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물질문명의 지양(止揚)
7.4.1. 물질문명(物質文明)우리의 미래에 대한 또 하나의 역사적 상상력은 물질문명의 지양(止 揚)이다. 근대적 집합표상에서 역사의 진보란 바로 물질적 발전을 의미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질적 발전이 역사의 유일(唯一)한 의미는 아 니다. 나아가 서구 산업문명은 물질적 발전의 실패가 아니라 그 성공 (成功)때문에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물질적 재 화(財貨)를 중심으로 한 공업의 발전은 이제 지구 전체의 자원과 환경 이 이를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지금부터 백년 전의 인간은 대기(大氣)의 오존층이 구멍나고, 지구의 산림(山林)의 절반이 없어진 현재의 상황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무한(無限)하였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자연은 무한 하지 않다. 자연은 이제 자유재(自由財)가 아니라 보존하지 않으면 파 괴되어 없어지는 연대자본(連帶資本)이다. 물질적 재화가 유한하기 이 전에 지구의 자원과 자연이 유한한 것이라는 점이 우리에게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연대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물질문명이란 무엇인가? 현대의 물질문명은 서구 근대문명의 세계 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근대 서구산업문명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그 예 를 볼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 왔으며, 그리하여 인간의 물질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근대문명에서 지 상가치(至上價値)는 물질적 가치이고, 진보는 경제적 발전이었다. 국가 간의 관계는 이러한 물질적 발전에 따른 국부(國富)와 각종 현대무기 로 무장한 군사적 힘에 의하여 그 기본적 승패가 결정되었다. 모든 인 간이 추구하는 것은 조금 일하고 더욱 풍요한 물질생활을 누리는 것이 며, 물질적 발전이 인간을 낙원으로 인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 다. 인간은 물질적 가치를 배제하고는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여 그것이 곧 물질문명인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인간생활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물질가치가 압도적인 기준이 되고 다른 모든 가치가 물질가치에 종속되거나 물질적 가치에 의하여 좌우되 는 경우, 그것을 우리는 물질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물질가 치에 대한 추구가 지배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연대 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물질문명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의 관계가 물질가치를 둘러싸고 생존을 건 경쟁과 투쟁의 관계로 전환 되고, 그리하여 물질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다른 인간을 희생할 때, 즉 물질가치에 대한 경쟁이 인간의 연대관계를 파괴할 때, 우리는 그것 을 물질문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물질가치를 중심으 로 대상(對象)의 원리(原理)가 지배하는 인간의 생존양식이 물질문명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우선 생존하기 위하여 경쟁 속에서 물질가치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가치의 획득은 화폐(貨幣)의 획득이라는 방법을 취한다. 모든 인간은 돈을 벌지 못하면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물질가치의 획득을 위한 경쟁은 삶과 죽음이 걸 려 있는 경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존이 해결된다고 해서 물질가치를 둘러싼 경쟁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 들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고 하여 시간적으로 먼 미래에까 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생활수준은 미래의 생 존의 불안까지 해소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오늘 그의 생활수준이 어떠하든간에 더욱 더 많은 물질가치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의 위상(位相)은 달리는 자전거 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 달리는 자전거는 계속 달리지 않으면 쓰러진 다. 충분한 거리를 달렸기 때문에 이제는 달리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 는 그러한 자전거는 없다. 생존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자본주의사회에 서는 모든 개인의 사회적 지위(地位)는 그들이 소유한 물질적 부의 크 기에 의하여 결정된다.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어떠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평가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는 지극히 세밀하게 인 식되고 거의 무한한 계열을 형성한다. 승용차가 없는 사람은 승용차를 가진 사람에 대하여 열등한 사회적 지위에 있다. 승용차를 소유한 사람 은 조금 더 비싼 승용차, 조금 더 최신형의 승용차의 무한한 계열에 의 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가 규정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인간이 소유한 경제적 재화들은 도두 다 이러한 무한한 계열을 형성하 는 요소이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재화와 부의 소유의 무한한 계열, 소 비의 무한한 사다리에 위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의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인생의 가치가 규정당하는 것이다.
자본가도 역시 같은 운명에 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치열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 에게는 "축적하라, 축적하라" 라는 좌우 명이 그들의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계명(戒命)으로 된다. 자본가는 자신이 축적한 자본과 부의 절대량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무한 하게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축적하지 않으면 이미 획득한 부마저도 상실 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동시에 자본가는 자신이 획득한 부의 절대량 이 아니라 다른 자본가와의 비교에서의 상대적 량에 의해서 자신의 사 회적 지위와 인생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적 지위를 유 지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경쟁 자는 계속 그들의 부를 증가시켜 나갈 것이고, 경제환경은 변화하고, 오늘의 사업종목이 내일에도 같은 정도로 번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의 도산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존 까지도 위협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자본가 역시 그들의 미래의 생존 과 현재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물질적 가치를 더욱 더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이 그들의 생존과 사 회적 지위를 과시(誇示)하고 그리고 규정(規定)당하는 물질가치의 포트 래치(potlatch) 현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1) 자신의 부나 기타 자신이 소유한 가치를 끊임없이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그러한 현상의 의미로 포트래치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물질문명은 모든 인간이 벌리는 물질가치의 포트래치 현상이다.
근대국가의 성립과 국가간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경쟁은 이러한 인간의 물질화를 대규모적인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인간의 물질화를 더욱 더 가열한 것으로 만든다. 부유한 국가, 강대한 국가는 이러한 사 회체제의 결과이기도 하고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더욱 부유한 국 가, 더욱 강대한 국가가 되지 않으면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종속적 인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는 더욱더 인간의 물질화를 가속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과 사회를 발전은 바로 인간과 사회 의 물질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관계에서 물질가치 의 포트래치가 인간을 규제하게 된다. 개인, 조직, 국가 등 모든 인간 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물질가치의 포트래치, 이것이 물질문명이다.
