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국가(國家)
인간연대의 매개양식에 있어서 권력과 법률은 사회에 하나의 우월
(優越)한 집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집단은 권력을 행사하고
법률을 규정하고 집행하는 권력집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집단은
국가(國家)라는 사회의 특수한 측면을 형성하는 집단이다. 여기에 국
가의 위상이 규정된다. 국가는 권력과 법률의 매개양식에 의하여 통합
되는 인간의 공동체(共同體)이다. 우리는 다른 매개양식에 의하여 통합
되는 공동체를 국가라고 하지 않는다. 공동의 자본을 사용하는 인간조
직이나 공통의 집합표상을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는 국가가 아니다. 이
에 대하여 하나의 권력집단이 전공동체(全共同體)의 성원을 지배하고
하나의 법률체계가 전체를 매개하는 공동체의 영역(領域)을 우리는 국
가라고 부른다.
국가는 권력집단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영역이고 법률이 효력을
가지는 영역이다. 권력집단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과 동일한 집단이거나 밀접하게 연결된 집단이었다. 권력집
단 역시 그들의 물질적 삶을 생산자로부터 수취한 경제잉여(經濟剩餘)
에 의지한다는 점에서는 자본을 장악한 집단과 동일한 것이다. 가령 중
세봉건체제에 있어서 권력집단과 자본으로써 토지자본을 장악한 집단과
동일한 집단이, 하나의 신분적 계급을 형성하고 있었다. 근대의 산업사
회와 자본주의사회로 전환하면서 이러한 결합은 분리(分離)되었다. 권
력집단과 자본집단은 분리되어 자본집단은 권력을 가지지 아니하고, 권
력집단은 자본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국가는 과거의 국가
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근대국가체제는 권력과 법률의 영역과 자본과 가치매체의 영
역이 완전이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권력과 법률헤게모니의 귀속주체
(歸屬主體)는 분리되었지만 공간적(空間的) 영역은 분리되지 않았다.
즉, 과거에는 자본 헤게모니와 권력 헤게모니가 동일한 지배계급에 귀
속되었으며 그 공간적 지배영역도 동일하였다. 근대사회에 이르러 자본
헤게모니와 권력 헤게모니의 귀속주체는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공간적
지배영역은 통일되어 있다. 그리고 권력 헤게모니가 자본 헤게모니를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국가는 단일의 동질
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다른 국가와 경쟁하는 단위가 되었다. 국가는 다
른 국가와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공동체의 최종단위(最終單位)가 되었
다. 때문에 세계는 국가들의 관계로 전환되었고, 국가 이상의 공동체
가 인정되지 않는 국가간 체제(國家間 體制)가 형성된 것이다. 서구 중
세에도 국가들이 있었지만 국가는 최종적인 공동체가 아니었고, 세계는
보편교회(普遍敎會)에 의하여 통합된 세계체제였다. 세계체제는 권력과
법률 보다는 종교적 집합표상의 매개양식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간의 관계는 국민과 국민간의 경쟁관계가 아니었으며 왕족
의 사적(私的)인 관계와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간의 다툼은 보
편적 세계체제 내에서의 다툼이었다. 그것은 현대세계에서의 인간의 공
동체의 구성양식과는 다른 것이며, 연대의 매개양식을 종합하는 방식도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현대의 국가가 반드시 보편적(普遍的)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과 법률 헤게모니 체계로서 국가가 최종적인 공동체이고 세계가
국가간체제로 형성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당연한 세계이지만 결코 인류
의 일반적 공동체의 양식은 아니다. 중세의 보편체제(普遍體制)는 집합
표상이 인간의 최종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매개양식이었다. 그리고 현
대에 이르러서는 권력과 법률의 공동체(國家)가 인간의 연대를 형성하
는 최종적인 공동체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전쟁
(戰爭)의 양상이 이미 근대국가의 차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자본과 가치매체의 측면으로서의 경제의 영역에 있어서도, 이제는 근대
국가의 단위는 인간에 효율적이지도 유용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자본
의 규모는 국가단위를 넘어서게 되었고 가치매체 또한 국가단위를 넘
어섰다. 가치매체는 국가이외의 요소 즉 다른 국가의 가치매체와의 관
계에서 그 가치가 규정되게 되었으며, 다국적 기업의 자본은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의 자본보다 규모가 커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치매체는
국가에 의하여 규정되고 세계적 규모의 자본은 사적(私的)인 동기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다. 나아가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 있
어서도 근대국가의 영역은 진부(陳腐)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와
공동체의 공간적 영역으로서의 근대국가가 인간의 최종적이고 압도적인
공동체로서 적절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의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
다. 인간의 공동체에 있어서 권력과 법률의 공동체(國家)가 반드시 모
든 다른 매개양식을 압도하고 인간의 최종적인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법
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연대의 매개양식의 차원에서 국가에 제
기되는 문제이다.
