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편적 정신
그러면 새로운 정신은 무엇인가? 누구도 그것을 규정할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의 준거기준, 명확한 준거기
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류의 정신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성인들이
제시한 준거이다. 근대의 계몽사상가들이나 마르크스 케인즈에 이르는
근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들(聖人)을 능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무
지한 근대인들의 오만에 불과하다(계몽사상가들은 20세기 종교가 소멸할
것으로 생각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했다.) 오늘날
우리가 준거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계몽사상가들이나 그 이후의 모
든 사상가나 지식인이 아니라, 인간정신의 위대한 봉우리, 바로 마호메
트, 예수, 공자, 석가이다.<<<<<<<<<새로운 정신은 마르크스나 케인즈의
정신이 아니라 예수와 석가의 정신이다>>>>>>>
예수와 석가가 한결같이 가르친 것은 <인간은 신神이라는 바다의 물
방울>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동서양 모든 신비주의(합리주의자가 진리
에 대하여 붙인 이름)의 기본명제이다. 석가 예수 이전의 인도의 한 신
비주의자는 이를 간단히 요약했다. "내가 존재했을 때에는 신이 존재하
지 않았다. 이제 신이 존재하고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에
서 중세의 왜곡을 제거하고 나면 바로 이러한 진수(眞髓)가 남는다. "이
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라
디아서 2:20)" 인간이 평소에 자아(自我)라고 생각하고 있던 의식을 넘
어서면 바로 그곳에 참으로 진정한 자아를 만난다. 그리고 그 진정한 자
아(眞我)는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참으로 위대한 자아(이름붙여
하느님, 神, 空, 道, 眞我)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전하는 예수의 말
씀은 복음(福音 기쁜 소식)이고, 불교의 화엄경은 그에 도달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선종(禪宗)의 공안은 그러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질문
이다. 기독교의 중세전통은 이러한 진아(眞我)를 의인화(擬人化)했고,
그리이스철학은 이러한 진아(眞我)를 실재화 또는 이데아화했다. 그러나
진아(眞我)는 자연(그 하나로서 인간)을 떠나서 독립해 있는 것은 아니
다(諸法實相).
근대의 개인주의-합리주의-물질주의(세속주의)는 바로 이러한 진리
로부터의 일탈이었다. 신을 분리해버린 후 세계를 존재론(또는 실재론)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무엇이 실재냐 하는 것이 아니
라, 신과 나, 신과 자연, 자연과 나의 연대성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 중의 하나가
진리(실재)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연대성)가 진리인 것이다.
이러한 연대성에 입각하여 보면 진리는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데 있고,
가치는 물질주의를 넘어서는 데 있고, 역사의 의미는 세속주의를 넘어서
는 데 있다. 진리는 합리적 자아의식을 넘어서는 데 있고, 가치는 물질
적 탐욕을 넘어서는데 있고, 역사의 의미는 인간정신의 발전에 있기 때
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근대서구정신에 의하여 배척되었
던 인류의 <보편적 정신>에로의 회귀이다. 하지만 그 회귀는 서구 중세
와 근대의 오랜 왜곡을 초월하는 새로운 정신이다.(拙著 {존재로부터의
해방}참조)
이러한 인류역사의 보편적 정신에서 보면, 근대서구정신의 산물인
모든 사회과학은 재해석되어야 하고, 모든 자연과학은 재평가되어야 한
다. 가령 우리의 역사관은 직선적 시간의 관점에 서 있다. 그러나 직선
적 시간이란 허구이다. (직선적 시간이란 존재론적 관점이고, 신의 관점
(연대성의 관점)에서 시간이란 생성이다.) 자유, 민주주의, 소유, 경
쟁, 권리, 의무, 계약, 성장, 발전, 경제, 진보,등등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개념들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공자(孔子)도 재평가되어야 한다. 공
자가 가르친 것은 삶 그리고 인간사회가 의미가 있으려면, 결코 상업사
회(물질주의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상업사회는 인간을
물질화하고 세속화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상인을 억압했다고 하여--봉건
계급을 옹호했다고 하여--비판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자야말로 그 시
대의 한계 내에서 인간정신을 지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찬양받아야 한
다. 동양문명, 특히 유교문명권 자체를 재평가해야 한다. 유교문명을 정
체된 봉건사회로서가 아니라(그 당시에는 모든 사회가 정체된 봉건사회
였다), 효과적으로 폭력을 억압하고(평화를 유지하고) 인간의 탐욕을
체제적으로 순화시켰던 문명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자
도 예수, 석가가 제시한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예수는 교회
앞에서 환전상을 채찍으로 내리쳤으며, 인간은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다. 석가는 욕망과 번뇌의 불길을 불어꺼는 것이
바로 열반이라고 가르쳤다. 근대서구문명은 바로 공자, 예수, 석가가
가르친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일탈한 것이었다. 우리는 저 위대한 성
인들을 복권해야 한다. 근대라는 일탈의 기간 동안 화폐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신(神)과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현실은 이미 우리의 의식을 앞서가고 있다. 지식정보혁명이 이미 상
업사회(물질문명)에서 지식사회(문화사회, 정신문명)에로의 전환을 재촉
하고 있다. 어떤 도정을 거치든 21세기는 상업사회(경제사회)가 아니라
지식사회(문화사회)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경향에 맞추어 위대한
성인들의 정신을 서구중세나 서구근대적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
(실로 인류정신의 보편적 관점)에서 올바르게 해석하고 되살리고 발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