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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世論「일식」의 상징과 태평무 변주
金 榮 泰
김태원은 「짓」창작춤 객원 안무제 채택을 높이 평가했다.
객원안무 채택과 동인춤단체의 응집력
서울과 달리 부산과 같은 지역에서 하나의 동인단체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성장, 거의 전문화된 춤단체로 활동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부산 일원에 무용과를 둔 4년제 정규대학이 네군데 정도와 전문대학이 두엇 정도 있어도 무용과 졸업생의 특성을 감안한 대학원이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직업무용단이 있어도 문자그대로 직업무용단처럼 제대로 규모와 제도를 갖추고 있는 곳이 드물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해도 그들의 ‘상승욕구’를 뒷받침해주고, 춤꾼들을 한 단체에 묶어둔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게된다.
그런 점에서 7주년을 맞게되는 한국창작춤단체 「짓」은 용케도 버텨왔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여대 출신으로 구성된 「하야로비」(현대춤), 경성대 출신의 「배김새」등과 더불어 「짓」은 이젠 명실공히 부산을 대표하는 한 춤단체가 됐다.
편의상 한국창작춤의 흐름을 보다 전통무나 신무용과 가까운 쪽과, 현대춤과 가까운 쪽 두가지로 분류할 것 같으면, 여태까지 「짓」의 활동이나 작품경향은 전자보다 후자에 더 들것이다. 그만큼 과감했고, 춤동작은 서구 현대춤을 방불케할 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이었다.
그렇다고 「짓」의 작품경향이 ‘한국의 것’을 전혀 져버린 무국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춤동작의 최대한의 변용과 활용 - 그것이 이젠 서구의 현대춤과 겨루어도 좋을만큼- 창의적이고 역동적이 되어갔다는 뜻이다.
한국무용극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한 지난해의 「바람의 넋」(김은이 교수 안무)이 그 대표적 경우일 것이다.
이번 7주년 기념공연에는 「짓」회원인 김옥경과 배정현의 작품, 객원안무자인 강미리(창무 회원)의 작품이 오른다. 김옥경은 내게는 미지의 춤꾼이나 배정현의 경우는 다양한 춤짓을 바탕으로 매우 치밀한 구성을 하는 젊은 신예이다.
강미리는 이미 80년대 후반에 「활(闊)」과 같은 우리 대표적인 창작춤을 만든 바 있다. 내게는 동인제 단체에서 객원안무자 채택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으로 주목된다.
부산이나 부산의 춤꾼들은 에너지가 유달리 많다.
솔직하고 거칠고 그만큼 진솔하다. 그러나 너무 끼를 쉽게 발산한 나머지 쉽게 소멸되고, 응집력이 떨어질 우려가 없지 않다. 좀 더 내밀한 자신의 모습과 예술적 춤스타일을 찾는 것이 부산 춤꾼들에겐 유독 필요할 것 같다. 에너지를 ‘안으로 삭힐 것’ 어쩌면 이것이 부산 춤예술의 가장 큰 과제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7주년을 맞게되는 한국창작춤단체 「짓」은 용케도 버텨왔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여대 출신으로 구성된 「하야로비」(현대춤), 경성대 출신의 「배김새」등과 더불어 「짓」은 이젠 명실공히 부산을 대표하는 한 춤단체가 됐다.
편의상 한국창작춤의 흐름을 보다 전통무나 신무용과 가까운 쪽과, 현대춤과 가까운 쪽 두가지로 분류할 것 같으면, 여태까지 「짓」의 활동이나 작품경향은 전자보다 후자에 더 들것이다. 그만큼 과감했고, 춤동작은 서구 현대춤을 방불케할 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이었다.
그렇다고 「짓」의 작품경향이 ‘한국의 것’을 전혀 져버린 무국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춤동작의 최대한의 변용과 활용 - 그것이 이젠 서구의 현대춤과 겨루어도 좋을만큼- 창의적이고 역동적이 되어갔다는 뜻이다.
한국무용극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한 지난해의 「바람의 넋」(김은이 교수 안무)이 그 대표적 경우일 것이다.