6.3.2.경제체제(經濟體制)
경제체제(經濟體制)란 자본과 가치매체의 차원에서 규정되는 인간의
연대양식이다. 경제체제는 사회와 분리독립된 어떠한 존재나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연대성으로서의 사회의 한 측면에 대한 우리의 개념적
파악이다. 그리고 사회의 전일적 연대성에서 경제체제를 분별(分別)해
내는 기준이 자본과 가치매체가 연대를 매개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회는 전일적 연대성이기 때문에 집합표상이나 커뮤니케이션, 권
력과 법률도 이러한 자본과 가치매체가 규정되는 방식에 정합적(整合
的)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체제를 바라보는 측면은 자본과
가치매체의 차원이다.
자본과 가치매체의 구조가 경제체제를 결정하는 것은 자본과 가치매
체에 결합되는 인간관계에 지배력(支配力)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본
은 인간의 노동과 결합하여 물질적 가치를 생산한다. 그리고 자본을 지
배하는 자는 그에 결합되는 인간을 지배하며 그 생산의 결과로서의 생
산물의 소유권을 장악한다. 자본에 대한 지배권은 근대이전의 사회에
있어서는 권력적(權力的)인 것이었다. 중세봉건제도는 토지를 지배하는
자가 권력자가 되었다. 권력에 대한 복종과 충성은 권력자가 분배해
주는 봉토(封土)의 대가였으며, 권력의 기반은 바로 토지에 대한 지배
권이었다. 물론 자본을 지배하는 자가 그에 결합된 노동의 주체로서의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그로부터 산출(産出)되는 물질적 가치를 지배한
다는 것은 자연법칙이나 사회법칙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자본의 지배자가 그 자본에 결합되는 노동하는 인간을 지배
하였다. 이것이 자본의 지배력(支配力) 즉 자본 헤게모니이다. 중세적
농업사회에서 근대적 산업사회로 전환은 토지자본에서 생산자본으로의
전환이다. 그리하여 자본 헤게모니도 토지지배자의 헤게모니에서 생산
자본 소유자의 헤게모니로 전환되었다. 여기에서 나아가 새로운 자본의
형식이 등장하였으니 그것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토지도 아니고, 생산된
생산수단으로서의 실물자본도 아닌 것으로 순수한 가치매체의 집적(集
積)으로서의 금융자본(金融資本)이다. 그것은 화폐소득을 산출하는 화
폐자본(貨幣資本)이다. 이러한 금융자본은 주식과 공채, 기타 유가증권
의 형태를 가진 자산으로서 가치매체의 전환이고 집적이다. 현대사회
에 있어서는 토지자본, 생산자본, 금융자본과 같은 자본의 귀속관계와
그 헤게모니의 구조, 그리고 가치매체로서의 화폐와 주식의 기능과 헤
게모니 구조가 경제체제의 구성요소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토지자본, 생산자본, 화폐자본이 기능
하고, 가치매체로서 화폐와 주식이 기능하는 경제체제이다. 이에 대하
여 봉건적 경제체제는 토지자본이 주요한 기능을 하는 경제체제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실현된 소련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스탈린적 사회주
의를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라고 부른다. 이러한 관리사회주의는
자본으로서의 토지자본, 생산자본이 권력집단의 헤게모니(國有)에 귀속
되고, 사적(私的) 화폐자본이 기능하지 않으며, 가치매체로서의 화폐가
억제되고 주식이 부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이러한 관리사회주의와의 분
별(分別)로 규정되는 자본주의는 자본이 사적(私的) 헤게모니에 귀속되
는 체제이다. 동시에 가치매체로서 화폐와 주식이 전면적이고 일반적으
로 기능을 하는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규정된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私
的所有)체제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규정이다. 그러나 생산수단
의 사적소유라는 개념은 기업조직과의 관계에서 명확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일반화된 법인기업(法人企業)의 소유자는 법
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법인기업은 소유의 객체가 아니라 법률적으
로 주체이다. 그것은 법률적으로 의제(擬制)된 권리의 주체로 규정된
다. 그러므로 자본의 사적 소유의 실질적 의미는 법인기업의 헤게모니
를 의미한다. 그것은 법인기업의 기관(機關)으로 불리는 주주총회나 이
사회, 대표이사에게 있으며 이들의 헤게모니를 매개하는 것은 주식이라
는 가치매체이다. 그리하여 자본의 사적 소유(私的 所有)의 문제는 다
시금 가치매체(株式)의 문제로 돌아온다.
