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연 대 성(連帶性)



존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사건(事件)의 연결망이며, 존재로 분리될 수 없는 전일적인 연대성(連帶性)이다. 원동자(原動者)와 모순 (矛盾), 관념론(觀念論)과 유물론(唯物論)같은 사고는 세계를 존재로 분해하는 존재론적(存在論的) 집합표상이 야기한 카르마이다. 동양적 사고방식은 연대적(連帶的) 집합표상이며, 실재나 운동과 같은 분별에 의 한 문제는 처음부터 제기되지 않았다. 동양사상에서는 전체에 대하 여 부분이 갖는 연대적 위상을 깨닫는 것이 항상 본질적인 해답이었 다.요약참조



2.1 제1장 존재론적 집합표상

2.2 제2장 연대적 집합표상

2.3 제3장 연대성(連帶性)

2.4 제4장 생성(生成)의 문제


요 약 (連帶性)

1. 존재론적 집합표상(存在論的 集合表象)

존재(存在)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규정이다. 존재로 세계를 볼 때,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구조 속에 존재가 운동변화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는 물질적 존재, 법칙, 신 등과 같이 차원이 다른 존재들의 관계로 규정된다. 이렇게 세계를 존재로 해석하는 세계관을 우리는 존재론적 집합표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세계를 이러한 존재로 해석하려고 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평범한 사실인 운동과 변화, 생성(生成)을 철 학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존재는 자기동일성에 있어서 불변하는 것이 며, 생성변화는 자기동일성의 전환이고 새로운 자기동일성의 형성이다. 자기동일성으로서의 존재로서는 동일성의 전환이나 새로운 형성을 설명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두개의 서구적 해답(西歐的 解答)이 제출되 어 있다. 하나는 스스로는 운동하지 않으면서 일체(一切)의 존재를 운 동시키고, 스스로는 생성소멸하지 않으면서 일체의 생성소멸을 야기(惹 起)하는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적으로 이데아의 세계로 표 현되기도 하고, 원동자(原動者) 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형 이상학적(形而上學的) 논리를 부정(否定)할 때 운동과 변화의 원인을 구체적인 물질적(物質的) 존재의 내부(內部)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 唯物論)은 구체적 물질적 존재 내 부에 실재(實在)하는 모순(矛盾)이라는 새로운 집합표상을 형성한다.

우리의 관점은 이러한 문제들이 존재론적 집합표상의 카르마라는 것 이다. 원동자(原動者)이든 모순(矛盾)이든 그것들은 세계를 일단 존재 로 규정한 후에 운동 변화를 존재로서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집 합표상의 적용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사물로 오인하는 것이다. 그 리하여 이러한 문제들은 '추상(抽象)의 카르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에 비하여 동양사상(東洋思想)은 세계를 존재로 해석하지 않으며 따라 서 동양사상에는 존재론(存在論)이 없다. 그리하여 동양에서는 이러한 문제는 처음부터 제기(提起)되지 않았다.

2. 연대성(連帶性)과 연대적 집합표상(連帶的 集合表象)

우리가 존재에 관한 집착(執着)을 버린다면 세계는 사건(事件)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건이란 세계의 모든 현상(現象)에 대한 보편적인 이름이다. 사건이란 객관적(客觀的)으로 규정되는 특정한 사물이나 현 상이 아니라, 우리가 주관(主觀)을 투입(投入)하여 세계의 한 부분을 다른 모든 부분들과 분할(分割)하고 구별(區別)하여(즉,分別하여) 우리 가 규정하는 집합표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주관의 투입을 중지(中止)한다면 즉시 세계는 불가분적 전일성(不可分的 全一 性)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건은 그 경계가 확정되지 않으며, 일 체의 사건은 바로 불가분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전체(全體)이다. 모든 사건은 다른 모든 사건에 의존(依存)하여 성립(成立)한다. 그 어떠한 사건도 독립하여 성립하지 못하며 하나의 사건이란 다른 모든 사건과 의 관계(關係)의 총체(總體)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부분에 관한 명 칭이 사건이고, 전체에 관한 명칭을 우리는 연대성(連帶性)이라고 부른 다. 연대성이란 본질(本質)이 하나의 사건이 그 자체에서 규정되는 것 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건과의 관계, 즉 위상(位相)으로 규정되는 것 이며, 모든 사물은 다른 모든 사물의 매개체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러한 연대성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나므 로 저것이 일어나고 저것이 일어나므로 이것이 일어난다. 장자(莊子) 는 우리가 서 있는 데는 한 평(坪)의 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서 있는 그 한평을 제외한 일체 의 땅을 파버린다면 우리는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현 대과학은 밤하늘에 보이는 수 많은 별들이 우리의 공간과 시간에 직접 적으로 참여(參與)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전일성 (全一性)을 우리는 연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를 사건과 연대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우리는 연대적 집 합표상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러한 연대적 집합표상에 있어서는 존재 와 운동 변화의 문제는 해소(解消)된다. 운동이나 변화의 문제는 사건 의 한 양상(樣相)에 지나지 않으며, 동일한 하나의 사건을 존재, 운동, 변화로 분별(分別)함으로써 야기된 것이다. 존재가 운동하는 것이 아니 라,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개념적으로 존재와 운동, 변화로 분리(分 離)하고 그것을 다시 결합(結合)하지 못하여 곤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사건에 있어서 무엇이 존재이고 무엇이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사건의 특정한 양상에 대한 우리의 집합표상일 뿐이다. 그것은 집합표상의 문 제이지 객관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실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 적 집합표상의 카르마인 것이다.