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낙관주의의 허구
문명이 고사(枯死)하고 쇠퇴하는 동안 현체제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세계의 부유한 사람들)은 여전히 장미빛 미래를 이데올로기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나중에 죽을 사람들이고, 그들의 눈에
는 세계는 아름답고 미래는 밝게 보이며, 그 밝은 이데올로기가 불만자
들을 마비시킴으로써 그들을 안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서구주의자들은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시장체제가 제공하는 장미
빛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역사의 종언론이다. 후꾸야마
(Fransis Fukuyama:{The end of History})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역사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탈역사지역에서는 더 이상 체제적 개선의 여
지가 없고, 오직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체제에 이르지 못한 지역에서만
역사가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체제와 정치체제간의 모
순을 간과한 낙관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세계시
장은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파멸의 기제이다.
드락카는 2,010년에는 오늘날 제3세계의 4분의 3이 선진국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비역사적인 상상이다.
근대사 이후로 비서구국가로서 선진국에 오른 나라는 일본뿐이다. 경제
적 선진국에 이르는 길은 약 100년간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
다. 많은 나라들이 가능성을 보였지만 중도에 탈락했다. 1960년대에 강
력한 후보였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푸에르토리코, 칠레, 뉴질랜드 등
모든 국가들이 30년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어떤 학
자들은 한국이나 아시아의 용들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Paul Krugman:
{Peddling prosperity}등). 자본주의는 만인을 승자로 만드는 장치가 아
니다. 세계의 다수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성장을 이룩하고 그리하여
서구문명이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주장은 환상이다.
또 다른 낙관주의는 아시아의 국가들이 세계자본주의와 서구문명을
힘차게 이끌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영국/미국에 이어 일본/중국을 중
심으로 한 동북 아시아지역이 자본주의의 중심국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틀린 것이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근대
서구문명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근대서
구문명(서구근대체제)이 유지되는 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라고 하여 앞
에서 말한 <세기말의 딜렘마>를 해결하는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
다. 여전히 서구근대체제가 유지되고 동북아시아지역이 강화된다면 헌
팅턴(Samuel Huntington)의 예견과 같이 같은 서구문명의 주도권을 놓고
유교문명권과 서구문명권의 충돌이 야기될 것이다. 근대서구문명의 성
격이 유지된다면, 패권의 이동은 반드시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A.F.K.Organski : {World Politics}). 그러나 그 전쟁은 아마도 인류
를 전멸시키는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이다.
서구문명에 대한 가장 광범한 낙관주의는 소위 정보사회론이다. 그
러나 정보사회의 장미빛 미래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근대국가-자본
주의시장체제를 무의식적인 전제로 하고 있다(그들은 체제에 관해서 논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체제와 문명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간
주하고 정보기술의 가능성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지식
정보혁명이 어떠한 딜렘마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논의하였다. 그것은 근
대체제를 전제로 하면 고용문제, 분배의 악화, 카지노자본주의를 야기
시키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국가와 폭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오히려
근대서구문명을 파멸시킬 것이다.
또 다른 서구주의자들은 시민사회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제 국가
가 약화되고 시민사회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초월
하는 시민사회의 연대에 의하여 새로운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
은 아름다운 환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선진국에서부터 시민사회
가 붕괴되고 있다. 현재는 중산층의 시민사회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계
급화(불평등화)의 시대이다. 지식정보혁명의 충격은 중산층을 분해시킴
으로서 시민사회를 와해하고 있는 것이다(중산층이란 산업사회에 존재하
는 것이다. 클린턴은 95년 연두교서에서 (파괴되고 있는) 시민사회의
재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다). 근대적 도덕이 붕괴하고 근대적 시민의식
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다니엘 벨(Daniel Bell) 브레진스키
(Zbigniew Brezinski) 등은 이미 미국의 정신이 붕괴했으며 다른 문명
권에 호소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다.(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통제불능의 사회}). 결국 시민사회론
은 서구인의 레토릭(rhetoric)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 지방화가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길처럼 여
기고 있다. 이것은 중간에 있는 근대국가를 협공하여 변화시킨다는 의미
에서 새로운 시대에의 경향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화/지
방화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여 자본이 국가와 권력을 초월하였다는 것,
전인류와 모든 지방이 인간적 삶에 대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경쟁이
작열하는 세계시장에 던져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 결과 세계경쟁
에서의 승자는 항상 극소수이다. 다만 몇개의 지방(또는 도시)만이 섬처
럼 번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섬도 결국은 대양의 파도에 휩쓸려
잠기게 될 것이다. 로마가 그랬다. 서구적 이념의 마술에 빠져 지방화
는 무조건 좋은 것처럼 생각하고, 세계화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생
각하는 것으로,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미
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결론은 서구근대체제--근대국가, 자본주의시장체제
--를 전제로 하는 한 구원의 길은 없다는 것이다. 문명의 전환은 최종적
으로 이러한 서구근대체제를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참으로 새로운 21세기 인류문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과제는 근대서구문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것
이다. 그것은 참으로 거대한 일일지 모르나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