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물질주의와 환경문제의 딜렘마

<<<<중국과 인도의 24억 인구(미국의 12배)가 서구식의 산업화를 하 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지구를 환경재난에 빠뜨릴 것이다. 그렇다 고 서구식의 방식이 아닌 산업화---오염없는 산업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 다>>>>>>>

서구 중세의 종교적 세계를 벗어난 근대서구문명의 본질은 세속적 물질적 발전이었다. 이제 그 물질문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까 지 부(富)는 무조건 좋은 것이었고, 이를 향하여 진보의 신화, 경제개 발의 신화가 우리를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물질주의는 더 이 상 선진국 국민들의 기대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현대는 기대체감의 시 대라고 말해지기도 한다(Paul Krugman:{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 물질적 풍요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 가 물질적 풍요의 한계효용 그 자체가 체감하고 있다. 오늘날 개개인에 게 풍요를 실감하게 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에 비해 물질적 풍요의 진전은 대단찮은 것이 되었다. 이미 풍요의 찬 가는 사라졌다. 우리는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부유한 자들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금융자산의 축적을 추구한다.

여기에 환경문제가 물질적 발전의 신화에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했 다. 환경문제는 자유재(自由財: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재 화)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오염없는 생산과 소비는 없다. 물질적 생산소비는 동시에 오염의 생산과 축적이다. 진보와 개발은 쾌락만이 아 니라 고통도 함께 야기한다. 현실적으로 실감할 수 없는 경제성장의 수 치(數値)보다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고통의 증대가 더욱 현저한 것이 되 었다. 환경문제는 무제한한 물질적 진보의 신념을 산산조각으로 부서뜨 리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더 높은 성장(수치적 성장)을 포기해서라도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장되고 있다.

근대서구문명은 환경문제를 논외로 삼았다. 영국이나 미국이 경제성 장을 할 때에는 누구도 환경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자연이 물 질적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이다. 말하자면 근대서구문명은 이 제 <자연의 적대>에 부딪친 것이다. 근대서구문명의 원동력이 물질적 성 장인데도,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근대서구문명자체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근대서구문명이 부딪친 또 하나의 딜렘마이다. 서 구인에게 문명이란 자연의 정복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속에 사는 것이지, 자연의 시체 속에 사는 것이 아니다.


4. 불평등의 세계화 : 전세계를 횡단하는 계급화

1992년 세계 인류의 20%가 세계 부(富)의 82.7%를 차지하고 있으 며, 가난한 20%의 사람들이 세계 부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상층부 20%의 사람들의 소득합계는 하층부의 20%의 사람들의 소득합계의 60배에 이른다. 이것은 1950년대에 비하면 그 격차가 2배나 벌어진 것이다(그 때는 30배였다: UNDP 1992년 판 <인간개발보고서>). 유엔개발회의는 이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세계의 분배구조가 <샴페인 잔>과 같이 생겼 다고 한다.

