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까지도 그의 윤리적 집합표상(즉,禮)의 헤게모니에 귀속시 키려고 하였다. 그는 그러한 이상을 위하여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평 생을 보냈다. 비록 그는 법률을 사회적 규제의 원동력으로 규정한 법가 세력(法家勢力)에게 패배하였지만, 장기적으로 중국과 동양문명의 기반 이 되었다. 이것은 로마가 법률로서 로마전역을 통합한 것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로마가 법률로서 이룩한 것을 윤리적 집합표상으 로 이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동양사회의 중요한 성격을 형성하고 있다.3) 중세사회(中世社會)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 고 종교적 집합표상이 사회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서양 중세가 신 앙의 시대라는 것은 법률이나 권력 또는 화폐와는 다른 차원으로서 종 교적 집합표상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매개양식이 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호멧은 이러한 종교적 집합표상을 통하여 단 기간에 이슬람 지역을 통합하였다. 믿음, 예배, 희사(喜捨), 단식(斷 食), 순례(巡禮)로 이루어지는 이슬람의 다섯 개의 기둥은 종교적 집합 표상이 어떻게 사회를 형성하는가를 보여 준다.4)
이처럼 집합표상은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고, 정치경제체제와 국가, 문화와 문명의 기반(基盤)이다. 사회와 문명의 변동은 집합표상의 변동 에서 시작하고 종결된다. 집합표상은 그 사회와 문명의 안정성만큼 변 혁하기 힘든 것인 만큼 흔히 집합표상의 변동은 흔히 인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근본적(根本的)인 변혁은 집합표상의 차원에서 야 기되는 것이다.
집합표상이 이처럼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집합표상의 공통성 이야말로 인간이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의존(相互依存)하는 전제이기 때 문이다. 나아가 집합표상은 인간의 기동(機動)하는 양식을 결정하고 통합(統合)의 질서를 규정한다. 또한 집합표상은 그 자체가 인간의 행 동에 규제력(規制力)을 가지며, 집합표상에 의한 자율적(自律的)인 규 제력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근원이다. 강제나 처벌에 의한 타율적(他律 的)인 질서는 집합표상의 자율적인 규제력을 전제(前提)로 할 때 제대 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절도(竊盜)에 대하여 그것이 불법적이라는 집합표상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자율적인 규제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경찰로도 도둑질을 근절할 수 없을 것이다.
바벨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서로간의 언어(言語)가 달라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지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인간의 연대와 사회는 공통의 언어(言語)를 매개로 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 를 사용하는 동물이고 사회는 언어에 의한 인간과의 관계망이다. 인간 은 언어와 문자(文字)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가지게 됨으로써 인간 연대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가 언어에 의하여 규정될 때, 음성(音聲)이 미칠 수 있는 거리가 인간연대의 공 간적 한계이고, 음성으로 전달된 이미지가 기억될 수 있는 간격이 인 간연대의 시간적 한계이었다. 문자(文字)의 발명은 인간 연대의 시공간 적 범위(範圍)를 확장하였다. 문자가 전달될 수 있는 시공간적 범위가 인간연대의 범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범위는 교통수단(交通手段)에 의하여 확장된다. 교통수단의 발전은 대화가 가능한 범위와 문자에 의 한 전달이 가능한 범위를 확장시킨다. 로마는 도로망을 정비함으로써 넓은 영역을 하나의 국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교통수단 의 발달은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을 전지구적으로 확장하 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대 산업사회가 이룩한 철도와 고속도로의 발전, 비행기, 자동차, 철도, 배 등에 의한 교통수단의 발전에 의하여 이제는 인간관계의 영역으로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이처럼 교통수단의 발 달과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확장은 인간연대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연대의 일반적 방식이고 인간연대의 범 위(範圍)를 결정하는 것이며 사회의 조직양식(組織樣式)을 결정하는 것 이기도 하다.