이번 7주년 기념공연에는 「짓」회원인 김옥경과 배정현의 작품, 객원안무자인 강미리(창무 회원)의 작품이 오른다. 김옥경은 내게는 미지의 춤꾼이나 배정현의 경우는 다양한 춤짓을 바탕으로 매우 치밀한 구성을 하는 젊은 신예이다.
강미리는 이미 80년대 후반에 「활(闊)」과 같은 우리 대표적인 창작춤을 만든 바 있다. 내게는 동인제 단체에서 객원안무자 채택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으로 주목된다.
부산이나 부산의 춤꾼들은 에너지가 유달리 많다.
솔직하고 거칠고 그만큼 진솔하다. 그러나 너무 끼를 쉽게 발산한 나머지 쉽게 소멸되고, 응집력이 떨어질 우려가 없지 않다. 좀 더 내밀한 자신의 모습과 예술적 춤스타일을 찾는 것이 부산 춤꾼들에겐 유독 필요할 것 같다. 에너지를 ‘안으로 삭힐 것’ 어쩌면 이것이 부산 춤예술의 가장 큰 과제인지 모른다.
(김태원 「짓」 창작춤 프로그램 1993년)
김은이 춤 개성과 평가
「랑겔한스섬... 가문날의 꿈」과 「바람의 넋」(부산무용제 대상) 「신무녀도」「일식」「지금 부재중」 창작춤「태평무 변주」등은 김은이의 춤 안무를 대변해주는 작품들이다.
「일식」을 보고 나는 성서에 나오는 말세론(末世論)을 떠올렸으며(안무자 김은이가 당면한 사회 부패구조의 병리현상 및 좌절감 내지 희망, 그것은 한국춤의 틀을 깨트리는 과감한 시도였다) 태양이 없는 일식권에서의 혼돈이 주제였다고 극찬했다.(김효분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스치로폴을 겹쳐 회색톤으로 착색한 소돔성 장치나(미술 이학순) 조명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첫 막, 두 개의 창문이 열린 빛의 통로, 중간막 죽음의 애도 장면에서의 오픈 공간(그 오픈 공간 속에는 네 사람에게 윤간당한 배정현을 추모하거나, 지구의를 등에 지고 나왔던 김효분의 울음이 들린다)과 실신한 배정현이 솔로를 춤출 때 푸른 빛의 조명 효과를 들 수 있다.
「일식」은 세속적 풍경에서 수난절 미사까지 빠른 템포로 진행되나 장이 바뀔 때마다 연결이 고루지 않은 흠도 남긴다. 일상 풍경에는 바이올린 연주, 동성애 등이 등장하고, 2장 賢者(이인태 역)의 출연 이후 배정현이 능욕당하는 이기심의 장에서 인간의 구원의 문제가 제기된다. ‘메시아가 등장해도 구원은 없다’가 말세론을 육화한 춤의 행간 같다. 배정현은 짓밟히고, 그들 4인의 폭도들은 현자마저 유린한다.(오케스트라 박스로 연결된 좁은 통로로 떨어지는 이인태) 그러나 이인태는 재생하며 배정현과 조우한다. 「일식」에서 짓무용단 고참 배정현 춤과 「일회용 시대」에서 박은정과 2인무를 춤췄던 이인태의 앙상블은 출중하다.
李炯基시 「랑겔한스섬...가문날의 꿈」 주제나 「일식」은 패턴이 비슷했다. 이형기 시 주제나 이윤택 대본이 모두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다룬 점이 같다. 4장에서 이 지상에 남은 두 연인들 외에 모두 소금기둥이 되는 (춤의 끝 처리, 군무들이 빛을 향해 서있는 시선)신화와 현실의 중첩에서 끝 장면은 별안간 멎은 악장을 만나듯 미진함, 미완성품다운 것이 흠이었다. 그러나 지구의 속의 광목으로 결박당하는 소돔성 안의 신비한 여인역 김효분, 배정현의 춤 나이테, 이인태의 담력과 한국무용의 현대화 작업으로 패턴을 바꾼 김은이의 이 시대 상징언어들이 폭발적인 양감으로 다가온 무대였다.
