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계급과 전쟁의 철폐





7.3.1. 정의(正義)--계급의 철폐와 경제의 인간화

인간의 연대는 정의를 기반으로 한다. 계급으로 대립된 사회에 있 어서 인간의 연대는 기대할 수 없다. 계급은 인간의 연대가 파괴되는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다. 마르크스의 탁월한 점은 계급없는 사회를 역사적 상상력의 범주(範疇)로 끌여들였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사회주 의는 인간의 사회가 전면적으로 계급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현실성으로 서 역사적 상상력이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연의 질서라는 흔들 리지 않는 믿음의 사회에 살면서 계급이 없는 사회가 가능하고 실현될 수 있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모든 선구적인 역사적 상상력이 그러했듯이 그의 신념도 당대의 사람들의 집합표상으로부터 진지한 이해를 얻지 못했다.1)

역사적 상상력이란 시대적 집합표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미래에 신념 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수백년 전 교양인이 노예를 학대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듯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또한 인간성을 훼손할 정도로 심각한 빈부 의 격차에 대해서도 능력에 따른 분배나, 절차적 정의, 자유와의 선택 적 관계에 있는 필요악(必要惡), 인간의 노동에 대하여 동기를 제공하 기 위하여 필요한 기동(機動)의 기제(機制) 등으로 정당화한다.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광범한 사적소유제도(私的所有制度)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의 조직과 생산관계는, 단순히 빈부의 격차만이 아니라 신분적(身 分的) 계급의 연장선상에 있는 새로운 계급제도이다. 우리가 노예제도 를 철폐하고 신분적 계급제도를 철폐하였듯이 이러한 새로운 계급제도 도 철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우리가 중세의 신분적 계급제도를 비난하듯이 우리의 후손(後孫)은 현재의 계급제도를 비난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계급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 제체제의 병리(病理)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경제의 한 부분은 너 무나 많은 생산물을 판매하지 못하여 끊임없이 욕망을 재창조(再創造) 하지 않으면 안되고, 다른 한 부분은 기본적인 생존의 수단마저 얻기 어려워 고심하는 그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정도로 충 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가능성을 억압하고 여전히 인간 을 필요없는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고 통(苦痛)의 신비(神秘)'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국가간 경쟁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제적 불안정을 해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계급의 철폐는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구원(救援)하는 문제이다.

현대에 이르러 계급의 철폐는 역사적 상상력의 범주에서 벗어나 스 탈린 체제하에서 관리사회주의(管理社會主義)로 시도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에 있어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역사적 상상력은 상 상력의 범주에 들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상당 부분에게는 당연한 믿음 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주의는 계급문제의 진정한 해결 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사회주의는 붕괴하였다. 아직도 마르크스적 집합표상에 관념적으로 안주(安住)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산 력의 발전이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2) 그러나 이것 은 우리가 언젠가는 낙원(樂園)에 이를 것이라는 설교와 다름이 없다. 생산력의 발전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상황에 이르기 전에 아마도 지구 가 파괴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지극히 다행한 경우에는 이미 사회주 의도 자본주의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진실로 계급의 철폐를 열망한다면 우 리는 절망(絶望)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르크스적 집합표상은 계 급이 철폐된 구체적인 체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시도 된 계급의 철폐는 그 실패에 의하여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 다면 과연 계급의 철폐는 가능한 것인가? 신분적 계급이 아닌 자본주 의적 계급(資本主義的 階級)의 철폐가 진실로 가능(可能)한 것인가? 자본주의적 계급이 과연 계급인가? 계급의 철폐란 노예제도, 봉건사회 의 신분적 계급의 유추(類推)에서 만들어진 관념적 환상(觀念的 幻想) 이 아닌가? 자본주의와 다른 체제로서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결국 자본주의로 만족해야 할 것이 아닌가? 더 나아 간다면 현실과 미래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질서는 자연적(自然的) 질서 이고 유일(唯一)한 질서가 아닌가? 자본주의 이외의 새로운 사회가 가 능하다고 믿은 것은 결국 환상이 아니었던가? 생산력이 인간을 위하여 해방되고, 모든 사람들이 화폐를 매개로 하는 물신주의에서 벗어난 사 회라는 것도 관념적 환상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관념적 환상이 아니라 면 구체적인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이것은 관리사회주의 의 실패가 계급의 철폐를 다시금 역사적 상상력의 범주로 되돌려 놓았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문제 의식을 우리의 문제의식으로 하고, 우리의 경험을 자산(資産)으로 하 여, 새로이 마르크스의 고뇌(苦惱)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르크스에게 의지하지 않고 마르크스가 제기한 문 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며, 마르크스의 역사적 상상력을 어떠한 체제양식으로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어떻게 거대한 국가를 상정하지 않고 계급을 철폐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자유(自由)를 훼손하지 않고 평등(平等)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 다. 그것은 또한 경제의 움직임을 신비한 우상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안정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근대 초기에 있어서 경제의 움직임 은 일종의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침범하거나 인간이 조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케인즈 이후 경제는 국가에 개입에 의하여 조종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나아가 관리사회주의의 경험은, 경제란 인간과 사회의 목적과 가치를 위하여 창조되고 변경될 수 있는 질서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경제적 불안정과 분배의 격차와 같은 것은 결코 경제 그 자체의 논리를 위하여 희생될 수 없다 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가 인간과 사회의 목적과 가치를 위하여 봉사해 야 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인간의 질서라는 것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우 리가 경제의 논리를 내세워 인간의 고통을 합리화하였다는 점에 대하 여 의아(疑訝)해 할 것이다. 우리는 경제를 위한 인간에서 인간을 위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라는 우상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것 이다.3) 경제적 발전의 인간적 의미가 부가되어야 하며 인간이 종속(從 屬)하는 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제1주제(第一主題)이고 제1권 하권(下卷)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7.3.2. 평화-- 전쟁의 폐지(閉止)