한편 근대의 전화, 신문, 라디오, 텔리비젼 등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의 방법의 전환은 국가사회를 하나의 대중사회(大衆社會)로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의 모든 사회와 구별되는 획기적인 사회의 확장이고 심화(深化)이며 질적(質的)인 변화이다. 인쇄술과 대중신문, 라디오, 텔레비젼 등은 일방적이지만 다수의 인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 하게 되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사회에는 이른바 대중이 등장하였다. 대중은 전원의 농부(農夫)와는 달리 대량적인 커뮤니케이 션 대상이기도 하고, 공통의 집합표상을 가지고 함께 행동하는 무리이 기도 하다. 과거 분산된 개인으로 존재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연대행동을 취한다. 그것이 권력의 동원(動員)에 의한 것이든 자발적 의지의 결합이든 간에 대중이 사회변화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동시 에 사회는 더 이상 조용하게 지역적으로 신분적으로 분할된 주민이 전 원생활을 하는 목가적인 사회가 될 수 없었다. 거대한 도시에서 수많 은 대중이 조직을 형성하고 그 조직들의 관계가 사회를 이루게 된 것이 다.
현대에 이르러서 기술적 차원에서 하나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텔리비젼, 인공위성을 통한 원거리 통신, 컴퓨터에 의한 정보처 리기제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사회와 세계는 그 공간적 범위에 있어서 지구가 완전히 하나의 사회로 변화하고, 동시에 사회조직방식(社會組織方式)에 있어서도 질적(質的) 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혁명(情報通信革命)으 로 불리는 이러한 변화는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 고 있다. 근대산업사회가 자본과 가치매체의 차원에서의 대변혁이었다 면, 정보통신혁명은 커뮤니케이션과 집합표상의 차원에서의 중대한 변 혁인 것이다.
사회는 결국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network)이다. 인간의 상호의존 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의 사회적 통합은 커뮤니케 이션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과 커뮤니케이션의 내 용의 변화는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인간의 물질적 삶은 자연에 대한 노동에 기초한다. 자연은 인간 전 체에 주어진 삶의 물질적 기반이다. 비록 인간이 자연을 분할하여 개 인적 소유의 대상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상 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지, 자연 그 자체가 존재적으로 분할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 전체에 대한 공동(共 同)의 자산(資産)인 것이다. 이와같이 다수의 인간과 결합되는 공동의 자산을 우리는 자본 또는 연대자본(連帶資本)으로 부른다. 자연은 모 든 인간의 자본이다. 농업사회에 있어서 토지(土地), 유목사회에 있어 서 초지(草地), 산업사회에 있어서 토지와 공장설비 등 이 모든 자본재 가 연대자본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자본의 개념은 두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유목사회에 있 어서의 양(羊)이나 기타 가축과 같이 새끼를 낳아 가치를 증식(增殖시 키는 것인데 이것이 자본이라는 개념의 어원(語源)이기도 하다. 이자 (利子)를 낳는 사채업자의 화폐자본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자 본의 또 다른 의미는 생산과정에서 다수의 사람을 결합한 것이다. 이것 은 산업사회에 있어서 생산기업의 실물적 자본시설에 전형적으로 나타 난다. 따라서 자본은 가치의 생산이나 분배에 있어서 다수 인간의 관 계를 매개한다.
농업사회에 있어서는 토지가 이러한 자본이었다. 토지의 소유관계 가 어떠하든 토지는 다수의 인간이 결합될 수 밖에 없는 공통의 자산이 다. 때문에 농업사회에서는 토지가 인간의 연대를 형성하고 사회를 형 성하는 매개체구실을 하였다. 유목사회에서는 초원(草原)이 바로 자본 이었다. 목자(牧者)가 자신의 양으로 하여금 풀을 너무 많이 뜯어먹게 하여 초원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다른 목자와 양들을 파멸시킬 뿐 아니 라 결국에는 자신의 양마저 풀을 먹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초지를 보존(保存)하는 의무를 져야 하는 유목민족의 집합표상 이다. 이처럼 어떠한 자산이 개인과 자산과의 관계로 종결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려 가 필수적인 경우 그것이 자본이다. 근대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자연만 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한 생산수단(生産手段)이 자본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의 자본이 자연(自然)이었던 것에 비하여 산업사회에서 중 요한 자본은 인간이 생산한 물질이다. 우리는 이러한 산업사회의 물적 자본을 인간이 생산한 자본이며 동시에 생산을 위하여 사용되는 상품이 라는 의미에서 생산자본(生産資本)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러한 생산자 본의 구실이 중요하게 된 것이 산업사회와 그 이전의 사회와 다른 점이 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 자연과 결합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 산한 자본재와 결합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화폐의 단순한 집적인 금융자본이 중요한 자본으로 등장하였다. 