김은이 짓무용단의 「지금 부재중」은 그들의 전작인 「일식」(서울무용제 출품작)이 가졌던 안무상의 치밀성은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무용단의 특성인 일종의 현대적인 절충 미학은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공연의 후반부에 태평무를 활용, 그 특유의 발동작과 흥겹고도 절제있는 춤의 포즈가 결합된(원일 음악「아수라」를 이용)인상적인 춤의 패턴을 보여주었다. 안무자가 공연에 출연, 사고를 당한 비극과 재활(再活)의 의지사이에서 고통받는 과정을 비교적 설득력있게 그려나가면서, 특히 그녀는 군무 처리에 있어서 정지된 조각과 같은 포즈를 활용한 현대적 구성법을 보여주었고, 휠체어를 이용해서 공간을 유려하게 움직여 갔다. 그러면서 영상(안무자가 태평무를 추는)을 투영, 스스로를 ‘춤속에 살고, 또 춤출수 밖에 없는’ 존재로 자신을 각인시켜가면서 동시에 태평무의 흥겹고도 일견 현란한 발동작을 활용, 그것을 ‘오늘의 춤언어’로 변형시킨 점은 자기반영적 효과를 높인 흥미있는 시도였다. 「일식」에서도 그랬지만, 김은이 안무에는 직선적 신체선의 뻗침과 뿌림의 동작이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동시에 춤의 입체적인 조소미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매우 현대적인 것으로서, 우리 창작춤의 영역에서는 특이하게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김영태 「춤」1996년 12월호)
김은이 짓무용단의 「지금 부재중」은 그들의 전작인 「일식」(서울무용제 출품작)이 가졌던 안무상의 치밀성은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무용단의 특성인 일종의 현대적인 절충 미학은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공연의 후반부에 태평무를 활용, 그 특유의 발동작과 흥겹고도 절제있는 춤의 포즈가 결합된(원일 음악「아수라」를 이용)인상적인 춤의 패턴을 보여주었다. 안무자가 공연에 출연, 사고를 당한 비극과 재활(再活)의 의지사이에서 고통받는 과정을 비교적 설득력있게 그려나가면서, 특히 그녀는 군무 처리에 있어서 정지된 조각과 같은 포즈를 활용한 현대적 구성법을 보여주었고, 휠체어를 이용해서 공간을 유려하게 움직여 갔다. 그러면서 영상(안무자가 태평무를 추는)을 투영, 스스로를 ‘춤속에 살고, 또 춤출수 밖에 없는’ 존재로 자신을 각인시켜가면서 동시에 태평무의 흥겹고도 일견 현란한 발동작을 활용, 그것을 ‘오늘의 춤언어’로 변형시킨 점은 자기반영적 효과를 높인 흥미있는 시도였다. 「일식」에서도 그랬지만, 김은이 안무에는 직선적 신체선의 뻗침과 뿌림의 동작이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동시에 춤의 입체적인 조소미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매우 현대적인 것으로서, 우리 창작춤의 영역에서는 특이하게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김태원 「공연과 리뷰」1998년 11,12월호)
미니 인터뷰 지역예술인 김은이
PAF 12월 14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오랜만에 창작춤판을 여는 것으로 되어있다. 작품 「일식」과「지금 부재중」으로 아는데, 두 작품 다 서울무용제 출품작이었지 않은가. 「지금 부재중」은 올해 제20회 서울무용제, 그리고 「일식」은 96년 제18회 서울무용제 작품이었다.
김은이 그렇다. 3년만이다. ‘95년 대구에서의 사고(事故) 이후로 그동안 공연을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팠던 다리도 많이 나아지고 있고, 나의 작품세계도 정리할겸 사실상 좀 무리해서 공연을 시도하는 셈이다. 그간 안무는 했지만 직접 출연은 못했는데, 이번 「지금 부재중」에서는 직접 출연도 해보았다. 나의 근거지가 부산이니까 아무래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두 작품 모두 다른 어떤 춤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PAF「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은 아다시피 자서전적이다. 그러나 흥미로왔던 것은 비디오 영상을 통한 「태평무」와 자신, 또 공연 후반부에「태평무」의 유명한 나선형식, 혹은 지그재그식으로 치마를 잡고 발동작을 보여주는 군무(群舞)를 춘 부분이었는데, 이것을 요즘 창작춤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시각으로 본다면 ‘김은이와 짓무용단의 어떤 기본무(基本舞)’와 같은 것이 될 것이고,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른바 문학이론 등에서 얘기하는 ‘간(間) 텍스트성(intertextuality)’정도가 될 것인데...