평화는 인간 연대의 전제(前提)이다. 평화가 확보되지 않는 상태, 평화가 위협받는 상태에서는, 인간의 연대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평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의식에서 철학적 논의 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쟁이 폐지(廢止)되고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 지는 것이 평화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폐지하는 것이다. 전쟁과 전 쟁의 가능성이 완전히 폐지된 세계야말로, 연대의 기초를 확보하는 것 이고, 또 하나의 역사적 상상력이다. 전쟁은 인간사회의 가장 참담한 비극이다. 전쟁은 폐지될 수 있는가? 그것도 요원한 미래가 아니라 한 두 세대의 미래에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전쟁을 폐지한다는 것은 비 현실적인 공상이 아닌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전쟁의 폐지야말로 우리 시대의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에 이르러 노예제도나 신분적 계급제도가 폐지되었듯이 우리의 시대에는 전쟁도 폐지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폐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비군(常備軍)을 폐지하 는 것이다. 단순히 전쟁이 억제되는 상태는 전쟁의 폐지는 아니다. 상 비군의 폐지는 또한 근대국가(近代國家)가 지양(止揚)되어 폐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비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 식적으로 생각하는 근대형의 국가가 아니다. 전쟁의 폐지, 상비군의 폐 지, 근대국가의 폐지 이것이야말로 우리시대에 있어서 역사적 상상력이 다. 상비군, 근대국가, 전쟁의 폐지는 가능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 시킬 수 있다. 토인비가 우리시대에 있어서 전쟁의 폐지에 관한 역사적 상상력을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전쟁은 인간이 만든 제도(制度)이고 모든 제도는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결코 정상적인 인간조건 (人間條件)의 하나라고 할 수 없으며, 역사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전쟁이 아니라 평화야말로 정상적인 인간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과업은 각국의 주권을 양도받은 세계정부 와 같은 세계적인 정치기구를 건설하는 일이라는 것이다.4) 전쟁을 없 애기 위해서라면 세계정부(世界政府)의 건설에 따르는 희생은 인류가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대가라는 것이다. 토인비의 논의는 두가지 점을 소홀히 하고 있다. 하나는 과연 세계정부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와 다른 하나는 전쟁의 폐지를 위하여 세계정부 이외에 다른 대 안(代案)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세계국가는 근대형의 국가에 대 한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그러나 전쟁이 결코 인간사회의 운명이 아 니며 전쟁의 폐지가 가능하다는 토인비의 역사적 상상력은 가치 있는 것이다.