이러한 인류의 불평등과 계급화는 다음 세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첫 째, 경제의 세계화에 의하여 부유한 자는 전세계를 무대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의 약화는 재분배정책(내지 복지정책)을 불가능하 게 만들고 있다. 재분배정책을 감행하면 세계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둘 째, 자본주의시장체제에서 지식정보혁명은 인간을 또 하나의 측면에서 불평등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자본소유가 유일한 불평등의 주요한 원인 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에 더하여 또 하나의 요소 즉, 지식정보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사이에 분배격차가 야기되고 있다. 이제 가난하 고 무식한 사람은 뿔뿔이 흩어져 천한 서어비스업에 종사해야 한다. 세 째, 이러한 불평등구조가 세계전체를 무대로 국가간의 불평등,각국 내부 의 불평등이라는 이중구조를 하고 있다. 불평등이 세계화하고 있는 것이 다.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지적대로 자본주의시장체제는 불평등 을 본질로 한다(불평등은 시장의 본질에 속한다). 근대문명에서 이러한 불평등과 계급화는 국가에 의하여 제어(制御)되었다. 국가는 세가지 방 식으로 계급화를 제어해 왔다. 첫째, 복지정책과 같이 재분배정책으로 불평등을 완화했다. 둘째, 폭력(군대)에 의하여 가난한 계급의 무장행동 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즉 노동자 계급은 굶어죽을지라도 무장행동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째, 부유한 국가는 가난한 국가(과거의 비서 구국가)를 폭력에 의해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가령 약탈을 하고 식민지 로 만들어도 그것이 서구문명을 파괴하지는 않았다(오히려 서구문명을 발전시키는 영양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되 었고, 역전되고 있다. 우선 국가는 재분배정책 내지 복지정책을 포기해 버렸다. 가난한 계급은 범죄라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약 과 범죄의 증가는 선진국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선 진국은 후진국을 폭력(군대)으로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왜 우리시대에 세계의 주변부에 내전이 빈발하고 난민의 문제가 중 대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가? 그것은 자본주의시장체제가 생존을 보장 할 수 없는 지역의 불가피한 반응인 것이다. 근대사는 중심부가 주변부 와는 상관없이 또는 주변부의 착취를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온 시기였다. 주변부가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그것이 문명의 발전에 장애가 되지 못했 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역전되고 있다. 주변부의 황폐화가 중심부를 위 협하고 있는 것이다. 승자의 역사가 끝나고 패자(敗者)의 역사가 시작되 고 있는 것이다.

세계시장과 근대국가의 딜렘마, 지식정보혁명과 자본주의시장체제의 딜렘마, 물질주의와 환경문제의 딜렘마, 전세계를 횡단하는 계급화, 이 러한 세기말의 딜렘마는 근대서구문명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 은 단순한 부작용인가? 아니면 문명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근원적인 문제인가?



III.문명의 쇠퇴/붕괴

1.역사의 선례

오늘날 인류문명(근대서구문명)이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는 문명자체 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근대서구문명을 이끌어온 기 본적 장치--근대국가, 자본주의시장체제--가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역사적 선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 다. 그리이스 문명의 종말은 세계화한 시장과 지역국가간의 딜렘마를 해 결하지 못함으로써 붕괴한 예이다. 로마문명의 종말은 적이 사라진 상황 에서 문명권 전체를 횡단하는 계급화의 딜렘마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문명이 붕괴한 예이다.

1)그리이스 문명의 종말

근대서구문명에 대한 전망함에 있어 이를 그리이스문명과 비교하는 토인비(Arnold Toynbee:{Civilization on Trial})의 혜안은 지금도 여 전히 유효하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근대서구문명은 그리이스문명을 붕 괴시킨 것과 동일한 딜렘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이스는 수백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6 세기 경에 중대한 경제혁명이 일어났다. 그리이스가 지중해 연안에 많은 식민국가를 건설하면서 그리이스 경제가 세계화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 라 그리이스는 과거의 자립적인 혼합농업을 포기하고 포도와 올리브 등 특화농업으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세계화된 경제>에 대하여 수백개의 <도시국가체제>는 정합성(整合性)이 없는 것이었다. 공통의 교역질서와 합리적인 세계분업체제, 해상의 안전 등 모든 면에서 그리이스는 도시 국가체제를 초월해서 전체를 통합해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했던 것 이다. 그리이스 전체가 하나의 <영토국가>로 통일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였다. 도시국가 단위의 민주주의 체제는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가치였다. 그리고 그리이스 전체를 포괄하는 영토국가의 민주주의 는 그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전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포괄하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것과 같다.)

그리이스는 한동안 델로스 동맹에 기초하여 아테네를 맹주로 하는 아테네제국주의(또는 동맹체제)로 이에 대처하려고 하였다(오늘날 미국 이 세계경제질서에 패권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러한 체제에 불만을 품은 스파르타가 전쟁 을 야기하였고, 아테네는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일시 스파르타가 맹주 가 되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다시 테베-아테네 연합군에 패배하였고, 테베는 패권은 이미 그리이스문명의 종말이었다. 그리이스는 도시국가체 제를 초월하지 못하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정복되었다. 교역의 중심은 알렉산드리아에 옮겨지고 그리이스문명은 종언을 고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시장을 조절하기 위해서는(공황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 는) 세계국가가 건설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이스 전체의 영토국가가 불가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국가는 불가능하다. 근대의 자 유민주주의 국민국가는 그리이스 도시국가의 민주주의(지배계급의 민주 주의)와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해 적용될 수 없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질곡이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다수의 국가가 평 화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같은 문명권에 속한 유럽인들도 경제적 이해관계를 조절하지 못하게 두차례나 세계대전 을 일으킨 것이 근대사이다. 러시아, 중국, 일본, 아랍, 유럽 어느 문명 권이 아테네(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스파르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세계시장과 근대국가의 구조에서는 평화란 없다. 그리고 새 로운 전쟁은 문명의 붕괴인 것이다.