금융자본은 생산과정에 직접 관계하지 않고서, 순전히 소유권에 의하여 화폐소득을 취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융 자본 역시 근원적으로는 다수의 사람들의 노동과 결합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오히려 금융자본이야말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 를 전제로 하여서만 자체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로빈손 크 루소가 아무리 많은 화폐자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자소 득을 창출하지 못하고 따라서 자본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자본은 경제적 가치의 생산과 분배의 과정에서 다수의 인간 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매개한다. 그럼으로써 사회의 중요한 매개 양식의 하나이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의 정당한 배분을 매개하는 매개체이다. 집합표상이나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자본은 경 제적 측면에서 인간의 조직과 관계를 매개한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이 야말로 사회적 존재장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인간은 자본을 매개로 하여 경제적 사회관계를 형성하지만, 동시에 생산된 경제적 가치를 상호교환(相互交換)함으로써 경제적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물질적 삶에서 자본의 형성과 생산 물의 상호교환은 연대의 계기이며 사회형성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경 제는 생산이며 동시에 교환이고 분배이다. 인간은 이러한 경제적 교환 과 분배를 매개하는 매개체를 발전시켰으니 이것이 곧 화폐(貨幣)이다. 화폐는 경제적 가치의 교환을 매개하는 매개체이다. 우리는 화폐와 같 이 가치의 이전(移轉)과 귀속(歸屬)을 매개하는 매개체를 가치매체(價 値媒體)라고 부르고자 한다. 화폐는 가치매체로서 인간 상호간의 신뢰 의 집합표상에 기반을 두고, 그러한 신뢰의 집합표상이 존재화된 것이 다. 화폐에 의하여 교환의 범위는 시공적(時空的)으로 확장된다. 물물 교환은 쌍방간에 필요한 물건을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성 립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치매체로서의 화폐가 이러한 교환을 매개함으 로써 물건과 물건의 교환을 물건과 화폐의 교환으로 전환시킨다. 이것 은 물물교환의 조건을 완화시켜 교환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하고 그 결 과로서 인간연대의 범위를 확장한다. 한편, 화폐는 그 가치저장적(價値 貯藏的) 기능에 의하여 교환의 시간적 범위를 확장한다. 즉, 화폐의 보 유에 의하여 교환은 시간적으로 상이한 시점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만이 아니라 주식(株式)이라는 새로운 가치매체가 경제관계를 매개한다. 주식은 기업의 헤게모니와 배당금으 로서의 화폐적 소득을 매개한다. 그것은 경제의 기본적 단위로서의 기 업을 조직하고 그 지배권이 결정되는 매개양식이다. 그것은 또한 화폐 자본의 투자(投資)를 매개하고 노동을 통하지 않는 화폐소득을 매개한 다. 과거에 있어서 경제조직이나 경제단위로서 장원(莊園)의 지배권은 권력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현대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인 기업의 지배권은 주식이라는 가치매체를 매개로 하여 그 귀속이 결정되는 것이 다. 그리하여 주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제조직의 지배권 (支配權)을 매개한다. 이러한 지배권을 우리는 기업에 대한 헤게모니라 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헤게모니를 매개하는 것이 주식이라는 가치매 체이며, 그것은 조직적(組織的) 차원의 매개체이다. 그것은 자본을 동 원하고 배분하는 매개양식이며 자본과 노동을 결합하는 매개양식이기도 하다.
근대의 자본주의산업사회는 자본과 가치매체의 차원에 있어서 그 이 전의 사회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자본주의산업사회는 첫째로 자연자 본이 아닌 생산자본(生産資本)이 자본의 중심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로 경제사회관계에 있어서 가치매체의 사용이 보편화(普遍 化)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이전의 사회는 자연자본에 기초하여 생산이 이루어지고 권력(신분적 계급)에 의하여 경제적 가치가 배분되고 사회 가 통합되었다. 이에 대하여 자본주의산업사회는 생산자본을 토대(土 臺)로 하여 생산이 이루어지고 가치매체에 의하여 경제적 가치가 배분 되고 사회가 통합된다. 가치매체의 사용이 일반화됨으로써 생산은 시장 에서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생산으로 전환하였다. 이제 인간의 삶은 생산과 소비로 규정된다. 시장(市場)이 인간의 물질적 삶의 중심 적 관계망(關係網)으로 되었고, 모든 것은 시장에서의 등가교환(等價交 換)의 대상으로 되었다. 이러한 점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부시멘 사회의 호혜(互惠)는 이제 중요한 것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인 간의 연대양식과 연대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호혜가 지배적인 사회와 등가교환이 지배적인 사회에서의 인간의 연대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화폐와 같은 가치매체에서 연유하는 것 이다.