자본의 사적 소유는 소유적 사회를 형성한다. 자본가들이 독립된 자
본의 소유자로서 그 헤게모니가 시장에서 조정된다. 사적인 자본 헤게
모니가 시장에서 가치매체에 의하여 통합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
본을 공유화(共有化)하는 것은 공유자 상호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기제
가 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가치매체(화폐나 주식)는 이러한 기제를
형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치매체는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
기 때문이다. 소규모 사회라면 공유자 상호간의 관계는 집합표상이나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정될 수 있다. 공동체 운동(共同體 運動)이 그 예
이다. 대규모의 사회에서는 집합표상이나 커뮤니케이션으로 공유자 상
호간의 관계를 조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공유자 상호간의 관계를 조정
하는 연대의 매개양식은 법률과 권력 밖에 없다. 이것이 관리사회주의
이다. 때문에 자본의 공유화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비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권력과 법률은 인간을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고 자율적으로 기동
(機動)시키는 기제(機制)로는 적합하지 않다. 공유자 상호간의 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매개양식이 창조될 수 없다면 관리
사회주의와 다른 새로운 사회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경제체제의
문제이다.
6.3.3. 문명(文明) ; 정보에 의한 변화
현대에 이르러서 근대적 기술혁신과는 그 성격이 다른 새로운 종류
의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정보혁명(情報革命)으로 불리는 이러한
변화는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커다란 변화이다. 근대산업
사회가 자본과 가치매체의 차원에서의 대변혁이었다면, 정보혁명은 커
뮤니케이션과 집합표상의 차원에서의 중대한 변혁인 것이다. 이러한 변
혁은 지식과 정보를 인간의 사회에 중대한 요소로 만들고 있다.
중세 이전의 인간의 실천유형은 관습적(慣習的)인 것이었다. 일생동
안 거의 변화가 없는 사회환경에 놓인 인간에게 그날 그날의 실천은 습
관적인 행동을 되풀이 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만일 이러한 습관적인
행동 이외에 행동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윤리적, 종교적 집합
표상에 기초한 판단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근대사회가 성립하
면서 인간 행동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이제 인간의 행동은 자연과 사회
에 대한 합리적인 상식에 기초하게 되었다. 종교적인 기준은 인간의 행
동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였다. 사업을 하는데 종교
적인 집합표상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모든 것은 객관적 사실에 관한
합리성에 기초하는 상식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하여 거래와 계약(契約)으로 사회관계를 형성하였다. 정
치(政治)는 이성(理性)이 밝혀줄 것으로 기대되는 진리나 합리적 결론
을 찾아내는 토론(討論)의 과정이었다.