김은이 아직 그와 같은 지적은 없었다. 대부분 ‘왜 하필 태평무를 보여주는가’하는 그런 시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바람의 넋」(92)과 같은 작품에서 흑백사진을 이용하면서 나의 내면적 풍경이라할까, 잔상(殘像)은 이미 보여준 일이 있기 때문에 영상(사진)과 나의 춤과의 관계에 대한 것은 앞에 다뤘다고 본다. 사실 「태평무」도 오늘에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다 추고 있지만, 나의 경우 그 춤을 강선영선생님에게서 배워 매우 일찍부터 추어왔고, 90년도 초반부터 ‘전통춤 5인전’과 같은 기획공연을 통해 그것을 본격적으로 대중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때 김태원 선생의 당시 춤리뷰도 여러 무용가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아는데...
PAF「일식」 「지금 부재중」그 이전에 「랑겔한스섬 가문날의 꿈」(90년)까지 합치면 세 번째 서울무용제에 모두 참가한 셈이다. 한번도 수상권에는 들지 못했다.
김은이 글쎄 매번 운이 나빴다면 나빴을 것이고, 한편으로 나로서는 우리 춤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교육현장에 있는 입장으로서 한번도 수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제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것인지 난감하다면 난감하기까지 하다. 이번의 「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도 나에 대한 얘기가 많아서 다소의 흠은 있었겠지만, 이른바 수상작들에 비해 본다면 그 작품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식」같은 경우는 좋은 평(評)도 받았다. 우리 춤계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엇인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나로서는 모든 것을 여기에 말할 형편은 아니지만, 여하튼 일부 춤계의 구조는 크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 것 때문에 또 춤을 안출 수는 없는 일이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것이고, 이젠 좀 역(逆)으로 자신감을 얻은 부분도 있다.
PAF 올해의 무용제 속에서 「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은 어떤 부분에서 수상권에 들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심사 결과를 보니까, 다소 엉뚱하다고나할까, 그렇게 한 작품에 대상(大賞)등 여러 상을 안주어도 될 것 같았는데, 심사의 경험이랄까 노련미가 없어서 한쪽으로 상이 몰린 것 같다.
김은이 그런 현상이 요즘 자주 벌어지는 것 같다. 올해 부산무용제 같은 경우도 유사했다고 본다. 어떤 원칙에 의해서 심사는 하되, 심사위원들간에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리고 솔직히 지방 무용단의 경우는 홀대하는 현상이 있다. 부산의 경우 제2의 춤시장인데도, 무용제를 통해 한 사람(정귀인) 정도 밖에는 주목받는 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 특히 무용제와 연관된 부정적인 소문에 대해서는 실제 목격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매번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PAF 이야기를 바꾸자. 특히 90년대에 들어서 「김은이와 짓무용단」은 앞서 언급된 세 작품 이외에도 「바람의 넋」(92년), 「신무녀도」(93년)와 같은 대작을 올렸고, 후배인 강미리(현 부산대 교수)를 초청해서 「욕?욕?욕」과 같은 객원안무작품, 그리고 올해 배정현 안무로 「유빙(流氷)」과 같은 작품들을 올렸다. 모두 이른바 한국창작춤의 장르에 드는 작품들이다. 그런가하면 김선생은 앞서 언급한대로 「태평무」와 같은 전통춤을 20대후반부터 오래 추어왔다. 자신의 춤의 방향이나 철학이랄까...
김은이 어차피 전통은 우리춤의 훈련과 창작과정에 밑거름이 되어야 하니까, 그점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현대화’하느냐, 오늘의 것으로 만드느냐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작고한 강이문 선생님과 같은 이들이 나에게 붙인 ‘수정파(修正派)’라고 하는 언급이 늘 기억에 남는다. 강선생님이 무슨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의 초기 작품에 대한 것(80년대 중반 「삼마제」)이었기에 별다른 의미없이 그 표현을 쓴 것 같다. 당시에는 전통이나 민속의 여러춤(승무, 바라춤, 북춤, 병신춤, 허튼춤)과 창작적 요소를 불교적 주제에 혼용해서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전통과 창작이 섞이면서 작품이 현대적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특히 「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에서는 전통을 적당히 변형하거나 섞어준 것이기 때문에 - 더나아가 그것이 오늘에도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있기 때문에 - 나로서는 새로운 시도였고, 그 시도를 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 생각한다.