법률은 권력적인 정치과정에서 산출(産出)되고, 개별적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회구성원에게 부과되는 정당성(正當性)의 집합표상이다. 개 인은 법률과는 다른 정당성의 집합표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 한 정당성의 집합표상은 사회로부터 보호(保護)받지 못하며, 반대로 법 률을 침해(侵害)하는 것을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한편, 법률 은 만약 그것이 사회의 지배적인 정당성의 집합표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법률로서 기능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위반(違 反)하게 되면 그것은 어떠한 강제력(强制力)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법률 앞에 개인으로 서기 때문에 개인의 판단으로 법률이 정당하든 정당하지 않든 간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 하여 모든 사람들이 법률을 공통의 전제(前提)로 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법률은 인간연대의 매개양식의 구실을 한다.
법률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가치를 배분하는 데 있어서 정당성의 기준이 된다. 하나의 법률체계가 성립하는 데에는 그에 상당하는 정당 성의 집합표상이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며, 법률체계가 특정한 집 단이나 계급에게 일방적으로 이익이 된다고는 인식(認識)되지는 않는 다. 모든 개인과 집단은 평등하게 법률의 제약 내에 있고 그 이외의 영역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법률이라는 공통의 집합표상을 매개로 자유로운 개인과 집단의 활동을 결합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률은 사회 전체가 제공하는 인간연대 의 매개인 것이다. 법률은 공식적(公式的)인 정당성의 집합표상이다.5)
법률은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규제이며, 이러한 성격이 사회적 질서 를 형성하는 것이다. 법률은 인위적으로 제정되고 형성시키는 정당성의 집합표상이다. 법률은 강제로 집행하거나 그 위반에 대하여 처벌을 하 는 제도적 강제장치(强制裝置)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강제장치 는 소수의 위반자에 대하여 작용함으로써 법률의 일반적인 규제력을 확 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점이 정당성의 집합표상과 다른 점이다. 그리 하여 법률은 넓은 범위의 많은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통합하는 양식이 다. 로마는 법률적 매개양식을 수단으로 하여 거대한 제국(帝國)의 질 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의 질서는 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법은 집합표상이나 자본이나 가치매체의 작용에 대한 인위적 (人爲的)인 조정이다. 그리하여 법이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용 이하게 정당성의 집합표상을 형성할 수 있을 때이다. 이러한 경우 소규 모의 강제기구로도 유효하게 사회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 한 법률은 정당성의 집합표상을 형성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익을 얻기 위한 투쟁의 무기(武器)로 전환한다. 그러한 법은 많은 강제기구가 동 원되더라도 유효하게 사회질서를 형성할 수 없다. 법은 규제할 수는 있 으나 인간을 기동시킬 수는 없다. 그리하여 법은 집합표상, 가치매체의 작용에 대하여 최소한의 자연스러운 인위적 조정에 그쳐야 한다. 이 점 이 로마에서 법률적 매개양식은 성공적이었는데 반하여, 중국의 법가 (法家)들은 결국 실패하였던 이유이다.