2)로마 문명의 종말

로마문명은 적이 있을 때, 번성하였다. 적은 내부를 단결시키고 갈 등을 억압한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이르러 정복사업을 중지하 였다. 더 이상의 정복은 비용이 많이 들고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이것 은 오늘날 폭력의 기능이 약화된 것과 같다). 그렇다고 주변부(가령 蠻 族)가 로마에 결정적인 위협을 가하는 상황도 아니었다(이것은 오늘날 냉전종식과 함께 대적구도가 소멸된 상황과 같다). 그리하여 정복사업 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정복사업의 중단과 함께 로마는 쇠퇴하기 시작 하였다. 로마의 지배계층, 또는 중심부의 부유한 자들은 적이 없어진 상 황에서 타락으로 빠져들었다. 지배계급은 목적을 상실하였다. 네로는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하여 로마를 불태웠고, 대중에게는 콜롯세움에서 잔인한 오락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번영 이면에는 속주(屬州)의 인민과 하층계급 그리고 이주(移住)한 만족(蠻族)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 위대한 로마가 내적 외적 프로레타리아트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그 들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고, 생존하기 위한 몸부 림은 기존의 세계에 무질서를 증대시켰다.

점차 로마제국 중심부와 지배계급도 충분한 부를 확보할 수 없게 되 었다. 기존의 공납제도 및 시장체제가 국가와 지배계급, 로마시민을 위 한 부(富)를 충분히 조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개혁조치가 시행되었다. 로마시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필품에 대한 가 격을 고정시키고, 세금징수를 증대시키고, 농민의 도망을 금지하여 농민 을 토지에 결박(結縛)하고, 하층계급이 직업을 바꾸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개혁조치는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의 시장체제를 파괴되었다. 고정 가격으로 채산성을 상실한 속주(屬州)들은 판매를 위한 생산을 중지하고 지역적 자립경제체제로 변화되었다. 농민은 토지에 결박되어 농노로 되 어 갔다. 질서는 붕괴하고, 도시는 약탈당하고, 경제는 자립화하고, 농 민은 농노화하여 중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의 경제는 고사(枯死)하여갔고 그와 함께 로마문명도 쇠퇴해갔다. 게르만의 용병이 로마의 권력조직을 와해시킨 것은 이미 그전에 죽어버린 시체(로마)를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계급혁명이 문명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그 러나 문명 전체를 횡단하는 불평등(계급화)은 결국 <야만과 종교의 승 리>(Edward Gibbon)를 통하여 문명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적이 없어지고 부유한 자가 안심하고 전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부유하고 만족(滿足) 하는 계급이 가난한 자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자신들의 부의 기반은 세계적이고 국내의 가난한 자와는 상관없는 상태--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생존의 몸부림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 게 만든다. 그들은 범죄자, 약탈자, 폭동자,난민이 되어 생존의 몸부림 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패자(敗者)들의 몸부림이 질서와 문명을 파 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敗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갈브레이드는 만족계급(滿足階級)이 지배하는 미국은 결국 경제적 파탄, 군사행동, 하 층계급의 반란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며, 유감스럽지만 미국에 <희망이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J.K.Galbraith: {The Culture of Contentment}) 이것은 로마가 걸었던 길이고, 미국만이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의 운명이 기도 하다. 질서를 파괴하는 패자(敗者)의 폭력이 마침내 과학기술의 발 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사회간접자본을 보수할 수 없게 만들 때, 새로 운 중세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이스 로마문명이 붕괴한 선례는 그 후예인 근대서구문명(오늘 의 인류문명)의 장래를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근대서구문명을 극복하 지 못한다면 그것이 인류의 문명을 붕괴시킬 것이다.