인류역사는 서구 근대사회의 집합표상처럼 물질적 진보의 역사도 아 니고 생산력의 발전의 역사도 아니다. 경제적 발전이 역사적 진보(進 步)의 유일한 의미도 아니다. 고대사회에서도 농업혁명으로 인해 물질 적 의미에서 경제가 끊임없이 발전되었다. 지역간의 교역(交易)이 활발 하게 이루어지고 화폐경제가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발전은 고대말기에 이르러 그 한계에 달하고 중세(中世)에 이르러서는 물질적 발전은 정체되고 말았다. 중세에는 교역이 쇠퇴하고 자급자족적인 경 제가 형성되었으며 화폐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중세는 물질 적 발전보다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정신적 가치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회였다. 그리고 근대의 산업혁명은 다시금 인간이 물질적으로 경제적 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였으며, 급속한 물질문명을 이루었 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물질적 발전이 직선적(直線的)으로 이루어지 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근대인의 집합표상의 카르마이다. 고대 말기에 나타난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와 성인들은 오늘날 우리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 그들은 물질문명에 타락한 인간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었던 것 이다. 광야에서 그들의 외침이 사라진 후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자연적 한계로 인류는 중세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중세는 우리가 상식적으 로 생각하듯이 암흑시대(暗黑時代)가 아니다. 물질적으로 쇠퇴하였다고 하여 역사가 퇴보한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는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하나의 양식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도 물질적 발전만 이 유일한 진보의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현재의 물질적 발전 위에 정신적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가치있 는 진보이며, 가능한 진보이며, 진보의 새로운 의미이기도 하다.
물질문명은 인간의 삶의 주요한 내용이 경제적(經濟的)인 것을 말 한다. 문명이란 인간의 삶의 시간(時間)의 사용양식이다. 물질문명은 이러한 삶의 시간의 대부분을 물질적 가치의 생산과 소비에 사용하는 그러한 삶의 양식이다. 이에 대하여 정신문명이란 삶의 생활시간을 비 물질적인 가치의 생산과 소비에 주로 사용하는 생활양식이다. 이것은 동일한 시간에 소비되는 물질의 양이 더 적은 것이다. 그리고 다량의 물질을 소비하는 사람에 대한 선망(羨望)보다는 경멸(輕蔑)이 상식적인 정감(情感)의 집합표상이다. 중세가 그러하였으며 현대의 승려들의 삶 이 그러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중세로 회귀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승려 들의 생활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식과 같이 인간의 물질적 욕망이 반드시 자연스 러운 것도 아니고 비물질적 문명이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다.2)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양의 물질을 소비하고, 생활시 간의 더 많은 부분을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 투입하는 삶이 가장 가치있 는 삶도 아니다. 물질적 발전을 인간의 고양과 진보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물질적 발전 그 자체는 인간의 행복도 사회 의 발전도 아닌 것이다. 물질적 발전이 이루어지면 저절로 도덕적 인간 과 연대적인 사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3) 이 모든 것은 근대적 집합표 상의 카르마이다. 그것은 결코 인류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적인 사회는 아닌 것이다.4)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을 미래의 후손들은, 오늘의 우리들에 대하 여 끊임없이 무가치한 물건들을 생산해내고 물질적 욕망을 자극하고 창 조하여 이를 판매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돋보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묘 한 상품들을 소비하는, 그러한 사회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 그만 편의를 위하여 공해와 같은 거대한 불편을 경쟁적으로 야기하는 그러한 문명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대단히 물질적이고 상 당히 저속한 인간들이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물질문명을 배척하는 것은 인간의 물질적 풍요(豊饒)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 코 물질적 금욕주의(禁慾主義)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질적 가치에 매몰(埋沒)된 인간은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인 간의 사회에는 물질적 가치 이외의 중요한 가치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받아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이다. 정신 적 가치들은 장식(裝飾)이 아니며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다. 그리 고 우리는 발전된 생산력의 수준 위에서 이러한 정신적 가치들이 중요 한 의미를 지니는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발전된 생산력은 인류에게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최근의 과학기술의 새로운 발전의 사회적 영향을 물질문명의 지양과 관련시키려는 집합표상이 있다. 컴퓨터에 의한 정보처리기술, 생산공 정에 도입된 마이크로 일레트로닉스, 인공위성을 통한 원거리 통신, 텔 리비젼의 인간생활에 대한 영향 등 다양한 과학기술의 혁신은 이제까지 의 과학기술혁신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새로 운 과학기술의 혁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현재 논쟁거 리이다.5) 과학기술의 혁신 그 자체가 사회의 성격을 일의적(一義的) 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은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 고 있으나, 동일한 가능성이 사회구조와 세계구조에 따라서 전혀 다르 게 작용한다. 그리하여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활용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의 사회체제에서도 새로운 과학기술 혁신 은 사회와 세계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미 충격은 사회주의 사회 에서 나타나고 있다.6) 우리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활용한다면 인류에 게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자본주의적 현 실화와는 달리 인간의 사회를 물질적 동기에 의존하지 않고 재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근대사회는 물질적 진보를 위하여 모 든 인간들을 기아와 물질적 탐욕으로 추궁한 체제였다. 새로운 기술은 이러한 기동기제와는 다르게 인간을 기동시키고 사회를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지양(止揚)과 새로운 문명의 실현에 관하여 우리는 제 3권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문명의 차원에 설 때 정의와 평화, 계급과 세계체제의 문제도 다시금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리하여 우리는 제 3권에서 그 이전에 다루었던 문제들을 문명의 차원에 서 종합적으로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