인간연대의 형성은 커뮤니케이션, 집합표상, 가치매체, 법률만으로 는 부족하다. 이러한 연대의 매개양식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상황이 변화하기 때문에 여전히 이해의 대립을 조정하고 사회 전체가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사회성원을 연대시킬 필 요성이 항상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최후로 동원되는 것은 역시 폭력(暴力)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폭력의 동원과 그에 따른 폭력적 투 쟁에 의한 대립의 해소는 결코 연대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연대의 파탄(破綻)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폭력 이전에 이러한 폭력이 순화(馴化)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권력이라는 매개양식이다. 권력은 인간연대의 최종적인 매개양식이다. 권력은 폭력이 아니다. 권 력은 폭력의 합법적인 독점(獨占)에 의하여 그에 대항한다는 것이 불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질서로 포괄할 수 있는 매개양 식이다. 권력이 독점적인 우월한 폭력에 의하여 뒷받침되기 때문에 폭 력적인 투쟁의 가능성이 제거되는 것이다. 권력은 인간의 사회적연대를 특정한 매개적 집단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은 물리적 폭력의 제도적이고 합법적인 형태로서 군대 (軍隊)와 경찰을 존립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권력적 결정을 행사하는 권한과 책임의 체계로서 관료제(官僚制)와 같은 거대한 조직의 체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권력체계의 정당성을 형성하는 여러가지의 제도 와 절차를 그 과정으로 마련한다. 인간연대의 다른매개양식들은 일반 적으로 작용하고 비개성적(非個性的)인데 대하여 권력은 구체적인 사 건에 대하여 권력자나 권력집단의 개성적인 결정을 통하여 인간의 연대 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권력은 사회의 중심에 특정한 인간의 집단 (권력집단, 관료체제)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매개양식들과 다 르다. 이러한 이유로 권력은 그 지배를 받는 일정한 영토적 공간과 국 민적 범위가 한정된다. 권력은 법률과 마찬가지로 다른 매개양식이 작 동하고 있는 사회에 대하여 권력집단의 인위적(人爲的)인 조정이다. 다 만 법률과 다른 점은 권력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명령에 의한 조정이라는 점이다.
권력에 의한 인위적 규제와 조정은 그 배후에 있는 합법적으로 독점 된 물리적 폭력에 의하여 실효성(實效性)을 가진다. 그러나 권력의 실 효성은 폭력적 강제장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제장치는 보조적이고 보완적인 것이다. 권력의 실효성은 권력자체와 그 명령에 대한 정당성의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 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권력은 용이하게 작동할 수 없다. 국민의 격심한 저항을 받고 있는 독재권력이 계속적으로 물리적 폭력에만 의존할 때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 자체에 대한 정당성 의 집합표상을 획득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이 정치과정(政治過程)이다. 권력에 대한 정당성의 집합표상은 국민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일반적 인 정당성의 집합표상에 비추어 권력이 국민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권력이 인간연대의 매개양식으로 기능하는가 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정당성의 집합표상을 재생산하는 정 치과정과 연계되어 있다.
인간연대의 매개양식은 사회를 통합하고 형성하는 매개수단이다. 집 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의 의식과 창조적 역동성의 차원의 매개 체라면 자본과 가치매체는 물질적 존재적 차원의 매개체이다. 한편, 법 률과 권력은 인간의 주체적이고 거시적인 실천을 공식적(公式的)으로 매개하는 양식이다.
한편, 매개양식들이 인간의 연대를 매개한다는 것은, 반대로 개인이 이러한 매개양식에 의지(依支)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 의 실천이 이러한 매개양식에 의하여 규정(規定)된다는 것을 말한다. 연대의 매개양식은 인간이 상호의존하는 매개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여러사람들을 통합하고 제어(制御)하고 통제(統制)하는 수단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한 인간이나 집단이 이러한 연대의 매개양식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의 뜻에 따라 다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의 도대로 다른 인간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셈이 다. 그러므로 연대의 매개양식은 동시에 인간을 제어하고 통제하고 지 배할 수 있는 수단이고 자산(資産)이다. 이것은 연대의 매개양식의 카 르마이다. 인간이 창조한 매개양식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권력 과 법률은 이러한 성격을 대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 에 대하여 법률은 모든 인간이 그것을 전제로 하여 행동함으로써 인간 의 행동들이 연대하고 통합되는 매개양식이다. 그러나 법률을 제정하는 집단의 관점에서는, 법률은 인간과 사회를 자신의 의도대로 규제하는 수단이다. 권력 역시 국민들의 행동을 연대하게 하고 통합하는 매개수 단이지만, 동시에 권력집단의 관점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자신들의 의도 대로 규정하고, 제어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수단이다.