PAF 강선생님의 지적은 재미있다. 사실 나는 김선생이나 그와 유사한 일군의 창작춤꾼들을 ‘급진적 절충주의’란 개념아래서 그 작업스타일을 분류해볼 작정이었다. 여기에는 김숙자(한성대), 오은희(서울예대)와 같은 이들이 들어갈 수 있고, 이 유파는 90년대 창작춤의 한 중요한 현상이었다 할 수 있다. 즉 현대성과 전통성이 절충을 이루되 때로는 매우 현대적인 것으로 ‘현대무용적’이라할 만큼 발전되어 간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현대무용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은 없나?
김은이 그 말을 들으니 사실 나의 춤작업의 절반은 현대무용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전여고 졸업후 이대에 입학해서는 육완순 선생에게서 현대무용을 배웠고,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춤의 구성, 창작과 연관해서는 어떤 측면 ‘현대무용적’으로 사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춤동작의 선택은 아무래도 한국춤으로 나올 수 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 창무회 전신인 ‘이영회(梨影會)’에서 나는 총무로 임학선 선배와 그 모임을 이끌어간 적이 있고, 이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우리 전통무를 추기도 했다. 따라서 매우 전통적인 것, 창작춤이란 수정된 것, 그리고 현대무용적인 것, 그 모두가 나의 춤에는 섞여있다고 할 수 있고, 이젠 그것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절충’하느냐가 내게 남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어떤 춤의 방법을 내 것이라 내세울 수는 없으나, 여하튼 ‘짓’무용단 창단이 있었던 87년 이후부터는 계속 창작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PAF부산여전을 거쳐 현재 동아대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 자신의 춤교육관은 무엇인가?
김은이 전통을 매번 강조하지만 비교적 창작과정에 있어서는 자유를 많이 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제자들의 작업이 좀 열려져있다고나 할까, 급진적이라고나 할까, 앞서 강이문 선생이 얘기한 수정 단계는 많이 벗어나고 있다. 따라서 춤선 등이 직선적이고 거칠어 보일 때는 있지만, 지나치게 춤의 ‘맛들임’에 빠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와 더불어 우리 춤의 호흡이라고 하는 것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아직 무엇을 정확히 파악하거나 나의 방법을 내세울 단계는 아니지만, 전통, 현대를 모두 강조하는 가운데 그 중간에서 - 혹은 그 양극단을 넘어 -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관심있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주기를 바란다.
김은이 안무 「바람의 넋」은 오정희의 소설을 무용극화시킨 경우에 속했다. 서툴고 불충분한 무대미술, 덜 매끄라운 진행에 의해 공연이 방해를 받긴 했지만 「바람의 넋」은 탄탄한 구성, 배음과 효과음이 풍부한 안일웅의 작곡, 슬라이드를 이용한 적절한 시각적 효과와 의미있는 사인의 구축에 의해 볼거리 있는 무용극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춤의 전개는 단순한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으면서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압축해주고 있었다.
공연을 통해 돋보였던 것은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던 바람의 군무와 꽤 농도있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김은이 춤, 세갈래로 나눠진 여성적 자아의 모습(3쌍의 듀엣으로 표현됨)과 고무신과 하이힐, 그리고 맨발로 표현되던 시각적 메타포들이었다. 군무는 흩어지며 모이며 손을 떨거나 팔을 꺾거나, 발로 무대를 두드리거나 하면서 바람의 존재를 계속 암시해 주고 있었고, 김은이의 춤은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해가면서 뒤틈, 구름, 가벼운 도약을 포함해서 꽤 풍부한 몸짓언어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배정현, 김미경, 황지인과 남성 3인(김용철 포함)의 듀엣은 무대공간을 부분적으로, 또 병렬적으로 이용하면서 매우 굴곡있고 표현적인 춤동작을 보여주었다. 배정현의 섬세한 긴장감, 김미경의 동성(動性)과 순발력, 황지인의 기교적인 곡예는 모두 그것들에 해당할 것이다. 동시에 남편역으로 출연했던 홍기태는 비록 남편의 성격을 개성있게 부각시키지는 못했지만, 자연스럽고 꽤 정감이 가는 춤의 태(態)를 갖고 있는 남성 춤꾼으로 주목해볼 만 했다.
