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서정성'과 '주관적해석'의 표현 .

김명식의 분할적 세계 이해 .......................... 강선학 (미술평론가)

1.    그의 작업들은 부담스럽지 않다. 잘 읽어지며, 의미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명료한 색채와 수수한 인상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아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이 부담스러운 경계선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지나가버리는 부분, 부담스럽지 않게 그림을 보는 것이 때론 즐겁기도 하지만 부담되지 않는 만큼 한 작가의 세계가 불명료하고 작업 의미가 무위로 끝나고 있을 때, 그것은 부담에서 자유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이 된다. 그냥 지나가는 재미도 분명 재미이지만, 작품 앞에서 한 작가의 세계가 고통과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그의 형상을 통해 보는 것도 재미이다. 그러나 그런 재미 없이, 작품 앞에서 추체험할 아무런 꺼리가 없다면 그것은 도락이나 단순 소모에 지나지 않는다. 부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간을 죽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곱씹을 것이 없는 작업은 예술이라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런데도 김명식은 곱씹을 부분을 한사코 피해 달아난다. 그런 점이 일반인에게 그의 그림이 선호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생각하기 싫고, 고민하기 싫고, 괜히 무엇인 체하는 것도 싫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그것으로 즐겁기만 하고, 그 위에 상식을 조금 벗어날마한 작은 자극만 있으면 된다. 그 작은 자극을 색다른 체험인양하는 정도로 충분한 현대인에게는 그의 그림의 부담없음은 편하고 충촉감을 준다. 그의 작업을 언급한 몇몇 비평가의 평문에서도 한 작가로서의 세계구축의 치열성보다 화면의 감성적인 이미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공통점이 드러나는 것도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특징이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회화의 자율적 가치","감각적으로 처리된 주제는 단순화한 화면에서 더욱 투명하게 표상을 드러내고 있다.","리드미컬한 터치의 필획 가운데 묻어나오는 형상은 단조로우면서 경쾌하다.","이념적 결속과는 무관하며 해박한 논리와도 떠나있는 다만 그의 감각으로 끌어올리고 자신의 방법으로 쌓아올린 독자적인 양식기반 위에서 전개시킨 표상의 세계이다.","시적이고 해맑은 동심같은 것이 번득이는 청등한 그림이다. "-------김인환의 지적
    그의 그림은 고도의 산술적인 언어선택이라든가, 사상의 명료성과 같은 이지적인 표현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그 감정의 흐름을 가장 명획한 조형언어로 받아내는 것으로써 표현을 대신한다. 어쩌면 그의 그 그림에서 형상이나 형태는 빠른 감정의 전개를 실제화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인지 모른다.","표현감정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는 점","감정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시켜 표현적 이미지 속에 노출시키려는 의지","빠르고 활달하면서도 명쾌한 붓의 움직임이 이끌어내는 형상에서는 미적 쾌감이 감지된다.","시원스럽게 휘두르는 붓의 움직임과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쉬워보이는 사실적인 형상을 통해 마치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한 대리체험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신항섭의 지적
    "운필의 분망함과 색채의 자유로움","필선의 탄력과 공간운영의 여유.대상포치의 완벽성","감각의 즉물화","색채의 자율성과 함께 절대적 가치가 부여되고 있다는 점","색면에 의한 대상의 구축","일상적 삶의 정경이나 정물, 풍경으로부터 설화를 바탕으로 한 대상들(산이나 마을, 개, 새 등의)의 결합 등장" ----윤진섭의 지적
    이런 지적은 모두 그의 색채와 필선, 형상의 특징 등을 잘 지적하고 있고, 아마 이런 특징들이 다른 작가와 변별되는 김명식 특유의 세계를 구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적은 여기서 그친다. 더 이상의 의미추적이 없다. 이 점을 김명식은 자기