2.서구문명의 전도 : 쇠퇴/붕괴

우리가 현실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경향을 파악한다면 근대서구문 명의 전도는 명백하다. 근대서구문명은 붕괴/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 세계화한 경제에 대하여 근대국가는 낡았다. 그것은 마치 그리이스 의 도시국가와 같다.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도 그리이스의 민주주의와 같다. 만인이 찬양하고 있는 자본주의시장체제도 낡은 것이 되었다. 국 내적 국제적 계급화(불평등화)를 폭력(경찰, 군대)이 제어하지 못할 때, 그리고 국가가 시장을 조절하지 못할 때, 자본주의시장체제는 재앙의 원 천일 뿐이다. 나아가 지식정보혁명에 의하여 산업사회가 종언에 이르고 있으며 그것은 근대문명의 종언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도 세계 다수의 국가는 여전히 산업화의 도정에 있다. 그러나 그 산업화는 과거의 산업 화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환경의 압력, 지식정보화의 압력과 함께 진행 되어야 하는 산업화인 것이다. 그러한 산업화의 과정은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자본주의시장체제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근대 국민국가, 자본주의시장체제 등은 우리에게는 너 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너무나도 당연한 실체들이 진부화하고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당연한 것의 진부화(陳腐化)---이것이 문명 의 쇠퇴이다.

세계시장과 근대국가의 딜렘마, 지식정보사회와 자본주의시장체제의 딜렘마, 전세계를 횡단하는 계급화의 딜렘마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류 문명은 붕괴하거나 쇠퇴한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그런데 이 딜 렘마를 해결한다는 것은 서구문명 자체가 변혁된다는 의미이다>>> 그 시 나리오는 그리이스문명과 같이 급격한 것일 수 있다. 즉,환경재난, 공 황, 폭동, 주변부의 내전, 중심부의 타락, 전쟁과 같은 급격한 것일 수 도 있다. 이것은 노스트라다무스나 기타 많은 예언가들이 그리는 지구 종말의 시나리오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직관적 인식이 이성적 분석에 선행하는 법이다).

다른 방식으로 로마문명과 같이 오늘날 인류문명이 천천히 고사(枯 死)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시장체제는 이론적으로는 파괴될 수 없는 것 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파괴되어도 여전히 경제적 교환과 시장은 존 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시장체제는 파괴되는 것이 아 니라 새로운 것에 의해 대체(代替)될 수 있을 뿐이다. 기능이 쇠퇴하여 재앙을 야기할 뿐인데도 대체되지 못할 때, 바로 문명이 고사(枯死)하고 쇠퇴하는 과정에 빠지는 것이다. 문명이 붕괴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 한다. 막을 능력이 있는 자(부유한 자, 중심국가)는 동기를 가지지 않 고, 동기를 가진 자(가난한 자, 주변국가)는 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 다.

우리의 결론은 간결한 것이다.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시장체제를 극복 하지 못한다면 인류문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근대국가 는 과거의 근대적 기능을 상실하고 지역적 전쟁의 단위일 뿐이다. 자본 주의시장체제는 과거의 물질적 성장의 기제가 아니라 불평등과 공황의 기제일 뿐이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는 과거의 자유와 인권의 기제가 아 니라 초국가적 연대를 질곡하는 기제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체제가 야기시키는 비극적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중진국이나 선진국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결론이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중심부의 화 려한 외관은 우리를 기만한다(로마시도 제국의 멸망할 때까지 화려한 외 관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고 상상해 보라. 화려한 중심부는 대양의 섬에 불과할 뿐이다. 진보는 중심부에서 시작하지만 쇠퇴는 변경에서 시작하는 법이다(그래서 중심부의 사람들은 끝까지--파멸이 자신들에게 직접 다가오기까지--쇠퇴를 믿지 않는 법이 다.)(拙著: {자본주의 우물을 벗어난 문명사}참조)