또 이 공연의 특이성은 여성적 주체(主體)와 연관되는 메타포로 이용되었던 슬라이드 사용이었다. 대부분의 슬라이드는 일종의 배경그림이나 장식물적 성격을 띠는데 반해서 이번의 슬라이드(최민식 사진)는 작품의 의미를 강화시켜 주고 암시해주는 시각적 매체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즉 검은 고무신, 하이힐, 한쪽이 없어진 하이힐, 진흙이 묻은 발등은 각각 주인공의 기억 속의 삶(6?25때), 여성으로서의 성장과 동시에 방황을 암시해주고 있었고, 그 이미지들이 모두 발에 초점이 맞춰진 것들이어서 그것은 논리적으로 연결된 사인들의 체계를 구축해주고 있었다.
50분이 넘는 이 무용극이 통상 관객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용극의 제대로된 구조를 갖지 못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인데 비해서 이 무용극은 적절한 반복, 변화, 극적상황제시 등이 첨가되고 있다. 미술적 효과의 강화와 성격의 깊이있는 표출, 다소 리얼한 의상이 첨부될 수 있다면 공연은 훨씬 설득력과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은이 그렇다. 3년만이다. ‘95년 대구에서의 사고(事故) 이후로 그동안 공연을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팠던 다리도 많이 나아지고 있고, 나의 작품세계도 정리할겸 사실상 좀 무리해서 공연을 시도하는 셈이다. 그간 안무는 했지만 직접 출연은 못했는데, 이번 「지금 부재중」에서는 직접 출연도 해보았다. 나의 근거지가 부산이니까 아무래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두 작품 모두 다른 어떤 춤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PAF「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은 아다시피 자서전적이다. 그러나 흥미로왔던 것은 비디오 영상을 통한 「태평무」와 자신, 또 공연 후반부에「태평무」의 유명한 나선형식, 혹은 지그재그식으로 치마를 잡고 발동작을 보여주는 군무(群舞)를 춘 부분이었는데, 이것을 요즘 창작춤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시각으로 본다면 ‘김은이와 짓무용단의 어떤 기본무(基本舞)’와 같은 것이 될 것이고,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른바 문학이론 등에서 얘기하는 ‘간(間) 텍스트성(intertextuality)’정도가 될 것인데...
김은이 아직 그와 같은 지적은 없었다. 대부분 ‘왜 하필 태평무를 보여주는가’하는 그런 시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바람의 넋」(92)과 같은 작품에서 흑백사진을 이용하면서 나의 내면적 풍경이라할까, 잔상(殘像)은 이미 보여준 일이 있기 때문에 영상(사진)과 나의 춤과의 관계에 대한 것은 앞에 다뤘다고 본다. 사실 「태평무」도 오늘에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다 추고 있지만, 나의 경우 그 춤을 강선영선생님에게서 배워 매우 일찍부터 추어왔고, 90년도 초반부터 ‘전통춤 5인전’과 같은 기획공연을 통해 그것을 본격적으로 대중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때 김태원 선생의 당시 춤리뷰도 여러 무용가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아는데...
PAF「일식」 「지금 부재중」그 이전에 「랑겔한스섬 가문날의 꿈」(90년)까지 합치면 세 번째 서울무용제에 모두 참가한 셈이다. 한번도 수상권에는 들지 못했다.
김은이 글쎄 매번 운이 나빴다면 나빴을 것이고, 한편으로 나로서는 우리 춤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교육현장에 있는 입장으로서 한번도 수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제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것인지 난감하다면 난감하기까지 하다. 이번의 「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도 나에 대한 얘기가 많아서 다소의 흠은 있었겠지만, 이른바 수상작들에 비해 본다면 그 작품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식」같은 경우는 좋은 평(評)도 받았다. 우리 춤계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엇인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나로서는 모든 것을 여기에 말할 형편은 아니지만, 여하튼 일부 춤계의 구조는 크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 것 때문에 또 춤을 안출 수는 없는 일이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것이고, 이젠 좀 역(逆)으로 자신감을 얻은 부분도 있다.