우선 인간의 사회에 있어서 전쟁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는 집합표상 은 근거없는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집합표상의 카르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호 전적(好戰的)이라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관한 여하한 이론도 결코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대다수의 심리학자들 은 인간의 본성에 전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없 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은 결코 비이성적(非理性的)인 본능 에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극히 이성적인 과정 속에서 야 기되는 것이다. 한 국가가 전쟁을 개시하는 데 있어서 합리적인 계산없 이 감정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쟁의 또 다른 원인(原因)으로 서 인간의 힘과 권력에 대한 추구,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자본주 의 또는 제국주의의 경향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쟁의 원인 에 대한 분석은 전쟁의 필연성에 대하여 아무것도 증명하는 것이 아니 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미 일어난 전쟁에 관하여 사후적(事後 的)으로 그 원인을 인과관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결 과에 대하여 원인을 규정하는 것으로, 반대로 그러한 원인의 존재가 반 드시 전쟁이라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을 증명(證明)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없어질 수 없다는 집합표상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후로 전쟁은 항상 있어 왔고, 따라서 앞으로도 인 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없어질 수 없다는, 막연하지만 상식을 붙잡고 있는 논리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수백년 전의 시점에서 볼 때 인류문 명이 시작된 이래로 항상 노예제도(奴隷制度)가 있어 왔으나 인류는 이 러한 노예제도를 없애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가 역사책을 들여다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책에 는 평화는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지만 전쟁은 사건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역사를 보면 왕조가 교체되는 시 기의 막간적(幕間的)인 전쟁의 시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에 걸쳐서 수백 년의 평화의 시기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의 어느 국가나 어떠한 문명에 있어서도 전쟁의 시기보다 평화의 시기가 인류의 정상적인 삶의 환경 이었다.4) 수백년간 지속된 평화의 시기가 얼마든지 있었으며 이 점은 최소한 앞으로 수백년간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 요원한 이상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현대에 있어서는 전쟁의 목표가 상실되어 버렸다. 전쟁이 국 가의 특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현대의 핵전쟁(核戰爭) 은 그러한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핵전쟁은 그것을 시 도하는 국가, 나아가 세계의 인류를 절멸케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 로 변모하였다. 전쟁은 이제 더이상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는 무용 지물의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 2차대전 후의 역사가 가르치는 바에 의 하면, 핵무장한 두 개의 국가간의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핵을 가진 국가간에 있어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재래식 군사력만으로 행해지는 전쟁이 가능하다는 이론도 있다. 또한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 는 정도의 제한적 핵전쟁이 가능하다는 이론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그 러한 전쟁의 제한에 단 한번이라도 실패하는 경우에는 그것으로서 인류 는 종말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제한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익은 점차로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제한전쟁의 이익을 현실적으로 줄여나가는 전략적 구조의 창출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 한 전략적 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與件)을 우리는 이미 가 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조직(組織)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으로 전쟁이 폐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 다.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은 증대하고 있다. 냉전 이 끝난 세계의 상황 은 경제전쟁과 강대국의 불완전한 패권체제이다. 그것은 패권이 평화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경제전쟁이 항상적으로 전쟁의 요인을 축적하는 체 제인 것이다.

7.3.3. 근대국가제도와 국가간체제(國家間體制)

전쟁이라는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역사상 전쟁이나 전쟁 일반에 대한 원인의 분석(分析)과 그 원인(原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없다. 그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실패한 논리이다. 우리는 전쟁의 인연(因緣)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은 국가간의 투쟁이다. 따 라서 국가 자체를 폐지(廢止)해 버린다면 어떠한 원인도 전쟁을 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폐지의 문제는 국가 폐지의 문제로 전 환된다. 그리고 국가 폐지의 문제는 상비군 폐지의 문제와 직결되며, 상비군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와 세계를 구성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근대형의 국가만이 국가의 유일 한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비무장(非武裝)의 국가를 만들 수 있다. 이 것은 기존의 국가를 비무장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비무장의 국가는 이미 근대형(近代型)의 국가가 아닌 새로운 연 대양식의 인류적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전쟁폐지문제의 본질이 다.