3.낙관주의의 허구

문명이 고사(枯死)하고 쇠퇴하는 동안 현체제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세계의 부유한 사람들)은 여전히 장미빛 미래를 이데올로기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나중에 죽을 사람들이고, 그들의 눈에 는 세계는 아름답고 미래는 밝게 보이며, 그 밝은 이데올로기가 불만자 들을 마비시킴으로써 그들을 안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서구주의자들은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시장체제가 제공하는 장미 빛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역사의 종언론이다. 후꾸야마 (Fransis Fukuyama:{The end of History})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역사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탈역사지역에서는 더 이상 체제적 개선의 여 지가 없고, 오직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체제에 이르지 못한 지역에서만 역사가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체제와 정치체제간의 모 순을 간과한 낙관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세계시 장은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파멸의 기제이다.

드락카는 2,010년에는 오늘날 제3세계의 4분의 3이 선진국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비역사적인 상상이다. 근대사 이후로 비서구국가로서 선진국에 오른 나라는 일본뿐이다. 경제 적 선진국에 이르는 길은 약 100년간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 다. 많은 나라들이 가능성을 보였지만 중도에 탈락했다. 1960년대에 강 력한 후보였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푸에르토리코, 칠레, 뉴질랜드 등 모든 국가들이 30년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어떤 학 자들은 한국이나 아시아의 용들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Paul Krugman: {Peddling prosperity}등). 자본주의는 만인을 승자로 만드는 장치가 아 니다. 세계의 다수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성장을 이룩하고 그리하여 서구문명이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주장은 환상이다.

또 다른 낙관주의는 아시아의 국가들이 세계자본주의와 서구문명을 힘차게 이끌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영국/미국에 이어 일본/중국을 중 심으로 한 동북 아시아지역이 자본주의의 중심국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틀린 것이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근대 서구문명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근대서 구문명(서구근대체제)이 유지되는 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라고 하여 앞 에서 말한 <세기말의 딜렘마>를 해결하는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 다. 여전히 서구근대체제가 유지되고 동북아시아지역이 강화된다면 헌 팅턴(Samuel Huntington)의 예견과 같이 같은 서구문명의 주도권을 놓고 유교문명권과 서구문명권의 충돌이 야기될 것이다. 근대서구문명의 성 격이 유지된다면, 패권의 이동은 반드시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A.F.K.Organski : {World Politics}). 그러나 그 전쟁은 아마도 인류 를 전멸시키는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이다.

서구문명에 대한 가장 광범한 낙관주의는 소위 정보사회론이다. 그 러나 정보사회의 장미빛 미래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근대국가-자본 주의시장체제를 무의식적인 전제로 하고 있다(그들은 체제에 관해서 논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체제와 문명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간 주하고 정보기술의 가능성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지식 정보혁명이 어떠한 딜렘마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논의하였다. 그것은 근 대체제를 전제로 하면 고용문제, 분배의 악화, 카지노자본주의를 야기 시키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국가와 폭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오히려 근대서구문명을 파멸시킬 것이다.

또 다른 서구주의자들은 시민사회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제 국가 가 약화되고 시민사회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초월 하는 시민사회의 연대에 의하여 새로운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 은 아름다운 환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선진국에서부터 시민사회 가 붕괴되고 있다. 현재는 중산층의 시민사회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계 급화(불평등화)의 시대이다. 지식정보혁명의 충격은 중산층을 분해시킴 으로서 시민사회를 와해하고 있는 것이다(중산층이란 산업사회에 존재하 는 것이다. 클린턴은 95년 연두교서에서 (파괴되고 있는) 시민사회의 재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다). 근대적 도덕이 붕괴하고 근대적 시민의식 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다니엘 벨(Daniel Bell) 브레진스키 (Zbigniew Brezinski) 등은 이미 미국의 정신이 붕괴했으며 다른 문명 권에 호소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다.(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통제불능의 사회}). 결국 시민사회론 은 서구인의 레토릭(rhetoric)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 지방화가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길처럼 여 기고 있다. 이것은 중간에 있는 근대국가를 협공하여 변화시킨다는 의미 에서 새로운 시대에의 경향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화/지 방화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여 자본이 국가와 권력을 초월하였다는 것, 전인류와 모든 지방이 인간적 삶에 대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경쟁이 작열하는 세계시장에 던져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 결과 세계경쟁 에서의 승자는 항상 극소수이다. 다만 몇개의 지방(또는 도시)만이 섬처 럼 번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섬도 결국은 대양의 파도에 휩쓸려 잠기게 될 것이다. 로마가 그랬다. 서구적 이념의 마술에 빠져 지방화 는 무조건 좋은 것처럼 생각하고, 세계화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생 각하는 것으로,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미 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결론은 서구근대체제--근대국가, 자본주의시장체제 --를 전제로 하는 한 구원의 길은 없다는 것이다. 문명의 전환은 최종적 으로 이러한 서구근대체제를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참으로 새로운 21세기 인류문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과제는 근대서구문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것 이다. 그것은 참으로 거대한 일일지 모르나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IV.문명적 비젼

