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눈으로 보는 문명사



제 2편 농업사회 - 계급체제



補論 III : 가치와 문명



1. 미래와 문명
2. 인지(認知)욕망, 소유(所有)욕망, 자아실현(自我實現)욕망
3. 전사문명
4. 상인문명
5. 문인문명




1.미래와 문명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즉 근대사회)는 보편적인 사회인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떠한 시대와 사회보다 가장 발전된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근대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그렇다. 쏘련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이기적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보편성과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기주의라는 용어는 인간의 사유를 혼란시키는 추상(抽象)의 까르마 (Karma)를 안고 있다.

오늘의 근대적 사회는 저질(低質)의 사회이다. 이러한 성격과는 전혀 다른 사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근대적 사회와 다른 사회도 그 이상으로 현실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 은 이기주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근대사회의 성격은 상인문명이다. 그리고 역사에는 상인문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전사문명 이나 문인문명이 있었다. 우리는 근대적 사유에 빠져서 근대사회와는 성격이 다른 문명을 발전되 지 못한 문명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인간의 학살이라는 측면에서 보 면 전사문명의 시대가 오히려 근대사회보다 너그러웠다. 전사문명의 시대에도 근대사의 과정에서 야기된 것과 같이 인간을 잔인하게 학살하지 않았다.(서구 근대사의 과정에서 노예무역, 원주민학 살, 1,2차 세계대전, 전쟁 중의 민간인 학살, 공산주의 혁명과정에서의 학살 등으로 약 3억의 인간 이 학살되었다.) 상인적 성격이 지배하는 폭력이야말로 전사의 폭력보다 더욱 잔인무도한 것이 다. 왜냐하면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명예에는 윤리가 있다--이익을 위하여 합리적(비정한) 목 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문인문명은 폭력과 상업적 이익을 경멸하는 문명이다. 문인문명의 사회에서는 폭력과 상업은 억압된다. 그리하여 물질적 풍요나 군사력은 우월하지 않지만 인간은 덜 탐욕적이고 덜 호전적이 다. 실로 중국의 송나라나 한국의 조선은 당시--그리고 지금까지를 포함해도--세계최고의 문명이 었다. 당시는 평화로왔고 최고의 문화수준에 있었다. 자본주의 정신이 발전하지 않았다거나 문약 하여 군사력이 약하였다는 것은 이러한 평가를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다. 만족(蠻族)이 로마를 이 겼다고 하여 만족의 문명이 로마보다 우수한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근대적 관점이 아니라 보편적 관점에서 과거의 문명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 다. 그것이 미래를 창조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2.인지(認知)욕망, 소유(所有)욕망, 자아실현(自我實現)욕망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분류한다면 인간은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사형 인 간, 상인형 인간, 문인형 인간이 그것이다. 한편 인간이 추구하는 것을 가치라고 할 때, 가치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지가치(認知價値), 소유가치, 자아실현가치가 그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인 지욕망, 소유욕망, 자아실현욕망으로 나눌 수도 있다. 전사는 인지가치를 추구하고, 상인은 소유가 치를 추구하고, 문인은 자아실현가치를 추구한다.

전사형 인간은 육체적 가치나 힘을 추구한다. 그들은 육체를 단련하고 육체적 행동에 의하여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의 경쟁과 투쟁을 좌우하는 힘에 민감하고 그 강력한 힘을 추구하고, 그러한 것에서 남성적인 가치를 발견한다. 그들은 힘든 훈련을 견디며 육체적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에 대하여 상찬(賞贊)받기를 바란다. 포괄적으로 말하여 전사는 명예를 추구한다. 명예는 '인지가치'이다.

인지가치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을 추구한다. 전사가 전투에서 용감한 것은 기사들의 사회에서 그가 용감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한 것이다. 명예, 명성, 평판 등은 사회적으로 인정해주 는 것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다. '사장왕 리처드'라고 불리는 것은 사자처럼 용감하다는 평판이 그의 삶의 동기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지욕망을 가지고 있다. 헤겔, 코제에브, 그리고 후꾸야마는 인간의 인지욕망이 역사를 추진하는 중대한 원동력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미 2,500년 전 중국의 묵자가 인간의 인지욕망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는 겸애(兼愛)가 사회적 기반이 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상이라는 지적에 대하여 인간의 인지욕으로 대답하였던 것이다. 물론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허무한 명성을 쫓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명 예를 통하여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소유물,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보람 들을 함께 얻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지가치인 명예를 통하여 이것들을 추구하며 그 최종목적도 인지가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상인형 인간은 토지나 상품이나 화폐와 같이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가치를 추구한 다. 상인이나 사업가가 그 전형이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다. 이들이 지식이나 힘을 추구 할 때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화폐는 상인형 인간에 대하여 객관적 가치형태이며 동시에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재산을 불리는 것은 그들의 탐욕만이 아 니며, 그것이 바로 자아실현이고 성취인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과 일을 조직하고 경제적 거래관계 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사업의 성과를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상인형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포괄적으로 말하여 '소유가치'이다.

