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지(認知)욕망, 소유(所有)욕망, 자아실현(自我實現)욕망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분류한다면 인간은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사형 인
간, 상인형 인간, 문인형 인간이 그것이다. 한편 인간이 추구하는 것을 가치라고 할 때, 가치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지가치(認知價値), 소유가치, 자아실현가치가 그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인
지욕망, 소유욕망, 자아실현욕망으로 나눌 수도 있다. 전사는 인지가치를 추구하고, 상인은 소유가
치를 추구하고, 문인은 자아실현가치를 추구한다.
전사형 인간은 육체적 가치나 힘을 추구한다. 그들은 육체를 단련하고 육체적 행동에 의하여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의 경쟁과 투쟁을 좌우하는 힘에 민감하고
그 강력한 힘을 추구하고, 그러한 것에서 남성적인 가치를 발견한다. 그들은 힘든 훈련을 견디며
육체적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에 대하여 상찬(賞贊)받기를 바란다. 포괄적으로 말하여 전사는
명예를 추구한다. 명예는 '인지가치'이다.
인지가치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을 추구한다. 전사가 전투에서 용감한 것은 기사들의
사회에서 그가 용감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한 것이다. 명예, 명성, 평판 등은 사회적으로 인정해주
는 것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다. '사장왕 리처드'라고 불리는 것은 사자처럼 용감하다는 평판이
그의 삶의 동기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지욕망을 가지고 있다. 헤겔, 코제에브, 그리고
후꾸야마는 인간의 인지욕망이 역사를 추진하는 중대한 원동력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미
2,500년 전 중국의 묵자가 인간의 인지욕망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는 겸애(兼愛)가 사회적
기반이 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상이라는 지적에 대하여 인간의 인지욕으로 대답하였던 것이다.
물론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허무한 명성을 쫓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명
예를 통하여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소유물,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보람 들을 함께 얻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지가치인 명예를 통하여 이것들을 추구하며 그 최종목적도 인지가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상인형 인간은 토지나 상품이나 화폐와 같이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가치를 추구한
다. 상인이나 사업가가 그 전형이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다. 이들이 지식이나 힘을 추구
할 때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화폐는 상인형 인간에 대하여 객관적
가치형태이며 동시에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재산을 불리는 것은 그들의 탐욕만이 아
니며, 그것이 바로 자아실현이고 성취인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과 일을 조직하고 경제적 거래관계
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사업의 성과를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상인형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포괄적으로 말하여 '소유가치'이다.
부자는 흔히 수전노이다. 수전노는 명성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더 많은 소유
를 추구하는 것이다. 수전노나 부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물질적 가치가 바로 소유가치인 것이다. 상인형 인간은 명예나 자아실현
을 위하여 부(소유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부(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상인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소유가치(부)가 많아짐에 따라서 부자로서의 명예, 그리고 부를
축적하였다는 자기성취의 가치가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소유가
치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최종목적도 소유가치라는 것이다.
한편 문인형 인간은 진리나 이론이나 영원과 같이 비실체적이고 주관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진선미성(眞善美聖)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 등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반드시 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합리성을 초월하는 신념도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합
리성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객관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진리(또는 가치)를 추구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름다움이나 공동선이나 구원이나 진리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한
다. 나아가 이론을 위한 이론, 진리를 위한 진리--실제적 현실과는 무관한 이론--로 나아간다.
이들은 노골적인 힘(또는 폭력)이나 노골적인 이익을 경멸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궁극적인 가치
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는 포괄적으로 말하여 '자아실현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문인형 인간은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의 실현, 자기발견이나 진리의 발견, 자기성취 등을 가치
로서 추구하는 것이다. 산속에 숨어사는 은자(은자)나 평생을 수도원에서 나오지 않고 기도에 정
진하는 수도사 등에게는 이 세상의 명성(인지가치)이나 물질적 부(소유가치)는 뜬 구름 같은 것이
다. 수전노가 명성이나 진리에 둔감하듯이 이들은 물질적 부에 둔감하고 오히려 경멸한다. 그러나
문인의 사회에서는 자아실현이 동시에 소유적 가치(부)나 명성(인지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이고 따
라서 그러한 것들을 함께 얻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인지가치, 소유가치)는 자아실현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최고의 목적도 역시 자아실현가치인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이러한 인간과 가치의 분류는 문명과의 관계에서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이
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와 같이 분류되고 가치가 절대적으로 이와 같이 규정되는 것은 결코 아
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육체적 힘에 흥미와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상인
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기주의라는 것은 상인문명에서의 상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을 인간의 본질로 일반화한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자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하는
것도, 무사가 자신의 검술이 지상에서 최고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결투를 위해 천하를 유랑
하는 것도, 수전노의 부의 축적과 동일한 이기주의라고 한다면, 그러한 이기주의의 개념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상인문명에 너무나 익숙해 있어서 순교자나 검객들의 가치를 예외에 속하고 보
편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전노나 순교자나 검객의 예외성이라는 것은 사실은 상인
과 지식인과 전사의 보편성의 극단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소유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소유가치도 추구하지만 인지가치, 자아실현가치도 추구한다. 오직 문명이 특
정한 가치를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 만드는 것이다. 근대문명은 보편적인 문명도 아니고 가
장 발전된 문명도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한 유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