1. 새로운 비젼 : 문명적 비젼

세기말의 현실은 인류에게 변혁과 창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 리의 인식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요구하는 변혁에 대 한 우리의 인식,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비젼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근대적 비젼(modern vision)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세계를 선 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비젼이다. 이러한 구분은 후진국이 선진국을 비젼으로 하여 선진국을 모방하는 것이 발전 이라는 이미지를 내포하는 것이다. 모든 낙관론이 이러한 근대적 비젼을 지지한다. 그러나 세기말의 딜렘마는 과거의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함께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이다. 선진국이라고 하여 이러한 딜렘마에 예외가 아니며, 선진국이라고 하여 쇠퇴/붕괴의 위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 니다. 수많은 서구추종주의자들이 여전히 근대적 비젼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세기말의 딜렘마가 의미하는 것은 근대적 비젼이 파산하였다는 것이다. 세계시장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불평등을 세계화하고 심화 시키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며, 국가의 제어능력을 약화시켜 세계적 불황 과 공황의 함정을 다함께 파는 길이다. 지식정보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역시 불평등과 실업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투기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경제개발의 신화와 세계경쟁의 매카니즘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 은 지구환경을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넘게할 것이다. 이제 근대적 비젼 은 더 이상 비젼이 아니다. 이제 전세계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역사적 동시대에 서 있다. 선진국은 이제 더 이상 후진국의 비젼이 아니다.(옥 타비오 파쓰). 근대적 비젼은 바로 문명의 쇠퇴/붕괴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과 근대적 비젼에 매몰되어 있다. 역사적 필연성--붕괴/쇠퇴의 필연성--은 바로 이러한 서구근대적 창조성 의 네메시스(nemesis)에 있는 것이다.

둘째, 소위 탈근대적 비젼(post-modern vision)이다. 오늘날 많은 사 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에 탈근대적 비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원한다. 정보사회론을 비롯한 모든 낙관론이 자신들의 비젼을 탈근대적 비젼이라 고 주장한다. 또한 환경문제와 같이 인류적 문제를 제기하는 앞선 사람 들도 자신들의 시야가 탈근대적이라고 자부한다. 이러한 탈근대적 비젼 은 한가지 공통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수많은 비젼들이 조각 조각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선의와 시민운동이 있지 만 그것들은 모두 분리된(서로 연결될 수 없는) 의식과 관점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비젼이 조각조각 해체되어 버렸다는 것이 소위 탈근대적 비젼의 특징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소위 탈근대 적 비젼이라는 것은 사실은 근대적 비젼이거나 근대적 비젼의 부작용에 대한 분리된 저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 한가지 단순한 사실에서 명 백하다. 스스로 어떠한 철학과 정신을 주창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체제는 여전히 근대적 비젼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근대국가체제, 자본주의시 장체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더나은 근대국가, 더 나은 시장체제, 더 나은 자유민주주의도 여전히 근대국가이고 시장체 제이며 자유민주주의임에는 변함이 없다. 가령 지방화가 강화된다고 하 는 것은 근대국가체제를 변혁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지방화를 강화 시키는 것은 사실은 세계시장을 강화하고 근대국가체제를 여전히 유지하 는 방식이다. 그것은 여전히 근대체제인 것이다. 환경문제를 인류적 차 원에서 해결하자는 시민적 노력 역시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과 근대국가를 지탱하는 데 조력하는 것이다. 모든 탈근대적 비젼은 주관적 목표와 객관적 결과가 불일치하는 딜렘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 성의 간지야말로 붕괴/쇠퇴의 역사적 필연성을 만드는 매카니즘인 것이 다.