부자는 흔히 수전노이다. 수전노는 명성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더 많은 소유 를 추구하는 것이다. 수전노나 부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물질적 가치가 바로 소유가치인 것이다. 상인형 인간은 명예나 자아실현 을 위하여 부(소유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부(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상인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소유가치(부)가 많아짐에 따라서 부자로서의 명예, 그리고 부를 축적하였다는 자기성취의 가치가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소유가 치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최종목적도 소유가치라는 것이다.

한편 문인형 인간은 진리나 이론이나 영원과 같이 비실체적이고 주관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진선미성(眞善美聖)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 등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반드시 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합리성을 초월하는 신념도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합 리성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객관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진리(또는 가치)를 추구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름다움이나 공동선이나 구원이나 진리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한 다. 나아가 이론을 위한 이론, 진리를 위한 진리--실제적 현실과는 무관한 이론--로 나아간다. 이들은 노골적인 힘(또는 폭력)이나 노골적인 이익을 경멸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궁극적인 가치 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는 포괄적으로 말하여 '자아실현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문인형 인간은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의 실현, 자기발견이나 진리의 발견, 자기성취 등을 가치 로서 추구하는 것이다. 산속에 숨어사는 은자(은자)나 평생을 수도원에서 나오지 않고 기도에 정 진하는 수도사 등에게는 이 세상의 명성(인지가치)이나 물질적 부(소유가치)는 뜬 구름 같은 것이 다. 수전노가 명성이나 진리에 둔감하듯이 이들은 물질적 부에 둔감하고 오히려 경멸한다. 그러나 문인의 사회에서는 자아실현이 동시에 소유적 가치(부)나 명성(인지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이고 따 라서 그러한 것들을 함께 얻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인지가치, 소유가치)는 자아실현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최고의 목적도 역시 자아실현가치인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이러한 인간과 가치의 분류는 문명과의 관계에서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이 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와 같이 분류되고 가치가 절대적으로 이와 같이 규정되는 것은 결코 아 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육체적 힘에 흥미와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상인 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기주의라는 것은 상인문명에서의 상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을 인간의 본질로 일반화한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자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하는 것도, 무사가 자신의 검술이 지상에서 최고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결투를 위해 천하를 유랑 하는 것도, 수전노의 부의 축적과 동일한 이기주의라고 한다면, 그러한 이기주의의 개념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상인문명에 너무나 익숙해 있어서 순교자나 검객들의 가치를 예외에 속하고 보 편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전노나 순교자나 검객의 예외성이라는 것은 사실은 상인 과 지식인과 전사의 보편성의 극단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소유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소유가치도 추구하지만 인지가치, 자아실현가치도 추구한다. 오직 문명이 특 정한 가치를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 만드는 것이다. 근대문명은 보편적인 문명도 아니고 가 장 발전된 문명도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한 유형일 뿐이다.

3. 전사문명

신분계급체제에 묶여 있는 농업사회에서 문명은 지배계급의 성격에 의하여 규정된다. 왜냐하 면 피지배계급은 모두 생산에 종사하고 문화적으로 지배계급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사문명 (戰士文明)은 전사적 인간이 사회의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그들의 문화가 전사회에 보편화된 문명 이다. 중세기사(騎士)의 주된 일이자 오락은 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기사를 제압하거나 토 지를 빼앗거나 전리품을 얻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 등 여러가지 목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러한 이익이 없다고 하더라도 싸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스포츠로 여겨졌다.

전쟁이 없는 경우 봉건영주는 아침에 미사를 올리고 봉건영지내의 송사(---)라든가 기타 행정 적인 업무를 보고는 사냥을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오락으로 죄 인의 교수형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였다. 전투가 줄어들게 되자 마상시합(馬上試合 tournament)이 기사계급의 중대한 행사가 되었다. 그것은 거의 전투와 다름없었으며 차이가 있다 면 그 목적이 오락이고 개인적인 이익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탐욕적이지 않았다.(탐 욕이라고 하더라도 폭력을 통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므로 상인문명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농민들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고 더 많은 옷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질(質)은 별로 나은 것이 아 니었다.

그렇지만 전사문명 역시 하나의 문명인 것이다. 용감성과 명예, 신이나 숙녀에 대한 충성 등 전사의 명분은 단순하고(문인은 복잡하다) 그 본질적 성격은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의하여 규정 되는 인지가치이다. 전사문명에서는 전사가 가장 많은 물질적 가치를 차지하지만 그 방식을 폭력 을 통해서이다. 즉 경제적 가치는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며 직접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사문명에서 물질적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다. 중세의 지배계급은 이자 나 자본이나 투자의 개념이 전혀 없었다.