이에 대하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시사하는 가능성은, 인간
의 행위가 도덕 윤리나 상식이 아니라, 정보(情報)와 지식(知識)에 기
초한 행위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정보는 그때 그때 제공(提供)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의식 속에 내장(內藏)되어 있는 상식과는 다른
것이다. 합리적 상식과 지식정보의 차이가 근대와 현대의 차이이다. 건
전한 상식에 기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행동이 선택되는 것이 아
니라, 어떤 사안에 대하여도 그에 동원되는 지식과 정보가 의사결정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정보(情報)는 부분의 전체에 대한 인식이고, 전체의 부분에 대한
인식이다. 지식은 좀 더 넓고 깊은 범위의 정보를 가공(加工)한 것이
다. 지식은 심화(深化)되고 정제(精製)되고 가공된 정보이다. 지식과
정보는 세계의 연대성에 관한 인식의 내용이다. 그것은 부분이 전체를
인식함으로써 자신을 재규정(再規定)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개인
의 전체에 대한 위상은 불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사
회에 관하여 상식 이외의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극
히 복잡화하고 상호의존성(相互依存性)이 증대된 세계에 있어서는 이러
한 연대성에 대한 정보가 없이 상식에 근거한 결정과 행동은 항상 상황
으로부터 괴리하게 된다.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의
존성의 증대는 사회전체의 관점에서는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사
회와 세계를 통합하는 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다른 연대의 매개양식이 모두 하나의 정보로서 성격을
가지게 하였다, 과거에는 인간의 집합표상이란 고정적인 윤리나 상식
이었다. 이제는 변동하는 지식과 정보가 집합표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되었다. 상황에 대한 정보, 수단방법에 관한 지식이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커뮤니케이션 역시 단순한 합의나 계약(契約)이 아니
라, 자신의 행동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동원하는 것이 된다. 자본
(資本)이나 가치매체 역시 정보로 전환한다. 이제까지 자본이나 재산은
토지나 공장, 건물 등 실물적(實物的)인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은행의
저축이나 주식, 기타 금융자산은 실물이 아니라 특정인의 권리이고, 동
원할 수 있는 자산에 관한 정보이다. 이러한 유형의 자본이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한 때에 활용할 수 있는 가치매
체(貨幣)의 량에 대한 정보이며, 필요한 때에 내가 실물적인 서어비스
를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정보이다. 법률(法律) 역시 하나의 정보
로 전환한다. 중세와 근대초기에 이르기까지 법률은 도덕적 집합표상과
유사한 규범적 집합표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법률은 이러한
성격을 상실하였다. 매일 국회에서 통과되는 수많은 법률에 대하여 알
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법률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변화하는
지식이며 정보이다. 법률은 어떤 행동을 할 때의 제약사항이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합법적 방법에 관한 정보이다. 권력(權力) 역시 정보화
한다. 과거의 권력적 결정은 특정집단의 개성이나 이익, 토론이나 합의
에 기반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결정은 윤리나 상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
었다. 오늘날의 권력은 그 의사결정에 있어서 무한히 복잡한 상황을 규
정하는 거의 무한한 정보의 재구성과 가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새로운 기술적 변화가 함축하는 가능성은 모든 연대의 매개양식에
미치는 광범한 것이다. 그것은 경제체제나 국가만이 아니라 문명(文明)
까지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술의
성격이 인간의 집합표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 있어서의 변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대산업사회에서의 자본과 가치매체 차원의 변혁과
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시장(市場)을 정보네트워크로 지양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본 헤게모니나 권력 헤게모니 보다도 집
합표상의 헤게모니가 더욱 우월(優越)한 헤게모니로 될 수 있는 가능성
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물질적 가치에 대하여 정신적 가치가 더욱
지배적인 가치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含蓄)하고 있는 것이다. 과
거에는 물질적 가치의 소유와 소비에 있어서 양적(量的)인 차이가 개인
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좌우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혁신이 함축하
고 있는 의미는 물질적 가치가 질적(質的)인 것으로 전환하며 동시에
비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이 증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기술적 가능성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자본
주의체제는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 가운데 특정한 가능성만을 선택적(選
擇的)으로 현실화한다. 그리하여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