반성으로 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그의 작업에 대한 의미 추적은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지적대로 의미없는 일이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일런지는 몰라도 한번쯤은 깊이 고구해야 할 문제이다. 예술은 결코 자연 산물일 수 없으며 인간의 창조물로서 작품은 의미전달이라는 부분이 부정될 수 없다. 그것이 없다면 한 작품은 한 작품으로서 개별적 존재성을 갖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예술로 성립될 수가 없다. 그것은 장식과 예술품을 가르는 경계이며 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지적은 그의 작품에 대한 특징을 지적하는 것이자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그의 작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작업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은 그의 특징이자 관객의 피상적인 욕구와 충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의 작업이 이런 일차적인 특징에만 그친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아쉬우면서도 그들의 지적이 전적으로 옳다는 판단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김명식의 작업 특징을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한계라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들은 그것이 김명식의 단점일 수 있다는 언급을 하지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부담이 없고 필자는 그 부담없는 선에서 부담을 느끼고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2.    그의 작업은 주로 산과 내, 나무와 꽃을 중심으로 한 풍경과 실내의 정경, 탁자와 그 위의 화병과 꽃, 몇 가지의 소도구들이 전부이다. 단조롭고 조촐한 것들이며 작가의 소탈한 태도와 세계체험을 요약해 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실제적인 상황으로서 연출이나 재현된 묘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작업 전반에서 미묘한 음색의 차이를 보이며 나타남으로 단조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실적 묘사가 갖는 상투성을 미세한 차이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그가 초기부터 꾸준히 지켜온 색면분할이라는 방법으로 그의 대상들을 응시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색면분할의 방법은 대상의 외형에 치우치기보다 작가 자신의 감정적 대응을 중시하게 되며, 외각선으로 확인되는 형태보다 감정적 움직임을 중시하게 된다. 이는 곧 작업을 사실적 묘사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사실적 공간 체계에서 화면의 평면공간에 주목하게 함으로 외향보다 내향적 이미지 표출에 열중하게 한다. 실내정경이나 풍경들이 화면 내의 공간, 평면화되는 과정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김명식의 색면분할이며, 외형에 크게 부담되지 않음으로 그는 색채의 자유스런 구사가 가능하게 된다. 심정적인 이미지를 보다 쉽게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나무와 꽃의 이미지, 산과 개울, 가끔씩 나타나는 짐승 따위가 형태보다는 색채로,형태의 차별성보다는 색채의 바이브레이션에 치중하게 된다. 말하자면 구체적인 사물형상을 갖긴 하되 색면으로 분할, 혹은 해체되면서 새로운 해석력을 갖게 된 것이다. 통상적인 산이나 꽃, 나무 등의 이미지가 그 이상의 무엇으로 변주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고, 그 감지는 예사롭지 않은 충족감을 준다. 그곳에는 상식의 확인,그리고 상식 이상의 무엇을 함께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의 정교함은 외형의 묘사와 색채, 공간의 합리성 등으로 해서 개인의 감성적인 측면을 주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교함으로부터 벗어나면서도 무정형의 불확실함에서 오는 혼란에도 가닿지 않는, 그 두 지점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형상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현상적 특징이 김명식 것만일 수는 없다. 작가도 그런 점을 이해하고 있겠지만, 70년대 무정형 회화의 스타일이나 80년대 구상적 스타일의 작업이나 둘다 이념적 무게가 무거웠다. 이 둘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독자적 형상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이 둘을 절충하는 형태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생각할 때, 그와 유사한 작업을 하는 경우는 허다하게 목격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불확실한 이해를 절충의 근거로 삼으면서 행해지는 작태도 없지 않은 만큼, 이런 형상도 그런 형상도 그런 연계의 여지가 없지 않다. 이념과 몰이념 사이에서 버거워하는 일반인의 생리에 영합하여 상업성과의 결탁이라는 사례도 있고 보면 더욱 어려운 입지도 있는 셈이다. 김명식의 작업도 그의 초기 '항구' 작업에서부터 이즈음 작업에까지 색면 분할이라는 작가적 특징을 견지하고 있지만 상식적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석연찮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업이 부담없이 수용된다는 데는 작가의 노력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상식적 이해가 주는 부담없음과 예술적 치열성을 요구하는 사이에는 간
극이 생성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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