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 버린 화교 거주지역.
백년의 이민사가 처량하기만 하
인도네시아의 반수하르토 시민운동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역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폭동과 약탈이라는 오점이 찍혀져 있다. 적어도 80년 우리의 광주민주화운동은 높은 시민의식으로 인해 약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전 도시가 시민 자치로 움직여 질 수밖에 없었던 그 시기에 우리 국민은 그 어떤 가게도 함부로 난입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성숙함에 놀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이번 반수하르토 독재 운동 기간 동안에는 많은 도시 빈민과 일반 시민들이 백화점과 일반 수퍼마켓에 무차별 진입하고 또 약탈, 방화를 일삼았다. 대학생들의 성숙하고도 진지한 민주화 요구에 편승한 일부 시민들의 이러한 행위는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성숙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물론 또 다른 측면에서 이들의 행위를 분석하자면, 자신들의 경제적 궁핍이 일부 부유층의 착취와 독점 때문이기에 약탈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하겠노라는 시민들의 태도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경제구조와 부의 편중 현상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2억5천만이라는 대인구 속에서도 전 인구의 7%를 넘지 않는 중국 화교들이 인도네시아 전 자본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자본은 다시 수하르트를 정점으로 하는 일부 지역 출신의 권력과 결탁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의 국민들은 마음 속 깊이 화교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움 역시 하루 이틀 사이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식민지 경영을 하던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고용계약 형식으로 수 많은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로 이주 시켰으며 이때 이주한 중국인들은 식민지 지배자와 원주민의 중간자 역할과 그들의 천부적인 상술을 바탕으로 오늘의 화교자본을 이루어왔다. 더욱이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화교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싱카포르 등 인도네시아 권역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화교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분노는 고도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수하르토 독재정권은 자기 정권의 경제적 배경이자 공존세력이기도 한 화교들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측면이다. 민족적 반감을 이용해서 정치적 위기를 탈출하고자 했다는 분석은 이제까지 인도네시아가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이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적 술수는 화교 자본이 국가 자본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