4. 상인문명

농업사회-계급체제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전형적인 상인이 지배계급이 된 일은 없다. 그리이스 나 로마와 같은 해양문명에서는 교역이 문명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였고, 산업화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자본주의와 유사한 사회였다. 그렇지만 지배계급은 순수한 상인은 아니었다. 지배계급은 거대한 농장을 보유한 지주귀족이었다. 이러한 지주귀족은 전사도 문인도 아니다. 그들은 폭력이 나 학습을 통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종사하는 일은 폭력이나 학습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주요한 일은 농장을 경영하고 교역을 통하여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농장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주귀족은 상인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소유가치를 추구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로마시는 로마제국 전 영역에서 획득되는 농업적 경제잉여가 집결되는 곳 이었다.

지주귀족과 장거리교역 그리고 도시문명이 결합된 것이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상 인문명이다. 상인문명(商人文明)은 상인적 인간이 사회의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그들의 문화가 전 사회에 보편화된 문명이다. 상인의 관점에서 보면 전사들처럼 육체를 단련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 이며 무가치한 것으로 보인다. 상인은 자신의 몸 밖에 있는 객관적 물질적 가치를 소유하고 축적 하는 것에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그들에게 신성(神聖)한 것 은 없다. 왜냐하면 일체의 가치가 객관적(즉 물질적)이고 수량적 계산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는 몸과 정신의 바깥에 있는 객관적 세계이다. 그들이 재산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 은 향락을 위해서가 아니다. 전사의 약탈물이 당연한 부수물이듯이, 상인의 향락과 소비는 당연한 부수물이다. 객관적인 가치인 재산의 축적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소유 와 소비에 의하여 평가되고 모든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적 소유와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다.

5.문인문명

전사문명이나 상인문명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문인문명은 인 류의 위대한 성인들의 문화적 영향력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예수, 석가, 마호멧, 공자가 이들 문인문명을 창출한 성인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문인문명은 창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서구인들에게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것은 지상 의 나라가 아닌 신의 나라이다.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속적인 인간에게 또 하나 의 세계를 더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장된 세계(신의 나라)가 지상에서의 삶의 의미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쟁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하느 님을 위한 투쟁(聖戰)이 된다. 일반인이 보았을 때 무의미한 죽음이 순교라는 중대한 가치를 가지 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배계급을 형성하였을 때, 그들의 세계관에 기초한 문화가 새 로운 문명을 형성한 것이다. 그것은 전사문명과도 다르고 상인문명과도 다르다. 물론 중세의 승려 들은 기사들의 폭력을 금지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있음으로써 전사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또 하나의 정신적 세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종교에 기초한 문명은 불교 문 명권이나 이슬람 문명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공자는 서구적 종교와는 다른 특이한 방식의 문인문명을 형성하였다.

공자는 농업사회에서는 신분계급체제가 철칙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한비자나 묵자나 노자와는 달리 신분계급체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계급사회를 문인문명으로 바꾸 었다.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였다. 일체의 지식을 정리하고 해석하고 교 과서를 만들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일체의 지식을 하나의 데이타 베이스 로 종합정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이후 중국의 어떠한 지식인도 공자가 정리한 지식을 통하여 세계를 해석하게 되었다.

공자가 정리한 지식의 내용에는 몇가지 이념적 요소가 있었다. 첫째로, 무(武:폭력)보다는 문 (文:지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상인계층은 탐욕적이기 때문에 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士農工商의 신분적 서열) 세째로, 지식인(儒集團)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째로, 권력자는 지식인의 여론을 존중해야 하고, 지식인은 권력자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법률이 아니라 습관적 예의(禮)에 의하여 공동체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 은 당나라 시대에 처음 시행되고 송나라에서 본격화된 과거제도(科擧制度)에 의하여 체제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것은 신분계급체제에 있어서 지배계급을 문인화하는 것이었다.

대단히 복잡하고 여러단계에 걸친 과거시험제도는 각 단계가 모두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는 중 대한 가치였다. 모든 지배계급은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공자의 사상을 학습하는 사람들이 었다. 그들은 전사도 아니고 상인도 아니고 학습자였던 것이다. 학습자인 지식인이 지배계급이 된 것이다. 토지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문인에게 배분되었다. 물론 그들의 지식은 실제의 통치에 필요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학습한 지식은 지배계급의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그것은 중국 전체사회의 문화를 규정하였다. 그에 따라서 폭력과 상업은 억제되었다. 권력투쟁은 관료계급 내 에서의 이념투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회는 지식과 예의에 의하여 통합되었다.

2,000년 이상 지속된 중국의 역사에서, 한국의 조선시대, 그리고 베트남에서도 형성되었던 이 러한 문인문명은 대단히 특이한 것이다. 강성하였던 로마도 붕괴하자 그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 라졌다. 그러나 중국의 역대왕조는 비록 문약(文弱)하여 수차례 이민족의 침입으로 붕괴되었지만 그 문명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권력을 장악하고 지배계급이 된 이민족은 중국의 문인문명을 그 대로 수용하여 스스로 문인이 되어갔고, 마침내 그 이민족이 오히려 중국화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