근대국가는 독특한 유형의 제도이다. 그것은 단일한 시장(市場)의 영역이며 동질적인 국민국가로서 출발하였다. 상비군은 이러한 시장과 국민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창설되고 유지되고 사용되어 왔 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세계화 하였고 인류적 의식이 증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근대형의 낡은 국가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 이것은 세계적 차원에서는 무정부상태의 국가간체제(國家間體制)이 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간체제는 대단히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이다. 근 대이후의 전쟁은 이러한 국가간 체제에서 야기된 것이다. 국가간체제를 파괴하고 단일의 제국을 형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시도 자체가 전쟁을 야기하고 패전(敗戰)과 함께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전 쟁 폐지의 문제는 이러한 근대국가라는 제도와 국가간 체제라는 세계체 제를 어떻게 변역(變易)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반드시 세계정부 또는 또는 세계제국(世界帝國)의 형성 으로 결론이 이끌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정부나 세계제국의 대안은 과거 문명사나 근대국가의 집합표상을 세계 전체에 투사(投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별국가의 차원이나 문명권의 차원과 지구 전 체를 포괄하는 세계체제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개별국가나 문명권은 항상 외부세계(外部世界)가 존재하지만, 세계체제는 정치적 외부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국가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화성(火 星)과의 혹성전쟁을 가정하여 세계국가를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러한 점에서 우리는 전쟁의 폐지에 관하여 토인비와 그 대안을 달리한 다. 결국 억압적인 세계권력이나 거대한 세계국가가 아니며 근대적인 국가간 체제가 아닌 새로운 세계체제의 건설, 그에 동반하여 근대국가 와 상비군의 폐지, 이것이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의 내용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젼이나 이상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비젼이 나 이상을 제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 실의 세계를 그러한 상태로 이끌 수 있는 전략(戰略)의 문제이다.

7.3.4.전략(戰略)의 문제

근대국가의 국민군으로 편성된 상비군제도는 근대초기 나폴레옹시대 에 발명된 제도이다. 이 제도는 200여년 동안 효과적으로 기능해 왔으 나 이제는 진부(陳腐)한 것이 되고 있다. 상비군은 그들이 무장하는 무 기의 고도화와 함께 너무나 많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이득은 전쟁 양상의 변화로 별로 가치없는 것이 되고 있다. 근대적 상 비군과 현대적 무기로 세계의 패권(覇權)을 추구하여 온 미국과 소련은 그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그 때문에 세계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상실 해 가고 있다. 관리사회주의의 실패와 그에 따른 미국의 패권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군사력의 동원이 자본주 의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거나 증대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 군사력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기능에서만 무력해진 것 이 아니라, 평화시에 있어서 다른 국가를 위협하여 굴종(屈從)을 얻어 내는 기능에 있어서도 의심받고 있다. 양적으로 우월한 군사력이 국가 간의 협박을 통한 헤게모니 자산으로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하여 결국 전쟁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다만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늦지 않게 전쟁을 폐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5)

그러나 객관적 상황이 저절로 상비군과 전쟁을 폐지하는 길로 인도 하는 것은 아니다. 군비폐지와 상비군의 폐지는 객관적 상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문제이다. 현대의 전략은 전쟁과정에 대한 전략이 아니라 상대방의 '전략에 대한 전략'으로 변질되었다. 그 것은 어떻게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상대방이 구성한 전략개념 에 대한 전략개념인 것이다. 상대방이 우리의 본토(本土)를 공격한다면 우리도 상대방의 본토(本土)를 공격하여 상호전멸할 것이므로 서로 본 토를 공격하지 않고, 제3의 지역에서 제한핵전쟁(制限核戰爭)이 가능하 다는 것과 같은 것이 전략개념이다. 그리하여 군비의 폐지와 상비군의 폐지의 문제도 단순히 객관적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전략개념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것은 서로가 서로의 전략개념에 의존하 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상대방이 군비를 축소하고 상 비군을 폐지한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내가 먼저 그렇게 함으 로써 상대방을 유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결국은 객관적 상황과 관계없이 군비의 폐지와 상비군의 폐지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것은 군비의 축소와 상비군의 폐지의 문제가 객관적 상황과 동시 에 신뢰(信賴)의 집합표상의 문제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단순히 논리적인 것이나 또는 이성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국가의 생존에 관련된 위험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다른 국가로 부터 침략의 위험을 감수하고 먼저 상비군을 폐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전략의 핵심은 먼저 상비군을 폐지한 국가가 침략을 받을 위험이 없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 략적 상황(戰略的 狀況)을 창조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동양의 손자(孫子)와 손빈(孫賓)은 그들의 병 법서(孫子兵法, 孫賓兵法)에서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그들의 병법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병법이 아니라 전쟁의 수단을 통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을 최대한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들의 병법은 적(敵)의 존재성(存在性)을 섬멸(殲滅)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집합표상(集合表 象)을 변역(變易)하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병법을 통하여 상비군의 폐지와 전쟁의 폐지를 지향하는 전략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전쟁의 폐지, 상비 군의 폐지, 근대국가의 지양과 세계공동체의 형성의 문제를 체제와 전 략의 문제로서 제2권의 상하권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Last Updated: 1995년 7월 1일 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