PAF 올해의 무용제 속에서 「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은 어떤 부분에서 수상권에 들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심사 결과를 보니까, 다소 엉뚱하다고나할까, 그렇게 한 작품에 대상(大賞)등 여러 상을 안주어도 될 것 같았는데, 심사의 경험이랄까 노련미가 없어서 한쪽으로 상이 몰린 것 같다.
김은이 그런 현상이 요즘 자주 벌어지는 것 같다. 올해 부산무용제 같은 경우도 유사했다고 본다. 어떤 원칙에 의해서 심사는 하되, 심사위원들간에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리고 솔직히 지방 무용단의 경우는 홀대하는 현상이 있다. 부산의 경우 제2의 춤시장인데도, 무용제를 통해 한 사람(정귀인) 정도 밖에는 주목받는 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 특히 무용제와 연관된 부정적인 소문에 대해서는 실제 목격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매번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PAF 이야기를 바꾸자. 특히 90년대에 들어서 「김은이와 짓무용단」은 앞서 언급된 세 작품 이외에도 「바람의 넋」(92년), 「신무녀도」(93년)와 같은 대작을 올렸고, 후배인 강미리(현 부산대 교수)를 초청해서 「욕?욕?욕」과 같은 객원안무작품, 그리고 올해 배정현 안무로 「유빙(流氷)」과 같은 작품들을 올렸다. 모두 이른바 한국창작춤의 장르에 드는 작품들이다. 그런가하면 김선생은 앞서 언급한대로 「태평무」와 같은 전통춤을 20대후반부터 오래 추어왔다. 자신의 춤의 방향이나 철학이랄까...
김은이 어차피 전통은 우리춤의 훈련과 창작과정에 밑거름이 되어야 하니까, 그점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현대화’하느냐, 오늘의 것으로 만드느냐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작고한 강이문 선생님과 같은 이들이 나에게 붙인 ‘수정파(修正派)’라고 하는 언급이 늘 기억에 남는다. 강선생님이 무슨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의 초기 작품에 대한 것(80년대 중반 「삼마제」)이었기에 별다른 의미없이 그 표현을 쓴 것 같다. 당시에는 전통이나 민속의 여러춤(승무, 바라춤, 북춤, 병신춤, 허튼춤)과 창작적 요소를 불교적 주제에 혼용해서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전통과 창작이 섞이면서 작품이 현대적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특히 「지금 부재중」과 같은 작품에서는 전통을 적당히 변형하거나 섞어준 것이기 때문에 - 더나아가 그것이 오늘에도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있기 때문에 - 나로서는 새로운 시도였고, 그 시도를 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 생각한다.
PAF 강선생님의 지적은 재미있다. 사실 나는 김선생이나 그와 유사한 일군의 창작춤꾼들을 ‘급진적 절충주의’란 개념아래서 그 작업스타일을 분류해볼 작정이었다. 여기에는 김숙자(한성대), 오은희(서울예대)와 같은 이들이 들어갈 수 있고, 이 유파는 90년대 창작춤의 한 중요한 현상이었다 할 수 있다. 즉 현대성과 전통성이 절충을 이루되 때로는 매우 현대적인 것으로 ‘현대무용적’이라할 만큼 발전되어 간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현대무용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은 없나?
김은이 그 말을 들으니 사실 나의 춤작업의 절반은 현대무용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전여고 졸업후 이대에 입학해서는 육완순 선생에게서 현대무용을 배웠고,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춤의 구성, 창작과 연관해서는 어떤 측면 ‘현대무용적’으로 사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춤동작의 선택은 아무래도 한국춤으로 나올 수 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 창무회 전신인 ‘이영회(梨影會)’에서 나는 총무로 임학선 선배와 그 모임을 이끌어간 적이 있고, 이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우리 전통무를 추기도 했다. 따라서 매우 전통적인 것, 창작춤이란 수정된 것, 그리고 현대무용적인 것, 그 모두가 나의 춤에는 섞여있다고 할 수 있고, 이젠 그것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절충’하느냐가 내게 남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 어떤 춤의 방법을 내 것이라 내세울 수는 없으나, 여하튼 ‘짓’무용단 창단이 있었던 87년 이후부터는 계속 창작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PAF부산여전을 거쳐 현재 동아대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 자신의 춤교육관은 무엇인가?