권력과 법률은 연대의 매개양식이라기 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제어하 고 지배하는 수단으로서 더 많이 인식되어 왔으므로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없다. 자본과 가치매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량의 자본을 소유 한 사람은 다른 인간과 사회를 그만큼 제어(制御)하고, 통제하고, 지배 할 수 있다. 다량의 가치매체를 가진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본주 의 사회에 있어서 돈의 지배력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나아가 어떤 인 간이나 집단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면, 그는 다른 인 간과 사회를 제어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유력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言論)의 사회적 영향력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 육, 사상, 이론, 정보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하여 인간의 집합표상에 영 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나 집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세(中世)의 종 교적 집합표상 역시 인간에 대한 제어와 통제의 수단이었다. 종교적 권 위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이전(以前)에 그 근원인 의식과 집합표 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동시에 종교적 세계에 있어서의 처벌 수단은 커 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파문(破門 ; excommunication)은 파문당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커뮤니케이션을 단절(斷絶)시키는 것으로서 권력과는 또 다른 유력한 통제수단이다. 파문이라는 제도는 권력이나 법률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에 대한 통제수 단이고 제어수단이지만, 권력 이상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현대사회 에 있어서도 사회전체가 개인에게 행하는 "압력 커뮤니케이션"은 인간 을 제어한다. 개인은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지 못한다.6) 이와 같이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인간이나 사회를 제어하고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헤게모니(hegemony)라고 부른다. 헤게모니의 관점 에서는 이제까지 논의한 연대의 매개양식들이 헤게모니의 수단이고 자 산(資産)이다. 즉 연대의 매개양식들은 바로 다른 인간이나 집단의 행동을 제어하고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헤게모니 자산인 것이다. 권 력은 전형적인 헤게모니이다.
헤게모니는 권력(權力)과는 다르다.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定 義), 즉 다른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온갖 반대를 물리치 고라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능력, 가치의 권위적 배분 등은 우리의 헤게모니에 대한 정의와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사상 가나 교육자가 다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여 그를 권력자 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량의 정보를 소유하고 제공함으로써 다 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권력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 한 우리는 기업가나 자본가를 권력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는 가치매체로서의 화폐를 사용하여 다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권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돈을 집어주고 어떤 사람을 거 꾸로 서게 하는 것과 권력적 명령으로 어떤 사람을 거꾸로 서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자발적인 의사에 기한 것 이기 때문에 권력현상이 아니고 후자는 강제가 따르기 때문에 권력현상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인간의 완전한 자발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완전한 강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사형 수(死刑囚)도 자살할 수 있으므로 완전한 강제가 아니라 자발성이 수반 된다. 그것은 포기(抛棄)에서 오는 자발성이다. 반대로 기아(飢餓)에 쫓기는 사람이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하여 거꾸로 서는 일을 하였다면 그것 역시 완전한 자발성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노골적인 폭력 을 행사하여 다른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을 권력이라고 하지는 않 는다. 순경이 강도(强盜)에게 권총을 겨누고 체포감금하는 행위는 권력 작용이다. 그러나 강도가 순경에게 권총을 겨누고 체포감금하는 행위는 권력작용이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합법적이고 독점적인 폭력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국가공동체 의 공식적인 헤게모니를 권력이라고 규정한다. 공식적인 헤게모니로서 의 권력은 정보와 같은 비공식적인 헤게모니에 의하여 제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헤게모니는 연대의 매개양식의 이면(裏面)을 이루는 것으로서 권력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이다. 헤게모니는 권력 헤게모니 이외에도 폭력 헤게모니, 법률 헤게모니, 자본 헤게모니, 가치매체 헤게모니, 정 보와 커뮤니케이션 헤게모니, 집합표상 헤게모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강도(强盜)와 전쟁은 폭력 헤게모니이고, 기업 헤게모니는 자본의 헤게 모니이며, 파문(破門)은 커뮤니케이션 헤게모니이고, 사제의 신도에 대 한 권위는 집합표상의 헤게모니이다. 7)
사회와 공동체(共同體)는 연대와 헤게모니의 장(場)이다. 헤게모니 가 반드시 연대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연대를 위한 헤게모니야 말 로 헤게모니의 정당성의 기초이다. 동시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색은 이러한 연대와 헤게모니를 종합하는 새로운 체계를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