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집 합 표 상(集合表象)



우리가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과연 옳은가?

태양이 지구를 돈다(天動說)고 생각한 과거의 사람들 처럼 크게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인간의 모든 생각과 의식의 내용을 집합표상(集合表象)이라고 정의 (定義)하자. 집합표상은 세계를 해석(解釋)하기 위하여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것으로, 인간의 실천을 매개하며 사회의 기반을 이룬다. 그러 나 이렇게 창조된 집합표상이 거꾸로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허구에 빠뜨리는 것을 집합표상의 카르마(業)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서구의 근대적(근대적) 집합표상이다. 우리는 근대적(近代的)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규명하고, 그것에서 벗어 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현대의 제문제(諸問題)를 해결하는 첫걸 음을 딛고자 한다.요약참조



1.1 제1장 집합표상

1.2 제2장 집합표상의 위상(位相)

1.3 제3장 집합표상의 카르마(業)


요약 (集合表象)

의식(意識)의 내용을 형성하는 이미지, 개념, 정감(情感), 가치관, 세계관, 사고방식 등 모든 것을 포괄하여 집합표상이라고 부르자. 인간 이 세계를 인식(認識)하거나 무엇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그에 관한 어 떠한 이미지(image:象)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합표상은 의식의 내용이 이러한 이미지의 집합이라는 관점에서 정의(定義)된 것 이다.

인간의 인식은 반영(反映)이 아니라 창조(創造)이다. 인식은 '거울 의 비유' 보다는 '화폐(貨幣)의 비유'가 더욱 적절하다. 집합표상은 화 폐처럼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창조(創造)된 것이다. 주역(周易)의 괘(卦)는 인간의 창조로서의 집합표상을 가장 전형적으로 표현하고 있 다. 그리하여 인간의 인식을 집합표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주역의 인 식론적 관점(認識論的 觀點)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 창조한 집합표상에 의하여 세계를 해석하고 대처(對 處)하며, 그것에 의지하여 가치를 규정하고 실천에 이른다. 그리고 사 회구성원의 공통된 집합표상은 사회를 형성하는 기반(基盤)이다. 그리 하여 한 사회의 공통적 집합표상은 그 사회의 사람에게는 공기(空氣)처 럼 당연하나, 문화를 달리하는 다른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집합표상의 진리성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 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기준도 집합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럼 에도 인간은 자신의 집합표상을 진리(眞理)라고 고집하며, 다른 집합표 상을 가진 사람과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창조한 집합표상에 의하여 오히려 지 배당한다. 불가(佛家)에서도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집합표상에 집착하 고 예속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집 합표상이 인간을 예속시키는 현상을 우리는 집합표상의 카르마(業)라고 부를 것이다. 그것은 집합표상이 존재화하여 독립함으로써 자신을 고집 하는 경향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자신이 형성한 자아(自我)에 관한 집합표상이 카 르마를 야기함으로써,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가치한 집착(執着)에 빠뜨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집착에 빠져 있는 상태를 무명(無明) 이라고 한다. 우리도 인간이 스스로 형성한 집합표상의 카르마에 빠져 있는 상태를 무명이라고 규정하기로 한다. 인간이나 사회는 모두 집합 표상의 카르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무명에 빠져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현실의 문제도 기존(旣存)의 시대적 집합 표상의 카르마가 가장 기초적인 원인이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 사적 진보는 시대를 지배하는 시대적 집합표상의 전환에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기존의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밝히고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합표상의 발전을 통하여 발상(發想)의 전환을 이룩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집합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기존의 집합 표상에서 벗어나는 창조적인 사유를 필요로 한다. 창조적 사유에 있어서 이성(理性)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깨달음, 직관(直觀) 상상력(想像力)이다. 이성이란 독립된 의식의 영역이 아니 라 기존의 집합표상의 정합성(整合性)이다. 그리하여 집합표상의 전환 은 이성과는 다른 차원의 깨달음, 상상력이 이성의 차원으로 이입(移 入)하는 것이다. 이성(理性)은 상상력에 의하여 확장(擴張)되고 상상 력은 이성에 의하여 합리화한다. 상상력이야말로 기존의 집합표상의 카 르마를 제기(提起)하고 해결하는 길을 열어준다.

현대의 제문제(諸問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근원을 이루 고 있는 근대적(近代的) 집합표상의 카르마를 규명하는 것에서 시작하 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