김은이 전통을 매번 강조하지만 비교적 창작과정에 있어서는 자유를 많이 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제자들의 작업이 좀 열려져있다고나 할까, 급진적이라고나 할까, 앞서 강이문 선생이 얘기한 수정 단계는 많이 벗어나고 있다. 따라서 춤선 등이 직선적이고 거칠어 보일 때는 있지만, 지나치게 춤의 ‘맛들임’에 빠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와 더불어 우리 춤의 호흡이라고 하는 것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아직 무엇을 정확히 파악하거나 나의 방법을 내세울 단계는 아니지만, 전통, 현대를 모두 강조하는 가운데 그 중간에서 - 혹은 그 양극단을 넘어 -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관심있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주기를 바란다.
대학로 카페 윈
(대담 김태원「공연과 리뷰」 1998년 11,12월호)
(대담 김태원「공연과 리뷰」 1998년 11,12월호)
김은이 안무 「바람의 넋」은 오정희의 소설을 무용극화시킨 경우에 속했다. 서툴고 불충분한 무대미술, 덜 매끄라운 진행에 의해 공연이 방해를 받긴 했지만 「바람의 넋」은 탄탄한 구성, 배음과 효과음이 풍부한 안일웅의 작곡, 슬라이드를 이용한 적절한 시각적 효과와 의미있는 사인의 구축에 의해 볼거리 있는 무용극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춤의 전개는 단순한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으면서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압축해주고 있었다.
공연을 통해 돋보였던 것은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던 바람의 군무와 꽤 농도있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김은이 춤, 세갈래로 나눠진 여성적 자아의 모습(3쌍의 듀엣으로 표현됨)과 고무신과 하이힐, 그리고 맨발로 표현되던 시각적 메타포들이었다. 군무는 흩어지며 모이며 손을 떨거나 팔을 꺾거나, 발로 무대를 두드리거나 하면서 바람의 존재를 계속 암시해 주고 있었고, 김은이의 춤은 적절한 무게감을 유지해가면서 뒤틈, 구름, 가벼운 도약을 포함해서 꽤 풍부한 몸짓언어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배정현, 김미경, 황지인과 남성 3인(김용철 포함)의 듀엣은 무대공간을 부분적으로, 또 병렬적으로 이용하면서 매우 굴곡있고 표현적인 춤동작을 보여주었다. 배정현의 섬세한 긴장감, 김미경의 동성(動性)과 순발력, 황지인의 기교적인 곡예는 모두 그것들에 해당할 것이다. 동시에 남편역으로 출연했던 홍기태는 비록 남편의 성격을 개성있게 부각시키지는 못했지만, 자연스럽고 꽤 정감이 가는 춤의 태(態)를 갖고 있는 남성 춤꾼으로 주목해볼 만 했다.
또 이 공연의 특이성은 여성적 주체(主體)와 연관되는 메타포로 이용되었던 슬라이드 사용이었다. 대부분의 슬라이드는 일종의 배경그림이나 장식물적 성격을 띠는데 반해서 이번의 슬라이드(최민식 사진)는 작품의 의미를 강화시켜 주고 암시해주는 시각적 매체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즉 검은 고무신, 하이힐, 한쪽이 없어진 하이힐, 진흙이 묻은 발등은 각각 주인공의 기억 속의 삶(6?25때), 여성으로서의 성장과 동시에 방황을 암시해주고 있었고, 그 이미지들이 모두 발에 초점이 맞춰진 것들이어서 그것은 논리적으로 연결된 사인들의 체계를 구축해주고 있었다.
50분이 넘는 이 무용극이 통상 관객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용극의 제대로된 구조를 갖지 못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인데 비해서 이 무용극은 적절한 반복, 변화, 극적상황제시 등이 첨가되고 있다. 미술적 효과의 강화와 성격의 깊이있는 표출, 다소 리얼한 의상이 첨부될 수 있다면 공연은 훨씬 설득력과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김태원 「춤」1992년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