세째, 문명적 비젼(vision of new civilization)이다. 문명적 비젼은 이 세계의 현실을 문명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며, 오늘날 모든 문제 는 문명적 차원의 원인이 있고 문명적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 의 문제와 과제는 더 이상 선후진국의 문제, 발전의 문제, 근대화 서구 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지향은 더 이상 조각난 많은 사회문제와 그에 대한 저항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다. 오늘날 모든 문제들은 단 한가지 통합된 원인을 가지고 있고, 통합 된 지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바로 문명적 현상들이며 문명적 비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환경문제, 범죄의 만연과 질서의 붕 괴, 내전과 난민, 정치행정의 무력화,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문제이다. 그것은 근대서구문명이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딪쳤으며, 그 해결을 위해 새로운 문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다. 문명적 비젼은 그 정체성으로서 궁극적으로 근대서구체제를 변혁하 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이념이나 정신은 다양할 수 있으며, 이념과 정 신으로 문명적 비젼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 모든 탈근대적 비젼들 이 사실은 그 이념과 정신에 있어서는 문명적 비젼의 맹아들이다. 왜냐 하면 모든 탈근대적 비젼들이 그 관점을 계속 밀고 나가 근원적 지점에 이르면 결국 우리는 문명의 문제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명적 비젼의 현실적 의미는 서구근대체제에 대한 태도이다. 그것이 비록 미지의 세계라고 하더라도 근대국가-자본주의시 장체제라는 근대체제를 넘어서야 하고, 넘어설 수 있으며, 이제 그 때가 이르렀다고 하는 신념이 문명적 비젼의 출발점이다.


2..문명전환의 의미

인류는 21세기에 문명의 쇠퇴나 붕괴를 이겨내고 새로운 문명에 이를 수 있을까? 21세기에는 쇠퇴하는 근대서구문명(또는 붕괴하기 前의 근 대서구문명)을 대체하는 새로운 문명이 부활하여, 마침내 문명의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현재가 격변기이고 문명의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것이 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대체 문명의 전환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17세기, 18세기, 19세기의 유럽과 오늘의 서구는 문화가 다르다. 또한 오늘의 미국/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는 문화가 다르다. 그처럼 21세기에는 다른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문명의 전환인 가? 아니다. 17세기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 현재 지구상의 모든 지역은 모두다 하나의 문명인 것이다. 문명이 달라진다는 것은 시간적 으로 17세기에서부터 현재까지, 현재의 서구와 비서구 전체와 질적으로 다른 21세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보고속도로가 형성되 고, 재택근무가 실현되고, 인간들의 관계가 사이버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문화적 상품이 더 많아진다고 하여 문명이 전환한 것은 아 니다. 그래도 여전히 근대국가체제이고 자본주의시장체제이며 물질문명 이고 근대서구문명인 것이다.<<<<문명의 전환과 문화의 변화는 다른 것 이다. 문화가 변했다고 하여 문명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문명이 전환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 적으로 말하면 사회체제가 변화하고, 인간의 정신이 변화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생활양식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근대국가--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시장체제>가 변혁되고, <개 인주의, 합리주의, 물질주의>가 변혁되는 것이다. 문명이 전환한다는 것은 새로운 정신, 새로운 사회체제, 새로운 생활양식이 형성된다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의 과제는 새로운 문명(정신-체제-생활양식)을 창조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역사의 법칙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지 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또는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 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창조--구체적으로는 비서구문명의 부활과 재창 조--일 것이다. 그 과정은 먼저 새로운 정신이 나타나고, 새로운 사회체 제가 형성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생활양식이 보편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우선 문명전환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정신의 문제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여 서구근대정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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