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체제나 국가의 문제이다. 따라서 경제체제의 문제나 국가의 문제는
현대의 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여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을 해방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6.3.4. 역사적 진보
가치적 관점에서 역사적 진보의 의미는 인간의 고양(高揚)이다. 그
것은 인간이 좀더 연대적 인간으로 되는 것이고, 연대(連帶)의 원리가
더욱 높은 수준에서 현실화하는 것이다. 권력에 의한 사회적 통합이 지
배적인 사회보다는 법률에 의한 사회적 통합이 지배적인 사회가 더욱
진보한 사회이다. 왜냐하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권력적 지배에서 법률
에 의한 일반적(一般的) 질서에로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법률 헤게모니
가 지배적인 사회보다는 자본 헤게모니가 지배적인 사회가 더욱 진보한
사회이다. 왜냐하면 법률 헤게모니는 강제적(强制的) 헤게모니이나 자
본 헤게모니는 자율적인 헤게모니이기 때문이다. 자본 헤게모니가 지배
적인 사회보다는 가치매체 헤게모니가 지배적인 사회가 더욱 진보한 사
회이다. 왜냐하면 자본 헤게모니가 아닌 순수한 가치매체의 헤게모니는
평등(平等)한 인간의 관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매체의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사회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사회가 더욱
진보한 사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의 물신적 성격이 사라지고 의
사소통에 의한 자율적인 합의(合意)가 일반적인 사회관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사회보다는 집합표상 헤
게모니가 지배하는 사회가 더욱 진보한 사회이다. 집합표상이 유일(唯
一)한 인간의 연대양식이라면 그것은 낙원(樂園)일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가치관이 연대를 지향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 대립이 없
어진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회가 아닐 것이
다.
물론 인간의 사회는 이러한 개념적인 도식(圖式)으로 규정되지 않
는다. 그러나 노예제(奴隸制) 사회에서 노예에 대한 관계는 노골적인
폭력과 권력으로 뒷받침되는 사회였다. 이에 대하여 신분적(身分的) 계
급의 중세사회는 권력과 법률이 사회적 신분으로 전환된 사회였다. 가
치매체(화폐)의 일반적 사용과 그에 따른 가치매체 헤게모니가 이러한
신분적 계급 헤게모니를 해소해 버렸다. 이것이 중세에서 근대사회에로
의 전환이다. 근대사회는 권력과 법률의 헤게모니에서 자본과 가치매체
의 헤게모니로 진보한 사회였다.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는 이러한
점에서는 역사적 일탈(逸脫)이었다. 그것은 자본과 가치매체의 헤게모
니를 부정(否定)하고 권력 헤게모니로 되돌아간 사회였다. 새로운 사회
는 자본과 가치매체의 헤게모니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집합표상의 헤게모니가 지배적인 사회로의 진보가 그 방향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연대를 한걸음 진보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자본과 가치매체의 매개양식과 그 헤게모니의 분배와
조직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지(地)의 차원,
경제체제의 문제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
의 제1 주제는 계급의 철폐와 경제의 인간화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1
권 하권(下卷)의 주제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는 사회의 지(地)
의 차원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는 분할할 수 없는 연대
성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 1주제 역시 전체를 통하여 완결되는 것
이며, 다만 지(地)의 차원은 바로 그 기초를 의미하는 잠정적인 것이
다. 다음에 우리는 모든 헤게모니를 종합하는 헤게모니 일반을 논의하
면서 국가와 세계, 인간의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 2권 상권(上卷)의 주제가 될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
제, 국가와 세계공동체의 문제이며, 전쟁과 평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비젼을 실현하는 전략적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전략
이란 바로 기존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현실의 헤게모니의 문제이기 때
문이다. 전략의 문제는 제 2권의 하권(下卷)의 주제이다. 제 2권은 인
간 세계의 인(人)의 차원을 다룬다. 우리는 제 3권에서 문명과 인간의
고양(高揚)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와 우리의 주제는 현실의 분석에서 완전히 해명
될 수 없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계급을 철폐하는 문제는 계급없는 사회를 창조
하는 것이고, 전쟁을 폐지하는 것은 평화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문제이
며, 물질문명을 지양하는 문제는 정신문명을 창조하는 문제이기도 하
다. 이러한 창조는 현실의 동일성(同一性)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긍정적 내용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성은 역사적 현실의 분석에 더하여 미래에 대한 상
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검토를 필
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