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회복


어느 나그네가 호랑이에게 정신없이 쫓기다가 그만 언덕에서 굴러 떨어졌다. 간신히 칡넝쿨을 움켜잡고 매달려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밑을 보니 독사가 우글거리면서 혀 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위를 보니 쥐가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목숨이 시간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머리 위에는 예쁜 꽃이 있었고, 꽃 옆에 있는 벌집에서 달콤 한 꿀이 한 방울 입에 떨어졌다. 세상에 이런 달콤함이 있었던가? 한두 방울씩 맛을 보다보니 나그네는 어느덧 목숨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꿀맛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이것은 인생을 비유한 이야기이지만, 백화점 붕괴사고 책임자들에게 주는 교훈을 함축 하고있다.

지금 우리는 사회 곳곳의 위험에 대해서 통제불능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자신의 생명이 다른 사람의 판단과 선택에 맡겨져 있다.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이나 비행기가 조정실에 있는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고, 내가 마시고 있는 물과 공기가 공장의 공해 관리자의 손에 달려 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핵미사 일 통제실에 내 생명이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에서는 내 자신의 삶이 자유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내 자신의 생명이 다른 사람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상호의존이 함께 유지되고 있는 것 이다.

우리 사회는 자유를 보장하는 데는 발달했지만 상호의존을 강화하는 통합장치는 발달 하지 못한 셈이다. 상호의존성을 유지하는 통합장치는 사회적인 신뢰와 공통의 가치, 법 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전의 사고는 사회적인 신뢰나 법률이 이러한 상 호의존성을 보장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행정 규제에 의한 통제나 법률에 의한 보호장치가 한계를 드러낸 것은 오래이다. 법과 규정을 적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통제의 역할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부정과 위험 방치를 정당화시켜주는 결과만 낳고 있다. 법이나 행정 규정은 복잡해진 사회와 발달하는 기술 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한 예로써, 80년대 말의 부동산 투기를 들 수 있다. 투기를 막기 위해서 여러 가지 법과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탈법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서울의 사고 백화점이 그 당시에 건축된 건물이라고 하니, 오늘의 사고는 그 당시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서 한 몫을 챙겼던 사람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약한 통합장치는 억울한 회생자만 만들어 낸 것이다.

통합 불능의 현상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현행의 정치제도에서 일 반국민에게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선거에 임해서는 선 택의 기준이 없었다. 80년대의 열망이었던 민주화의 기준도, 60년대와 70년대의 경제발전 이라는 선택기준도, 공산주의의 위협에 따른 자유의 수호라는 기준도 지금은 다수의 선 택 기준이 되지 못하고있다. 이번 선거에서 유일한 선택기준은 각 지방에서 자기존재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 기준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의미보다는 정 치가들에게 이용당하여 분열만 낳은 결과이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달성되고 위협을 가하 는 외부의 적이 사라진 후, 사회를 통합해주는 공통가치는 없어지고 내부의 분열만이 남 아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공통의 가치를 이끌어 내어야 할 정치가들은 리더십을 잃은 것 이다.

사회적으로 이루어야 할 지상의 목표나 획일적인 통합이 없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 이다. 과거 나치즘의 획일적인 통합 속에서 저지른 학살, 억지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목 표 아래 공산주의 이념이 몰고 온 살육과 만행, 가깝게는 민주화라는 사회적 목표를 위 해서 치러야 했던 희생, 이러한 불행과 희생이 더 필요치 않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 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최후의 보루인 도덕심과 사람의 생명존중마저 사회적인 통합장 치에서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험 인 것이다. 도덕에 의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패륜의 범죄와 폭력, 대형 안전사고 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은 이러한 도덕에 의한 통합기능은 살아 있음을 이번 백화점 붕괴사고에서 볼 수 있었다. 현장에 달려가지 못해도 누구나 가슴아픔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의 가 르침대로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달려가서 구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친교를 맺으 려는 것은 아니고,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니 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악하게 굴지 못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 을 가로막는 현실의 제도, 행동양식이 있다면 스슴치 말고 고쳐야 할 것이다.

칡넝쿨에 매달린 사람처럼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에 대 하여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역시 사람의 본성을 살리는 도덕의 회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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